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최영건 >
오타니 쇼헤이와의 계약에 실패했지만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는 나름대로 성공적인 오프시즌을 보냈다. 이정후와의 계약을 시작으로 로비 레이, 조던 힉스와 호르헤 솔레어를 영입했다. 또한 시즌 직전까지 팀을 찾지 못한 맷 채프먼과 블레이크 스넬을 싼 가격에 영입하며 겨울을 준수하게 마무리했다.
투수진과 야수진에 모두 좋은 선수가 추가됐지만 눈길을 끄는 것은 투수진이다. 지난 시즌 규정이닝을 소화한 투수가 로건 웹뿐이었던 투수진에 스넬, 레이와 힉스가 추가됐다. 힉스는 시범경기에서 17이닝 동안 28개의 삼진을 잡아냈고, 정규시즌에서도 로테이션을 정상적으로 소화하며 ERA 2.30을 기록하는 좋은 활약을 펼치고 있다.
문제는 스넬, 레이와 알렉스 콥이다. 좌완 에이스로 기대를 모았던 스넬은 11.2이닝을 던지며 ERA 11.57을 기록했고, 현재는 부상으로 로테이션에서 제외됐다. 굴곡근 부상을 당한 레이와 엉덩이 수술을 받은 알렉스 콥의 복귀 또한 불투명하다. 지난 시즌 데뷔한 어린 신인 카일 해리슨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다.
남달랐던 재능
해리슨은 2020년 신인 드래프트를 통해 자이언츠에 입단했다(전체 85순위). 2019년 WBSC에서 미국 대표팀의 우승을 이끌었고 대회에서 가장 낮은 ERA를 기록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3년간 ERA 1.19를 기록했고 124이닝 동안 192개의 삼진을 기록하는 등 리그를 압도했다. 같이 샌프란시스코에 지명된 좌완투수인 닉 스위니(67순위)보다 지명 순위는 뒤였다. 하지만 계약금 자체는 250만 달러로 1라운더 수준이었으며 BA(베이스볼 아메리카)는 자이언츠가 그를 팀 내 최고 투수 유망주로 고려하고 있음을 밝혔다.
팀의 예상대로 해리슨은 빠르게 성장했다. 로우 싱글A에서 데뷔했고 23경기에서 98.2이닝을 던지며 157개의 삼진을 잡았다. 삼진쇼는 멈추지 않았다. 2022년 하이 싱글 A와 더블 A를 통틀어 113이닝을 던지며 186개의 삼진을 기록했다. 참고로 2022년 그가 기록한 K/9 14.8은 1960년 이후 마이너리그에서 가장 높은 수치다.
2023 프리시즌 해리슨은 MLB.COM에서 뽑은 유망주 순위에서 18위에 올랐다. 하지만 트리플A에서는 고전이 이어졌다. 전반기 K/9이 14.86에 달할 정도로 삼진 능력은 여전했다. 문제는 늘어난 볼넷이었다(BB/9 6.58). 하지만 당시 새크라멘토 리버 캣츠(자이언츠 산하 트리플 A팀)의 ABS 판정이 너무 타이트하다는 이야기가 돌았고, 실제로 트리플 A에서 높은 BB/9를 기록한 트리스탄 벡과 키튼 윈은 빅리그에서는 안정적인 볼넷 관리 능력을 선보이기도 했다(링크). 또한 지난 시즌 트리플 A에서 그가 던진 공 중 적지 않은 수가 존 안에 들어왔음에도 볼 판정을 받았다.
< 2023시즌 카일 해리슨 Ball 히트맵 >
< 트리스탄 벡, 키튼 윈 트리플A-빅리그 BB/9 비교 >
결국 높은 BB/9에도 불구하고 해리슨은 빅리그 로스터 입성에 성공했다. 자이언츠의 선택은 주효했다. 데뷔전인 필라델피아 필리스전에서 3.1이닝 5탈삼진 2실점으로 가능성을 보였다. 그리고 시즌을 통틀어 34.2이닝 ERA 4.15로 나쁘지 않은 성적을 올렸다. 제구 문제 또한 BB/9 2.86을 기록하며 말끔히 해결된 모습을 보였다.
위력적인 포심
2023년 BA는 해리슨의 3가지 구종 중 포심을 가장 높게 평가했다. 당시 포심에 매겨진 점수는 70점으로 올스타 선수급의 평가를 받았다. BA의 예상은 적중했다. 지난 시즌 해리슨의 강점은 포심이었다. 지난해 포심의 피안타율은 고작 0.182에 불과했다. 이는 포심을 300구 이상 던진 선수 중 23번째로 낮은 수치였고 좌완투수로 범위를 좁힌다면 리그 3위에 해당하는 기록이었다.
Whiff%(스윙 중 헛스윙 비율)도 준수했다. 24.8%로 리그 평균(22.2%)보다 높았고 전체 삼진의 절반 이상(55.7%)을 포심으로 잡아냈다. 구속과 수직 무브먼트는 모두 리그 평균 수준이었다. 차이는 독특한 투구폼과 하이패스트볼에서 비롯되었다.
