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클랜드 애슬레틱스에게 포기란 없다

“컵스와 애스트로스의 리빌딩을 가능하게 해준 핵심적인 요인은 리빌딩 동안 선수들과 팬들을 잡아 둘 만한 재정적인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만약 우리가 5년짜리 리빌딩을 진행했다면, 3년차 정도에는 재정이 바닥났을 겁니다.”
(빌리 빈,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야구 운영 부사장)

[야구공작소 조우현] 리툴링(Retooling)은 ‘리빌딩(Rebuilding)’과 ‘윈 나우(Win Now)’의 중간 즈음에 위치하는 개념이다. 성적은 훌륭하지만 서비스 타임이 많이 남지 않은 선수를 가치가 최고점일 때 팔아 넘긴다는 점에서는 리빌딩에 가깝다. 하지만 그 빈자리를 빅리그 데뷔가 임박한 유망주들이나 다른 빅리거들로 대체하여 끊임없이 플레이오프에 도전한다는 점에서는 ‘윈 나우’와 비슷한 면도 있다. 유망주 시스템과 연봉 총액을 어느 정도 선에서 지켜내면서 메이저리그 팀의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장점을 보유한 반면, 리그를 호령하는 엘리트급 선수의 영입이나 특급 유망주의 수급이 어렵다는 단점도 존재한다.

 

리빌딩 대신 리툴링

많은 전문가들은 성적이 부진한 팀을 두고 가능한 한 빠르게 리빌딩을 선택하는 편이 최선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스몰마켓 팀들에게 리빌딩은 그리 가볍게 누를 수 있는 스위치가 아니다. 이 과정에서 그나마 보유하고 있던 팬베이스마저 상실할 위험이 적지 않은 데다가, 설령 성공적으로 리빌딩 과정을 마친다고 해도 그 상태를 오래 유지하기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일단 전면적인 리빌딩은 팀의 팬베이스를 약화시키기 쉽다. 예를 들어, 애슬레틱스의 연고지인 오클랜드의 인근에서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라는 역사와 전통의 컨텐더 팀이 꾸준히 활약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애슬레틱스가 리빌딩의 여파로 부진을 거듭하기 시작하면, 기존의 애슬래틱스 팬들 가운데 상당수는 부진에 빠진 애슬레틱스 대신 순항 중인 자이언츠로 응원팀을 옮기고 말 것이다. 그렇게 한번 마음이 떠난 팬들은 리빌딩이 성공리에 마무리된다고 해도 쉽게 돌아오지 않는다.

줄어든 펜베이스는 곧 팀의 수익 자체가 이전보다 감소했음을, 팀의 재정이 본래의 의도와는 다르게 오히려 어려워지게 되었음을 뜻한다. 여기에 전력 개편마저 수포로 돌아갈 경우, 그 팀은 재정과 전력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놓치면서 본격적인 암흑기로 접어들기 십상이다.

설령 팬베이스의 큰 손실 없이 리빌딩을 완수한다고 해도, 그 성공이 장기간 지속되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관중 수입과 중계권료 계약의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스몰마켓 팀들의 리빌딩은 어린 선수들이 연봉 협상에 돌입하면서 점차 페이롤이 상승하다가, 얼마 후 팀의 주축으로 발돋움한 그들이 단체로 FA 자격을 획득하면서 재정적인 한계를 맞닥뜨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캔자스시티 로열스는 치밀한 계획하에 최고의 유망주들을 동시에 끌어올리면서 두 차례의 월드시리즈 진출과 한 차례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이뤄냈지만, 그로부터 두 시즌도 버티지 못하고 또 한 번의 리셋을 고민할 정도의 거대한 위기를 마주하고 있다.

연고지 주위에 별다른 야구팀이 없는 로열스는 그나마 과감하게 리빌딩을 선택해볼 수 있는 팀이었다. 하지만 자이언츠가 이웃으로 떡하니 버티고 있는 애슬레틱스의 경우에는 사정이 사뭇 달랐다. 이들이 리빌딩이 아닌 리툴링을 선택한 것은 감당해야 하는 위험의 수준을 생각했을 때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결정이었다.

