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수의 새로운 전략 – 패스트볼 버리기

<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민승원 >

메이저리그(MLB)는 데이터와 함께 진화하고 있다. 방대한 데이터 속 유의미한 전략을 창출하기 위한 노력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뜬공 혁명이 그랬듯, 올해는 투수의 패스트볼을 봉인한 보스턴 레드삭스가 그 변화의 중심에 있다.

레드삭스는 지난해 패스트볼의 피안타율(0.261)과 피장타율(0.428)이 변화구의 피안타율(0.227)과 피장타율(0.364)보다 높은 것을 파악하고 과감하게 변화를 선택했다. 더 정확히 얘기하면 레드삭스는 경쟁력 없는 패스트볼을 투구하지 않고 있다. MLB.COM에 따르면 레드삭스는 시속 148.1km/h 이하와 상하무브먼트(IVB) 38.1cm 이하의 포심 패스트볼은 경쟁력이 없기 때문에 이를 던지지 말 것을 주문하고 있다.

실제로 레드삭스 소속의 태너 하우크는 스위퍼(41.7%)와 스플리터(24.6%) 구사 비율이 66.3% 달한다. 또한 브라이언 베요는 지난해 피장타율 0.646을 기록한 포심 패스트볼 구사율을 20.6%에서 올해 4%로 줄였다. 그 결과 6월까지 레드삭스 투수들의 패스트볼 구사 비율은 35%로 2008년 이후 MLB 전체 팀 중 최저 비율을 기록했다. 그들은 이 전략으로 전반기 팀 평균자책점 5위(3.64)를 기록하며 좋은 성과를 거뒀다. 지난해 레드삭스 팀 평균자책점 순위가 21위(4.52)였음을 고려하면 매우 효과적인 전략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렇다면 KBO리그에서도 이를 적용해 볼 만한 여지가 있을까? 지금부터 같이 살펴보자.

 

KBO리그에 적용하면 어떨까?

레드삭스의 전략은 단순하다. 경쟁력 없는 공을 버리고 더 강력한 공을 던지자.’ 이를 KBO리그에서 확인하기 위해선 먼저 경쟁력 있는 공을 정의할 필요가 있다. KBO리그는 MLB와 달리 공의 회전수와 무브먼트를 확인할 수 없는 환경이다. 따라서 패스트볼과 변화구의 피안타율과 피장타율 그리고 헛스윙률을 통해 공의 경쟁력을 파악했다.

먼저 KBO리그에서도 레드삭스의 분석과 같이 타자들이 패스트볼에 비해 변화구 공략에 애를 먹는지 살펴봤다.

표1과 표2를 통해 지난 3년간 KBO리그 투수들의 피안타율과 피장타율 모두 패스트볼이 변화구에 비해 높은 것을 파악할 수 있다. 피안타율은 약 5푼가량, 피장타율은 약 8푼가량 차이가 났다. 이를 통해 KBO리그에서도 변화구를 더 자주 투구할 만한 통계적 근거를 발견했다.

그렇다면 이제 레드삭스의 전략을 취할 수 있는 투수를 살펴보자. 현재 KBO리그에서 레드삭스와 같이 변화구를 극단적으로 사용하는 팀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KBO리그 전체 투수 중 이들의 전략을 차용할 만한 투수들을 선정했다.

아래 그림들은 최근 3년간(2024시즌은 8월 31일까지만 포함) 각 투수의 패스트볼과 변화구 헛스윙률 지표다(데이터 셋). 패스트볼은 투수 209명(500개 이상 투구), 변화구는 투수 202명(300개 이상 투구)을 선정했다. 이때 패스트볼은 MLB.COM에 나온 대로 직구와 투심만을 포함했으며 나머지는 변화구로 분류했다. 다만 커터의 경우 해당 칼럼에서 본질은 패스트볼이지만 사용 방법이 달라 패스트볼에서 제외했다고 설명했기 때문에 아예 분류에서 제외했다. 또한 분류되지 못한 구종들이 있는 관계로 패스트볼 비율과 변화구 비율을 합쳐도 100%가 되지 않는 경우가 있음을 밝힌다.

아래 각 그림의 음영 표시된 변화구 구위와 패스트볼 구위는 각각의 헛스윙률 순위를 의미하며 숫자가 낮을수록 구위가 더 뛰어나다. 그림1패스트볼 구위가 나쁜 순서대로 그림2변화구 구위가 좋은 순서대로라고 이해하면 된다. 그림1은 패스트볼 헛스윙률이 낮은 순서대로 정렬돼 있으며 그림2는 변화구 헛스윙률이 높은 순서대로 정렬돼 있기 때문이다.

먼저 패스트볼 헛스윙률이 낮은 그림1의 선수들을 살펴보자. 이들은 패스트볼 구위가 좋지 않기 때문에 변화구 구위가 좋다면 변화구 구사를 높이는 것을 고려할 수 있다. 이들 중 변화구 구위가 리그 30위 안에 위치하는 김규연(15위), 반즈(18위), 황동재(19위), 김민(23위) 등이 바로 그 선수들이다. 특히 김규연과 황동재 두 투수는 포심 패스트볼을 주로 투구하면서 패스트볼의 헛스윙률이 낮은 경우이기 때문에 본인들의 좋은 변화구 구위를 더욱 활용해 볼 필요가 있다.

다만 김민은 포심이 아닌 투심 패스트볼을 주로 구사하는 투수다. 투심은 헛스윙률에선 손해를 보지만 타자의 범타를 유도하는 데 장점이 있다. 아래 표3을 통해 알 수 있듯 김민은 올해 투심 구사율을 급격하게 늘렸다. 기존의 포심 패스트볼이 경쟁력을 발휘하지 못하자 과감하게 투심으로 방향을 선회한 것이다.

