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장과 지역사회 – 스포츠 거버넌스의 중요성 ②: 실패하지 않는 지역 야구 시스템 만들기

<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노승유 >

야구장과 지역사회 – 스포츠 거버넌스의 중요성 ①: 비극의 나비효과

# 서론: 세계 각국의 지역 야구 관리

지난 칼럼에서 보았듯, 울산 사례는 전국 야구 인프라의 취약함을 드러낸 단적인 예다. 전국 대부분의 지자체가 낙후된 시설, 부족한 예산, 비효율적 운영이라는 공통된 문제를 안고 있다.

그렇다면 해외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을까? 이번 칼럼은 일본과 독일의 지역 야구 시스템을 통해 ‘현장 중심 운영’이라는 공통된 거버넌스 철학을 짚어본다. 이 과정을 바탕으로 한국형 지역 야구 모델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도 함께 생각해 본다.

 

# 일본의 지역 야구 거버넌스 – 지역 밀착적 운영

일본에서 야구는 최고 인기 스포츠이다. 고시엔으로 대표되는 고교야구는 국민적 행사에 가깝다. 일본프로야구 12개 구단은 각 지역에 뿌리내린 운영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유소년야구, 리틀야구, 사회인야구에도 그대로 이어진다. 2022년 기준, 일본에는 약 7,000개 이상의 리틀야구팀이 활동 중이며(일본리틀야구연맹), 고등학교 야구부는 3,800개 이상으로 고시엔을 포함한 전국 대회 출전 경쟁이 치열하다.

프로야구(NPB)는 연간 약 2,000만 명의 관중을 유치하고 있으며, 구단은 훈련장과 2군 구장 운영은 물론 유소년 프로그램 등 지역 밀착 활동도 활발히 펼치고 있다.

일본의 야구 시스템은 지역 야구 단체를 중심으로 운영된다. 각 지방 자치단체는 지역의 야구 단체에 시설 사용권을 부여하고, 학교와 학부모는 팀 운영에 자발적으로 참여한다.

프로구단은 리틀야구 리그 후원과 코칭 프로그램을 통해 지역사회와의 연결을 강화한다. 구단이 구장 운영을 위탁받아 담당하며 지역과 커뮤니티를 위한 프로그램을 상시 기획하는 사례도 많다.

< 일본의 사회인야구 인프라. 사진 우상단을 제외한 대부분이 야구장이다. >

일본 정부는 이러한 시스템을 뒷받침하기 위한 정책적 기반도 마련했다. 2011년 스포츠 기본법 통과 이후, 2015년 문부과학성 산하 스포츠청소년국을 스포츠청으로 확대 개편해 국가 스포츠 정책을 전담하도록 했다.

이 법에 따라 5년에 한 번 수립되는 ‘스포츠 진흥 기본계획’에는 프로 스포츠 육성뿐만 아니라 지역 스포츠 클럽 활성화, 참가 인구 확대를 통한 인재 육성, 체육시설 확보 방안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를 통해 일본은 공공 체육시설이 ‘지역 커뮤니티의 중심지’ 역할을 하도록 장려하고, 지역 야구 인프라를 적절히 운영하고 있다.

 

# 유럽의 지역 야구 거버넌스 – ‘페어아인(Verein)’ 기반 운영

유럽에서 야구는 대중적으로 널리 퍼진 스포츠는 아니다. 하지만 몇몇 국가에서는 꾸준한 관심과 투자를 통해 리그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다. 독일은 그중에서도 세미프로 중심의 리그 구조를 유지하며, 생활체육과 클럽 기반 스포츠의 전통에 따라 비교적 체계적인 운영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엘리트 야구에서의 국제적 성과는 다소 부족하지만 유소년 육성과 자생적 리그 운영을 통해 지역 스포츠 생태계를 구축한 점은 주목할 만하다.

독일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스포츠 클럽(Verein, 페어아인)을 기반으로 스포츠 종목을 운영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 이 클럽들은 비영리 사단법인으로 설립되어 법적 지위를 독일 민법을 근거로 자체 운영 규정과 회계 감사 체계를 마련하고 있다.

클럽 회원은 회비를 납부하고 총회를 통해 운영 방침을 결정하며, 집행부는 선출직으로 구성된다. 클럽은 지자체로부터 공공시설을 장기 임대하거나 일정 부분 재정 지원을 받으며, 독자적으로 시설을 건설하거나 개보수할 수도 있다. 예산은 회원 회비 외에도 기업 후원, 주정부의 스포츠 기금, 복권 수익배분금 등으로 구성된다.

< 독일의 세미프로 야구리그인 분데스리가 베이스볼의 홈구장 >

독일야구연맹(이하 DBV)은 전국 클럽의 활동을 총괄하며, 시설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각 클럽의 신청을 받아 보조금을 배분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DBV는 또 유소년 리그, 성인 리그, 지도자 자격 과정, 국가대표 선발 및 국제 대회 참가 등도 전담한다. 이 체계는 클럽 중심의 자율성과 국가 단위의 전략적 체계가 균형을 이루도록 설계되어 있다.

 

# ‘한국형 지역 야구’ 문화를 위해 필요한 것 – 문제 인식

일본과 유럽의 지역 야구 거버넌스에서 주목하여야 할 것은 ’사용자 중심의 운영 구조’이다.

