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출처 = 위키미디어 공용>
‘라면 수비’라는 말이 있다. 이는 외야수가 이미 낙구 지점을 파악해서 어슬렁거리듯 따라가도 공을 성공적으로 잡아내는 수비를 의미한다. 보통 사람들은 이 방식을 외야 수비의 최고봉으로 일컫는다. 이는 결국 공을 똑바로 쫓아가는 능력이 제일 중요할 것이라는 함축적 의미가 담겨 있다. 이런 수비로 제일 유명했던 선수는 ‘라뱅’ 이병규였다.
한편, 빠른 발을 두고도 이미지에 비해 수비가 별로인 선수들도 있다. 소위 ‘호수프레’ 제조기들인데, 이들은 낙구 위치를 잘못 판단해서 쉽게 잡을 것들을 어렵게 잡거나 간혹 놓치기도 한다. 여기에 대표적인 선수가 슈퍼소닉 이대형이다. 이 두 가지 유형의 수비 타입을 두고 팬들은 어느 쪽이 더 나은지에 대해 종종 논쟁을 펼치기도 한다. 그리고 필자의 경험상으로는 전자가 훨씬 더 좋은 수비수로 보통 결론이 나곤 했다.
그럼, 이것을 수치화시킬 수 있을까? 여기에 대한 답을 내리기 위해서 베이스볼 서번트에서 공개한 지난 7년간의 Outfield Jump 수치를 활용했다. 이 페이지에서 공개하는 내용은 크게 3가지다.
Outfield Jump
첫 번째는 Reaction(반응)이다. 이름처럼 반응시간을 표현하고자 한 항목이며, 투구 시점부터 탄력을 받기 전(1.5초)까지 해당 외야수가 이동한 거리를 의미한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방향을 고려하지 않고 순수하게 이 선수가 뛴 거리를 의미한다. 간단한 예시로 1.5초 동안 전진 2m, 후진 1m를 했다면 총 3m를 움직인 것으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Burst(가속)이다. 선수가 탄력을 받았을 시점(1.5초)부터 3초까지 뛰어간 거리를 의미한다. Reaction과 마찬가지로 방향은 고려하지 않는다.
세 번째는 Route(경로)다. 투구 시점부터 3초 동안 책임소재가 있는 외야수가 실제 뛰어간 경로를 직선 경로와 비교해 얼마나 더 뛰었는지를 측정한다. 앞서 가장 첫 문단에서 언급한 공을 똑바로 쫓아가는 능력을 수치화한 것이다.
이 셋을 종합하면 Jump의 값을 얻을 수 있다.
Baseball Savant의 Outfield Jump 항목에서는 리더보드의 형태로 각 외야수의 Reaction, Burst, Route가 리그 평균 대비로 나와 있다. 올 시즌 가장 높은 외야 OAA를 기록한 포수 출신의 외야수 달튼 바쇼의 측정치는 다음과 같다.
위의 표를 해석해보면 다음과 같다. 바쇼는 남들보다 투구 시점부터 1.5초 구간에서 1.2피트를 더 뛴다. 또 가속력이 받는 1.5초에서 3초까지는 2.3피트를 더 뛴다. Route가 헷갈리기 쉬운데, 평균 대비로 +(양수)일수록 경로를 절약했음을 의미한다. 즉 리그 평균에 비해 바쇼는 경로에서도 0.2피트를 절약한 셈이다.
Outfield Jump가 OAA에 미치는 영향
<타구 당 OAA와 지표 간의 산점도 및 결정계수>
OAA란 트래킹 데이터를 활용한 수비 지표라고 생각하면 된다. 해당 지표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https://yagongso.com/?p=7456에서 찾아볼 수 있다.
재미있는 결과가 나왔다. 위의 그림은 Burst가 수비 성공에서 가장 큰 관련이 있으며, Reaction은 수비력에 약소하지만, 긍정적인 연결고리가 있다. 한편, Route는 아예 관계가 없다고 해석하는 게 맞는 수치가 나온 것이다.
이 통계자료의 원인을 각자의 논리대로 생각해볼 수 있다.
