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디 번즈, 롯데 자이언츠
내야수, 우투우타, 187.9cm, 92.9kg, 1990년 8월 7일생
[야구공작소 임선규] 지난 1월 8일, 롯데 자이언츠는 내야수 앤디 번즈와 총액 65만 달러에 계약을 체결했음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3인 외국인 체제가 도입된 이후로 타자 자리에 짐 아두치와 저스틴 맥스웰 같은 외야수들을 선발해왔던 롯데의 기존 기조에도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이러한 노선 선회의 배경에는 군복무를 마친 외야수 전준우의 복귀와 내야수 황재균의 이탈을 위시한 팀 사정의 변화가 있었다.
이렇게 한국 땅을 밟게 된 번즈는 근래 들어 KBO리그를 찾았던 에릭 테임즈, 윌린 로사리오, 잭 한나한 같은 선수들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지명도가 떨어지는 편이다. 과연 그는 누구이며, 롯데는 그에게서 어떤 종류의 활약을 기대할 수 있을까.
배경
고등학교 시절의 앤디 번즈는 근 10년간 등장한 최고의 고등학생 유망주라는 찬사를 받았을 정도의, 콜로라도 주를 대표하는 특급 유망주였다. 곧장 드래프트에 참가하더라도 2라운드까지는 노려볼 수 있을 재능이라는 것이 당시의 평가였다. 그러나 명문 켄터키 대학에서 입학 허가를 받아낸 번즈의 우선순위는 프로 무대에 있지 않았다. 번즈는 구단들에게 1라운더급의 계약금을 제시하지 않으면 대학 진학을 선택하겠다고 엄포를 놓았고, 이에 구단들의 관심은 급속도로 식어버렸다. 결국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참여한 2008년 드래프트에서 번즈는 25라운드 767픽이라는 낮은 순위로 호명되었다. 이때만 해도 스카우트들은 번즈가 대학을 마치는 3년 뒤에는 유력한 1라운드 후보가 되어 돌아올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었다.
하지만 대학 진학은 번즈에게 치명적인 악수가 되고 말았다. 일단, 번즈는 대학에서의 첫 2년 동안 평범한 성적을 올리는 데 그쳤다. 선수로서의 평가도 고등학교 시절에 비하면 약간이지만 하락한 모습이었다. 진짜 악재는 3학년 진급을 앞두고 찾아왔다. 켄터키 대학이 드래프트에 참가했다가 계약을 거부하고 팀으로 복귀한 제임스 팩스턴의 장학금을 마련하기 위해 번즈에게 배정되었던 장학금을 삭감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에 번즈는 3학년 시즌 돌입을 2주 앞두고 애리조나 대학으로 전학한다는 예상외의 결단을 내렸다. 이는 결국 드래프트 직전인 3학년 시즌을 전학 관련 규정에 따라 한 경기도 나서지 못한 채 날려버리는 최악의 결과로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다소 부진했던 1~2학년 동안에도 여전히 브래드 밀러, 조 패닉, 닉 아메드, 마커스 세미엔 등과 함께 최상위권의 유격수 자원으로 분류된 번즈였지만, 이 1년 동안의 공백으로 인해 2011년 드래프트에서는 11라운드 349픽까지 순위가 곤두박질치고 말았다.
토론토 블루제이스에 지명되어 프로 생활을 시작한 이후로는 한동안 순탄한 행보가 이어졌다. 2012년에는 하위 싱글 A에서 9개의 홈런과15개의 도루, 0.815의 OPS를 기록하면서 프로에서의 첫 풀타임 시즌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고, 2013년 전반기에는 상위 싱글 A에서 64경기에 나서서 .327/.383/.524 8홈런 21도루를 기록하며 최고의 시절을 보냈다. 리그 올스타에도 선정되었고, 팀내 유망주 순위도 20위 이내로 끌어올렸다. 이후 더블 A에서 2년여를 지체한 번즈는 2015년 5월부터 마이너리그의 마지막 관문인 트리플 A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처음 경험하는 트리플 A 무대에서 .293/.351/.372의 나쁘지 않은 성적을 거둔 번즈였지만, 시즌 종료 후에는 토론토의 40인 로스터에 이름을 올리지 못하면서 룰5 드래프트의 유력한 지명 후보 중 하나로 거론되기도 했다.
다음해인 2016년, 번즈는 스프링 캠프에서 팀내 최다인 25경기에 출전하면서 .286/.375/.500의 준수한 활약을 펼쳤다. 그리고 이 당시 심어주었던 좋은 인상에 힘입어 5월 6일자로 생애 최초의 빅리그 승격을 경험하게 되었다. 첫 체류는 고작 10일 남짓이었지만, 이후로도 번즈는 남은 2016년 동안 3차례나 빅리그와 트리플 A를 오갔다. 물론 빅리그에서의 활약은 미미한 수준이었고, 설상가상으로 트리플 A에서의 성적마저 .230/.285/.352로 엉망이 되어 있었다. 시즌이 끝난 뒤 번즈는 다시 한 번 토론토의 40인 로스터에서 제외되었고, 결국 롯데 자이언츠와 계약을 맺으면서 KBO리그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게 되었다.
<앤디 번즈 메이저리그 & 마이너리그 기록>
스카우팅 리포트
아마추어 시절과 마이너리그 시절, 번즈의 가장 대표적인 강점은 다재다능함이었다. 이는 타격과 수비 모두에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타석에서의 번즈는 파워와 스피드를 겸비한 선수였다. 번즈의 마이너리그 통산 기록인 55홈런과 87도루는 600타석으로 환산했을 때 약 14개의 홈런과 22개의 도루에 대응하는 성적이다. 스카우트들 또한 비슷한 평가를 내렸다. 베이스볼 아메리카가 2013년 발표했던 ‘향후 20-20을 기록할 수 있는 호타준족 유망주’들의 명단에서 번즈는 11번째로 모습을 비추었다.
