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연재물은 ‘KBO 박스스코어 프로젝트’와 함께 합니다.
2010년 8월 15일 일요일, 광복 65주년을 맞이하는 영광스러운 날이었지만 롯데 자이언츠에는 웃을 수 없는 하루였다. 전날 홈런포를 가동하며 9경기 연속 홈런 세계 신기록을 세운 이대호의 홈런 행진이 끊겼다. 선발 이재곤의 7이닝 1자책 호투에도 타선은 침묵했다. 9회 초 아웃카운트를 2개 남겨놓고 조성환의 적시타로 힘겹게 동점을 만들었지만 다음 수비에서 끝내기 홈런을 허용하며 그대로 경기를 내줬다.
패배보다 더 아팠던 것은 바로 중심타자의 부상이었다. 9회 초 조성환의 안타 이후 타석에 들어선 홍성흔은 KIA 타이거즈의 마무리 윤석민의 몸쪽 공에 손목을 강타당했다. 정밀검진 결과 왼손등뼈 골절 판정을 받으면서 홍성흔은 시즌 아웃 이야기까지 들었다. 당시 타율 0.356 26홈런 113타점을 기록, 타점 1위를 비롯해 타격 여러 부문에서 수위를 다투던 홍성흔의 이탈은 롯데에 있어서는 치명타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여기에 롯데는 이후 대진운도 최악이었다. 롯데는 인천에서 SK 와이번스와 주중 3연전을 가진 후, 홈으로 돌아와 사직에서 두산 베어스와 주말 3연전을 가질 예정이었다. 당시 롯데와 17경기 차 1위였던 SK와 11.5경기 차 3위 두산을 만난 것도 롯데에 좋은 일은 아니었지만, 하필 주포가 빠진 최악의 상황에서 강팀 둘을 만난다는 것은 패배로 가는 지름길이나 다름없었다. KIA와 치열한 4강 싸움을 펼치던 롯데 입장에서는 자칫 4위 자리를 내줄 수도 있던 위기 상황이었다.
무거운 마음으로 인천행 버스에 탑승한 롯데는 8월 17일, SK와 3연전 첫 경기에 들어갔다. 1회 초 롯데 타자들이 상대해야 했던 SK의 선발투수는 김광현이었다. 하필 류현진이 잘해도 너무 잘하는 바람에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지만, 김광현은 이날 경기 전까지 14승 4패 평균자책점 2.33 134탈삼진을 기록하며 투수 세 부문에서 2위에 올랐다. 시즌 중반 김성근 감독의 ‘애정’으로 인해 잠시 2군에 다녀오기도 했지만, 복귀 후에도 여전히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여기에 김광현은 2007년 데뷔 후 롯데를 상대로 그때까지 한 번의 패배도 없이 7연승을 달리고 있었다. 데뷔 첫 완봉승이 롯데전(2008년 6월 6일)이었던 좋은 추억도 있었다. 2010시즌에도 김광현은 이날 경기 전까지 4경기에 등판, 3승 무패 평균자책점 4.70을 기록 중이었다. 평균자책점이 다소 높기는 했지만 5월 11일 경기(3.1이닝 8실점)를 제외하면 롯데 타선을 잘 막아왔다.
8실점은 김광현의 데뷔 후 한 경기 최다 실점 기록이었다. 이후 롯데는 2014년 9월 10일 경기에서도 김광현에게 9점을 뽑으며 김광현의 개인 최다 실점 기록을 경신했다.
반면 롯데는 데뷔 3년 차로, 2010시즌 처음으로 1군 마운드에 오른 김수완이 선발투수로 나섰다. 물론 김수완 역시 이날 경기 전까지 8경기에서 3승 무패 평균자책점 3.32로 나쁘지 않은 기록을 보여주고 있었다. 주 무기인 포크볼을 앞세워 조정훈과 이명우, 이용훈 등이 이탈한 롯데의 하위 선발진을 이재곤과 함께 지켜주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페이스가 좋다고 해도 1위를 질주 중이던 SK의 짜임새 있는 라인업을 상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였다. 여기에 ‘골리앗’ 김광현과의 대결도 김수완에게 부담이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의 시선도 있었다.
마운드에 올라온 김수완은 1회 말 정근우와 박정권에게 연속 안타를 내주며 1사 1, 3루 위기를 맞이했다. 4번 박경완을 상대로 2스트라이크를 잡은 김수완은 바깥쪽 속구를 던졌다. 이때 1루 주자 박정권이 스타트를 끊었고, 포수 강민호의 송구가 2루를 향하는 사이 3루 주자 정근우가 더블스틸을 노리고 홈으로 질주했다. 2루수 조성환은 정근우를 잡기 위해 2루를 포기하고 앞으로 나와 재빠르게 홈으로 송구했다.
