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의 사회적 역할⑮ 안전 없는 사회공헌은 없다 上

<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김범수 >

이전 시리즈에서는 KBO의 은퇴 선수 지원이 단순한 복지를 넘어 야구계의 사회공헌으로 인식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무엇을 해야 하는가’보다 ‘왜 그래야 하는가’를 먼저 물어야 한다. 제도와 시스템은 결국 그것을 지탱하는 시선 위에 세워지기 때문이다.

이번 시리즈에서는 임수혁과 NC파크 사고라는 두 사건을 통해 가장 기본적인 책임인 안전이 왜 외면받았는지, 그리고 야구계가 말하는 사회공헌의 본질이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되묻는다. 야구가 사회적 책임을 말하려면 가장 먼저 생명을 지키는 일부터 살펴야 하기 때문이다.

 

2025년 3월 29일, 창원 NC파크. 경기 중 관중석 위로 구조물이 추락했다. 3루 쪽 매점 위, 17미터 높이에서 떨어진 60kg짜리 알루미늄 루버가 관중 세 명을 덮쳤고, 그중 20대 여성 한 명이 사망했다. 현장은 비명과 혼란으로 가득했지만 경기는 멈추지 않았다.

사고 직후 경기장에서는 별다른 공식 안내나 중단 조치가 없었고 많은 팬들은 집에 돌아간 뒤 뉴스를 통해 사고 사실을 알게 됐다. 이후 구단은 공지를 게시하고 사과 입장을 밝혔지만 현장에서의 초기 대응 미흡에 대한 비판은 피할 수 없었다.

<NC 다이노스가 사고 이틀 뒤 발표한 공식 애도문>

사고 이틀 뒤인 3월 31일, NC 구단은 공식 SNS를 통해 사망자에 대한 애도와 유가족에게 사과를 전하는 입장을 게시했다. 그러나 사고 당일 경기 중에는 별도의 안내나 조치가 없었고, 초기 대응의 적절성에 대해서는 팬들과 여론의 비판이 이어졌다. 창원시와 시설공단은 각각의 관리 책임에 대해 다른 입장을 보였고, 사고의 원인과 책임 소재는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다. 팬이 목숨을 잃는 일이 있었음에도 관계 기관의 일관된 사과나 구체적인 재발 방지 대책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지금 야구계가 말하는 CSR, ESG, SDGs의 민낯

요즘 KBO리그 구단들은 CSR, ESG, SDGs 같은 말을 앞세운 마케팅에 열심이다. 환경 캠페인과 지역 봉사, 어린이 이벤트, 다문화 시구까지. 포스터는 멋지고 영상은 감성적이다. 하지만 NC파크 사고는 그 화려한 포장 아래 ‘안전’이라는 기본이 빠져 있음을 보여줬다.

안전은 기본이다. 경기장에서 사람이 다치지 않도록 예방하고 사고가 나면 즉시 대응하며,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구조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이것이 빠진 CSR은 껍데기에 불과하다.

CSR은 원래 기업 이미지 개선이나 마케팅 수단이 아니었다. 산업혁명 시절 반복되던 산업재해와 아동노동, 소비자 피해에 대한 반작용으로 태어났다. 로버트 오언은 노동자에게 주거와 교육을 제공했고, 앤드루 카네기는 『부의 복음』에서 부는 개인의 것이 아닌 사회적 자산이며, 이를 공공의 안전과 삶의 질 향상에 환원할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CSR은 생명과 권리를 보호하는 데서 시작된 것이다. 

오늘날 ESG의 ‘S(Social)’ 항목에는 노동자 안전, 팬과 직원의 권리, 지역사회와의 관계가 포함된다. SDGs도 마찬가지다. UN이 설정한 목표에는 ‘모두를 위한 건강과 복지’, ‘지속가능한 도시와 공동체’가 있다. 안전한 스포츠 환경을 만드는 것 자체가 SDGs 실천이다.

 

야구장 사고는 처음이 아니다, 임수혁을 기억하는가

2000년 4월 18일, 잠실야구장에서 롯데 자이언츠 포수 임수혁이 경기 중 심장마비로 쓰러졌다. 당시 구장에는 AED도 없었고 응급 인력도 배치돼 있지 않았다. 그는 끝내 일어나지 못했고, 20년 넘게 의식이 없는 상태로 지내다 세상을 떠났다.

이 사고는 구장 내 AED 설치와 응급 의료 인력 배치를 의무화하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이후 일부 구장에서는 AED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거나, 위치조차 명확하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그로부터 25년이 흐른 2025년 4월 18일, 구단이나 리그 차원에서 사고를 잊지 않기 위한 어떤 노력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기억하지 않으면 구조는 무너진다. 안전 시스템은 결국 사람의 의지로 작동한다.

