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한태현 >
지난 시리즈에서는 한국 야구(KBO리그)의 관중석을 살펴봤다. 장애인 관람 환경을 중심으로 접근성이 어떤 상태에 놓여 있는지를 짚었다. 제도나 설계가 기준이 되기보다는 현장의 판단과 개별 대응이 관중 경험을 좌우하고 있었다. 같은 리그 안에서도 기준은 제각각이었다.
이 문제를 다른 리그와 비교하면 풍경은 달라진다. 메이저리그(MLB)와 일본 프로야구(NPB)는 접근 방식에서 차이를 보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관중 경험을 현장의 재량에 맡기지 않는다는 점이다. 관람 환경은 구단의 선택이 아니라 관리 대상에 가깝다. 기준은 사전에 정해져 있고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이번 시리즈에서는 그 차이가 실제로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살펴본다. NPB와 MLB의 사례를 통해 관중 접근성이 어떤 방식으로 유지되고 있는지를 짚는다. 두 리그는 서로 다른 방법을 택했지만 접근성을 배려가 아니라 기준으로 다뤄 왔다는 점에서는 같은 맥락을 보여준다.
NPB: 접근성을 현장의 판단에 맡기지 않는다
NPB의 특징은 접근성을 현장의 판단에 맡기지 않는다는 데 있다. 운영 기준이 사전에 정해져 있고, 그 기준이 문서로 공개돼 있다. 도쿄 돔은 이를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 도쿄 돔 인근 스이도바시 역부터 이어지는 배리어프리 루트 일부 >
도쿄 돔의 배리어프리 안내 문서의 핵심은 이동 경로가 구체적으로 정리돼 있다는 점이다. JR 스이도바시역 동쪽 출구에서 출발해 어느 길로 이동해야 하는지가 단계별로 안내된다. 계단을 피하는 경로와 방향 전환 지점도 명시돼 있다. 관계자 입구까지 이동 흐름이 끊기지 않는다. 장애인 관중이 도움을 받지 않고도 이동할 수 있도록 경로가 먼저 제시된다.

< 한 미디어에서 실제 휠체어 이용자인 기자들이 직접 배리어프리 루트를 검증했다. >
이러한 안내는 경기마다 달라지는 일시적인 현장 대응이 아니다. 정해진 운영 기준을 일본어와 영어뿐만 아니라 중국어와 한국어로도 설명하고 있다. 관중은 사전에 자신의 동선을 예측할 수 있다. 접근성이 서비스가 아니라 구장 운영의 일부로 다뤄진다. 기준은 야구장 내부에만 적용되지 않는다. 경기장을 아우르는 복합 엔터테인먼트 지구인 도쿄 돔 시티 전체가 관중 경험의 범위로 설정돼 있다.
야구 관람에서 접근성은 좌석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도쿄 돔의 접근성 안내는 이 점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시설 정보는 좌석이나 화장실을 하나의 범주로 묶지 않는다. 구장 안과 밖의 화장실이 구분돼 있고, 인근 상업시설과 놀이시설 정보까지 함께 제공된다. 오스트메이트 대응 여부와 간병용 베드 설치 여부도 따로 표시된다.
이는 야구 관람을 좌석에만 한정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경기 시작 전의 이동, 경기 중 이용 가능한 시설, 경기 종료 후 귀가 동선까지가 하나의 관중 경험으로 관리되고 있다. 주차장 정보 역시 같은 기준으로 정리돼 있다. 장애인 주차면은 단순히 존재 여부만 표시되지 않고, 주차장별 확보 면수가 숫자로 제시된다. 관람을 위해 이동하는 과정 전체가 운영의 책임 범위에 포함된다는 점이 분명하다.

< 요미우리를 응원하기 위해 휠체어석을 이용 중인 시민 기자 >
휠체어석 운영 방식도 문서로 정리돼 있다. 예매 경로와 절차는 고정돼 있고, 가격과 좌석 수가 공개돼 있다. 좌석은 내야에 배치돼 있으며 구역 선택 가능 여부와 동반 인원 기준도 명시돼 있다. 어떤 관중을 위한 좌석인지도 분명히 설명돼 있다.
이처럼 기준이 명확하면 경기 운영 과정에서 좌석이 쉽게 변하지 않는다. 접근성은 상황에 따라 조정되는 서비스가 아니다. 야구 관람이 성립하기 위해 유지돼야 할 조건으로 관리된다.
MLB: 법과 판례가 기준을 유지한다
MLB의 접근성은 선택이 아니라 법적 의무로 규정돼 있다. 미국의 스포츠 경기장은 미국 장애인법의 적용 대상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 기준이 처음부터 분명했던 것은 아니다. 1990년 제정 이후에도 스포츠 경기장의 접근성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를 두고 분쟁이 이어졌다. 휠체어석의 위치와 시야를 둘러싼 소송이 반복됐다.
전환점이 된 판결은 1996년의 미시간 마비 재향 군인과 엘러비 베켓 아키텍츠 앤드 엔지니어스 사이에 있었던 분쟁 사건이다. 당시 새로 건설되던 경기장에서 휠체어석이 뒤쪽에 몰려 있고 앞줄 관중이 일어서면 경기를 볼 수 없는 구조가 문제로 제기됐다. 법원은 단순히 좌석 수를 확보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장애인 관중 역시 비장애인 관중과 동등한 시야를 가져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 기준은 설계 단계에서부터 충족돼야 한다는 점도 함께 확인됐다.