 

애슬레틱스의 리툴링

<올스타급 활약을 이어 나가고 있는 조시 도널드슨 (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스)>

애슬레틱스의 지난 두 시즌 동안의 리툴링은 결과적으로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대표적인 실책이 바로 조시 도널드슨의 트레이드이다. 트레이드가 발표되었을 당시만 해도, 팬들의 원망 한 구석에는 빌리 빈의 결정인 만큼 나름의 생각이 있지 않았겠냐는 믿음이 공존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트레이드는 의문의 여지가 없는 토론토 블루제이스의 완승으로 결론지어졌다. 도널드슨이 이전보다도 더 빼어난 활약을 펼쳐주고 있는 데 반해, 애슬레틱스가 받아온 선수들 중에서는 켄달 그레이브먼만이 그나마 제 역할을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 트레이드에서는 이러한 가시적인 성패 외에도 또 하나의 의문스러운 지점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리툴링을 선택한 팀이 즉시전력감 대신 높은 잠재력과 어린 나이의 최상위 유망주를 대가의 중심에 두고 트레이드를 강행했다는 점이다. 블루제이스 측의 메인 칩이었던 프랭클린 바레토는 트레이드 당시 겨우 쇼트 시즌 싱글 A에 도달한 유망주였고, 그가 마이너리그에 머무르는 동안 도널드슨의 공백을 메워줄 다른 전력들의 역량은 턱없이 부족했다.

변화의 필요성을 느낀 것일까? 이후의 트레이드에서 애슬레틱스는 근시일 내에 전력에 기여할 수 있는 선수들을 선택하며 일관성 있는 리툴링을 이어오고 있다. 다만 애슬레틱스의 리툴링은 로열스의 리툴링과는 조금 다른 성격을 띤다. 메이저리거 간의 1대1 트레이드를 중심으로 리툴링을 진행하고 있는 로열스와는 달리, 애슬레틱스는 가능한 한 많은 메이저리그급 선수들을 데려오는 데 그들의 목표를 두고 있다.

일례로, 2015 시즌 개막을 앞두고 성사시킨 트레이드에서는 FA까지 1년이 남은 제프 사마자를 내주며 크리스 배싯, 조시 페글리, 란헬 라벨로, 마커스 세미언까지 네 명의 선수들을 받아 왔다. 이들은 빅리그에서 한 자리를 꿰찰 만큼의 실력은 있지만, 최상위권과는 분명 거리가 있는 선수들이다. 벤 조브리스트를 내주면서는 빅리그 데뷔가 임박한 션 마네아와 이미 빅리그에 잠시 선을 보인 애런 브룩스를 데려왔다. 이듬해인 2016년에는 리치 힐과 조시 레딕을 보내는 대가로 마이너리그 과정을 대부분 마친 하렐 카튼, 프랭키 몬타스, 그랜트 홈즈를 영입해 왔다. 이들은 리그 최정상급의 유망주는 아니지만(BA 2016 미드 시즌 TOP 100기준 그랜트 홈즈 60위, 프랭키 몬타스 82위), 모두 이르면 2017 시즌 중반, 늦어도 2018 시즌 중에는 메이저리그에 데뷔할 수 있을 정도의 완성도를 갖춘 선수들이다.

 

독특한 FA 영입 전략

<커브볼로 팬들을 매료시킨 리치 힐 (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스)>

FA 영입 전략도 주목해볼 만하다. 대부분의 구단들은 보다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활약을 기대할 수 있는 젊은 선수들에게 높은 연봉과 긴 계약기간을 안겨주는 편이다. 애슬레틱스의 철학은 다르다. 젊은 선수에게 지나칠 정도의 금액을 퍼붓는 것보다 베테랑 선수와 저렴하고 짧은 계약을 맺는 편이 오히려 안정적이라는 것이다. 좋은 성적을 낼 경우에는 팀의 성적에도 보탬이 되고, 확실한 전력보강을 꾀하는 상위권 팀들에게 시즌 중 쏠쏠한 가격으로 팔아 넘길 수도 있다.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할 경우에도 최소한 리툴링으로 평균연령이 내려간 선수단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수행해줄 수 있으며, 계약기간이 짧기 때문에 팀에 안기는 부담이 그리 크지 않다.