<임수혁, 스포츠계에 큰 교훈을 남긴 이름>

 

NC파크와 임수혁 사이, 사고는 달라도 본질은 같다

임수혁의 사고는 심정지라는 생명의 위기였고 NC파크는 외부 구조물 추락이라는 물리적 사고였다. 형태는 달랐지만 모두 현장에서의 즉각적 대응과 예방이 생사를 갈랐다는 점에서 본질은 같았다. 

임수혁의 사고는 제도를 남겼고, 그 시스템은 2011년 축구선수 신영록을 살렸다. 그는 경기 중 심장마비로 쓰러졌지만 CPR과 AED 덕분에 50일 만에 의식을 되찾았다. 시스템이 실제로 작동한 사례였다. 2017년에는 청소년 대표팀 경기 중 쓰러진 정태욱 선수를 동료들이 신속하게 대응해 살린 사례도 있었다. 중앙 수비수 이상민은 기도를 확보했고, 다른 선수들도 훈련된 매뉴얼에 따라 움직이며 최악의 상황을 막았다. 반복된 안전 교육이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작동한 것이다.

<동료들의 빠른 대응이 생명을 지킨 순간>

그러나 NC파크는 그 기억을 계승하지 못했다. 야구계는 CSR과 ESG 같은 구호를 앞세우지만 경기장 안전 점검 시스템은 여전히 미흡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구조물 낙하로 인한 인명 피해는 그 허점을 드러낸 사건이었다.

 

책임 있는 리그 운영, 해외는 어떻게 다른가

메이저리그(이하 MLB)와 일본프로야구(이하 NPB)에서도 안전사고는 종종 발생한다. 하지만 이들 리그는 사고를 돌발 상황이 아닌 충분히 대비할 위험 요소로 인식하고 즉각적이고 투명한 대응 시스템을 운영한다. 

2025년 4월, MLB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의 홈구장 PNC 파크에서 한 팬이 관중석에서 약 6미터 아래로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의료진이 곧바로 출동해 응급처치를 시행했고, 경기는 약 10분간 중단됐다. 이후 MLB는 공식 발표를 통해 사고 경위를 알리고 해당 시설에 대한 점검을 시작했다. 사고에 대한 적절한 대응이 리그의 책임 의식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사고가 발생한 클레멘테 월이 있는 PNC 파크>

NPB 역시 정기 점검과 응급 대응 시스템을 운영한다. 사고 발생 시 구단과 리그가 공동 대응한다. 일본 야구계는 한 사건을 계기로 안전의 기준을 다시 설계한 바 있다.

2010년, 삿포로 돔에서 한 여성이 파울볼에 맞아 실명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해당 좌석에는 안전망이 설치되어 있지 않았고 경기장은 관객의 주의만을 강조해 왔다. 그러나 법원은 야구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도 보호의 대상이므로 구단에 사고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인정했다. 이 사건 이후 NPB 전체에 걸친 안전망 설치 확대와 안내 강화로 이어졌다.

사고 이후 반성에 그치지 않고 구조를 바꾸는 움직임이었다. 이런 구조는 사고를 예외가 아닌 일상적인 절차로 다루는 시스템 위에서 작동한다.

반면 KBO는 NC파크 사고 당시 경기도 중단하지 않았고 공식 안내도 없었다. 많은 팬들이 사고를 경기 후 뉴스로 접했다. 사고는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지만 그에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리그의 철학을 드러낸다.

 

사회공헌의 출발점은 ‘안전’

진정한 사회공헌은 생명을 지키는 일이다. 스포츠도 예외는 아니다. 선수 보호, 경기장 점검, 팬의 생명권 보장이 우선이다. 환경보호 행사나 기부도 의미 있지만 기본이 빠지면 껍데기에 불과하다.

CSR, ESG, SDGs는 모두 생명과 안전을 전제로 해야 지속가능성을 가질 수 있다. 선수가 쓰러졌을 때 살릴 수 있어야 하며 구조물은 결코 떨어지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사고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일이 책임의 출발점이다. 임수혁은 제도를 남겼지만 기억은 희미해졌다. NC파크 사고는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책임 의식의 부재를 보여준 사례다.

CSR은 구호가 아니며 ESG는 보여주기 캠페인이 아니고 SDGs는 선언문이 아니다. 야구가 진정으로 사회를 위한다면 야구를 만드는 모든 사람의 생명과 안전이 최우선이어야 한다.

 

참고 =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대한축구협회, 엑스포츠, 한겨레, 조선일보, KBS 뉴스, 착한 자본의 탄생(김경식 저), Gratton, Chris; Preuss, Holger (2008). ISO26000(국제표준화기구 사회적책임 표준), etc.

야구공작소 천태인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강상민, 전언수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김범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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