< 휠체어석 시야 기준이 핵심 쟁점이라고 언급된 연방 법원의 공식 법률 문서 >
이 판결 이후 접근성 기준은 운영 전반으로 확장됐다. 휠체어석과 동반자석은 함께 확보돼야 한다. 좌석은 특정 구역에 몰려서는 안 된다. 가격 선택지도 제공돼야 한다. 주차장에서 입구, 좌석, 화장실, 매점까지 접근 가능한 경로도 끊기지 않아야 한다.
접근성 기준 준수는 현재진행형이다
이러한 접근성 기준은 1996년 판결로 형성됐지만, 그때로 끝나지 않았다.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검토되고 적용됐다. 대표적인 사례는 2024년 미국 법무부가 시카고 컵스와 리글리 필드의 접근성 문제를 놓고 발표한 합의와 동의명령이다.

문제가 된 것은 리글리 필드에 설치된 일부 휠체어석이었다. 앞줄 관중이 일어설 경우 시야가 가려지는 좌석이 있다는 점이 확인됐다. 미국 장애인법이 요구하는 동등한 관람 시야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사례로 판단됐다.
법무부는 해당 좌석을 그대로 두는 대신, 접근성 기준을 충족한 좌석으로 교체할 것을 요구했다. 이 조치는 특정 구역에 한정되지 않았다. 프리미엄 구역을 포함해 구장 전반이 대상이었다. 접근성 기준이 좌석의 존재 여부가 아니라 장애인의 관람 권리 보장, 즉 실제 관람 경험을 기준으로 적용됐다는 점이 분명해졌다.
이 사례에서 중요한 것은 적용의 시점이 아니라 기준의 지속성이다. 오래된 구장이라는 이유는 고려되지 않았다. 과거 판례로 확립된 기준은 현재의 운영에도 그대로 적용됐다. MLB에서 접근성은 과거의 합의에 머무르지 않고, 지금도 진행 중인 원칙이다.
보이지 않는 관중이 밀려나는 자리
KBO리그에서 리그 차원의 접근성 기준은 아직 충분히 정리돼 있지 않다. 장애인석 설치와 운영 역시 의무라기보다 권장에 가까운 경우가 많다. 그 결과 접근성은 리그 공통 기준보다 구단과 지자체의 판단에 따라 달라진다. 같은 리그 안에서도 관중 경험의 기준선이 균등하지 않다.
문제는 어느 구장이 더 잘하고 있는지 비교하는 것이 아니다. 기준이 명확하지 않으면 좌석은 운영 과정에서 조정될 여지가 커진다. 흥행과 수익이 우선되는 상황에서 어떤 좌석이 먼저 검토 대상이 되는지도 자연스럽게 정해진다. 이는 특정 의도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관중의 조건은 시간이 지나며 달라진다. 이동이 불편해지는 시점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특히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사회에서 이는 일부 관중의 문제가 아니라 점점 더 보편적인 전제가 된다. 접근성은 특정 집단만을 위한 배려가 아니라, 관중 경험의 최소 조건을 어디까지로 설정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다.
기준이 정리돼 있으면 운영은 예측 가능해진다. 문서와 제도로 남아 있으면 접근성은 일관되게 유지된다. 반대로 기준이 불분명하면 같은 자리는 반복해서 검토 대상이 된다. 그 자리는 대개 논의의 우선순위에서 가장 늦게 다뤄지는 관중의 자리다.
2028년 개장을 목표로 2만 석 규모의 돔 구장과 대형 복합 시설이 결합된 스타필드 청라 돔 구장은, 앞으로의 관중 조건을 어떤 기준으로 상정할 것인지 묻는 대표적인 사례가 될 수 있다. 이제 막 설계되고 만들어지는 구장일수록, 접근성을 사후 보완이 아니라 초기 조건으로 다뤄야 한다.
참고 = 미국 법무부, 워싱턴 DC 연방 법원, 시카고 컵스, 도쿄 돔, etc.
야구공작소 천태인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강상민, 장호재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한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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