우선 OAA는 평균 대비 성적을 나타내기에 평범한 타구를 처리하는 것으로는 별달리 점수를 받을 수 없다는 것에 유의해야 한다. 모두가 잡을 수 있는 것을 나도 잡은 건 거의 점수가 없다. 아주 쉬운 타구를 놓치는 경우를 제외하면 결국 차이를 내기는 어려운 타구다.
여기서 어려운 타구는 최고 수준의 속력을 가진 선수가 가장 효율적인 경로로 가야만 잡을 수 있는 타구들을 의미한다. 최고 수준의 속력을 가진 선수는 가끔 이 타구를 잡아내곤 한다. 운 좋게 최적의 경로로 공을 따라갔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효율적인 경로 선택에 강점을 둔 선수는 이 공을 못 잡는다. 최고 수준의 속력이 아닌 선수가 운 좋게 최고 수준의 속력을 내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수비로 정평이 나 있는 외야수 재키 브래들리 주니어는 이런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마지막 몇 발짝이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때 공을 잡기 위한 약간의 조정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을 한창 따라가는 중에 그 공을 잡기 위해 경로를 조정한다면, 아예 잡을 기회가 없어져 버릴 수 있다. 체공시간 내에 공에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단 먼저 도달해야 한다.” 결국 공을 따라가는 도중에는 감속을 야기하는 행위가 포구 가능성을 잃게 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다.
<Catch Probability Model>
느리지만 타구 판단을 잘하는 유형의 외야수들은 중간 이상의 적당한 난이도 타구에서 점수를 따야 한다. 하지만 OAA의 근간이 되는 Catch Probability Model만 보아도 그 기회가 요원함을 알 수 있다. 하얀색 50% 선에서 쫓아가야 하는 거리가 조금만 늘어도, 아니면 체공시간이 조금만 줄어도 타구의 난이도는 급속도로 증가해버린다. 즉, 여기에서 점수를 딸 기회 자체가 줄어든다는 의미다.
외야 OAA와 Route 사이에 관계가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난 또 다른 이유로, 전체 타구 중에서 난이도가 낮은 타구의 비율이 높다는 점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즉 간단한 타구의 경우에는 애당초 경로가 효율적이든 비효율적이든 포구와는 관계가 없다. 그러나 선수의 종합 경로 효율성 계산에는 이런 타구들도 다 들어가게 된다. 그러나 이런 영향을 감안하더라도 경로 효율성과 OAA 사이의 관계가 너무 작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병규 vs 이대형
이대형과 이병규가 뛰던 시절에는 안타깝게도 트래킹 데이터가 국내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정확한 결론을 내릴 수는 없다.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봤을 때 더 빠른 발을 갖고 있던 이대형이 이병규에 비해 더 좋은 OAA를 기록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다만 직관적으로만 받아들였던 발이 빠르다는 것의 정의도 중요하다. 보통 우리가 한 개인이 빠르다고 표현할 때는 그의 최고속도를 떠올린다. 하지만 투구 시작 이후 3초 후는 보통 그 선수의 최고속도에 도달하기 어려운 시점이다. 따라서 실제 Reaction과 Burst가 최고 속도와 비례할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실제 도루 능력이 출중한 호세 알투베의 경우, 최고속도는 평균 대비 살짝 위 정도이지만 거기에 도달하기까지의 가속 능력은 평균 대비 훨씬 뛰어나다.
우리가 기억하는 이대형의 빠른 발은 최고 속도일 가능성이 높다. 다시 말하면 이대형의 Busrt가 실제로 이병규의 Burst보다 좋을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또한 ‘라면 수비’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먼저 낙구 지점에 도착해있는 경우가 꼭 Route를 잘 따라갔기 때문이 아닐 수도 있다. 우리의 인식보다 Burst가 잘 되는 케이스였을 수 있다.
그래서 준비했다. 다음 글에서는 OAA, Outfield Jump와 최고 속도 사이의 관계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참고 = Baseball Savant
야구공작소 신하나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오연우, 홍기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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