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출처: 텍사스 레인저스 공식 트위터)
*들어가기 앞서, 2021년 성적은 한국시간으로 5월 25일 화요일이 기준입니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잠시 우리의 곁을 떠났던 메이저리그가 돌아왔고 우여곡절 끝에 60경기로 단축된 2020년 시즌이 시작됐다. 그러나 그간 메이저리그와 쭉 함께했던 마이너리그는 열리지 않았다. 유망주들이 뛰어놀아야 할 무대가 사라진 것이다. 그러면서 작년 단축시즌은 지난 몇 년과 비교해서 정말 많은 신인 선수들이 짧은 시간 내에 데뷔한 색다른 시즌이었다.
표 1. 지난 4년간 신인 데뷔 & 경기수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밟은 메이저리그 무대가 누군가에게는 마이너스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의 키브라이언 헤이스나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이안 앤더슨처럼 가지고 있는 잠재력을 마음껏 뽐낸 선수도 여럿 있었다. 특히, 8월 말에 데뷔한 탬파베이 레이스의 랜디 아로자레나는 정규 시즌에서의 좋은 활약과 함께 포스트시즌에서 말도 안 되는 퍼포먼스(.377 .442 .831 홈런 10개)를 뽐내며 메이저리그 역사에 한 획을 긋기도 했다.
아로자레나, 헤이스와 같이 싹수를 보인 루키들은 지난해 활약을 토대로 2021시즌 신인왕 유력 후보로 떠올랐다. 하지만 매년 의외의 인물이 등장하며 예상과는 다른 방향으로 진행됐던 신인왕 레이스의 특성은 올해도 이어졌고, 루키라는 수식어를 붙이기에는 다소 어색한 93년생 동갑내기가 현재 많은 메이저리그 팬들을 놀라게 하고 있다. 텍사스 레인저스의 아돌리스 가르시아,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예르민 메르세데스가 그 주인공이다.
포기하지 않는 자에겐 기회가 찾아오리라
(사진출처: 텍사스 레인저스 공식 트위터)
KBO 팬들에게는 일면식이 있는 아도니스 가르시아의 동생인 아돌리스 가르시아는 형과 마찬가지로 쿠바를 떠나 미국으로 무대를 옮겼다. 2017년 2월에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 마이너리그 계약(1년 250만 달러)을 맺고 총 3시즌(마이너리그)을 보낸 가르시아는 꾸준하게 두 자릿수 홈런을 기록하며 자신의 강점을 어필했다.
하지만 가르시아의 전반적인 타격 생산력은 데뷔 연도가 고점인 상태로 매년 떨어졌다. 더불어 공격적인 스윙에서 비롯되는 많은 삼진과 좋지 못한 선구안은 개선되지 않았고 약점만 계속해서 부각되는 상황을 마주했다. 이런 가르시아가 이미 확실한 주전급 선수들이 자리 잡고 있는 세인트루이스의 외야를 뚫는다는 건 그저 꿈같은 일이었다. 그렇게 가르시아는 2019년 12월 중순에 텍사스 레인저스로 트레이드됐다(지명할당 → 현금 트레이드).
강점과 약점이 명확했던 가르시아에 대해 아직 긁어볼 여지가 남아있다고 판단한 텍사스는 우선적으로 가르시아에게 타석에서 스트라이크 존을 전보다 좁힐 것을 주문했다. 또한, 불필요한 움직임을 줄임과 동시에 좀 더 콤팩트한 스윙을 만들기 위해서 타격폼도 함께 교정했다. 2020년 스프링트레이닝 연습경기에서 곧바로 성과(.304 .320 .696 홈런 3개)가 드러나자 가르시아에 대한 기대감이 조금씩 높아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코로나라는 변수가 가르시아를 괴롭혔고 또다시 엇나간 가르시아의 톱니바퀴는 쉽사리 제자리로 돌아가지 못했다.
2021년 2월 10일, 텍사스 레인저스는 1년 200만 달러로 영입한 마이크 폴티네비치의 자리를 만들기 위해 가르시아를 지명할당 처리했다. 어떠한 팀도 클레임을 걸지 않으면서 초청선수 신분으로 팀에 남게 된 가르시아는 올해 스프링트레이닝 연습경기에서 작년보다 훨씬 뛰어난 성적을 남겼다(.387 .400 .806 홈런 3개). 또한, 윌리 칼훈과 크리스(Khris) 데이비스가 부상으로 오프닝 로스터 합류가 힘들 거 같다는 소식까지 들려왔다.
