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이버 제도, 선수들은 동의했는가?(2) – 선수 노조의 설립 그리고 선수들의 목소리

<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김서한 >

웨이버 제도, 선수들은 동의했는가?(1) – 현재의 웨이버 제도가 최선인가?

웨이버 제도에도 분명 순효과가 있다. 하지만 선수 권리를 최소한으로 보장하지 못하는 현실 속 조항을 고칠 필요가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리그 운영과 구성원의 의견을 반영해 위원회를 운영하는 KBO 차원에서 통일 선수계약서나 야구 규약을 개정하는 방법이 있겠다.

반면 KBO리그 구성원인 선수들이 스스로 문제를 느껴 즉각적인 조치가 필요할 때는 어떨까? 드래프트 제도나 웨이버 제도가 직업 선택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한다고 여기는 선수들은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이하 선수협)를 통한 성명서 제출로 의견을 표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구조는 선수의 목소리가 직접적으로 리그에 변화를 꾀하는 데는 도움을 주기 힘들다.

NBA나 MLB 등은 선수 권리를 노사 협약을 통해 보장하고자 한다. 즉 선수 권익 증진을 위해 리그와 선수 간 소통할 수 있는 창구가 법적으로 마련되어 있는 것이다. KBO리그에서도 선수협이 선수 권익 증진을 위해 협회 최초로 구성하고자 했던 최동원의 뜻을 물려받아 다양한 활동을 한다. 가령 선수협은 성명서를 통해 선수들의 목소리를 리그에 전달한다. 선수협은 선수들을 대변하고 권익 보호, 복지 증진을 위해 설립된 단체다.

하지만 선수협의 목소리는 힘이 없다. 선수협은 노동조합이 아니라서 노동삼권 중 단체교섭권을 보장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구단이나 KBO와 같은 위원회는 이 성명서를 무시하면 그만이다. 그렇기에 선수 권익 증진을 위해 선수노조를 우리나라에서도 구성할 수 있는 법적 기반이 있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 팬들과의 만남을 통한 사회공헌 사업을 하는 선수들의 모습 >

 

KBO 선수 노조 설립 가능성의 법적 검토

설령 선수 권리가 잘 지켜진 계약서와 KBO 규약이라 할지라도 문제는 남아있다.

선수들은 동일한 계약서에 사인해야 한다. 이를 야구 프로스포츠 선수계약서라 부른다. 이 계약서의 양식은 선수나 선수단체가 아닌 이사회에 의해 결정된다. (2023 KBO 규약 제37조 제2항) 이사회는 2023 KBO 규약 정관 제5장 제20조 제1항에 따르면 총재, 사무총장, 이사로 구성된다.

민법의 3대 원칙 중 사적 자치의 원칙이 있다. 법질서의 한계 내에서 계약의 내용, 당사자, 방식 등을 자기 의사에 따라 자유롭게 형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과정에서 국가 개입은 제한돼야 한다. 하지만 예외가 있다. 당사자의 궁박, 경솔 또는 무경험으로 인해 현저하게 공정을 잃은 법률행위는 무효로 한다. 이를 불공정한 법률행위(민법 제104조)라 한다. 계약서가 이 경우에 해당된다면 국가 개입을 통해 계약서의 양식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선수들이 불공정한 계약에 동의했을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해 보자. 혹은 선수는 실질적으로 계약에 참여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MLB의 경우 계약서를 쓸 때 노동조합인 메이저리그 선수협회(MLBPA)가 관여하게 된다. 즉 계약서의 내용을 구성하는데 선수들이 직접 검토하고 수정할 기회를 얻게 된다. 선수들이 계약서 양식에 개입할 수 없는 우리나라보다 MLBPA가 개입하는 MLB의 계약이 더 정당한 계약처럼 보인다.

상기한 대로 우리나라는 선수협이 있지만 노동조합이 아니다. 노동조합으로 인정받으려는 노력은 하고 있지만 쉽지 않다. 2009년에 시도한 바 있지만 실패로 끝났다. 노동조합의 구성원은 노동자여야 하지만 우리나라의 프로 스포츠 선수들은 개인사업자로 분류되는 것이 정설이다. 하지만 이는 소득세법상의 분류를 따른 것이다.

< 선수협 창립총회 >

반면 노동조합을 구성하는데 근거가 되는 법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하 노조법)이다. 1983년 10월, KBO리그 구단 중 한 구단의 산업재해보험 가입 가능성과 관련한 논란이 있었다. 이때 노동부가 선수와 구단 간의 종속, 지휘 관계를 찾아보기 어렵기에 선수는 근로자가 아니라고 판시한 바 있다. 혹자는 이 결정을 근거로 선수의 근로자성을 부정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는 근로기준법(이하 근기법)상 분류지, 노조법 적용과는 별개다.