시행착오도 있었다. 빌리 버틀러의 영입은 보다 전통적인 FA 영입의 관점에서 이루어진 계약이었다. 지난 2014년, 애슬레틱스는 커리어 로우를 기록하고 시장에 나온 28세의 버틀러에게 3년 3천만 달러에 이르는 계약을 선사하며 팀의 지명타자 자리를 맡겼다. 도널드슨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고심하고 있던 그들에게 젊은 나이로 반등의 여지가 충분해 보였던 버틀러의 존재는 매력적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버틀러의 영입은 팀의 전력에 전혀 보탬이 되지 않았다. 버틀러의 기량은 반등하는 일이 없었고, 클럽하우스의 베테랑으로서 보여준 모습도 대체로 만족스럽지 못했다.

2016 시즌을 앞두고 벌인 영입들의 양상은 다소 달랐다. 애슬레틱스는 36세의 베테랑들인 마무리 라이언 매드슨과 선발 리치 힐에게 각각 3년 2천 2백만 달러, 1년 6백만 달러의 계약을 안겨주었다. 2015 시즌의 가장 큰 아쉬움이었던 불펜과, 지나치게 연륜이 부족했던 선발진에 베테랑 자원을 보강하기 위한 움직임이었다. 이러한 애슬레틱스의 FA 영입 풍조는 이번 오프시즌에도 이어지고 있다. 팀의 가장 큰 약점인 외야수 자리에는 33세가 되는 맷 조이스와 36세의 라자이 데이비스를 데려왔으며, 그 외에도 산티아고 카시야와 같은 베테랑 선수와 계약하는 데 영입의 초점을 맞추고 있는 모습이다.

 

애슬레틱스의 큰 그림

그렇다면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일까. 최소 투자 최대 이윤의 효율적인 운영? 적당한 선수단과 적당한 연봉 총액 그리고 적당한 성적? 놀랍게도, 빌리 빈은 애슬레틱스의 목표가 언제나 ‘이기는 것’에 있다고 말한다. 같은 인터뷰에서 그는 이러한 발언을 입에 담았다.

“Sometimes good things happen. (가끔씩은 좋은 일이 생기기도 합니다.)”

이 조금은 무책임하게도 느껴지는 발언은, 그러나 한편으로는 야구의 본질과 매력을 압축적으로 관통하고 있는 발언이기도 하다. 프로야구에서는 매 시즌마다 무수한 예상 밖의 사건들이 일어난다. 시즌의 최종 우승자를 결정짓는 포스트시즌이 되면 이 ‘이변’의 빈도는 더욱 높아진다. 막대한 비용을 투자해서 강한 전력을 구축하는 것은 성공의 확률을 높여주지만, 그럼에도 거듭된 이변 탓에 우승의 행방은 예상치 못했던 참가자를 향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빌리 빈과 애슬레틱스는 이 지점에서 또 한 번 스몰마켓다운 창의적인 해결책을 도모하고 있다. 호화로운 로스터를 구축하여 한두 시즌에 올인하는 대신, 저렴하면서도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할 만한 경쟁력을 갖춘 선수들을 대량으로 확보하여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때’를

기다리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극단적인 뎁스 보강을 통해 부상과 부진 등의 변수에 다른 어떤 팀보다도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유기적인 팀으로 탈바꿈하겠다는 것이 이들의 승리 전략이다.

현재 애슬레틱스의 로스터와 팜에는 특급이라 하기에는 모자라지만 준수하다 하기에는 무리가 없는 재능의, 그러면서도 리스크는 비교적 적은 유망주들이 가득하다. 내년 시즌 중으로 빅리그 합류가 가능한 선발 자원만 14명에 달하고, 이들 중 몇몇은 불펜으로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자원들이다. 보유하고 있는 메이저리그급 포수만 무려 3명이며, 타선의 젊은 기대주들은 대부분이 멀티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다. 뎁스를 형성하는 선수의 수가 많은 만큼, 예측을 뛰어넘은 활약이나 성장세를 보이는 선수들의 수도 상당하다.

