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강야구는 어떻게 야구 예능을 부활시켰나?

< 사진 출처 = JTBC >

‘Win or Nothing. 오직 승리만을 추구하는 사상 최강의 야구팀’

승리만을 추구하는 야구팀이라니. 세상에 패배를 추구하는 야구팀이라도 있단 말인가? 대체 어떤 구단이 이런 당연한 사실을 슬로건으로 내세우는 걸까? 그런데 이 팀은 10구단 팬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다. 그들은 자칫 공허할 뻔했던 야구팬들의 월요일 저녁을 채워 준다. JTBC 예능 프로그램 ‘최강야구’ 이야기다. 

2010년 말, ‘천하무적 야구단’이 종영했다. 해당 방송은 경쟁이 치열한 주말 저녁 시간대에 방영되었음에도 최고 10% 이상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야구 예능은 이후로도 지속적으로 방영되었지만 ‘천하무적 야구단’ 이상의 화제를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MBN의 ‘빽 투 더 그라운드’, KBS ‘청춘 야구단’, MBC ‘마녀들’, 채널A ‘내일은 야구왕’ 모두 4% 미만의 시청률을 남겼다. 반면 ‘최강야구’는 달랐다. 기존 스포츠 예능과 유사한 포맷임에도 불구하고 OTT 서비스 순위에서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예상을 뛰어넘는 재미에 팬들도 뜨겁게 반응했다. 잠실야구장에서 펼쳐진 두산 베어스와의 시즌 최종전은 매진을 기록하며 화제를 모았다. 

 

결국 돌고 돌아, 승리

‘최강야구’의 주제는 분명하다. 모든 스포츠팀이 원하는 ‘승리’다. 다만 그들이 승리해야 하는 이유는 훨씬 명확하다. 승률 7할을 달성해야만 프로그램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실패하면 방송은 폐지된다. 최강 몬스터즈의 시즌은 총 30경기로 구성된다. 프로그램은 21번의 승리를 거두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선수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첫 방송 전 사람들의 기대는 시큰둥했다. 유사한 야구 예능 ‘빽 투 더 그라운드’가 종영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선수들의 이름값은 더 떨어졌다. 그러나 흥행 성적은 사뭇 달랐다. ‘최강야구’는 2022년 7월부터 10월까지 티빙 프로그램 랭킹 1위를 차지했다. 넷플릭스에서도 지난 9월 최고 4위까지 순위 매김 했다. 관중 입장을 허용한 두 차례의 경기는 모두 일찌감치 매진되었다. 시청률은 높지 않지만(2023년 2월 13일 기준 3.1%), 실제 화제성은 그보다 뛰어나다. 

사실 ‘최강야구’의 프로그램 구성은 특별하지 않다. 은퇴 선수들로 팀을 꾸리고 교류전 형식의 시즌을 치르는 것은 다른 스포츠 예능에서도 통용되는 맥락이다. MBN ‘빽 투 더 그라운드’가 그랬고, JTBC ‘뭉쳐야 찬다’도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KBO 리그 은퇴 선수들의 ‘식지 않은 승부욕’을 대놓고 드러낸 방송은 이제껏 없었다. 캐스팅부터 승리를 향한 집념이 돋보인다. 출연진은 모두 은퇴한 지 5년도 안 된 선수들이다. 류현인, 윤준호 등 대학야구 선수들도 합류했다. 비록 예능이지만 선수들은 매 경기 최선을 다하며 프로에 버금가는 투지를 보인다. 현역의 압박을 벗어던진 지금, 오히려 승리에 대한 순수한 집념을 맨얼굴로 드러낸다. 

 

야구의 매력을 부각하는 제작 리더십

원래 야구 예능이 가진 한계는 분명했다. 기왕 예능으로 방향을 정한 이상 보통 출연진의 인지도나 재미, 신선한 소재를 바탕으로 프로그램이 구성되곤 한다. MBC의 ‘마녀들’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야구보다 더 쉽게 웃음을 뽑아낼 만한 방송 소재는 널렸다. 야구를 통해 재미를 그려내는 건 예능 작가에게 쉽지 않은 도전이다. 반대로 다큐처럼 진지한 방송을 기획한다면 은퇴 선수 영입은 그리 좋은 선택지가 아니다. 그들보다 야구에 간절하고 진심인 선수들이 많기 때문이다. 독립 리그 선수나 2군, 육성군 등을 떠올릴 수 있다. 그런데 ‘청춘 야구단’ 역시 흥행에서 고배를 마셨다. 누구보다 야구가 간절한 독립 야구 선수들을 모았음에도 말이다. 

‘최강야구’는 예능과 다큐 사이, 그 미묘한 줄타기를 환상적으로 해냈다. 일등 공신을 꼽자면 역시 제작을 총괄한 장시원 PD다. 그는 롯데 자이언츠의 오랜 팬이다. 야구에 대한 깊은 이해도는 방송 편집에도 묻어난다. 프로그램은 선수들의 플레이를 일일이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선수들이 느끼는 감정선을 여실히 드러낸다. 

