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 성적- 정규시즌 80승 1무 63패 (5위, 와일드카드 탈락)
지난 시즌 키움은 젊은 선수단을 바탕으로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했다. 비록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김하성, 이정후, 김혜성, 최원태 등의 선수가 주축이 된 젊은 팀의 미래는 한없이 밝아 보였다. 지난겨울, 장정석 감독이 물러나고 손혁 감독이 취임하는 과정에서 잡음이 있었지만 당시에는 사소한 갈등 정도로 생각했다. 그보다는 코치 시절 투수 조련가로 호평받은 손혁 감독의 취임에 기대를 거는 시선도 있었다.
샌즈의 이탈을 빼면, 선수단도 순조롭게 꾸려나갔다. 이지영과 오주원과 빠르게 협상해 내부 FA 단속에 성공했고, 트레이드로 박준태를 영입해 외야 자원도 보충했다. 마침 SK와 두산의 원투펀치가 모두 이탈하면서, 키움은 강력한 2020시즌 우승후보로 부상했다.
하지만 시즌은 생각대로 풀리지 않았다. 브리검, 박병호 등 투타에서 부상자가 속출했고, 외국인 타자는 침묵했다. 외풍까지 불어 닥쳤다. 손혁 감독이 자진 사퇴를 선언했는데, 사실상 경질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이 과정에서 허민 이사장의 경기 개입 의혹까지 불거졌다. 이런 어려움 속에도 키움은 시즌 막판까지 순위 싸움을 펼쳤다. 그러나 숙명처럼 따라붙는 역경에 결국 영웅도 무너졌다. 9월 말에는 줄곧 지켜오던 2위를 내줬고,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5위까지 추락했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와일드카드전에서 패하며, 가을야구도 단 한 경기 만에 마감했다.
외국인과 박병호의 동반 부진, 구멍 난 타선
키움의 시즌은 샌즈를 놓친 순간부터 꼬였다. 샌즈의 대체 외인은 단돈 35만 달러의 모터였다. 장타력을 메우기보단 송성문이 입대하며 얇아진 3루 자원을 채우려는 의도로 보였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부실한 모터의 커리어는 우려를 샀다. 리그 정상급 타자였던 샌즈를 대체하기엔 부족하다는 평가가 다수였다.
시즌 개막 후, 우려는 현실이 됐다. 모터는 1할 타율에 허덕였을 뿐만 아니라 수비까지 흔들려 개막한지 단 10일 만에 2군으로 강등됐다. 2군에서 맹활약을 펼치며 돌아왔지만, 1군에선 여전히 허수아비였다. 결국 5월 30일, 인내심이 다한 키움은 모터의 방출을 결정했고, 모터는 누구보다 빠르게 리그에서 떠났다.
키움은 모터의 대체 외인으로 에디슨 러셀을 영입했다. 최근 기량이 하락하긴 했지만, 어린 나이와 빛나는 경력은 기대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시작은 희망찼다. 데뷔전에서 세 번이나 출루했고, 세 번째 경기에서는 홈런까지 쳐냈다. 이때까지만 해도 러셀의 연착륙은 당연해 보였다. 하지만 활약은 거기까지였다. 첫 홈런 이후 두 달 넘게 홈런을 쳐내지 못했다. 그렇다고 안타 생산력이나 출루 능력이 뛰어난 것도 아니었다. 수비도 기대 이하였다. 특히 유격수 자리에서는 여러 번 어이없는 실책을 범하면서 2루수로 고정됐다. 공수 모두 부진하자 시즌 말미에는 아예 벤치 자원으로 분류됐다.
설상가상으로 믿었던 박병호도 안 좋았다. 이번 시즌 박병호는 4번 타자로 자리 잡은 후, 가장 나쁜 성적을 기록했다. .220대의 타율을 기록했고, 삼진율도 30%에 육박할 정도로 상승했다. 고질적인 손목 통증으로 출장 횟수가 줄면서 홈런도 21개에 그쳤다. 외국인 타자가 실패한 상황에서, 박병호의 부진은 타선에 감당할 수 없는 구멍을 만들었다. 이정후의 커리어 하이와 박준태의 깜짝 활약이 있었지만, 구멍을 메우기엔 한참 부족했다. 결과적으로 키움은 팀 홈런 순위가 지난 시즌 4위에서 이번 시즌 8위까지 떨어졌고, 팀 득점도 1위에서 5위로 곤두박질쳤다.
모터, 러셀, 박병호 타격 성적
키움은 김하성, 이정후 등 토종 선수만으로 야수 WAR 4위에 올랐다. 준수한 외국인 타자만 있었어도 키움의 순위는 달라졌을 것이다.
이 대신 잇몸으로, 선발 줄부상 이겨낸 불펜의 분전
이번 시즌 키움은 선발 자원 전원이 부상자 명단에 한 번씩은 오르는 불운을 겪었다. 구속 상승으로 많은 기대를 모은 최원태는 시즌 초부터 부진과 부상으로 신음했고, 막판에는 아예 로테이션을 이탈했다. 이승호와 한현희도 부상으로 로테이션을 짧게나마 걸러야 했다. 지난 시즌 에이스 브리검은 시즌 초반부터 결장하며, 100이닝 남짓을 소화하는 데 그쳤다. 부상에서 돌아온 이후에도 긴 이닝을 던지지 못했다. 사실상 유일한 버팀목이었던 요키시도 어깨 부상으로 2~3차례 로테이션을 걸렀다. 이 때문에 키움은 순위 싸움이 한창이던 8월, 5일 중 3일을 대체 선발로 운영하는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이렇듯 선발진이 이닝 소화가 9위에 그치는 등 제 역할을 하지 못한 올해, 불펜이 투수진을 지탱했다. 조영건, 김재웅, 김태훈이 대체 선발과 불펜 데이 자원으로 활약하며 선발진의 빈자리를 메웠다. 필승조에서는 양현, 안우진, 조상우가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이들의 고른 활약으로 키움은 2년 연속 불펜 평균자책점 1위, 전체 평균자책점 2위에 오를 수 있었다.