번즈의 다재다능함은 기복 없는 경기력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번즈는 전반기와 후반기 사이, 그리고 홈 경기와 원정 경기 사이에 별다른 성적 차가 나타나지 않는 선수다. 2016년에는 한술 더 떠서 좌투수와 우투수를 상대로도 거의 동일한 OPS를 기록하기까지 했다(vs LHP 0.643, vs RHP 0.633). 이는 번즈가 그만큼 약점이 적은, 균형 잡힌 타격을 보유한 선수라는 뜻이다.
수비수로서의 번즈는 한층 더 다재다능하다. 고등학교와 대학교 시절에는 주로 유격수로 활약했지만, 이후 프로 무대에서는 중견수와 포수를 제외한 내ㆍ외야의 모든 포지션을 넘나들며 경기에 나섰다. 다만, 각 포지션에서 선보인 수비력 자체는 그리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수비수로서의 본능적인 자질과 송구 능력이 탁월한 편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유격수보다는 2루수나 3루수가 어울린다는 평을 받았던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특별한 약점 없이 다재다능하다는 번즈의 장점은 상위 리그로 올라가면서 ‘뚜렷한 장점이 없다’는 단점으로 뒤바뀌고 말았다. 더블 A로 승격된 2014년부터의 성적은 이를 잘 보여준다.
가장 큰 문제는 장타력의 실종이었다. 싱글 A까지만 해도 0.150 이상의 순장타율(ISO)을 바탕으로 4할대 후반에서 5할대 초반의 장타율을 기록했던 번즈는, 더블 A 무대를 밟은 이후로 장타와 관련된 모든 지표가 급격하게 감소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트리플 A에서 활약한 2015년에는 리그 7위에 해당하는 0.293의 타율을 기록하고도 0.372의 형편없는 장타율을 남기면서 전형적인 ‘똑딱이’ 타자로까지 전락하고 말았다. 스카우트들의 평가도 어느새 “공을 띄우는 방법을 모르는 것 같다”는 혹평으로 뒤바뀌어 있었다.
<트리플A에서 사라진 번즈의 장타력>
잃어버린 장타율을 회복하기 위해 변화를 모색했던 지난해, 번즈는 실제로 어느 정도의 장타력을 되찾는 데 성공했다(순장타율 0.079 -> 0.122). 하지만 타격 전반을 놓고 보면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훨씬 많았다. 타율은 0.293에서 0.230으로 급격하게 떨어졌고, 반대로 삼진 비율은 13.1%에서 18.1%까지 급등해버렸다.
전망
냉정하게 근래의 성적만을 놓고 보면, 번즈는 매력적인 외국인 선수와는 거리가 있는 편이다. 마지막으로 장타력과 빠른 발을 겸비했다는 평가를 들었던 것은 무려 4년 전인 싱글 A 시절의 일이고, 더블 A에서부터는 애매한 장타력과 애매한 스피드를 선보이면서 ‘장점 없는 선수’로 요약될 만한 기록들을 남겼다. 나름의 완성도를 갖춘 마이너리그 투수들이 등장하는 최초의 단계가 바로 더블 A라는 점에서 번즈의 하락세는 더더욱 부정적인 인상을 준다.
번즈가 빅리그에 어필할 수 있었던 유일한 가치인 멀티 포지션 능력 또한 KBO리그의 구단들이 외국인 타자에게 바라는 덕목과는 거리가 멀다. 일반적으로 KBO리그의 외국인 타자들은 중심 타순에 배치되어 타선의 파괴력을 끌어올리는 든든한 해결사의 역할을 수행한다. 지난 몇 년 사이에도 멀티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헥터 고메즈, 야마이코 나바로, 아롬 발디리스 등의 선수들이 한국을 찾았지만, 대부분은 시즌 내내 고정된 한 개의 포지션에서만 기용되었다. 번즈 역시 멀티 포지션을 오가면서 활약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그렇다고 번즈의 성공이 요원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KBO리그와 메이저리그는 엄연히 다른 리그이기 때문이다. 뚜렷한 장점이 없어 메이저리그에서 실패를 겪었던 외국인 선수들이 KBO리그에서 ‘단점이 없는’ 선수로 변모하여 훌륭한 활약을 펼치는 사례를 우리는 이미 여러 차례 목격해왔다. SK 와이번스의 메릴 켈리와 NC 다이노스의 에릭 해커, 전 롯데 자이언츠 소속의 짐 아두치가 모두 이러한 경우에 해당한다. ‘단점 없는 타자’로서의 옛 위상을 회복할 수 있다면, 번즈에게도 승산은 충분하다.
롯데 자이언츠는 이번에도 대중이 선호하는 화려한 이름값의 선수 대신 무명의 선수를 선택했다. 영입에 힘을 실어준 것은 다름아닌 롯데의 해외 스카우트 코치 라이언 사도스키였다. 뛰어난 안목을 자랑하는 사도스키의 개입은 번즈의 전망을 한결 희망적으로 만들어준다. 과연 사도스키의 ‘마법’은 또 한 번 실현될 수 있을까.
출처: Baseball America, Baseball-Reference, Fangraphs
(일러스트=야구공작소 디자인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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