여러 상황이 잘 맞물리면서 드디어 가르시아에게 기회가 주어지는 듯싶었다. 하지만 텍사스는 투수 14인, 야수 12인으로 26인 로스터를 꾸렸고, 가르시아에게 주어진 건 메이저리그행 티켓이 아닌 대체 훈련지와 택시 스쿼드 티켓이었다. 다시금 마냥 기다려야만 하는 상황에 놓인 가르시아였지만 게임에 대한 열정과 성실함이 남달랐던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2021년 4월 13일, 로날드 구스만이 무릎 수술로 시즌 아웃 판정을 받으면서 가르시아에게 황금 같은 기회가 찾아왔다. 가르시아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고 현재 진행 중인 광란의 5월(.329 .367 .671 홈런 9개)과 함께 팀과 개인, 모두가 흡족할 만한 성적을 올해 찍어내고 있다(.291 .329 .603 홈런 14개).
(사진출처: 시카고 화이트삭스 공식 트위터)
2011년 3월에 국제계약을 통해서 워싱턴 내셔널스에 입단한 예르민 메르세데스는 루키리그(도미니카 서머리그)에서 총 3시즌을 뛰었다. 이 기간 동안 메르세데스는 매년 평균 이상의 성적을 기록했지만, 워싱턴은 당시 메르세데스가 보여준 성실하지 못한 태도와 다소 과한 듯한 자신감을 지적했다. 결국, 메르세데스는 2013년 시즌이 끝나고 팀에서 방출되었다.
워싱턴에서 방출된 이후 독립리그에서 한 시즌을 뛰었던 메르세데스는 호성적을 기록하며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레이더망에 들었고 다시 마이너리그로 복귀했다. 그곳에서도 총 3시즌을 소화하며 더블A까지 밟은 메르세데스는 타격에 있어서는 매년 군더더기 없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워싱턴 시절과 마찬가지로 태도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었다. 이와 함께 그를 항상 뒤따라왔던 ‘불확실한 수비 포지션’이라는 문구도 조명받기 시작했다. 메르세데스가 가지고 있는 장점보다 단점이 더 크다고 생각한 볼티모어는 끝내 메르세데스를 포기했다. 그렇게 메르세데스는 룰5 드래프트를 통해서 다시 한번 팀을 옮겼다.
메르세데스를 둘러싼 몇 개의 물음표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던 화이트삭스는 볼티모어와는 반대로 단점보다는 장점이 더 큰, 훌륭한 재능을 가진 선수라고 생각했고, 옆에서 케어만 잘해준다면 충분히 그 재능을 꽃피울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다. 화이트삭스의 세심한 관리 속에서 올바른 습관과 루틴의 중요성을 깨달은 메르세데스는 조금씩 성숙해졌다. 성적 역시 상승곡선을 그리며 메르세데스는 꾸준함과 임팩트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
트리플A(2019년)에서 3할 타율과 6할 장타율을 나란히 찍은 메르세데스는 다음 해 스프링트레이닝에서 .364 .417 .955(홈런 4개)를 기록했고 하루빨리 본인을 메이저리그로 올려 달라며 무력시위를 했다. 하지만 포수와 지명타자 자리에 여유가 없었던 화이트삭스는 메르세데스를 외면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도 메르세데스는 멀찍이 떨어져서 메이저리그 무대를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간절한 이에겐 반드시 기회가 찾아오는 법. 팀의 중심타자인 일로이 히메네스가 부상으로 인해 장기이탈이 확정되자 화이트삭스는 메르세데스를 2021년 오프닝 로스터에 합류시켰다. 물론, 히메네스의 부상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제이크 램을 추가 영입한 화이트삭스였기 때문에 메르세데스에게 온전한 플레잉 타임이 보장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메르세데스는 ‘개막 첫 8연타석 안타’라는 이제껏 메이저리그 역사에 단 한 번도 없었던 기록을 달성하며 역사를 새로 썼고,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뽐내며 이제는 어엿한 한 팀의 주전급 선수이자 핵심 타자가 됐다(.353 .402 .533 홈런 6개).
