베이스볼 프로메테우스 1편 – 야구장의 후크 선장, 파커 버드

<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한태현 >

세상에는 최고의 무대에서 빛나기 위해 오늘도 땀 흘리는 어린 선수들이 있다. 그러나 모두가 그 영광을 누리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이들은 불운한 사고로 어린 나이에 거대한 역경에 맞닥뜨리며 꿈을 접어야만 한다. 그런데도 이에 굴하지 않고 끝까지 한계를 극복해 나가는 청년들이 있다. 비록 최고의 자리에 오르지 못하더라도 그들은 누구보다 더 큰 노력과 치열한 고민으로 살아가며, 누구나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한다.

이 글은 2025년 8월 11일 파커 버드와 진행한 인터뷰 및 기존에 발행된 기사를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

파커 버드는 유격수지만 아직 미국 대학야구의 최고봉 NCAA D1에서 0.1이닝도 수비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것 보다 그에겐 더 유명한 명칭이 있다. 의족을 착용한 타자라는.

 

야구와 해적단으로 가득 찬 삶

< 파커 버드의 어린 시절. 이스트 캐롤라이나의 상징색 보라색 저지를 입고 있다. >

파커는 삶의 시작부터 야구와 함께했다. 인생 첫 번째 장난감은 공을 칠 수 있는 라켓이었고, 야구가 뭔지 모를 때부터 그는 공을 던지고 치고 놀았다. 5살이 되어 정식으로 야구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을 때, 그는 해가 떠 있으면 쉬지 않고 야구하며 어린 날을 보냈다.

그에게 야구는 단순한 취미가 아니었다. 야구를 좋아했을 뿐만이 아니라 동네에서 야구를 제일 잘 했다. 그의 실력은 그가 살던 작은 동네와 노스캐롤라이나주를 넘어 전국으로 알려졌다. 미국 고등학교 유망주를 평가하는 매체 퍼펙트 게임은 파커를 노스캐롤라이나주 두 번째 유격수로 선정했다.

< 파커 버드의 고등학교 스카우팅 리포트 >

자연스럽게 여러 학교로부터 연락이 왔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오직 단 하나의 학교만 존재했다. 노스캐롤라이나주 남동쪽 그린빌에 있는 이스트 캐롤라이나 대학. 부모님이 모두 다닌 학교이자 D1 야구 포스트시즌에 35번(2025년 기준)이나 진출한 강팀. 파커가 이스트 캐롤라이나에 입학하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그는 9학년(한국 기준 중학교 3학년) 때 일찌감치 이스트 캐롤라이나 파이리츠의 일원이 되기로 합의했다.

 

한여름에 발생한 사고

그러나 그가 이스트 캐롤라이나의 보라색 유니폼을 제대로 입어보기도 전에, 그의 삶은 완전하게 달라졌다. 대학생 첫 학기 직전, 친구들과 함께 놀러 간 물놀이에서 그는 너무나 큰 사고를 당했다.

파커는 지금은 메이저리그의 부름을 받은 동기 딕슨 윌리엄스와 함께 사고에 휘말렸다. 보트를 서로 연결하던 밧줄이 프로펠러에 걸렸고, 둘은 바닷물로 빠졌다. 그때 앞 보트를 운전하던 사람이 실수로 후진해버렸다. 윌리엄스는 가까스로 위기를 모면했지만 파커는 프로펠러에 다리가 휘말리고 말았다.

다행히 함께 간 친구 중 하나인 마일스 컬리는 친구를 보트 전복 사고로 잃은 경험이 있었다. 그는 황망한 상황에서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잘 알았고, 친구들과 응급처치를 수행했다. 또한 지나가던 다른 보트에는 간호사가 탑승하고 있었다. 그 덕분에 초기 대처를 잘 받았고 파커는 조속히 병원으로 후송될 수 있었다.

 

못 할 것은 없어?

파커는 한 달 동안 그가 그렇게 희망한 이스트 캐롤라이나 대학에 있었지만, 교정이 아닌 대학병원에서 입원해야만 했다. 입원하는 동안 그의 우측 다리에 대한 후속 조치는 수도 없이 진행됐다. 수술에 수술이 이어졌지만 그는 삶을 위해 죽어가던 다리를 포기해야만 했다.

평생 야구와 살았던 그에게, 교우관계 전부가 야구로부터 기원한 그에게 오른쪽 다리에 생겨난 공허함은 곧 인생의 공허함으로 다가왔다. 그는 야구를 다시 할 수 있을지, 내가 앞으로 뭘 할 수 있을지 고민에 빠졌다.

