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연재물은 ‘KBO 박스스코어 프로젝트’와 함께 합니다.
‘미리보는 한국시리즈’
KBO 리그 시즌 후반으로 접어들면 기사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타이틀이다. 보통 1, 2위권에 있는 팀들이 맞대결을 펼치면 수준 높은 경기를 통해 진검승부를 펼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이런 명칭이 붙곤 한다. 심지어 2014년 삼성 라이온즈와 넥센 히어로즈의 페넌트레이스 최종전에서는 이후 한국시리즈 1차전 선발투수가 되는 앤디 밴 헤켄과 릭 밴덴헐크를 나란히 선발투수로 예고하며 피 튀기는 승부를 펼치기도 했다.
이렇듯 페넌트레이스에서도 가끔은 포스트시즌에 필적하는 경기가 펼쳐지곤 한다. 그리고 상위권에 올라있는 팀 간의 대결이기 때문에 보통은 훌륭한 경기 내용을 보여주기 마련이다. 감독들은 수준 높은 지략 싸움을 펼치고, 선수들은 눈이 휘둥그레지는 파인 플레이를 보여주며 팬을 즐겁게 만든다. 특히 시즌 막판으로 갈수록 순위 싸움이 걸려있기 때문에 이런 경기들이 자주 나오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2018년 한글날에 있었던 롯데 자이언츠와 KIA 타이거즈의 이른바 ‘준와일드카드 결정전’은 포스트시즌의 이름을 빌린 여느 페넌트레이스 경기와는 전혀 다른 흐름으로 전개됐다. ‘이게 정말 가을야구 티켓 한 장을 두고 펼치는 경쟁이 맞나?’라는 의문이 제기될 정도였다. 두 팀은 펜싱보다는 장난감 칼싸움 같은 경기를 펼쳤고, 바둑보다는 알까기 같은 승부를 보여줬다. 경기를 보던 팬들은 고혈압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두 팀은 물고 물리는 ‘개싸움’을 펼쳤다. 재미있는 점은, 이 두 팀은 이미 시즌 초반부터 이런 경기를 계속 보여줬다는 것이었다. 대체 2018년 롯데와 KIA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2017시즌 페넌트레이스 3위를 기록하며 돌풍의 팀으로 등극한 롯데는 2018시즌 개막 7연패로 시즌을 시작하며 출발선부터 남들보다 뒤에 있었다. 같은 기간 6승 1패로 단독 선두에 올랐던 NC 다이노스와 비교되며 ‘경남 팬 떠나가는 소리 또 들린다’라는 비아냥도 들어야 했다. 3월 24일 개막 후 롯데는 4월 7일까지 1할도 안 되는 승률을 기록하며 최하위에 머무르고 있었다.
4월 말 SK 와이번스와의 3연전을 2승 1패로 마감한 이후 롯데는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롯데는 5월 중순까지 무려 7연속 위닝 시리즈를 기록하며 4위까지 뛰어올랐다. 그리고 이후 롯데의 행보는 ‘롤러코스터’였다. 5월 20일 두산 베어스전부터 12경기에서 롯데는 1승 11패로 주춤하며 다시 9위로 떨어졌다가, 6월 중순 5연승으로 7위 자리에 올랐다. 6월 30일 한화 이글스전에서 믿었던 마무리투수 손승락이 지성준(개명 후 지시완)에게 끝내기 홈런을 맞은 후 다시 연패 모드에 들어간 롯데는 여름 들어 연승과 연패를 반복한 끝에 아시안게임 휴식기 직전 3연승을 거두며 겨우 7위로 마감했다.
아시안게임 이후 반등을 노리던 롯데는 리그 재개와 함께 8연패라는 쓰나미를 맞으면서 첫 11경기에서 1승 10패를 기록했다. 그러더니 당시 이름을 날리던 모 기자의 ‘롯데도 19연승 할 수 있다’라는 기사가 나오자마자 문제의 ‘준와일드카드 결정전’ 이전까지 ‘4연승-1패-3연승-1패-3연승-1패-3연승’이라는 믿을 수 없는 상승곡선을 그렸다. 9월 25일 NC전에서는 7점 차로 뒤지던 경기를 이대호의 3점 홈런 등을 묶어 역전하는 모습도 보여줬다. 5위보다는 9위에 가까웠던 8위 롯데는 어느새 5위 KIA에 한 경기 차까지 따라잡았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롯데는 이 시점에서 KIA와 홈에서 1경기, 원정에서 3경기를 남겨뒀다. 성적에 따라 자력 5강 진출도 가능한 상황이었다.