각자의 생존 방식
‘힘과 스피드의 가르시아’
2019년을 기준으로 베이스볼 아메리카가 평가한 아돌리스 가르시아의 강점은 다음과 같았다.
“플러스 등급의 로-파워(순수 파워)와 스피드를 가지고 있고 더블 플러스 등급의 어깨도 보유. 우익수로 뛴다는 가정하에 수비는 20-80스케일을 기준으로 60점” – 베이스볼 아메리카 –
이렇듯 가르시아는 과거부터 파워, 스피드(주력), 수비(어깨)에 있어서 두각을 드러낸 타자였다. 그리고 이는 현재 진행형이다.
2021시즌에 들어가기 앞서 코칭스태프와 함께 스윙을 한 번 더 점검한 가르시아는 기존에 뒷발과 일직선상에 있었던 앞발을 뒤로 뺐다. 그리고 앞발을 거의 들지 않는 토탭(toe-tap) 동작에서 레그킥으로 한차례 변화를 더 줬다.
2스트라이크 상황에 들어가면 다시 토탭에 가깝게 앞발의 높이가 낮아지긴 하지만 레그킥을 장착하면서 체중이동이 전보다 원활해진 가르시아는 올해 질 좋은 타구를 마음껏 양산해내고 있다.
표2. 올시즌 가르시아와 리그 평균 스탯 비교
위 표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현재 가르시아는 타자 입장에서 최상의 결과물을 도출해낼 수 있는 배럴 타구를 생각해내는 데 있어 대단히 뛰어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또한, 근 몇 년 동안 메이저리그를 장악했던 키워드인 타구속도와 강한 타구 비율도 아주 훌륭하다.
이 밖에도 앞서 말한 것처럼 가르시아는 본인의 빠른 발을 메이저리그에서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마이너리그에서 매년 두 자릿수 도루를 기록했던 가르시아의 올 시즌 스프린트 스피드는 초당 28.1피트로 이는 리그 평균(27피트)보다 뛰어난 수치다. 그리고 이렇게 인상적인 가르시아의 주력은 좋은 수비로 고스란히 연결됐다.
스탯캐스트에서 제공하는 Outfielder Jump는 외야수가 타구를 처리하는 시간을 3초로 잡고, 이 3초를 다음과 같이 3파트로 나눴다.
Reaction: 0초 ~ 1.5초 → 처음 타구 판단
Burst: 1.5초 ~ 3초 → 타구 판단 이후 남은 1.5초 동안 타구를 쫓아가는 거리
Route: 해당 외야수가 3초 동안 이동한 전체 거리와 정확한 낙구 지점까지의 직선(direct) 거리 비교 → 얼마나 효율적으로 움직였는가
이러한 3가지 분류 속에서 가르시아는 첫 타구 판단에 있어 좋은 수치를 기록했다(Reaction +0.7). 비록 타구를 쫓아가는 데 다소 비효율적인 루트를 보였으나(Route -0.2) 앞서 이야기한 빠른 발을 이용해서 이를 커버했다(Burst +2).
3파트로 구성된 Outfielder Jump에서 합격점을 받은 가르시아는 지금까지 리그 평균 외야수와 비교해서 2.4피트를 더 커버하고 있고, 이러한 넓은 수비 범위는 곧장 좋은 수비 지표로 이어졌다(OAA +4, DRS +5).
‘컨택의 메르세데스’
가르시아와 달리 예르민 메르세데스는 주루와 수비에 있어서 평균 정도의 성적도 기대할 수 없는 선수다. 하지만 타격, 다시 말해 컨택이라는 카테고리 내에서는 가르시아보다 훨씬 높은 위치에 자리하고 있다.
180cm(5피트 11인치), 107kg(235파운드)라는 메르세데스의 프로필을 봤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마 H로 시작하는 한 단어를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메르세데스는 홈런보다는 컨택이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리는 타자다.