해리슨은 예전부터 위력적인 포심을 던졌다. 마이너리그에서 포심의 Whiff%는 40.5%에 달했고 이는 포심을 1,000개 이상 던진 마이너리거 중 가장 높은 수치였다. 당시 BA는 포심의 비결 중 하나로 특유의 쓰리쿼터 폼에서 나오는 디셉션을 뽑았다. 자이언츠의 주전 포수인 패트릭 베일리 역시 해리슨을 두고 투구폼 때문에 그의 포심이 더욱 위력적으로 느껴질 것이라는 코멘트를 남긴 바 있다. 특유의 낮은 쓰리쿼터 투구폼으로 인해 포심이 훨씬 덜 떨어지는 것처럼 보이고 이를 통해 타자들의 헛스윙을 많이 유도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링크).
또한 지난해 그의 하이 패스트볼 비율은 58.8%로 포심을 300구 이상 던진 선수 270명 중 75번째로 높았다. 그리고 그는 지난해 대부분의 헛스윙을 스트라이크 존 상단에서 이끌어냈다. 특유의 투구폼에서 나오는 위력적인 포심, 그리고 적극적인 하이 패스트볼 투구가 합쳐져 이와 같은 결과를 만들어낸 것이다.
무한한 가능성, 범가너의 재림을 기대하다
작년 해리슨의 활약은 대단했다. 지난해 30이닝 이상을 던진 선수 중 21살의 선수는 마이애미 말린스의 유리 페레즈와 그가 유일했다. 또한 올해부터 그는 본격적으로 자이언츠 선발진에 합류해 로테이션을 돌고 있다. 성적 또한 좋다. 9경기 50이닝 ERA 3.42로 지난해보다 훨씬 뛰어난 활약을 펼치고 있다.
올해도 주 무기는 포심이다. 그의 이번 시즌 포심 구사율은 작년(60.7%)보다 높다(64.4%). 규정 이닝을 소화한 선수 중 포심 구사율 공동 1위다. 포심의 성적도 우수하다. 피안타율은 0.226, 피장타율은 0.348에 불과하다. 변화구는 여전히 약점이다. 슬러브와 체인지업 모두 기대 이하다. 두 공 모두 기대 장타율이 0.5 이상이다.
< 카일 해리슨 무브먼트 기반 회전 방향 >
< 카일 해리슨 2024시즌 슬러브 히트맵 >
하지만 해리슨은 변화구를 계속해서 던져야 한다. 그가 던지는 포심과 슬러브의 무브먼트 기반 회전축 차이는 거의 180도에 가깝다. 스핀 미러링을 일으키기에 가장 적합한 회전축 차이다. 실제로 슬러브가 하이 패스트볼과의 시너지 효과가 극대화되는 존 하단에 제구된 경우, Whiff%는 56.3%에 달했다. 하지만 슬러브의 문제는 제구가 전혀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번 시즌 45.9%의 Edge%(가장자리에 투구된 공의 비율)를 기록하며 한층 업그레이드된 제구력을 뽐내고 있는 해리슨이지만 슬러브는 대다수의 공이 존 가운데 몰리고 있다.
체인지업도 시도는 계속 되어야 한다. 작년에는 포심만으로도 우타자를 제압했던 해리슨이지만 올해는 쉽지 않다. 우타자들은 점점 그의 포심에 적응해 가고 있다. 지난 시즌 우타자 상대 29.8%였던 Whiff%는 올해 19.9%까지 떨어졌다. 그에 반해 Hard Hit%는 44.1%에서 52.2%로 8.1%P 상승했다. 올해 해리슨은 46명의 좌타자를 상대로 17개의 삼진을 뺏어낸 반면(K% 36.9%), 163명의 우타자를 상대로는 28개의 삼진을 잡는데 그쳤다(K% 17.1%). 우타자들이 그의 패스트볼에 적응하면 적응할수록 이 수치는 더욱 낮아질 것이다.
물론 앞서 말했듯 해리슨은 이제 22살에 불과하다. 그의 빅리그 커리어는 이제 시작이며 시간은 충분하다. 해리슨 또한 변화구에 신경을 쓰고 있다. 매번 등판마다 슬러브의 편차를 줄이기 위해 노력한다고 하며, 체인지업 또한 포심과 속도 차이를 주기 위해 마이너리그 때와는 다른 그립을 구사한다고 한다. 끊임없는 노력이 계속된다면 언젠가는 빛을 볼 것이다.
지난 10년 전에도 자이언츠에는 어린 좌완 에이스 매디슨 범가너가 있었다. 참고로 해리슨보다 한 살 빠른 20살부터 빅리그에 자리를 잡은 그도 초반에는 시행착오를 겪었다. 범가너가 리그를 대표하는 에이스로 등극한 것은 데뷔 3년 차였던 2011년부터다. 그리고 그를 최정상의 반열에 올려준 공은, 직전 해까지 마이너스(-)의 구종 가치를 기록하다 그해 리그 구종 가치 3위를 기록한 슬라이더였다.
참조 = BaseballSavant, Fangraphs, BaseballAmerica, SBNATION
야구공작소 원정현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곽찬현, 도상현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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