시설은 행정당국이 만들지만, 운영은 현장에 최대한 맡긴다. 운영과 유지 관리는 사용자들이 맡고, 행정당국으로부터 예산을 일부 또는 전부 지원받아 진행한다. 사용자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정비는 행정당국이 상당 부분을 책임져 운영이 지속되도록 한다.

운영 주체는 지역 협회, 리그 조직, 학부모 모임, 클럽 등 다양할 수 있다. 여기서 공통적으로 중요한 것은 이들이 시설에 대한 권한과 책임을 함께 지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는 점을 중요하게 보아야 한다.

한국은 일본과 같이 학교 기반 스포츠 문화와 행정 시스템을 공유하면서도, 독일처럼 자율적 커뮤니티 운영이 가능할 만큼 성숙한 시민사회 역량도 갖추고 있다. 실제로 사회인 야구와 유소년 야구는 구 단위로 야구협회가 구성되어 있고, 리그와 등록 시스템도 마련되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공공 구장은 지역 시설관리공단이 직접 운영한다. 이들은 예산과 인력의 제약 속에서 최소한의 관리만을 수행한다. 특히 시설의 물리적 노후와 안전 문제, 사용량 급증에 따른 민원은 심화되는데, 시설 개선과 리그 프로그램 운영이 분리돼 근본적인 해결이 어렵다.

더욱이 실사용자의 역할도 대신하는 지역 야구 협회나 사회인 야구 리그 연합체가 시설관리공단과 소통 측면의 단절을 겪으며 이 문제는 악화되고 있다.

이는 프로야구 구장에서 발생하는 관리관할의 문제와도 사뭇 다른 측면을 가지고 있다. 프로야구는 각 구단과 지자체가 사용자와 유지관리자의 역할을 나눠가지는 반면, 지역 야구에서는 앞서 말하였듯 각 구단의 역할도 리그가 대신한다.

< 프로야구(위)와 지역 야구(아래)의 상황 비교 >

문화체육관광부와 대한체육회는 현재 지역 스포츠 클럽 육성 사업 등을 통해 기초적인 거버넌스 개선을 시도하고 있으나, 야구를 포함한 비올림픽 종목에 대한 투자는 여전히 부족한 상황이다.

 

 #’한국형 지역 야구’ 문화를 위해 필요한 것 – 제언

따라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핵심적인 개선책이 필요하다. 먼저 공공시설의 실질적인 운영 주체를 명확히 설정할 필요가 있다.

현재의 시설관리공단이나 지자체가 일방적으로 ‘대여’하는 관계 대신 지역 커뮤니티가 주도적으로 리그를 구성하고 시설 운영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적 권한을 위임하는 체계가 마련되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시설 운영 실적에 기반한 인센티브나 예산 차등 지원을 제공하면, 보다 질 높은 운영을 유도할 수 있다.

다음으로, 리그 운영 기획과 시설 전반에 걸친 유지 관리의 이원화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할 필요가 있다. 현재는 리그 운영을 담당하는 단체와 유지 관리를 담당하는 행정기관이 사실상 소통마저 단절되어 있다. 안전과 효율성, 기획의 일관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특히 지난 칼럼에서 다루었던 문수야구장 사태는 이런 단절이 원인이 되는 대표적인 사례다. 리그를 포함한 전반적인 운영 권한과 책임을 하나의 주체가 갖도록 일원화하거나, 최소한 운영 주체와 사용자의 소통 구조를 제도적으로 강화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가장 강조되어야 할 것은 예산 지원 확대다. 일본과 독일은 지역 스포츠 거버넌스를 제도화하는 과정에서 기존 구장 인프라 개선과 구장 신설에 막대한 초기 자본을 투입했다.

한국도 지역 야구 시스템을 구축하려면 문체부, 대한체육회,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등 중앙 단위 기관이 예산을 적극적으로 확보하고 체계적으로 배분하는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 단순한 리그 지원을 넘어 시설 개보수, 클럽 행정 지원 등 지역 야구의 지속 가능한 운영을 위한 인프라 지원이 병행되어야 한다.

 

결론: 지역 스포츠 거버넌스를 위한 새로운 대책

울산의 사례에서 보듯, 공공시설의 비효율적인 거버넌스는 지역 사회 전체의 스포츠 참여 권리를 위협한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는 울산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국 곳곳에서 유사한 갈등과 운영 파행이 반복되고 있다. 이제는 개별 지자체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중앙정부 차원의 구조 개편과 제도화, 그리고 충분한 예산 지원이 요구된다.

앞서 이야기한 여러 국가들은 지금의 거버넌스 시스템을 만들기 위하여 초기 단계에서 과감한 자본 투자를 병행하였다. 일본은 고교야구와 프로야구 인프라를 법률과 기본계획을 통해 국가 차원에서 뒷받침했다. 독일은 지방정부가 스포츠 클럽에 장기 임대권과 보조금을 제공함으로써 자생적인 구조를 유도했다.

경기장은 철근과 잔디로만 유지되지 않는다. 사람들이 이용하고, 지역이 관리하며, 국가가 지원 할 때 비로소 지속 가능한 시스템이 된다. ‘한국형 지역 야구 거버넌스 모델’의 출발점은 운영에 대한 책임과 권한을 지역 커뮤니티에 부여하고, 공공이 그 기반을 제도적으로 마련해주는 데에 있다. 이것이야말로 불필요한 갈등을 예방하고 더 나아가 한국 야구의 잠재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방법이다.

 

야구공작소 표상훈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천태인, 장호재, 전언수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노승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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