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연재물은 ‘KBO 박스스코어 프로젝트’와 함께 합니다.
롯데 자이언츠는 2010년대 들어 시즌 막판 더블헤더만 하면 꼭 순위 싸움에서 밀려나는 징크스 아닌 징크스가 있다. 2018년에는 개막 7연패로 시작해 롤러코스터 같은 시즌을 보내다 10월 들어 5위와 승차 없는 6위로 따라잡았다. 그러나 KT 위즈와의 더블헤더에서 에이스 브룩스 레일리를 투입하고도 두 판을 모두 내주면서 결국 포스트시즌 무대에 초대받지 못했다. 이로부터 3년 전인 2015년 9월에도 롯데는 두산 베어스를 만나 더블헤더를 진행했다. 9월 초 호성적을 거두며 5위로 뛰어올랐던 롯데였지만 역시나 두산에 더블헤더 2경기를 모두 패하면서 6위로 떨어졌다. 이후 브레이크 없는 하락세를 거친 끝에 결국 8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이 때문에 롯데 팬들은 더블헤더라도 잡혔다고 하면 패배의 두려움에 손을 벌벌 떤다. 2020시즌부터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19(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시즌 개막이 밀리면서 더블헤더가 잦아지곤 했는데, 이때도 롯데는 더블헤더에서 그다지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시카고 컵스의 레전드 어니 뱅크스는 “Let’s play two!”(한 경기 더!)라는 말을 남기며 “한 경기보다는 두 경기가 진짜”라고 말했다는데, 롯데는 뱅크스의 안티테제를 자처한 듯 하루에 2경기를 하기만 해도 고개를 숙이곤 했다.
그렇지만 앞서 언급한 두 번의 더블헤더는 5위라는 비교적 작은 물고기를 잡기 위한 미끼였을 뿐이었다. 3년 주기라도 있는 듯 2012년에도 롯데는 ‘악몽의 더블헤더’를 보냈다. 심지어 이때는 고작 포스트시즌 끝자리를 놓친 것이 아니라 아예 페넌트레이스 우승 경쟁을 포기하게 했다. 롯데 40년 역사에서 1984년 후기리그 이후 나오지 않았고, 단일리그에서는 한 차례도 없었던 페넌트레이스 우승. 롯데는 그 대업 앞에서 더블헤더를 만나 그대로 지하를 뚫고 맨틀까지 내려갔다. 대체 2012년의 더블헤더는 롯데에 어떤 결과를 초래했을까?
롯데는 2012시즌 개막을 앞두고 손민한, 장원준, 임경완, 이대호, 장성우 등이 팀을 떠났다. 이미 2년 넘게 전력 외로 분류됐던 손민한이나 백업 포수 장성우의 이탈은 그리 큰 타격을 주지 못했다. 임경완의 이적은 다소 영향이 크기는 했지만 다른 선수로 대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2011시즌 투·타의 핵심이었던 이대호와 장원준이 전력에서 사라진 것은 치명타였다. 다행히도 롯데는 FA 시장에서 SK 와이번스의 정대현과 이승호를 모두 잡아 오면서 투수진 보강에 성공했다.
정대현이 무릎 부상으로 전반기 아웃이 확정됐고, 손아섭도 연조직염(봉와직염) 여파로 개막전 합류가 무산되며 다소 김이 새기는 했지만 롯데는 2012시즌 초반부터 치고 나갔다. 특히 2차 드래프트를 통해 입단, 정대현의 공백을 메운 김성배의 활약이 빛났다. 또한 외국인 투수 셰인 유먼은 장원준의 이탈을 느끼지 못할 정도의 뛰어난 투구를 보여줬다. 이대호의 빈자리는 끝내 대체하지 못했지만 박종윤, 박준서 등 새로운 얼굴이 등장했고, 홍성흔과 김주찬, 강민호 등 기존 선수들도 활약하면서 롯데는 탄탄한 라인업을 갖췄다.
시즌 내내 1위 다툼을 펼쳤던 롯데는 9월에도 13일까지 6승 3패로 괜찮은 성적을 거두며 1위 삼성 라이온즈와 3경기 차 2위를 지켰다. 그런데 대체 왜 9월 13일까지로 성적을 끊었을까? 이 글을 읽으면서 ‘혹시나 9월 14일에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건 아닐까?’하고 걱정하는 사람이 있다면 학교 다니던 시절 국어 영역 비문학 지문을 잘 풀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맞다, 정말 9월 14일에 롯데에는 무슨 일이 생겼다.