< 최강 몬스터즈 장시원 단장 >

경기 상황은 계속해서 바뀌기에 투수가 던지는 공 하나의 의미는 전부 다르다. 제작진은 이를 구별할 수 있는 안목을 지녔다. 필요에 따라 장면을 늘리고 줄이며 긴장감을 유지한다. 선수들이 나누는 대화도 가감 없이 송출해 스토리로 구성한다. 실제 야구 중계에서는 볼 수 없는 생생한 이야기가 더해져 공에 의미를 더한다. 전문적인 해설진 역시 프로그램 흥행에 한몫했다. 야구 중계에서 오디오는 비디오만큼이나 중요하다. 정용검 캐스터의 시원한 샤우팅과 시적인 표현, 김선우 해설 위원의 탄탄한 중계가 프로그램의 완성도를 높였다.

제작진은 또한 ‘자칭 최강’이 아닌 객관적으로도 최강이라는 수식어가 어울리게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최강 몬스터즈의 상대에는 고교 야구팀도 있었다. 방송은 전국적으로 주목받는 유망주 투수들을 적극적으로 노출시켰다. 덕수고의 심준석, 충암고의 윤영철은 방송을 통해 아마 야구에 문외한인 팬들에게도 이름을 알렸다. 고교 야구 유망주들의 등장은 프로그램의 정당성에도 도움이 됐다. 최강 몬스터즈는 해당 경기에서 그저 단순한 고등학교 팀을 상대한 것이 아니었다. 프로팀들이 서로 데려가려고 하는 괴물 유망주를 상대로 승리를 따냈다. 몬스터즈가 거둔 승리의 가치를 더욱 높인 셈이다. 시즌이 진행되며 점차 강해지는 팀을 상대한 것도 ‘최강’이라는 타이틀과 어울리는 행보였다.

 

자신과 싸워 얻어낸 승리

그러나 ‘최강야구’가  단순히 열심히 뛰는 수준에 머물렀다면 화제성은 충분하지 않았을 것이다. 프로그램은 승리가 오직 그라운드 안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포수 이홍구의 입스 극복 과정이 그랬다. 그는 투수에게 공을 제대로 던지지 못했다. 송구 실책이 반복되자 포구와 수비 판단에서도 연달아 어려움을 겪었다. 팀 동료 송승준의 도움 아래 이홍구는 내면의 두려움과의 싸움에서 승리할 힘을 얻었다. 지석훈은 초반만 해도 기복 있는 플레이를 펼쳤으나 날이 갈수록 안정적인 수비를 선보이며 고정 자리를 따냈다. 이대은은 완벽한 부활의 서사를 그리고 강속구를 되찾았다. 윤준호, 류현인 등의 대학 선수가 프로 지명을 받는 모습은 한 편의 성장 드라마를 연상케 했다.

< 최강 몬스터즈 팝업 스토어 >

몬스터즈 선수단처럼 프로그램 자체도 ‘방송’이라는 알을 깨고 나왔다.  현시점에서 최강 몬스터즈는 웬만한 KBO 리그 구단 못지않은 인기를 자랑한다. 방송 시청률과 더불어 티켓 판매 능력이 이를 뒷받침한다. 굿즈 판매, 응원가 제작, 스폰서(PPL의 형태) 계약 등 실제 구단이 하는 비즈니스를 그대로 수행할 정도다. 몬스터즈만큼 사랑을 받은 예능 스포츠 구단은 ‘청춘 FC’ 이후로 없었다. 비록 실제 프로 구단 창설 논의까지 이루어졌던 청춘 FC와는 다르지만, 최강 몬스터즈는 흥행 면에서 확실히 그들 이상이다. 

 

예능 같은 야구, 야구 같은 예능

“많은 사람이 야구 종목 자체에 흥미를 느끼길 바라요. 야구가 더욱 사랑받으면 좋겠다고 소망합니다.”

장시원 PD가 인터뷰에서 내뱉은 말이다. 물론 그는 프로야구와의 관계에 분명한 선을 그었다. KBO 리그와 별도로 준비하고 있는 것도 없고, 프로그램이 한국 야구에 미치는 영향력도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번 WBC를 계기로 한국 야구는 산업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위기를 맞고 있다.

‘최강야구’도 이와 완전히 무관하지 않다. 프로야구와 야구 예능은 생각보다 연관이 깊다. 과거 ‘천하무적 야구단’의 흥행도 2006 WBC와 2008 베이징 올림픽의 후광 효과를 받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야구를 바라보는 외부 시선의 변화가 달라진 지금, 프로그램의 존속을 위해 <최강야구>도 함께 고민할 숙제가 생겼다. 

이미 ‘최강야구’는 예능으로서 눈부신 성과를 거두었다. 앞날은 어떻게 될까? 지금처럼 프로야구와 구별되는 예능 방송으로서의 입지를 더욱 단단하게 다질까? 아니라면 새로운 도전으로 한국 야구의 인기 회복에 앞장설까? 야구 예능을 화려하게 부활시킨 ‘최강야구’의 앞으로의 행보를 기대한다. 

 

참고 = JTBC

야구공작소 조훈희 칼럼니스트

에디터 = 김준업, 전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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