2021년 5월 25일(한국시간)을 기준으로 메르세데스는 현재 .353의 고타율을 뽐내고 있다. 이는 올시즌 데뷔한 루키들과 비교해서 압도적인 수치이고 메이저리그 전체 타자들과 비교해도 세 손가락 안에 드는 타율이다(1위 닉 카스테야노스 .356, 2위 제시 윙커 .355). 이 밖에도 메르세데스는 리그 평균(26.8%)보다 낮은 헛스윙률(20.7%)을 동반하면서 최대한 삼진을 억제하고 있고, 95마일이상의 패스트볼을 잘 공략함(.353 .421 .412)과 동시에 메이저리그 변화구에도 흔들리지 않고 있다(.289 .341 .553). 이렇게 메르세데스가 남들과는 다른, 신인 답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데에는 한 가지 특출난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2018년 하이A, 2019년 더블A에서 메르세데스와 함께했던 찰리 포 타격코치는 메르세데스에 대해서 이런 말을 남겼다.
“상황에 적응하고 조정하는 능력만큼은 견줄 자가 없는 그런 선수입니다. 그리고 그는 방망이에 공을 갖다 맞히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면서 방법을 찾아 나설 겁니다” – 찰리 포 –
마이너리그 시절부터 레그킥과 함께 한껏 움츠리는 스윙 자세를 취했던 메르세데스는 2스트라이크 상황이 되면 항상 본인의 스윙 자세에 변화를 줬다. 2스트라이크에 들어선 순간은 최대한 공을 맞히는 것에 집중하려고 했던 메르세데스는 기존 스윙 자세의 핵심이었던 레그킥 동작을 과감하게 버렸다. 그리고 스트라이드 동작 없이 앞발을 땅에 (거의) 고정하는 방식의 타격 자세를 취했다. 이는 올해도 마찬가지였다.
*한 가지 참고 사항으로 2스트라이크 상황이 아니더라도 큰 거 한방이 아닌 안타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판단되면 메르세데스는 레그킥을 버렸다.
파워에 있어서 손해 보는 부분이 있더라도 볼카운트, 혹은 처한 상황에 따라 전혀 다른 접근 방식을 취한 데는 앞서 말한 최대한 공을 맞히려는데 집중했던 메르세데스의 의도가 담겨 있었다. 또한, 타고난 탄력과 배트 컨트롤로 손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메르세데스의 자신감이 반영된 결과였다.
서로 다른 2가지의 접근 방식을 통해서 현재 메르세데스는 리그에서 두 번째로 많은 아웃존 안타를 뽑아내고 있다. 여기서 더 놀라운 점은 메르세데스가 아웃존 스윙률이 높은 보통의 타자들에게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삼진 비율(16.5%)과 10.4%라는 리그 평균보다 낮은 스윙 스트라이크 비율을 찍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표3. 올해 메르세데스와 리그 평균 비교(순위=최소 150타석을 소화한 140명 타자)
5월 25일(한국시간)을 기준으로 퍼포먼스와 임팩트를 모두 잡고 있는 아돌리스 가르시아와 예르민 메르세데스가 아메리칸 리그 신인왕 레이스에서 가장 앞서 나가 있다. 하지만 아직 60경기도 치루지 않은 시점에서 안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실제로 랜디 아로자레나(TBR)가 최근 10경기에서 .357 .438 .643을 기록하며 뒤를 바짝 쫓아오고 있고, 비교적 꾸준하게 좋은 세부지표를 기록하고 있는 데인 더닝(TEX)도 숨을 죽이며 신인왕을 향해 접근하고 있다. 또한 불펜과 선발을 오가면서 기대감을 높이고 있는 마이클 코펙(CHW)의 존재도 무시할 수 없고, 알렉스 키릴로프(MIN)나 제러드 켈닉(SEA)도 여러 매체로부터 받았던 평가를 생각하면 언제 신인왕 레이스에 합류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선수들이다.
과거, 장점보다는 약점에 더 포커스가 맞춰졌던 가르시아와 메르세데스에겐 약점을 보완할 시간이 필요하긴 했었다. 하지만 이 둘에게 가장 필요했던 건 메이저리그라는 꿈의 무대로 나아갈 수 있는 터널이었고, 본격적으로 기회를 받기 시작한 올해 이 둘은 자신들의 이름을 널리 알리고 있다. 두 명의 93년생 올드 루키들의 끝이 어떻게 마무리가 될지 벌써부터 굉장히 기대된다.
참고: The Athletics, Fangraphs, Baseball-Reference, Baseball Savant, Baseball America, MLB.com
야구공작소 이한규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권승환, 이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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