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전국중학야구대회 우승 당시(사진 출처=수원북중학교)
[야구공작소 송동욱] 대부분의 학생들은 중학교 때부터 교복을 입고 학교를 다닌다. 교복을 처음 마주한 학생들의 반응은 다양하다. 소속감이 생겨서 좋다는 반응이 있고, 옷에 대한 선택권을 빼앗겼다며 반기지 않는 반응도 있다. 서로의 가치관이 다른 만큼 당연한 현상이다.
이처럼 서로의 다름을 자각하며 본인의 자아를 만들어 나가기 시작하는 중학교 시절은 삶에서 매우 중요한 시기다. 바로 이 시기에 야구선수라는 목표를 향해 구슬땀을 흘리는 중학생들이 있다.
깔끔한 야구장 시설이 교문에서부터 방문객을 반겨줬던, ‘전국 최강’이라는 타이틀이 어색하지 않은 수원북중학교 야구부의 수장 윤영보 감독을 만나고 왔다.
지난 여름, 대회 다녀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제10회 U-15 아시아유소년야구선수권대회 대표팀 감독을 맡았고, 현재는 수원북중학교 야구부 감독을 맡고 있는 윤영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 제10회 U-15 아시아유소년야구선수권대회: 2019년 8월 19~25일 중국 심천에서 개최. 총 8개 국가, 200여 명의 유소년 선수 참가.
감독님의 야구관이 궁금합니다. 야구에 관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좋습니다.
야구관이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는 다소 특이할 수 있지만, 저는 소위 ‘밥상머리 교육’이라 불리는 인성 교육을 가장 중요하게 여깁니다. 야구만 잘해서 되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특히 요즘 사회가 인성을 많이 강조하지 않습니까.(웃음)
지난 여름 국제대회 때도 이러한 부분들에 대해서 많이 느꼈습니다. 저희 선수들은 물론 잘해주고 있지만, 그런 기본 하나하나가 몸에 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타국 선수들도 그런 모습들을 보여주더군요.
저는 과거 프로로 활약하던 시절에 자만에 빠졌던 경험이 있습니다. 제가 직접 경험하고 실수했던 것으로부터 우러나온 얘기여서 이렇게 당당하게 말씀을 드릴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야구를 잘하는 것만이 다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됨됨이가 중요하다는 말씀에 굉장히 동감합니다. 그렇다면 야구 선수가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기본은 무엇일까요?
단연 캐치볼이라고 생각합니다. 캐치볼을 가벼운 운동이라고 흔히 생각하시지만, 실은 공을 정확하게 던지고 정확하게 받아내야 하는 훈련입니다. 잘 치고, 잘 던지고, 잘 받는 ‘야구의 3요소’ 중에서 두 가지를 신경 써야만 하는 중요한 훈련이죠.
또 한 가지를 꼽자면 수비입니다. 저희 팀이 대외적으로는 타격이 좋은 팀이라는 평가를 받지만, 실제 연습량은 수비가 7이라면 공격이 3 정도입니다. 수비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기에 수비 훈련에도 굉장히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됨됨이와 캐치볼, 흥미로운 답변입니다. 분위기를 바꿔보죠. 학생들에게 중학생 시기는 앞으로의 자신을 만들어가는 중요한 시기입니다. 이 시기의 야구부 선수들에게 지도자로서 어떤 메시지를 전해주고 싶으신가요?
일단은 진짜 야구를 좋아하고 하고싶은 학생들이 야구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당연하게도 선수를 목표로 운동을 하는게 쉬운 일은 아니니까요.
또, 저는 역시 인성이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웃음) 하지만 이건 아까 말씀을 드렸던 부분이죠. 다른 조언을 해준다면 ‘나부터 잘해야 한다, 먼저 존중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한다’는 말을 해주고 싶네요.
가끔 이전에 지도했던 선수들이 고맙다며 찾아오고는 합니다. 지금은 그 친구들이 잘 풀려서 너무 다행인데요, 중학교 때 제 밑에 있을 때는 진짜 힘들었다고 이제서야 얘기를 하더군요.(웃음)
본인들끼리 있을 때는 “수원북중에서 3년 열심히 하면 사회생활 잘할 수 있다”는 농담도 한다고 합니다. 제가 너무 엄하게 대했나 싶다가도, 이런 얘기를 들으면 제 당부대로 잘 따라와준 선수들이 너무 고마워지죠.