하렐 카튼은 전도유망한 유망주는 아니었지만, 메이저리그에 데뷔해서 29.1이닝 동안 2.15라는 준수한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안정적인 활약을 펼쳤다. 좋지 않은 수비력 탓에 저평가되었던 유망주 맥스 셜록은 견실한 타격을 앞세워 지난 1년 동안 무려 4단계의 마이너 리그를 통과했다. 라이언 둘은 기대 이상으로 듬직하게 불펜을 지켜주었고, 마커스 세미언은 공수 양면에서 일취월장하면서 30홈런 포텐셜의 유격수로 거듭났다. 데뷔까지 한참이 남은 어린 유망주들을 내주고 데려온 크리스 데이비스(Khris)는 무려 42개의 홈런을 때려내며 리그 수위권의 거포로 발돋움했고, 시즌 후반 콜업된 라이온 힐리는 기대를 훌쩍 뛰어넘는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다. 심지어 조시 도널드슨의 실패한 트레이드에서도 대가 중 하나였던 켄달 그레이브먼이 건강하게 한 시즌을 보내며 준수한 선발투수로 떠올랐다.

연봉 구성 또한 장기적으로나 단기적으로나 잘 개편되어 있는 모습이다. 현재 애슬레틱스의 연봉 총액은 7천만 달러대까지 내려온 상태이며, 가장 많은 연봉을 받는 선수인 라이언 매드슨의 연봉 역시 760만 달러에 불과하다. 동시에 이들은 FA를 통한 미래의 전력 이탈에도 효과적으로 대비하고 있다. 애슬레틱스의 유망주 데뷔는 확실한 계획 아래 여러 시즌에 걸쳐서 순차적으로 이루어져왔다. 이는 동시다발적 FA로 인한 연봉 총액 급상승과 강제 리빌딩 재개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

한편, 재정적인 측면에서는 나쁜 소식과 좋은 소식이 공존하는 상황이다. 올해를 기점으로 점차 수익 분배*로 들어오는 돈이 줄어들고, 머지않아 수익 분배를 한 푼도 받지 못하는 지경에 이른다는 사실은 분명 악재이다. 대신, 이전의 공동 구단주 체제에서 존 피셔 일인 구단주 체제로 넘어오면서 보다 활발한 투자가 이뤄지리라 기대된다는 점은 확실히 좋은 소식이다. 한편에서는 애슬레틱스 구단 측이 여러 구장을 돌아다니며 팬들이 경기를 편리하게 관람할 수 있는 새 구장을 물색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려오고 있다. 현재의 홈 구장인 오클랜드 콜리시움이 관람 시의 불편함으로 악명이 높은 구장임을 감안하면, 새로운 홈 구장은 여러모로 팀에 좋은 계기가 되어줄 듯하다.
* 수익 분배(Revenue Sharing): 구단들 사이의 경쟁력 균형을 회복하기 위해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실시하고 있는 지역 수입의 공유 및 분배 정책.

 

검증된 언더독,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근래의 애슬레틱스는 부정할 수 없는 슬럼프를 겪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폼은 일시적이지만 클래스는 영원하다”는 빌 샹클리의 말처럼, 그들은 결국 스스로의 ‘클래스’를 재차 입증할 것이다. 빌리 빈은 “최고의 길은 자신에게 맞는 길을 걸어가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대세에 편승해서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일시적인 호황을 누렸던 사람들의 실패가 찾아오는 시국

에, 대세에 편승하지 않고 자신에게 맞는 길을 걸어가며 경쟁력을 키우고 있는 애슬레틱스의 리툴링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끊임없이 윈 나우를 외치는 ‘검증된 언더독’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그들은 또 한 번의 머니볼 신화를, 스몰마켓의 희망을 써 내려갈 수 있을까.

 

※ 이 글은 ‘엠스플뉴스’에서도 만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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