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배지환은 국내 프로야구에서 뛸 수 있는 거야?

<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황규호) >

[야구공작소 한민희] 2018년 프로야구를 준비하고 있는 요즘, 야구계를 뜨겁게 달구는 소식이 있습니다. 지난해 이영민 타격상을 받을 만큼 뛰어난 성적을 보여준 배지환(경북고 졸, 유격수)이 한국야구위원회(KBO)를 상대로 가처분 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입니다. 배지환은 KBO를 상대로 ‘육성선수 자격인정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고, 지난 1월12일 심문기일이 열렸습니다. 배지환과 KBO의 주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지금, KBO 규약의 신인선수 규정을 통해 배지환과 KBO 간 소송의 포인트를 살펴보겠습니다.

 

신인선수 계약에 대한 KBO 규약

KBO는 매년 특정일자를 정해 신인선수를 대상으로 한 신인드래프트를 개최합니다. KBO 규약에서 말하는 “신인선수”란 “대한민국 국민이 국내 및 외국 프로구단과도 선수계약을 체결한 사실이 없는 선수”를 말합니다. 신인드래프트는 ①구단이 배정학교를 졸업했거나 졸업 예정인 신인선수 중에서 1명의 선수를 지명하는 1차 지명과 ②1차 지명에서 지명되지 않은 신인선수를 대상으로 연고지에 관계없이 지명하는 2차 지명이 있습니다.

그런데 신인선수 중 “국내에서 고등학교 이상을 재학하고 한국프로구단 소속 선수로 등록한 사실 없이 외국 프로구단과 선수계약을 체결한 선수”는 외국 프로구단과의 선수계약이 종료한 날로부터 2년간 KBO 소속 구단과 선수계약을 체결할 수 없고, 7년간 KBO 소속 구단과 감독계약 및 코치계약을 체결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KBO는 외국 진출 선수가 졸업한 학교에 대해 선수계약을 체결한 때부터 5년간 유소년 발전기금 등 일체의 지원금을 지원하지 않습니다. 추후 외국 진출 신인선수가 선수계약 체결 금지 기간이 지나 KBO 소속 구단과 선수계약을 체결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반드시 2차 지명을 거쳐야만 합니다.

이렇듯 외국 진출 선수에 대해 KBO 규약은 선수 개인은 물론 선수가 졸업한 학교에까지 불이익을 주는데요. 신인선수의 외국 진출을 자유롭게 허용할 경우, 국내 프로구단의 선수선택권을 침해하고 구단과 선수가 담합해 드래프트 제도를 악용할 우려가 있다는 것입니다.

 

배지환과 KBO 간 의견 차이

배지환은 작년 경북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 신인드래프트에 참여해 KBO 구단의 지명을 받을 자격이 있었죠. 그런데 2차 지명 당일, 배지환의 아버지가 KBO 운영팀에 연락해 “배지환은 메이저리그 구단과 계약했다.”고 알렸고, 이런 내용은 바로 각 구단에 전해져 어느 구단도 그를 지명하지 않았습니다. 실제 배지환은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 계약 후 루키리그에 출전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브레이브스가 국제 유망주들과 계약을 체결하면서 불법을 저지른 것을 확인했고, 이에 따른 중징계를 내렸습니다. 동시에 2017년 11월 22일 배지환을 비롯한 국제 유망주들과 브레이브스와의 계약을 무효화했습니다.

졸지에 국제 미아가 된 배지환은 KBO 리그로 눈을 돌렸는데, KBO는 배지환이 규약 제107조에 명시된 ‘외국진출선수에 대한 특례규정’에 해당한다는 유권해석을 내렸습니다. 즉, 2년 후 2차 지명을 통해 KBO 소속 구단과 계약을 체결해야 한다는 것이죠. 배지환은 “메이저리그 구단과의 계약이 무효가 돼 계약을 체결한 것이 아니게 되었다”며, 외국 진출 선수에 대한 특례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했고, KBO를 상대로 ‘육성선수 자격 인정 가처분신청’을 제기한 것입니다.

 

< KBO 규약 제 107조 (출처: KBO 공식 홈페이지) >

배지환 VS KBO 소송 포인트

결국 배지환과 KBO의 분쟁은 규약 제107조의 해석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배지환은 규약에 해당하는 선수일까요? 규약이 적용되는 경우는 ①국내에서 고등학교 이상 재학하고 국내프로구단 소속 선수로 등록한 사실이 없이 ②외국프로구단과 선수 계약을 체결한 선수가 ③외국프로구단과 선수 계약을 종료한 때입니다. 이렇게 적용대상과 상황을 명시하고 있는데요. 배지환이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 계약을 할 당시 경북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으로 어떠한 국내프로구단과도 계약을 맺지 않았던 만큼 ①요건에는 해당됩니다.

 

배지환과 KBO의 가처분 신청으로 알아보는 계약의 성립과 효력

문제는 ②, ③요건에도 해당하는가입니다.

