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야구공작소 김선영)
팬그래프 시즌 예상: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 5위(77승 85패)
시즌 최종 성적: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 5위(67승 95패)
[야구공작소 조우현] 텍사스 레인저스가 2015, 2016년 연속 디비전 우승을 이뤄낸 지 채 2년이 지나지도 않았는데 지구 꼴찌로 추락했다. 구단은 감독으로서 부족한 역량에 선수단과의 관계도 좋아질 기미가 안 보이는 제프 배니스터를 시즌 말미에 경질했다. 지금은 발 빠르게 새로운 리더십으로 팀을 이끌어 갈 크리스 우드워드를 감독 자리에 앉히면서 다음 시즌을 준비 중이다.
하지만 선수단 내의 리더십에는 큰 구멍이 나게 생겼다. 텍사스 선수단의 정신적 지주인 애드리안 벨트레가 은퇴 여부를 고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1998년부터 무려 20년간 성공적인 커리어를 이어왔으며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리그 최고의 3루수라는 명성을 꾸준히 지켜왔다. 특히 2011년부터 여덟 시즌 동안 텍사스의 리더로 3번의 디비전 우승을 이끌었다. 만약 벨트레가 은퇴를 선언한다면 이 캡틴의 빈자리를 어떻게 채울 수 있을까? 설마 2018 시즌을 앞두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다니엘스 단장은 이미 소문난 잔치인 ‘리빌딩’을 선언한 것일까?
예상외로 잘한 타자, 예상대로 망한 선발
<표 1. 2018 시즌 텍사스 레인저스의 팀 기록 및 순위>
메이저리그에서 보기 드물게 타선의 신-구 조화가 뛰어난 팀이었지만 팀의 리더 애드리안 벨트레도 결국 세월의 흐름을 이겨내지 못했다. 벨트레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규정 타석을 소화하지 못했다. 게다가 지난해보다 많은 경기를 뛰면서 부상에서 어느 정도 회복된 모습은 보여줬지만 수비와 공격에서 다시 한번 뚜렷한 하향세가 이어지며 텍사스 이적 이후 최악의 시즌을 보냈다. 하지만 팀의 주장이자 중심인 벨트레의 부진에도 불구하고 팀의 시즌 wRC+는 99로 평균에 근접하는 선전을 했다.
특히 리그 최고의 ‘공갈포’ 조이 갈로는 타율이 고작 0.206인 주제에 홈런을 40개나 때려내며 팬들을 갸우뚱하게 만들었고, 유망주 랭킹 1위에도 선정된 적이 있지만 몇 년간의 부진으로 더 이상 걸만한 기대가 없었다고 여겨지던 쥬릭슨 프로파도 벨트레의 빈자리를 메꾸고 내야 전 포지션을 소화하며 팬들을 아리송하게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지난 몇 년간 ‘먹튀’ 논란으로 마음 고생이 많았을 추신수 역시 전반기에 엄청난 활약을 하며 텍사스 팬들과 국내 팬들에게 까지 기분 좋은 뉴스거리를 안겨주었다.
반면 팀의 성적에 가장 큰 원흉은 투수진, 특히 선발진의 엄청난 부진 때문이다. 지난 시즌 LA 다저스로 트레이드 된 에이스 다르빗슈 유와, 앤드류 캐시너와 같은 솔리드한 선발의 빈자리마저도 제대로 채워 넣지 못했다. 트레이드로 영입한 맷 무어는 AT&T파크에서 5.52의 평균 자책점을 기록하고 글로브 라이프 파크에 와서는 6점대가 훌쩍 넘는 6.79를 기록했다. 아마 모두가 다 알았지만 존 다니엘스 단장만 몰랐던 ‘개꿀잼 몰카’이지 않았을까.