롯데와 KIA는 2018년 들어 상대 전적(10승 6패 롯데 우세)와는 별개로 여러모로 치열한 경기를 여러 차례 보여줬다. 시즌 첫 대결인 4월 13일부터 롯데는 9회 초에만 7득점 하며 역전승을 거뒀다. 8월 1일에는 베테랑 임창용이 무려 3998일 만에 선발승을 거뒀고, 불과 8일 뒤에는 그 임창용을 상대로 안중열이 만루홈런을 터트리며 복수에 성공했다. 4월 15일에는 보기 드문 ‘미세먼지 취소’를 겪었고, 6월 10일 경기에서는 롯데가 4점 차로 이기고 있던 상황에서 우천취소가 되면서 KIA 더그아웃에서는 이범호가 한때 한솥밥을 먹었던 조원우 감독과 김민재 코치를 놀리는 장면도 나왔다.
2018년에는 한글날이 화요일이었다. 회사에 따라서 샌드위치 휴가를 사용하게 하면서 4일 이상을 쉴 수도 있었다. 공휴일에 순위 싸움이 걸린 경기였기에 한글날 경기가 열린 사직 야구장은 일찌감치 매진 사례를 이뤘다. 지상파인 SBS가 중계를 하면서 가을로 접어든 날씨까지 겹쳐 완벽한 포스트시즌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날 롯데는 베테랑 송승준, KIA는 사이드암 임기영을 선발투수로 예고했다. 롯데는 잠수함 투수에게 다소 약한 모습을 보여줬던 주전 중견수 민병헌 대신 좌타자 조홍석을 선발 라인업에 투입했다. 그리고 이 선택이 이날 경기의 흐름을 ‘바둑’에서 ‘알까기’로 바꿔버렸다.
롯데는 1회 말 이대호의 (비디오 판독을 통한) 유격수 땅볼과 채태인의 적시타로 먼저 2점을 얻었다. 이어 2회 말 무사 2, 3루에서도 안중열의 적시타로 한 점을 추가하며 분위기를 가져왔다. 그러나 이어진 무사 1, 3루에서 3루 주자 앤디 번즈가 포수 견제에 걸려 아웃되면서 분위기는 묘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롯데는 테이블세터 조홍석과 손아섭이 나란히 내야 땅볼로 물러나며 찬스를 살리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롯데 선발 송승준은 2회까지 무실점으로 막아내며 개인 통산 1600이닝을 달성했다. 그러나 1회 나지완의 중견수 뜬공 때부터 불안한 타구 판단으로 우려를 자아냈던 중견수 조홍석이 3회 결국 폭탄을 터트리고 말았다. 1사 1루에서 나지완의 타구를 앞으로 달려 나와 잡으려다 생각보다 타구가 뻗어 나가면서 조홍석은 결국 이 타구를 잡지 못했다. 송승준은 다음 타자 최형우를 삼진 처리하며 통산 1200탈삼진 기록도 작성했다. 그러나 4번 안치홍이 친 타구를 잘못 판단한 조홍석은 똑같은 장면을 연출했고, 결국 2타점 2루타로 이어졌다. 이날 경기를 해설하던 이순철 해설위원이 “외야 수비는 안 되겠는데요”라고 단호하게 말할 정도로 어설픈 수비였다.
KIA는 이 찬스를 놓치지 않았다. 내야안타와 밀어내기 볼넷으로 역전에 성공한 KIA는 박준태의 우익선상 3타점 3루타까지 나오면서 결국 송승준을 마운드에서 내렸다. 다음 투수 이명우가 로저 버나디나에게 좌중간 안타를 맞으면서 송승준의 실점은 8점까지 늘어났다. 조홍석의 수비는 모두 안타로 기록됐기 때문에 송승준의 실점은 모조리 자책점으로 들어갔다. 경기 초반이지만 5점 차 열세는 롯데에 분명 좋은 신호는 아니었다.