그가 정신적으로 어려움에 빠졌을 때, 주변 사람은 모두 그에게 큰 힘이 되었다. 이스트 캐롤라이나 야구부 감독 클리프 고드윈은 그가 병원에 후송됐을 때 가족 외 가장 먼저 파커를 찾아온 사람이었다. 코로나19로 병원 입장이 제한된 상황에서도 그는 파커를 찾아와 그를 응원했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 밋지 버드가 있었다. 야구를 더 이상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낙담한 아들에게 어머니는 계속 희망을 불어넣었다. 의족을 달고 경기에 나서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어머니는 누군가는 처음이 되어야 한다면서 아들을 격려했다. 그리고 그런 응원에 힘입어 파커는 용기 내어 새로운 도전을 준비할 수 있었다.

< 병상에서도 놓지 않았던 야구공 >

 

지켜보는 것이 제일 힘들어

재활은 절대 쉽지 않았다. 파커는 한 걸음 앞으로 가면 곧바로 두 걸음 뒤로 물러나야 했다면서 재활 과정을 회고했다. 하지만 그는 끊임없는 반복 훈련과 그동안 키워낸 끈기로 버텨냈다. 처음에 어색하던 의족도 언제부터는 자연스러워졌고, 새로운 신체를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도록 단련했다. 

그러나 신체적인 어려움은 정신적인 고통에 비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평생 주전이란 자리를 놓쳐본 적이 없는 파커에게 벤치에서 다른 동료들의 경기를 지켜봐야만 하는 건 그의 마음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는 자기가 연습에 참석하고 뛰는 것 자체가 축복이라고 말했다. 생사의 경계선을 접했던 그는, 비록 더는 주전으로 9이닝을 소화하긴 어려울지라도 동료들과 함께 땀을 흘리고 같은 공간에 있는 그 자체가 감사하다고 덧붙였다.

< 파커 버드와 가족 >

 

2024년 2월 16일 그리고 2025년 3월

< 타석으로 돌아온 파커 버드 >

파커는 끝없는 노력 끝에 경기장으로 돌아왔다. 2024년 2월 16일 라이더 대학과의 경기 8회말. 11-2로 점수 차이가 크게 벌어진 상황에서 파커 버드의 등장을 알리는 아나운서의 소개가 울려 퍼졌다. 초구는 스트라이크였지만 이어서 공 네 개를 잘 골라내 파커는 1루로 걸어서 나갔다. 곧바로 대주자와 교체됐지만, 파커는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고 말했다.

파커는 자신의 출장과 출루는 자신만의 이야기가 아닌 그 현장에 있는 모두의 이야기라 강조했다. 모두의 도움 없이는 자기가 타석에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고 말한 파커는 타석에 들어서기 전 헬멧을 벗어 관중석을 향해 감사를 표시했다. 파커의 2024년 출장은 세 타석에 그쳤다. 그러나 그는 거기서 안주하지 않았다.

2025년 3월 12일 버지니아 커먼웰스 대학과 경기에서 우익수 희생플라이로 첫 타점을 기록한 파커는 이틀 후 윌리엄 & 메리 대학과의 경기에서 첫 번째 안타를 기록했다. 자기가 만족할 수 있는 안타를 정말 치고 싶었다는 그는 3루 쪽으로 강한 타구를 날렸고, 3루수가 미처 반응하지 못하며 내야안타가 됐다.

파커는 첫 타석에 들어선 것과 첫 타점, 그리고 첫 안타를 쳐낸 순간 모두가 달랐다고 설명했다. 한때 지역 최고의 선수 중 하나였던 그였지만, 한 단계씩 높은 목표를 수행해 내면서 그가 이뤄내는 성취감은 누구도 느끼기 어려운 감정일 것이다.

 

우리는 모두 선수다

< 이스트 캐롤라이나 야구장 클락-르클레어 스타디움 덕아웃에서 >

사고 후에도 야구는 여전히 파커에게 가장 친한 친구다. 사고 전에는 때때로 매 타석 결과에 매몰되기도 했지만, 지금은 신께 감사함을 느끼며 일상의 행복을 누리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을 꾸준하게 추구한다고 말했다.

파커는 세상에 가능성은 무한하며 자기가 절대 마지막 의족 착용 선수가 아니라고 확신했다. 그는 어떤 운동이든 포기하지 않으면 팔이 하나 없어도 다리가 하나 없어도 선수로 활동할 수 있다 믿는다. 그리고 앞으로 장애를 경험 중인 선수가 더 자주 평범한 선수들과 거리낌 없이 동등한 상황에서 경쟁을 펼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직 대학생인 파커는 학업도 훈련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온, 오프라인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전파한다. 그의 활약상은 자신과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희망이 되고 있다. 파커는 너희들도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러나 그 전에 그는 야구 선수다. 파커는 이제 첫 장타, 첫 홈런 그리고 더 나아가 첫 번째 수비 성공을 위해 오늘도 쉬지 않고 노력한다. 2026시즌엔 그가 전력으로 질주해 2루 이상 밟기를 기원한다.

 

참고 = ECU Athletics, NCAA.com, Perfect Game, MLB, D1Baseball.com, Parkerbyrd16.com

야구공작소 이금강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장호재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한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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