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 리그 합동 응원전이 열린다면?

작년 11월 20일, 최강 몬스터즈와 두산 베어스의 친선 경기가 열렸다. 경기가 끝나고 흥미로운 일이 일어났다. 팬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뒤풀이 응원을 시작한 것이다. 서로의 응원팀을 가릴 것 없이 ‘서울의 아리아’, ‘승리를 위하여’ 등을 함께 불렀다. 그들은 경기장 밖에서 오직 응원가만으로 야구에 대한 애정을 표출했다. 이 장면은 스포츠와 응원 간의 본질적인 관계를 되돌아보게 했다.

 

응원을 통한 즐기는 야구

응원의 사전적 정의는 ‘운동 경기 따위에서, 선수들이 힘을 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이다. 주로 응원가나 구호를 통해 이루어진다. 응원 문화는 프로야구 팬들이 가장 크게 매력을 느끼는 요소 중 하나다. 2015년 트렌드모니터의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8.8%가 경기 내용보다 응원에 재미를 느낄 때가 많다고 답했다.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부르는 롯데 팬들>

실제로 응원은 빠던과 함께 KBO 리그를 대표하는 문화다. 그런데 KBO와 구단이 응원이라는 요소를 마케팅에 충분히 활용한 적이 있었을까. 프로야구 위기론이 대두되는 상황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해당 기간 동안 리그는 젊은 팬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일각에서는 야구에 관심이 떨어진 라이트 팬을 먼저 돌려놓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어찌 됐든 신규 팬을 유입하고 기존 팬을 묶어둘 수 있는 요소가 필요했다. 프로야구의 마케팅 목표는 명확했다.

이후 KBO의 행보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다. 각각 보는 야구와 하는 야구의 재미를 끌어올리려는 활동이었다. 리그는 스트라이크 존을 조정하고 게임 시간 단축을 위해 노력했다. 동시에 야구의 생활체육 저변을 넓히기 위해서도 노력했다. 허구연 총재는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횡성에서 열린 전국 대학야구 클럽 대회에 직접 방문했다.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쉽게 즐길 수 있는 미니 야구에 대한 인지도도 높였다. 그런데도 야구 인기는 크게 반등하지 못했다.  

스포츠로서의 야구가 아닌 문화로서의 야구가 떠오를 시점이다. 요즘 아이들은 동네에서 캐치볼을 하는 대신 리그 오브 레전드 같은 게임을 즐긴다. 저녁 시간에 프로야구를 시청했던 가정은 이제 OTT 서비스로 드라마를 시청한다. 프로야구 자체가 팔리지 않는다면 야구장의 문화를 팔아야 한다. 팬들에게 자연스럽게 접근할 수 있는 야구 문화는 무엇이 있을까. 음악이라는 요소를 지닌 응원에서 답을 찾을 수도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프로야구 산업을 바라보면 참고할 만한 사례가 보인다. 바로 고려대학교와 연세대학교의 응원 문화다.

 

정기전 응원이 시사하는 점

고려대학교와 연세대학교의 정기전은 매년 뜨거운 열기를 자랑한다. 경기장 안에서 벌어지는 승부의 경쟁도 물론 치열하다. 하지만 관중석에서 주고받는 응원전은 더욱 뜨겁다. 정기전의 응원 문화는 프로야구에 세 가지 시사점을 던진다.

첫째, 응원의 대중화는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양교의 학생들에게 특별한 응원 DNA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단합력은 각 학교 응원단의 철저한 교육의 산물이다. 예비 입학생들은 2월에 열리는 새내기 배움터에서 처음 응원을 배운다. 이후 3월에 응원 OT와 합동 응원전, 5월에는 축제(의 성격을 띤 응원제), 9월에 2차 합동 응원전을 거쳐 정기전으로 피날레를 장식한다. 이 모든 행사는 각 학교 응원단이 기획하고 운영한다. 정기전에서 보이는 양교의 열띤 응원전은 응원단이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 학생들에게 먼저 다가간 결과물이다.

<고려대와 연세대의 합동 응원전>

둘째, 응원 자체도 독립적인 콘텐츠가 될 수 있다. 합동 응원전 및 양교의 축제 마지막 날(입실렌티/아카라카)은 모두 응원을 위한 행사다. 응원 행사에 참여한 학생들은 그들 스스로 다양한 영상 및 콘텐츠를 생산한다. 해당 콘텐츠는 SNS상으로 재전유되어 응원 문화의 인지도를 높인다. 학생들은 응원을 통해 얻는 자긍심을 ‘고뽕’, ‘연뽕’이라는 단어로 표현한다. 프로 야구단도 응원 행사를 통해 구단에 대한 팬들의 충성심을 높일 수 있다.