위기의 순간, 포수 강민호의 블로킹이 빛이 났다. 강민호의 왼발에 정근우의 왼손이 걸리며 홈플레이트를 터치하지 못했고, 바로 아웃을 잡지는 못했지만 재빨리 공을 다시 잡아 정근우를 태그하며 결국 더블스틸을 막아냈다. 김수완은 연속 4사구로 만루 위기를 맞이했지만 6번 김강민을 2루 땅볼로 처리하며 대량실점 위기를 탈출했다. 이후 김수완은 4회까지 매 이닝 안타를 내주고도 끝내 실점으로는 연결시키지 않았다.
그 사이 홍성흔이 없는 롯데 타선은 1회 초 만루 찬스를 날리는 등 이번에도 김광현에게 틀어 막힐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침묵하던 롯데는 5회 한 이닝에 집중력을 발휘했다. 선두타자 문규현의 안타와 상대 폭투로 롯데는 무사 2루 찬스를 만들었다. 이어 김주찬의 기습번트 때 김광현의 악송구가 나오면서 문규현이 홈을 밟았다. 먼저 한 점을 얻은 롯데는 2번 황재균의 희생번트로 다시 득점권에 주자를 내보냈다. 여기서 조성환과 이대호의 백투백 홈런이 터지면서 롯데는 5회에만 4득점을 올렸다. 특히 이전까지 38홈런을 때려내는 동안 SK전에서 단 하나의 홈런도 쳐내지 못했던 이대호는 이 홈런으로 2010시즌 전 구단 상대 홈런을 완성했다.
이후로도 김수완은 SK 타선을 무실점으로 막아내면서 분위기를 가져왔다. 불안한 수비로 많은 비난을 받았던 롯데 야수들도 이날만큼은 김수완의 1등 도우미였다. 2회에는 2루수 조성환이 다이빙 캐치로 나주환의 안타를 지웠고, 6회에는 중견수 전준우가 박경완의 까다로운 타구를 잘 처리했다. 8회 말 수비에서는 1루수 박종윤이 자칫 옆으로 빠져나갈 수도 있던 조동화의 땅볼 타구를 잘 처리해 김수완의 어깨를 가볍게 했다. 롯데는 9회 초 김주찬의 좌중간 홈런으로 스코어를 5대 0까지 만들었다.
5회부터 8회까지 12타자를 모두 범타로 돌려세운 김수완은 9회 완봉 도전을 위해 마운드에 올랐다. 박정권과 박경완은 연달아 뜬공으로 처리한 김수완은 대타 박정환마저 중견수 플라이로 잡아내면서 27번째 아웃카운트를 기록했다. 3년 차 김수완의 데뷔 첫 완봉승이었다. 12일 전이었던 8월 5일 두산전에서 강우콜드 완봉승을 노렸으나 비가 그치면서 기록이 무산됐던 김수완은 결국 자신의 힘으로 9이닝 완봉승을 달성했다. 111구를 던진 김수완은 삼진은 1개에 불과했으나 경기 초반을 제외하면 SK의 공격을 모두 산발타로 막아내며 실점하지 않을 수 있었다.
김수완의 완봉승을 앞세운 롯데는 천적이었던 SK를 상대로 3연전을 모두 가져오는 기적을 만들었다. 이어 두산과의 3연전도 모두 가져오면서 5위 KIA와의 승차를 3.5경기에서 7.5경기 차까지 벌렸다. 두산 3연전 마지막 날이었던 8월 22일 다시 선발로 등판한 김수완은 6이닝 5탈삼진 2실점을 기록하면서 6연승의 시작과 끝을 책임졌다. 데뷔 후 5연승을 질주하면서 평균자책점을 2.72까지 낮춘 김수완은 신인왕 경쟁에서 양의지(당시 두산) 다음의 2위 경쟁 그룹에서도 치고 나가는 것으로 보였다.
비록 김수완은 시즌 막판 상대 전력 분석과 체력 저하로 인해 전력에서 이탈했지만, 김수완이 벌어준 소중한 2승을 앞세운 롯데는 결국 4위 자리를 유지하며 3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을 확정했다. 제리 로이스터 감독 부임 이후 ‘쓸 선수만 쓴다’는 비판을 받았던 롯데지만 2010시즌에는 김수완을 비롯해 전준우, 이재곤, 김사율, 문규현, 정훈 등 퓨처스리그에서 좋은 모습을 보였던 선수들을 1군에 콜업, 쏠쏠한 결과물을 얻어냈다. 여기에 ‘조-대-홍-갈’(조성환-이대호-홍성흔-카림 가르시아) 중심타선이 롯데 역사상 최고의 화력을 쏟아내면서 2010년 롯데는 팬들의 기억에 강렬하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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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공작소 양철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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