모든 선수들이 그렇지는 않습니다만 저와 뜻이 달라서 중간에 그만두고 후회하는 선수들도 더러 생깁니다. 그럴 때마다 말 한마디에도 신중해야 한다는 것을, 지도자의 무게가 정말 무겁다는 것을 느낍니다.
아직 야구를 해온 날보다 해 나갈 날이 훨씬 많은 중학교 선수들입니다. 지금 당장은 노력한 만큼 실력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죠. 그라운드 안에서 선수들에게 특별히 강조하시는 부분이 있을까요?
계속 비슷한 말씀을 드리는 것 같지만,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가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말씀해주신 대로 아직 야구를 해야 할 시간이 해온 시간보다 많은 친구들이기 때문에 길게 봐야 하겠죠.
지금 당장 결과물이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너무 조급하게 굴지 말고 속도보다는 방향이다, 양보다는 질이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꾸준히 매진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우리 선수들을 믿으니까요.
최근의 이슈인 선수들의 학업 병행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선수들이 공부를 병행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는 데에는 무조건 찬성합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다른 학생들보다 먼저 직업 전선에 뛰어든 아이들이다 보니 책상에 앉아 있어본 경험이 조금 부족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학생 운동선수를 위한 맞춤 교육 방식이나 차별화된 시스템이 조금 더 마련됐으면 좋겠습니다. 보통의 학생들처럼 책상에만 앉혀 둔다면 아이들이 지루해하기 쉽겠죠. 그러면 자연히 능률도 오르지 않을 겁니다.
또 행정을 담당하는 분들이 현장의 목소리를 조금 더 들어주셨으면 합니다. 예를 들어 지금은 주말에 야구를 하고 싶어도 시설이 없기 때문에 연습을 할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저희도 다 알거든요. 주말에도 연습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요. 왜 모르겠습니까.
그런데 평일에는 수업을 듣고, 수업이 끝나면 밤까지 운동을 하는 선수들에게 주말까지 운동을 시킨다면 이들이 대체 언제 휴식을 취하겠습니까. 당연히 여러가지 요소를 고려해서 결정하셨겠지만 일방적인 지시와 통보보다는 설명을 통해서 현장 지도자들을 이해시켜 주셨으면 합니다.
고등학교가 아닌 중학교 야구부의 경우, ‘아직은 즐기면서 야구를 하는 것이 맞다’는 의견과 ‘그래도 이기는 야구가 우선’이라는 의견이 있습니다. 감독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이 질문에 대한 제 답은 단호합니다. 이유를 불문하고 이겨야 합니다. 야구를 직업으로 삼기 위해 노력하는 선수들은 절대 타협할 여지를 남겨서는 안 돼요. 중학 야구도 결국 야구를 직업으로 삼기 위해 거치는 과정입니다. 그렇다면 타협의 여지를 만들어서는 곤란하다는 것이죠. 이래서 졌다, 저래서 졌다 계속 핑계만 늘리다 보면 결국 남는 것은 패배밖에 없습니다.
제가 매번 강조하는 부분인데요, 지도자들도 핑계거리를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너무 무리할 필요는 없지만 일단 시합에서는 이겨야 합니다. 선수들은 절실함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고, 승패에 대한 책임은 감독이 지는 것이죠. 그게 옳다고 생각합니다.
타협하지 않는다는 말씀이 멋집니다. 그럼 또 다른 얘기를 해보죠. 지난 여름 열린 U-15 아시아 유소년 야구 선수권대회에서 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으셨습니다. 세계 유소년 야구 선수권 대회 출전권 2장이 걸린 중요한 대회였는데요. 대만과 일본에 패한 다음 선수들이 정말 서럽게 울었다는 뉴스를 접했습니다. 그때 심경이 어떠셨는지요.
사실 조심스럽게 말씀드릴 수밖에 없는 부분입니다. 초반부터 심판 판정에 대한 불만이 컸습니다. 관중석에서도 야유가 나올 정도였죠. 그래서 어필을 상당히 강하게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조금 더 좋은 경기를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는데요, 많이 아쉽습니다.
그래도 아이들은 이 경험을 통해 강해졌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패배를 합리화하면 안 되겠습니다만, 패배에서도 배우는 점은 분명 있기 마련이거든요. 저는 아이들이 정말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심판 판정이 아쉬웠다는 점은 꼭 강조하고 싶습니다.”