셋째, 응원과 스포츠는 상호 보완적 관계를 이룬다. 일반적으로 스포츠의 인기가 올라갈수록 응원 열기도 뜨거워지기 마련이다. 반대로 재미있는 응원 문화가 스포츠 경기의 흥행을 이끌 수도 있다. 정기전을 보면 럭비나 아이스하키같이 대중적이지 않은 종목도 관중이 꽉 들어찬다. 학생들은 수만 명이 함께 응원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경기장을 찾는다. 이처럼 응원을 통해 스포츠를 홍보하는 역방향의 스포츠 마케팅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응원을 활용한 마케팅 활동

정리하면 구단은 자발적인 노력을 통해 잠재적 팬들의 응원 욕구를 고취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개최하는 응원 행사는 팬들의 감정적인 관여도를 높인다. 응원 문화의 만족도가 높아질수록 프로야구의 잠재적 소비자도 늘어난다. 그렇다면 응원의 보편화를 위한 구체적 실행 방안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구단 및 협회는 아래와 같은 점진적 접근법을 취할 수 있다.

한 가지 방법은 응원가를 활용한 영상 콘텐츠를 제작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유튜브 채널 ‘딩고’의 킬링 보이스 시리즈를 벤치마킹할 수 있다. 각 구단이 팀 응원가를 모아 플레이리스트를 제작하는 방식이다. 영상 출연자로는 연고지 내 대학 밴드 동아리와 협업할 수도 있겠다. 야구 응원가는 고관여/감정 자극 서비스 영역에 해당한다. 따라서 타겟 소비자층과 비슷하고, 호감이 가고, 친숙한 대상을 전달자로 선정하면 관여도를 높일 수 있다. 연고지 내 대학 동아리와 협업한다는 사실만으로 지역을 위한 활동이 될 수 있다. KBO 차원에서도 10구단 대표 응원가 플레이리스트 영상을 업로드한다면 금상첨화다.

<공연을 펼치는 댈러스 카우보이스 치어리더 팀>

대학 축제에 응원단을 파견할 수도 있다. 물론 국내 야구단 특성상 치어리더 소속사와의 협의는 필요하다. 그런데도 연고지 팬들에게 먼저 다가갈 수 있다는 점에서 시도해 봄 직한 행사다. 우리나라의 응원단은 풍부한 콘텐츠를 가지고 있다. 춤과 치어리딩을 비롯해 다양한 즐길 거리로 팬들의 흥을 끌어올린다. 연예인에 버금가는 인기를 자랑하는 치어리더도 있다. 스포츠의 응원 문화를 알리기에 응원단보다 적합한 전달자도 없다. 일례로 댈러스 카우보이스 치어리더팀은 미국 전역으로 공연을 다닌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응원 문화를 보편화하려는 시도는 이어져야 한다.

KBO가 전구단 팬들을 대상으로 합동응원전을 개최한다면 어떨까? 그날만큼은 원저작자의 허가를 받아 사용이 금지된 응원가를 부활시킬 수 있다면 팬들의 관심을 끌어모으기에 충분하다. ‘부산 갈매기’와 ‘엘도라도’를 야구장에서 다시 부를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행사에 참여할 팬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다 같이 응원가를 떼창하고, 행사를 위해 특별 제작한 영상도 시청하며, 각 팀 응원단의 공연도 즐길 수 있다면? 합동응원전은 일종의 야구 문화 축제로 거듭날 잠재력이 있다. 시범 경기가 끝나는 시점에 개최해 새 시즌을 알리는 이벤트로 삼아도 된다.

응원 문화가 보편화될수록 새로운 사업 기회도 생겨나기 마련이다. 일례로 팬들은 야구장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응원 공간을 필요로 할 수 있다. 구단도 얼마든지 이에 응답할 수 있다. 팬들을 위한 공간 마케팅을 펼치는 것이 한 예다. 프리미어리그 팬들 사이에서 축구 펍 ‘봉황당’은 이미 유명한 장소다. 경기 날에는 새벽임에도 불구하고 응원하러 온 팬들로 매장이 가득 차곤 한다. 물론 봉황당은 구단이 아닌 개인이 운영하는 공간이다. 구단이 직접 야구 펍 같은 오프라인 매장을 운영하지 못할 이유도 없다. 공간 마케팅은 오감을 자극하고 긍정적 분위기를 조성한다는 점에서 소비자들의 회상을 촉진할 수 있다. 또한 제품이 아닌 경험을 소비하는 MZ 세대의 트렌드와도 부합한다.

 

코로나19는 프로야구 산업의 경쟁자가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야구장 응원 문화의 희소성을 높여 주기도 했다. 우리 사회는 이번 팬데믹을 계기로 많은 사람이 모여 같은 노래를 부르고 동일한 감정을 공유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경험인지 알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스포츠로서의 야구가 문화로서의 야구로 발전할 수 있을까? 하는 야구, 보는 야구를 거쳐 즐기는 야구의 시대가 오길 바란다. 야구장의 응원 문화는 대체재가 없다.

 

야구공작소 조훈희 칼럼니스트

에디터= 야구공작소 양재석, 홍기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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