사실 9월 14일 경기가 시작하기 전까지 롯데의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비록 1위와 승차를 좁히지 못하고 평행을 달리기는 했지만, 롯데 역사를 돌아보면 이렇게 유지라도 할 수 있으면 매우 훌륭한 시즌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여기에 9월 12일 광주 KIA전에서는 0대 1로 뒤지고 있던 9회 초 강민호를 시작으로 4명의 타자가 연속 안타를 터트려 3점을 올렸다. 전년도까지 한솥밥을 먹었던 최향남을 울린 롯데는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면서 2위 자리에 한 발짝 다가가는 것처럼 보였다.
9월 13일, 광주에는 비가 내렸다. 이로 인해 롯데와 KIA는 하루 뒤인 14일 경기를 더블헤더로 치르게 됐다. 원래 13일에 붙기로 했던 양 팀의 선발투수는 각각 14일 1차전(롯데 송승준)과 2차전(KIA 윤석민)에 나눠 등판하기로 했다. 더블헤더, 벌써 불안을 느끼는 롯데 팬들이 많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2012년에는 ‘더블헤더 악몽’이라는 말은 없었기 때문에 당시 팬들은 기대하는 마음으로 경기를 지켜봤다.
9월 14일 오후 3시, 더블헤더 1차전의 ‘플레이 볼’이 선언됐다. 양 팀은 3회까지 팽팽한 경기를 펼쳤지만 4회 말 KIA가 안치홍의 1타점 2루타를 시작으로 5점을 올리면서 균형이 깨지기 시작했다. 롯데는 선발 송승준과 두 번째 투수 김수완이 사이좋게 4이닝 5실점을 기록하면서 결국 KIA에 1대 10으로 대패했다. 롯데는 5회 초 조성환의 내야 땅볼로 겨우 1점을 올렸을 뿐 시종일관 무기력한 공격을 펼쳤다. 그나마 경기를 일찌감치 내주면서 정대현, 김성배, 이명우, 김사율 등 당시 롯데가 자랑하던 이른바 ‘양떼 불펜’을 아꼈다는 점은 위안거리였다.
1차전 종료 후 20분을 휴식한 두 팀은 곧바로 2차전 경기에 임했다. 첫 경기를 무기력하게 내준 롯데는 에이스 유먼을 내세우며 반격에 나섰다. 2차전을 반드시 잡겠다는 각오로 경기에 임한 롯데는 1회부터 손아섭의 희생플라이와 강민호의 적시 2루타로 2점을 올렸다. 이어 3회에도 홍성흔의 좌중간 3점 홈런이 터지면서 롯데는 먼저 5점 차로 앞서나갔다. 유먼이 4회 말 1점을 내주기는 했지만 롯데도 5회 초 조성환의 적시타가 나오며 점수 차를 유지했다. 이대로 경기를 마무리했다면 두 팀은 1승 1패를 나눠가진 후 이동하는 시나리오를 작성할 수 있었다.
그런데 5회 말부터 경기 흐름이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KIA는 이용규와 김선빈의 연속 안타, 그리고 안치홍의 볼넷으로 무사 만루 찬스를 만들었다. 여기서 나지완과 박기남의 2루타가 나오면서 KIA는 5대 6 한 점 차까지 따라갔다. 롯데가 갑자기 쫓기기 시작한 것이다. 롯데는 8회 초 공격에서 강민호가 솔로홈런을 기록하며 추격을 허락하지 않으려고 했다.
9회 말, 롯데는 2점의 리드를 지키기만 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승리를 확정 짓기 위해 롯데는 마무리 김사율을 마운드에 올렸다. 그러나 김사율은 시즌 내내 KIA만 만나면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김사율은 4사구 3개를 내주며 1사 만루 위기를 자초했다. 여기서 김상훈의 바가지 안타로 다시 1점 차로 쫓기자 롯데는 급하게 김성배를 마운드에 올렸다. 하지만 박기남이 중견수 쪽으로 향하는 희생플라이를 기록, 결국 경기는 7대 7 동점이 됐다. 그나마 중견수 전준우가 잘 잡았기에 1점으로 끝났지만 만약 타구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다면 경기가 끝날 수도 있던 타구였다.
경기는 결국 연장 12회까지 흘러갔다. 마지막 공격에 나선 롯데는 용덕한의 볼넷과 손용석, 황재균의 연속 안타로 만루 찬스를 잡았다. 여기서 대타 정훈이 밀어내기 볼넷을 기록, 롯데는 3이닝 동안 이어졌던 균형을 깼다. 여전히 만루 기회는 이어졌지만 롯데는 황진수가 포수 파울플라이, 전준우가 유격수 땅볼로 물러나며 추가점을 내지 못했다. 그리고 멀리 달아나지 못한 대가는 혹독하게 찾아왔다.