핵심 선수- 이정후와 김하성 그리고 요키시
이정후와 김하성은 이번 시즌 키움의 버팀목이었다. 특히 이정후는 약점으로 지적받던 장타력을 크게 개선했다. 데뷔 이후 처음으로 두 자릿수 홈런을 때려냈고, 한 시즌 최다 2루타 신기록까지 세우며 완벽한 중장거리 타자로 발돋움했다. wRC+도 시즌 중반까지 160대를 유지할 정도로 놀라운 생산력을 보여줬다. 시즌 막판 부진이 길어지면서 성적이 많이 떨어졌지만, 다시 한번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냈다.
포스팅 자격을 앞둔 김하성에게 2020시즌은 매우 중요했다. 시즌 초반은 쉽지 않았다. 개막 후 5월 한달 간은 타격 성적이 .230/.370/.438, 4홈런에 그쳤다. 뛰어난 선구안으로 좋은 출루율을 보여줬지만, 유독 야수 정면 타구가 많이 나오면서 표면적인 성적이 좋지 못했다. 그러나 6월 곧바로 반등을 시작했다. 6월 이후 김하성은 .320/.403/.541로 자신의 능력을 증명했다. 데뷔 후 첫 30홈런 고지까지 밟으면서 30홈런-100타점-100득점을 기록한 두 번째 유격수가 됐다. 누상에서도 적극적인 움직임으로 23개의 도루를 기록해 20-20 클럽에도 가입했다. 이 과정에서 21연속 도루 성공이라는 진기록도 세웠다.
2, 3번에 나란히 배치된 두 선수의 화력은 대단했다. 김하성이 나가면, 이정후가 불러들였다.
투수진에선 브리검이 주춤한 사이, 요키시가 평균자책점 1위에 오르며 새로운 에이스로 떠올랐다. 요키시는 2년차 시즌을 맞아 KBO에 완벽히 적응한 모습을 보여줬다. 이번 시즌 요키시는 포심의 비율을 낮추고 투심의 비율을 늘렸다. 여기에 스트라이크 존에 더 공격적으로 공을 뿌리기 시작했다. 덕분에 9이닝당 볼넷이 1.79개에서 1.41개까지 줄었다. 인플레이 타구는 늘었지만, 문제가 되진 않았다.
요키시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KBO리그 타자 스타일에 적응하면서 공격적으로 투구할 수 있게 됐다고 이야기한 적 있다.
*괄호 안은 리그 순위
*인플레이 타구 비율: 73.9%(2019)->76.9%(2020) /Zone%: 44.6%(2019)->48.7%(2020)
이번에도 새로운 영웅이 나타날까
선수 유출은 키움에게 숙명과도 같았다. 목동 시절부터 수많은 선수들이 트레이드됐고, 잘하는 선수는 포스팅, FA로 팀을 떠났다. 하지만 영웅은 무너지지 않았다. 대체 불가로 보였던 강정호와 박병호가 떠났을 때도 김하성, 이정후 같은 새로운 스타들을 배출하며 이겨냈다.
하지만 김하성의 해외 진출이 확정적인 현재, 그 공백은 어느 때보다 커 보인다. 김하성은 지난 2년간 평균 WAR이 7이 넘는 선수다. 이보다 컸던 강정호의 공백도 최소화한 키움이지만, 이번에는 자원이 마땅치가 않다. 차기 유격수인 김혜성은 강정호나 김하성보다 공격력이 부족하다. 현실적으로 김하성의 공백을 지우려면, 평균 이상의 3루 자원도 필요하다. 그러나 현시점에서 눈에 띄는 새 얼굴이 없다. 전병우의 발전이나 김웅빈, 김병휘, 김휘집 등 어린 영웅들의 성장이 간절한 이유다.
현재로서는 박병호도 물음표다. 박병호도 어느덧 30대 중반으로 접어들었다. 이번 시즌 성적이 단순 부진이 아닌 나이에 따른 기량 하락의 결과일 수도 있다. 더군다나 박병호는 고질적인 손목 부상을 안고 있다. 해가 갈수록 결장도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만약 내년에도 이런 모습을 보인다면, 키움은 더 큰 어려움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키움의 2020시즌은 지독할 정도로 불운했다. 내적으로는 집단 부상과 외국인 타자 실패, 외적으로는 허민 이슈로 골머리를 앓았다. 하지만 올해 불운했다고 내년에도 불운한 것은 아니다. 사실 지금까지의 어두운 전망도 올해의 불운에서 기인한 부분이 크다. 만약 최원태, 박병호, 임병욱, 외국인 타자 등 제대로 가용하지 못한 전력이 정상화된다면 이번 역경도 아무 일 없다는 듯 지나갈 수 있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야구공작소 이승호 칼럼니스트
에디터=야구공작소 홍기훈
일러스트=야구공작소 김수연
기록 출처=스탯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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