의미 없는 영입은 무어로 끝나지 않았다. 더그 피스터, 바톨로 콜론, 에딘손 볼퀘즈까지 영입했지만 볼퀘즈는 복귀조차 하지 못했고, 피스터는 부상으로 6월 이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콜론은 6점대에 근접하는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오죽했으면 팀에서 가장 높은 fWAR를 기록한 선수가 호세 레클레(2.5)로 57이닝을 소화한 마무리 투수다.
선발 투수진 총 fWAR은 4.2, 평균자책점은 5.37로 다수의 탱킹팀들과 자웅을 다툴 만큼 부진한 모습을 보여줬고 피안타율은 0.278로 볼티모어 오리올스에 이어 2번째, WHIP는 1.44로 볼티모어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 이어 3번째로 높았다. 그야말로 ‘폭망’한 선발진은 팀의 꼴찌에 가장 큰 원흉이었다.
최고의 선수 – 추신수
시즌 성적 : 665타석148안타 21홈런 92볼넷 156삼진 0.264/0.377/0.434 118 wRC+
드디어 추신수가 무려 36세에 화려하게 부활했다. 텍사스로 오자마자 끊임 없이 시달렸던 잔 부상과 계속된 부진의 굴레에서 드디어 탈출한 느낌이다. 부상도 부상이지만 추신수가 텍사스와 계약한 2014년부터 수비 시프트가 매년 급증하며 특히 좌타자들의 발목을 많이 붙들었다. FA 대박 후 추신수는 당겨치기에 집중해 땅볼 타구 비율이 50%정도(평균 약 44%)로 높았고 이는 그를 시프트에 취약한 타자로 만들었다.
하지만 올해 그는 달랐다. 레그킥을 장착함과 동시에 히팅 포인트에 변화를 주면서 강한 타구를 많이 만들어내는데 집중했다. 시프트에 걸리기 보다는 빠른 타구로 시프트를 뚫어내는 작전이 먹혀 든 것이다. 강한 타구는 자연스레 홈런으로 이어져 전반기에만 18개의 홈런을 쳤고 자신의 최고 무기인 선구안을 바탕으로 52경기 연속 출루 기록을 세우면서 생애 첫 올스타에 뽑히는 영광까지 거머쥐었다. 하지만 올해는 후반기에 예상외의 부진에 빠지며 시즌을 마쳤다.
<표 2. 2018시즌 추신수의 전반기와 후반기 타격 지표 비교>
후반기에 언제나 강한 모습을 보여주던 선수라 후반기에 더욱 큰 기대를 걸고 있었지만 스윙이 조금씩 무너지며 아쉽게 시즌을 마감했다. 특히 전반기에는 뜬 공으로 재미를 많이 봤지만 타구의 땅볼 비율이 57.8%로 전반기(45.9%)에 비해 큰 폭으로 상승하며 타석에서의 생산성이 많이 떨어졌다. 그 결과 그는 후반기 겨우 3개의 홈런에 그치는 등 장타를 좀처럼 만들어 내지 못했고 내년 시즌이 순탄치 않을 것 같은 걱정마저 드는 모습으로 시즌을 마쳤다.
하지만 마쓰이 히데키가 세웠던 아시아 타자 홈런 기록(175개)을 경신했고, 이치로 스즈키가 세운 아시아 타자 최다 연속 출루 기록(43경기)도 훌쩍 뛰어넘으며 다시 한번 텍사스의 베테랑이자 한국인 메이저리거 맏형 노릇을 톡톡히 했다.