근로조건의 기준을 정하면서 근로자의 기본적 생활을 보장, 향상하고자 하는 것이 근기법의 목적이다. (근로기준법 제1장 제1조) 따라서 근기법의 근로자는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이나 사업장에 근로하는 사람을 말한다. 종속적인 관계에서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근로기준법 제1장 제2조) 선수가 구단의 지시를 받기도 하지만 종속적인 관계가 약하다는 점에서 근기법상 근로자에 포함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노동삼권의 보장과 근로조건 유지 및 개선에 목적을 두는 노조법은 직업의 종류를 불문하고 임금, 급료 기타 이에 준하는 수입에 의하여 활동하는 자를 근로자로 칭한다. (노조법 제1조, 제2조) 실질적으로 근로를 제공하는지 여부보다는 노사 간의 실질적인 대등성 확보가 필요한 상황이라면 근로자로 인정받기 충분하다. 실제로 특정 기업에서 근로할 필요도 없다. 웨이버 제도 같이 불안정한 지위에 놓일 수 있는 조항이 있는 KBO와 선수의 관계에서 노동삼권의 필요성을 부정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실제로 학습지 교사는 근기법과 노조법에서 해석이 달라지는 직군이다. 근기법 상으로는 근로자성이 부정된다. 근기법 상 근로자성을 해석할 때는 종속성 여부가 중요하다. 하지만 학습지 교사는 회사 개입 없이 교육 시간(근무 시간)이 정해지고 위탁 업무 수행 이후엔 업무에서 이탈할 수 있다. 학습지도 방식도 교사의 자율에 맡겨져 종속성이 눈에 띄지 않는다. 반면 노조법은 근로자성을 인정한다. 회사로부터 받는 수수료가 학습지 교사의 주된 수입원이며 계약 내용을 회사 측이 일방적으로 정한다. 이를 근거로 학습지 교사의 노조법상 근로자성은 인정되었다. 노조법상 학습지 교사의 근로자성이 인정된 양상은 리그와 선수와의 관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따라서 노조법을 적용하여 선수의 근로자성을 인정하기에는 문제가 없어 보인다. 다음 과제는 근로자성을 인정받은 주체들을 중심으로 한 노동조합을 결성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의 대안은 두 가지로 제시하고자 한다. 신속히 선수협이 노동조합으로 인정을 받는 노력을 하거나 아니면 선수 차원에서 또 다른 형태로 노동조합으로 인정받기 위해 모이는 것이다. 이때 선수들이 결성한 모임은 노동조합으로 인정받는 데 문제가 있을까?


“노동조합”이라 함은 근로자가 주체가 되어 자주적으로 단결하여 근로조건의 유지ㆍ개선 기타 근로자의 경제적ㆍ사회적 지위의 향상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조직하는 단체 또는 그 연합단체를 말한다. 다만, 다음 각목의 1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한다.

가. 사용자 또는 항상 그의 이익을 대표하여 행동하는 자의 참가를 허용하는 경우

나. 경비의 주된 부분을 사용자로부터 원조받는 경우

다. 공제ㆍ수양 기타 복리사업만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

라.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하는 경우

마. 주로 정치운동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


<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제2조 제4항 >

가목과 나목을 중심으로 분석해 보자. 선수들은 사용자, 즉 구단이나 위원회의 이익을 대표하여 경기를 뛰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선수들은 ‘항상’ 그렇지는 않다. 그들의 이익보다는 좋은 성적으로 인한 높은 연봉 등 자신의 이익에 초점을 맞춰서 경기를 하는 경향도 충분히 있다. 또한 선수들은 운동경기를 위해 준비하거나 운동경기를 구성할 때는 각종 장비를 무료로 제공받고 원정 시 숙소비, 교통비, 식비도 지원받으면서 경비를 지원받는 것처럼 보인다. (야구 프로스포츠 표준계약서 제9조, 제10조 제1항) 

하지만 노동조합 자체, 즉 선수협을 유지하는데 경비를 원조받지 않는다면 나목이 적용될 여지가 없다. 만약 원조를 받는다면 선수협은 KBO와 교류하며 다양한 행사를 주최하는 가운데 다른 조합을 하나 더 구성한다면 인정받기 수월할 것이다. 선수의 목소리와 함께하는 계약, 더 정당성을 갖춘 계약을 위해 모두 노력해야 할 것이다.

 

참고 = KBO 야구규약, MLB,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근로기준법

야구공작소 유승우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한민희, 전언수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김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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