배지환은 구단과 계약한 것은 맞지만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계약을 무효화한 만큼선수계약 자체가 성립하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그렇다면 배지환의 주장처럼 구단의 계약이 무효가 된 이상 선수계약 자체가 성립하지 않은 것일까요?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으려면 우선 ‘계약’을 구성하는 요소를 따져봐야 합니다. ‘계약’은 법률행위의 한 종류인데, 법률행위는 성립요건과 효력요건(유효요건)을 갖추어야 합니다. 성립요건과 효력요건이라는 단어가 무척 생소하게 느껴지실 텐데요, ‘계약의 성립요건’이란 당사자가 의사표시를 하고 의사의 합치가 있는 것으로, 계약의 존재에 관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청약이 있는데 승낙이 없는 경우, 계약은 부존재합니다. 이와 달리 ‘계약의 효력요건’은 성립한 법률행위가 효력을 갖기 위한 요건입니다. 예를 들어 마약거래는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반하는 계약인 만큼 민법 제103조에 의해 무효가 됩니다. 즉 계약은 그 계약이 우선 성립한 후에야 비로소 유·무효를 따져볼 수 있는 것이죠. 계약의 일반적인 내용을 규정한 민법이 성립과 효력을 구별해 규정하고 있는 것만 봐도 이 두 가지 요건은 구별하는 것이 타당합니다.

배지환과 구단의 계약은 메이저리그 규정 상 사무국이 계약을 승인해야 효력이 발생합니다. 이 계약이 유효일지, 무효일지는 메이저리그 사무국의 승인에 달려 있는 것이죠. 불확실한 조건에 따라 계약의 효력이 결정되는 경우를 ‘조건부 계약’이라고 하는데, 배지환의 경우 사무국의 승인에 의해 유효한 선수계약이 되는 만큼 ‘정지조건부 계약’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볼 때 배지환과 애틀란타 브레이브스 간의 계약은 성립했지만, 사무국의 결정으로 효력요건을 갖추지 못해 무효가 된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한데 규약은 ‘선수계약을 체결한 선수’라고만 규정하고 있는데, 이때의 ‘체결’이 효력요건까지 갖춘 경우인지는 또 불명확합니다. 만약 선수계약이 ‘성립’한 경우를 의미한다면 배지환은 규약의 적용대상자가 되고, 선수계약이 ‘유효’인 경우를 의미한다면 적용대상자가 아니기 때문이죠. KBO가 배지환에게 규약을 적용한 것을 보면, 전자로 판단한 것 같습니다. 민법에서 계약 ‘체결’ 중 발생한 과실에 대해 ‘성립’부분에서 따로 다루고 있는 만큼, KBO의 해석도 일리가 있습니다.

 

이처럼 배지환이 적용대상자라 하더라도 규약이 적용될 상황이 아니라면 결과는달라집니다. 배지환처럼 선수계약이 무효가 된 것도 ‘선수계약의 종료’에 해당할까요?

안타깝게도 규약에는 ‘종료’의 의미에 대해선 나와있지 않습니다. KBO가 배지환에게 규약을 적용한 것을 보면, 무효처럼 계약의 효력이 소급해서 소멸한 경우도 포함해 판단한 것 같습니다. 이와 달리 계약의 효력이 ‘장래를 향하여 소멸하는 경우’를 ‘선수계약의 종료’로 본다면, 규약은 배지환에게 적용되지 않습니다. 다양한 견해가 있을 수 있지만, 후자로 보는 것이 타당해 보입니다. 민법에서 보통 계약의 종료를 논의하는 경우는 계약이 기간만료나 목적달성으로 장래를 향하여 효력이 소멸하는 경우입니다. 임대차 계약기간이 만료되는 경우나 도급계약의 목적물이 완성된 경우가 대표적인 예죠. 이러한 점을 고려한다면 ‘선수계약의 종료’는 유효하게 성립한 선수계약이 장래를 향하여 해지되거나 계약기간이 만료한 경우로 제한해야 할 것입니다. 결국 규약의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 배지환은 육성선수 자격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모든 분쟁의 원인인 규약, 과연 유효한가?

만약 KBO의 해석처럼 배지환에게 규약이 적용된다고 볼 경우, 추가적으로 살펴볼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규약자체의 효력입니다. 배지환의 육성선수 자격을 금지하는 KBO 규약이 무효라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과거 엘지 트윈스가 1991년 11월 임선동에게 행한 지명권의 효력에 대한 소송에서, 법원은 KBO 규약의 법적 성질에 대해 ‘KBO의 내부규범이지만 동시에 국내프로야구구단의 합의에 의한 조합적 집합계약’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즉 KBO 규약도 ‘계약’인 만큼 앞서 살펴본 것처럼 효력요건을 갖추어야 하는 것이죠. 더욱이 KBO 규약은 리그 관계자 전원에게 일괄적으로 적용되는 ‘약관’으로 볼 수 있고,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에 위반될 경우 무효가 될 수 있습니다.

만약 법원이 KBO 규약 제107조가 배지환의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판단하거나 외국 진출 선수에게 지나치게 불공정하다고 본다면, 육성선수 자격을 인정하지 않는 근거가 무효가 됩니다. 이 경우 배지환은 자신의 바람처럼 자신이 원하는 국내구단에 육성선수로 입단할 수 있습니다.

 

마치며

결국 배지환과 KBO의 분쟁은 규약의 해석과 규약자체의 유효성 여부에 달려있습니다. 규약이 명확하지 않아 다의적인 해석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아쉬운 부분입니다. 그렇기에 이번 소송의 진행과 결과가 궁금합니다. 가처분 절차는 민사소송법의 규정을 준용하는 만큼, 당사자가 주장하는 내용에 대해서만 판단합니다. 배지환과 KBO가 재판 절차에서 다양한 의견을 펼쳐 신인선수 계약에 대한 보다 명확한 체계를 만드는 선례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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