그러나 롯데는 이대로 경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3회 말 롯데는 곧바로 문규현의 희생플라이와 안중열의 1타점 적시타로 2점을 추가했고, 조홍석의 대타로 나온 민병헌이 우중간에 떨어지는 2타점 적시타를 터트리며 경기를 한 점 차로 만들었다. 롯데는 6회 말 1사 1, 3루에서 이대호의 안타가 나오며 결국 8대 8 동점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8회 초 최형우의 1타점 안타로 재역전을 허용한 롯데는 9회 말 전준우와 이대호의 연속 안타로 무사 1, 3루 절호의 기회를 만들었다. 5번 채태인이 삼진으로 물러났지만 1루 대주자 나경민이 2루 도루에 성공하며 2, 3루가 됐다. 여기서 6번 문규현이 9구 승부 끝에 우익수 쪽으로 향하는 뜬공을 기록하며 3루 주자를 홈으로 불러들였다. 그러나 홈 승부를 예상했던 2루 주자 나경민이 3루로 뛰다가 런다운에 걸려 아웃, 롯데의 공격은 다소 허무하게 마감됐다. 카메라에 잡힌 한 팬의 ‘야 계란빵 진짜 달다’(?)라는 절규는 그만큼 나경민의 플레이가 무리수였음을 보여줬다.
결국 경기는 9대 9 상황에서 연장으로 향했다. 10회 초 유격수 문규현의 실책으로 불안한 출발을 보인 롯데는 손승락이 볼넷을 내준 데 이어 나지완의 타구를 좌익수 전준우가 판단 미스로 놓치면서 무사 만루 위기를 자초했다. 그나마 손승락이 다음 타자 유재신을 삼진 처리하고 안치홍에게는 희생플라이를 허용하면서 롯데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1실점으로 막아냈다.
‘위기 뒤에는 기회’라고 했던가. 롯데는 10회 말 KIA 마무리 윤석민을 상대로 공 4개 만에 똑같이 무사 만루를 만들었다. 여기서 민병헌이 안타성 타구를 날렸으나 중견수 버나디나가 넘어지면서 타구를 처리, 3루 주자만 홈으로 들어오는 데 그쳤다. 이어 손아섭의 잘 맞은 타구가 2루수 정면으로 향하면서 2루 주자까지 아웃, 롯데 역시 무사 만루 1득점에 그쳤다. 사직 야구장 흡연구역은 도저히 경기를 볼 수 없었던 흡연자들이 점령하면서 ‘너구리굴’이 됐다.
양 팀의 치열한 승부는 결국 11회가 돼서야 끝이 났다. 롯데는 11회 말 문경찬을 상대로 대타 한동희가 좌중간을 가르는 2루타를 기록, 끝내기 찬스를 잡았다. 여기서 타석에는 이날 두 차례 희생플라이를 기록한 문규현이 들어왔다. 이미 전년도(9월 15일)에도 KIA를 상대로 끝내기 안타를 보여줬던 문규현은 문경찬의 3구째 높은 패스트볼을 공략, 좌익수 키를 넘기는 안타를 뽑아냈다. 2루 주자 한동희가 홈을 밟으며 롯데는 경기를 끝내는 11번째 점수를 얻었다. 4시간 45분 동안 펼쳐진 치열한 승부의 마침표를 찍는 순간이었다.
이날 승리로 롯데는 5위 KIA와의 승차를 0으로 만들었다. 마침 다음날 열린 경기에서 KIA는 3위 한화와 경기를 하게 된 반면, 롯데는 시즌 상대전적 11승 1무 2패를 기록 중이던 KT 위즈와 더블헤더를 펼치게 됐다. 롯데가 더블헤더를 스윕하고 KIA가 패배한다면 두 팀의 순위가 뒤집히면서 광주 3연전 동안 롯데가 1승만 해도 5위 확정에 있어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롯데는 2004년 이후 무려 17년 동안이나 더블헤더 스윕승이 없었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더블헤더 1차전에서 천적 고영표에게 탈탈 털린 롯데는 하루 뒤 선발 등판 예정이었던 브룩스 레일리를 더블헤더 2차전에 투입하고도 끝내 스윕패를 당했다. 이제 롯데는 1패만 당해도 포스트시즌 탈락이 확정되는 상황에 몰렸다. 그리고 10월 11일부터 13일까지 열린 진짜 ‘준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롯데는 2승 1패를 기록, 결국 손에 잡힐 듯했던 가을야구 막차 티켓을 KIA에 헌납했다. 시즌 종료 5일 후 롯데는 조원우 감독을 경질하고 양상문 전 감독을 다시 사령탑에 앉혔다. 그리고 맞이한 2019시즌에 대해 더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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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롯데 자이언츠
야구공작소 양철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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