저도 선수들이 참 잘해줬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최근 고교 야구에 도입된 투구 수 제한 같은 보호 방안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투구 수보다는 이닝으로 제한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투구 수를 정해 놓으면 그 개수에 휘둘려서 정상적인 경기를 치르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고 보거든요. 하지만 선수들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가 시행이 되고 있다는 점 자체는 매우 긍정적입니다.
한 가지 제안을 해보자면, 지명타자 제도를 중학 리그에 도입했으면 합니다. 2년 전부터는 국제 대회에서도 지명타자 제도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한 명이라도 더 경기에 뛸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 감독의 마음이죠. 지명타자 제도의 도입이 필요합니다.
현재 한국에서는 80개, 일본에서는 약 4,000여 개 정도의 고등학교가 야구부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감독님의 지도를 받고 있는 선수들도 고등학교, 대학을 거쳐 최종적으로는 프로야구 구단에 입단하는 것이 목표일 텐데요. 현재 한국의 아마추어 야구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계신가요?
전문대 야구부를 더 많이 만들어서 2년제 대학 팀들도 빛을 볼 수 있게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면에서 고등학교 3학년 선수들이 2년제 대학 진학을 선호하는 근래의 경향이 매우 반갑습니다. KBO(한국야구위원회)가 대학교 2학년부터 드래프트 참가를 가능하게 해주는 ‘얼리 드래프트’ 제도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는 뉴스도 마찬가지고요.
일반 대학생들에게는 재수, 편입 같은 다양한 선택지들이 있습니다. 야구를 하는 학생들도 2년제에서 부족한 점을 가다듬어 프로에 다시 도전할 수 있도록, ‘편입 제도’ 같은 다양한 길들이 생겼으면 합니다.
- 현재 KBA(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에 등록된 33팀의 대학 야구부 중 2년제 팀은 5팀(동강대, 제주 관광대, 인천 재능대, 여주대, 강릉영동대)뿐.
이번 대회는 비슷한 때 열린 2020 KBO 신인 드래프트에 이목을 빼앗겼다는 점 때문에 조금 아쉬웠습니다. 독자분들이 유소년 야구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어필을 한번 해주신다면 어떨까요.
저는 과정을 중요하게 여겨야만 좋은 결과가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중학 야구는 대한민국 야구계의 허리라고 생각해요. 좋은 재능을 가진 선수들을 상위 단계로 잘 올려 보내야 하는 단계이고, 또 좋은 재능을 발굴도 해내야 하는 단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장에 있는 지도자들을 너무 제약만 하지 마시고 조금 더 믿어주셨으면 합니다. 사실 현재 유소년 야구 쪽에 지원이 많이 없다는 얘기가 사실이기는 하거든요. 프로 구단들도 지역 유소년 야구에 조금 더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습니다.
탁상행정보다는 현장을 조금 더 믿어주고, 열심히 지도하는 사람들을 인정도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희도 평생 이 일을 해온 사람들입니다. 잘 알고, 잘 해내고 싶고, 잘 해낼 자신도 있거든요.
한 가지만 더 추가하자면 학생 야구 경기의 중계 빈도가 늘어나면 좋겠습니다. 꼭 큰 대회나 특정 국가대항전 말고도 많이 중계가 되었으면 해요.
마지막으로 감독님의 목표에 대해 짤막하게 들어보고 싶습니다.
현재로서는 세계유소년야구선수권대회에서 와일드 카드를 획득하는 것이 제일의 목표입니다.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당분간은 건강한 프로야구를 뒷받침하는 튼튼한 허리를 만드는 데 매진하고 싶습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기점으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했던 KBO리그는 올해 들어 눈에 띄는 관중 동원력 감소를 겪었다. 새로운 스타들이 조금씩 등장하고는 있지만 리그의 얼굴로 자리를 잡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단기적인 타개책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프로야구의 장기적인 존속을 위해서는 결국 새로운 스타들을 배출해낼 유소년 야구의 융성이 필수적이다. 오늘도 새로운 ‘황금 세대’를 배출하기 위해 땀 흘리고 있는 수원북중학교와 윤영보 감독의 비상을 기대해보자.
에디터=야구공작소 이의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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