3 = 김민 패스트볼 주요 지표 비교 >

그 결과 패스트볼 자체의 피안타율이 무려 1할가량 낮아졌음을 파악할 수 있다. 또한 그는 헛스윙 유도가 좋은 변화구를 50% 이상 구사하면서 본인의 강력한 무기를 자주 사용하고 있다. 즉, 김민은 패스트볼 자체의 헛스윙률은 낮은 상태지만 투심과 변화구 구사율을 높이며 이미 본인의 장점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반즈 역시 변화구 구사율을 51.4%로 가져가며 자신의 강점을 적절하게 사용하는 모습이다.

그다음 변화구 헛스윙률이 좋은 그림2의 선수들을 확인해 보자. 이들은 변화구에 강점이 있기 때문에 변화구 구사를 높이는 것을 고려할 수 있다. 리그에서 변화구 헛스윙 유도가 가장 좋은 상위 3명인 김서현, 이승호, 유영찬 모두 변화구 구사율이 각각 39.2%, 32.1%, 41.1%로 저조한 것을 알 수 있다. 이들은 패스트볼의 구위가 뛰어나지 않음에도 본인들의 강점인 변화구 구사율을 늘리지 않고 있다.

4 =  2024 패스트볼 vs 변화구 피안타율 비교>

실제로 표4를 통해 알 수 있듯 김서현과 유영찬(이승호는 입대)은 올해 패스트볼에 비해 변화구의 피안타율이 현저히 낮은 것을 파악할 수 있다. 특히 김서현은 변화구 피안타율이 0.102로 패스트볼에 비해 2할 정도 낮은 모습이다. 이처럼 변화구 구위가 좋은 김서현 유영찬 등의 경우 레드삭스의 전략과 같이 변화구 구사율을 더욱 끌어올릴 여지가 있다.

 

KBO리그에서도 통할까?

MLB와 KBO리그의 환경은 당연히 다르다. 본 글을 읽고 KBO리그 타자들은 변화구를 끈질기게 컨택하기 때문에 레드삭스의 전략은 무용지물이라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 레드삭스 전략의 핵심은 ‘더 경쟁력 있는 공을 던지자’다. 즉, 패스트볼이 강력한 투수는 그 공을 던져도 된다. 다만 패스트볼이 상대적으로 약하고 더 강력한 변화구를 가지고 있다면 이를 적극 활용하자는 취지다. 당연하게도 패스트볼과 변화구 모두 경쟁력이 없다면 자신의 강점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

올해 NC 다이노스의 김재열은 포심의 구사율을 줄이고 자신의 강점인 포크볼을 더 자주 투구하면서 팀의 필승조로 자리 잡았다(링크). 여기에 앞서 살펴봤던 김민의 예시도 존재한다. 이처럼 KBO리그에서도 이미 경쟁력 있는 변화구 구사율을 높여 성공한 사례는 존재한다.

 

레드삭스 전략은 언제까지 통할 것인가

현재 레드삭스 역시 고민 중인 사안일 것이다. 이제 MLB 타자들은 변화구를 더 많이 투구하는 레드삭스의 전략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패스트볼을 노리다가 날아오는 변화구에 혼란을 겪었던 타자들이 변화구를 노리면서 타석에 들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레드삭스는 후반기 29경기 동안 9이닝당 2.2 피홈런을 허용하며 리그 최하위를 기록했고 팀 평균자책점 역시 5점을 넘기고 있다. MLB 한 타격코치는 레드삭스와의 경기에선 슬라이더만을 노리라고 말할 정도다. 시즌 초반 성공 가도를 달리던 전략이 더 이상 먹히지 않는 것이다. 처음 레드삭스의 전략을 흥미롭게 바라보던 시선도 현재는 본질적으로 패스트볼과 변화구 중 타자들이 더 치기 어려워하는 공이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을 표시하고 있다(링크). 현지 언론은 “타자들이 단지 패스트볼에 익숙하기 때문에 잘 대응했던 것이며 변화구를 자주 접한 만큼 자연스럽게 이에 대한 타자들의 대처 능력도 올라간 것”이라며 레드삭스의 다음 행보에 주목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필자는 결국 레드삭스 전략의 본질인 ‘더 경쟁력 있는 공을 던지자’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타자들이 적응하고 있는 것과 별개로 투수 본인이 던질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공을 자주 투구하자는 게 핵심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패스트볼을 버린 태너 하우크는 “내가 가장 자신 있는 슬라이더를 투구한다면 타자들이 그 공을 노리더라도 자신 있다”고 말했다. 결국 강력한 패스트볼을 알고도 못 치듯이 강력한 슬라이더 역시 마찬가지다. 투수는 단지 더 강력하고 위력적인 공을 던지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레드삭스의 전략은 그 노력 중 하나다.

 

마치며

성공과 실패를 떠나서 이러한 도전은 계속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몇 년 전만 해도 공을 띄우는 어퍼 스윙이 대세가 될 것이라고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지금과 같은 시도 역시 마찬가지다. 레드삭스는 패스트볼보다 변화구가 피안타율과 피장타율이 낮다는 명확한 통계적 근거를 바탕으로 이를 실행에 옮겼다. 현재는 과도기에 있지만 어떤 방식으로 발전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참고 = MLB.COM, The Athletic

야구공작소 김건우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조광은, 전언수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민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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