최악의 선수 – 맷 무어
시즌 성적 : 선발 12경기 ERA 8.02 FIP 5.20 55이닝 49실점 41삼진 26볼넷 WHIP 2.05
불펜 27경기 ERA 5.36 FIP 5.31 47이닝 28실점 45삼진 15볼넷 WHIP 1.19
279타석에서 타율 0.349, 출루율 0.419, 장타율 0.569에 8개의 홈런을 기록한 선수가 있다면 올스타에는 당연히 선정이 되어야 할 엄청난 활약이다. 하지만 이는 맷 무어가 선발 등판할 때 그를 상대한 타자들이 기록한 성적이다. 이 정도로 두드려 맞았는데 ERA가 8점이 안 넘고 베길 수는 없었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고 했던가? 6월 10일 경기를 끝으로 그는 불펜으로 강등 됐지만 불펜에서도 딱히 나아진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불펜 등판 시 WHIP이 1.19로 안정감이 있어 보이지만 이는 그가 로우 레버리지 상황*에서만 등판했기 때문이다. 47이닝을 소화하는 동안 홈런을 무려 11개나 맞았고 ERA 역시 5.36으로 보는 사람이 더 힘들다고 느낄 만큼 최악의 피칭을 보여줬다. 텍사스는 75만불의 국제 유망주 계약금을 위해 너무 많은 팬들의 마음을 답답하게 만들고 말았다. 2019년 1000만달러짜리 팀 옵션이 남아 있지만 당연히 실행될 가능성은 없었다.
*큰 점수차로 지고 있거나 이기고 있는 상대적으로 낮은 위기상황을 뜻하는 말
가장 많이 발전한 선수 – 루그네드 오도어
시즌 성적: 535타석 120안타 18홈런 43볼넷 127삼진 0.253/0.326/0.424 97 wRC+
오도어는 6년간 5천만 달러에 달하는 연장 계약을 맺은 2017년에 최악의 부진에 빠졌다. 0.204/0.252/0.397이라는 초라한 슬래시 라인으로 wRC+는 58에 머물렀고 DRS는 3에 UZR은 -4.8로 수비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물론 그가 받는 연봉이 많은 금액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메이저리그 팀의 주전 2루수로는 말도 안되게 부족한 모습을 보여준 건 사실이다.
2018 시즌도 시작은 상당히 불안했다. 타율은 여전히 2할 초반 대에 머물렀고, 단 6개의 홈런밖에 치지 못하며 지난 시즌의 부진에 이어 장타마저 실종된 모습으로 팬들에게 실망을 안겨줬다. 하지만 그도 한가지 달라진 점이 있었다. 천천히 조금씩 자신만의 스트라이크 존을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프 1. 오도어 BB%/Swing%/O-Swing% 변화 그래프>
오도어는 볼넷을 거의 얻어내지 못하는 스타일의 선수였다. 하지만 2017 시즌 후반기를 기점으로 조금씩 BB%를 끌어올리는 모양새였다. 특히 2018 시즌 후반기 반등에는 적극적으로 배트를 내던 자신의 성급함을 고쳤다는 점이 주요했다. 매년 스윙을 아끼면서 자신이 잘 칠 수 있는 코스로 들어오는 공에만 스윙을 하는 ‘참을성’을 키워낸 것이다.
그의 변화에는 팀 최고참이자 메이저리그 14년차인 베테랑 ‘출루 머신’ 추신수의 역할이 크게 작용했다. 오도어는 좋은 컨택트에 대한 자신감으로 투수가 던지는 공에 적극적으로 스윙하는 ‘프리 스윙어’형 선수였다. 추신수는 수년 전부터 오도어에게 ‘나쁜 공에는 스윙하지 마라.’고 조언을 했지만 팀에서 위상이 좋지 않았던 추신수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 역시 극심한 부진에 빠졌고 자신의 최대 단점이었던 선구안을 가장 잘 코칭해 줄 수 있는 추신수의 조언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결과 마침내 결실을 이뤄냈다.
그의 Swing%는 6.7%나 감소했고, 스트라이크 존 바깥쪽 공에 스윙하는 비율(O-Swing%)도 6.4%나 낮추는데 성공했다. 잘 칠 수 있는 공만 골라서 치다 보니 컨택트 능력이 자연스럽게 향상됐고 볼넷도 따라왔다. 그 결과 그의 후반기 타율은 0.266 정도였지만 선구안과 참을성으로 개선된 출루력과 향상된 컨택트 능력을 바탕으로 장타도 많이 늘었고(후반기 홈런 12개), wRC+를 109까지 끌어올리는데 성공했다.