유먼이 내려간 이후 정대현, 최대성, 김성배 등 쓸 수 있는 구원 카드를 모두 사용한 롯데는 11회 등판한 좌완 강영식을 계속 마운드에 올렸다. 강영식은 선두타자 박기남을 2루수 땅볼로 처리한 데 이어 김주형에게도 삼진을 잡아내며 경기를 마무리하기까지 아웃카운트 하나를 남겨두게 됐다. 2아웃, 타석에는 대타 황정립이 등장했다. 초구를 지켜본 황정립은 2구째 패스트볼에 방망이를 냈지만 맞히지 못했다.
카운트 1-1, 강영식의 경기 22번째 공이 포수 용덕한의 미트로 향했다. 그러나 용덕한은 이 공을 잡지 못했다. 황정립이 그대로 이 공을 받아쳤기 때문이었다. ‘타구’로 성질이 바뀐 ‘투구’는 광주의 밤하늘을 날아 우중간 관중석에 꽂혔다. 솔로 홈런. 아웃카운트 하나를 남겨두고 경기가 다시 원점으로 향하는 순간이었다. 다 잡은 승리를 놓친 강영식은 얼굴이 벌게지며 손까지 파르르 떨었다. 당시 경기의 해설자였던 허구연의 말대로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홈런’이었다. 강영식은 1번 윤완주(개명 후 윤해진)에게도 안타를 맞으며 끝내기 위기까지 맞이하게 됐다. 강영식은 홍재호를 좌익수 뜬공으로 겨우 잡아내며 KIA의 승률이 올라가는 일만큼은 막아냈다.
극적인 홈런을 기록한 고려대학교 출신의 신인 황정립은 이 타석에 1군 첫 타석이었다. 공교롭게도 이날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고려대학교와 연세대학교의 정기전에서는 고려대가 1학년 김주한의 완투승에 힘입어 연세대를 물리쳤다. 후배들의 선전을 지켜본 황정립은 자신도 이날 팀의 영웅으로 등극했다. 하필 적장이었던 양승호 롯데 감독은 2년 전까지 황정립을 지도했던 고려대의 감독이었다. 이 때문에 양승호 감독은 “(대학 시절) 빠른 볼에 강했던 타자라 (강)영식이한테 주지시켰는데…”라며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날 이후 롯데는 거짓말처럼 추락했다. 9월 14일 더블헤더부터 시작한 시즌의 마지막 17경기는 앞선 116경기의 활약을 모두 물거품으로 만든 기간이었다. 특히 롯데는 9월 14일부터 10월 1일까지 18일, 14경기에서 단 1승을 거두는 동안 무려 12패(1무)를 기록했다. 분명히 처음에는 1위 자리도 손에 닿을 듯했는데, 연패를 거듭하다 보니 어느새 5위 KIA 타이거즈에도 2.5경기 차이로 따라잡혔다. 상황도 좋지 않았다. 김사율은 시즌 막판 난조를 보이며 정대현과 더블 스토퍼로 사실상 강등됐고, 손목 부상으로 이탈했던 셋업맨 김성배도 복귀 후에는 얻어맞는 일이 잦았다. 여기에 팀 전력의 핵심인 포수 강민호는 수비 도중 주자와 충돌, 뇌진탕 증세를 보이며 이탈했다.
9월 30일 롯데는 다시 KIA를 만났다. 3연전에서 1승만 거둬도 4강 진출이 확정되는 상황이었지만 반대로 3연전을 모두 내준다면 1.5경기 차로 좁혀지는 중요한 시리즈였다. 첫 두 경기를 무기력하게 패배한 롯데는 10월 2일 경기에서 정대현의 3.1이닝 세이브를 앞세워 승리, 4위 매직넘버를 0으로 만들었다. 불과 3주 전까지 2위를 달리고 있던 롯데는 4위를 했다고 좋아하기는 어려웠다.
우여곡절 끝에 준플레이오프에 진출한 롯데는 두산 베어스를 꺾고 인천으로 향했다. 2년 연속 플레이오프에서 SK를 만난 롯데는 먼저 2승째를 챙기면서 한국시리즈 진출을 앞두게 됐다. 하지만 4차전과 5차전을 연달아 내주며 결국 2승 3패로 패퇴했다. ‘20년 동안 우승 못 하면 프로구단의 존재 이유가 없다’라고 말했던 장병수 당시 구단 사장의 말이 무색하게 롯데는 우승 후 20번째 시즌에서도 끝내 트로피를 들어 올리지 못했다. 그리고 플레이오프 종료 후 8일이 지난 10월 30일, 양승호 감독이 사퇴 의사를 표명하면서 롯데의 짧았던 5년간의 전성기는 여기서 마무리를 짓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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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롯데 자이언츠
야구공작소 양철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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