FA 대박과 리빌딩의 갈림길
추신수, 오도어, 쥬릭센 프로파 그리고 조이 갈로까지, 네 명의 타자는 꼭 필요했던 순간에 제 몫을 해냈다. 하지만 정작 애드리안 벨트레와 노마 마자라와 엘비스 엔드루스 같이 팀의 중심을 잡아줘야 할 선수들이 부진에 빠지고 말았다는 점이 굉장히 아쉽다. 하지만 리빌딩이 필요할 만큼 그렇게 나쁜 상황은 아니다.
먼저 베이스볼 레퍼런스에 따르면 내년 텍사스의 확정 페이롤은 1억 달러 수준이다. 불과 몇 년 전 만해도 텍사스는 1억6천만 달러를 훌쩍 넘는 페이롤을 지급할 여력이 있는 팀이었다. 페이롤의 유동성이 어느 정도 확보된 가운데 올 시즌이 끝나고 FA 자격을 얻는 선수들의 명단은 대단히 화려하다.
매니 마차도와 브라이스 하퍼를 필두로 모든 포지션에서 양질의 선수들이 골고루 마켓에 나오게 된다. 은퇴를 선언한 벨트레의 빈자리에는 마차도를 비롯한 마이크 무스타카스, 조쉬 도날드슨과 같은 올스타급 스타들로 대체할 가능성이 있으며 아쉬웠던 중견과 1루, 그리고 포수까지 좋은 선수들이 가득하다.
야수들뿐만 아니라 투수들도 상당히 좋은 매물들이 가득하다. 패트릭 코빈, 댈러스 카이클, 네이선 이오발디 등등 상대적으로 젊고 좋은 커리어를 쌓아온 투수들이 즐비하다.
또한 텍사스의 팜 시스템은 중위권 정도로 평가되며 당장 내년에도 콜업이 기대되는 유망주들이 다수 존재한다. 다르빗슈 유를 트레이드 하고 받아온 텍사스 최고의 유망주 윌리 칼훈은 내년 풀타임 한자리를 노리고 있고, 가까운 미래에 골든 글러브 수상이 유력한 포수 호세 트레비노는 로빈슨 치리노스의 자리를 엿보고 있다.
그리고 핵심 불펜 자원이었던 키온 켈라와 제이크 디크만을 트레이드 했지만 여전히 좋은 불펜 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팀의 마무리 자리를 꿰찬 호세 레클레가 59경기에 등판해 단 6경기만 실점하며 차세대 리그를 대표할 마무리의 잠재력을 보여줬다. 그의 앞은 알렉스 클라오디오와 토니 바넷이 지켜주고 있고 맷 부쉬 역시 후반기에 복귀할 가능성이 높다.
텍사스 레인저스는 경쟁력을 다시 한번 끌어올릴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다. 페이롤의 유동성과 데뷔가 가까워진 유망주들을 바탕으로 당장 내년에 충분히 컨탠딩이 가능한 팀을 꾸릴 수 있다. 시카고 컵스와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성공을 벤치 마킹해 다수의 팀들이 리빌딩을 선택한 반면 최근 빌리 빈의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는 매년 윈-나우(Win-Now)를 외치며 결국 꼴찌 탈출과 플레이오프 진출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냈다. 리툴링과 리빌딩 모두 100% 성공이 보장된 길은 아니다. 빌리 빈은 무려 3시즌 연속 지구 꼴찌를 면하지 못했고, 시오 엡스타인의 컵스는 반짝이던 몇 시즌을 뒤로하고 점점 힘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존 다니엘스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기록 출처 : Baseball Reference, Fangraphs
에디터=야구공작소 이예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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