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야구공작소 최경령)
팬그래프 예상 성적: 내셔널리그 동부지구 3위 (79승 83패)
실제 성적: 내셔널리그 동부지구 2위 (77승 85패)
[야구공작소 송동욱] 추위가 걷히고 봄이 다가오던 2017시즌 개막 즈음, 따뜻한 희소식 하나가 마이애미 말린스의 팬들을 찾아갔다. 오랜 지탄의 대상이었던 제프리 로리아 구단주의 구단 매각 소식이었다. 로리아는 마이애미의 구단주로 부임한 2002년 이래 팀의 단장·사장들과 끊임없이 대립해왔고,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하자마자 팀의 재정을 빌미 삼아 주축 선수들을 팔아 치우는 등의 기행을 저지르면서 팬들의 공분을 샀다.
이는 ‘젊은 에이스의 사망’이라는 절망적인 벽에 막혀 있던 팀의 분위기를 반전시켜줄 수 있는 소식이었다. 그 덕분이었을까. 마이애미는 전력에 비해 선전했다고 볼 수 있는 2017시즌을 보냈다.
스탠튼이라는 확실한 코어가 버티고 있는 타선은 메이저리그 전체에서 타율 3위(0.267), wRC+ 12위(99), fWAR 7위(26.1)를 차지하면서 평균 이상의 좋은 모습을 보였다. 금지 약물 복용 징계 이후로 부진했던 디 고든도 0.308의 타율과 201안타, 60도루를 기록하며 부활의 날개를 펼쳤다.
‘홈런의 시대’라는 리그 트렌드에 비하면 팀 장타율은 평범했지만(0.431, 전체 14위), 25홈런 이상을 기록한 타자를 3명이나 보유한 만큼 장타 부재를 걱정할 정도는 아니었다(저스틴 보어, 마르셀 오주나, 지안카를로 스탠튼). 지난 시즌 팀 최고의 타자였던 크리스티안 옐리치는 기대에 다소 미치지 못하는 타격 성적을 남겼지만(wRC+ 115), 대신 중견수 수비에서 기대 이상의 모습을 선보였다.
메이저리그 포수 중 3위에 해당하는 3.8의 fWAR을 기록한 J.T. 리얼무토의 활약도 인상적이었다. 하락한 BABIP로 인해 겉으로 보이는 성적은 지난 시즌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wRC+ 109 -> 105), 타석에서의 내용 자체에는 상당한 발전이 있었다. 리얼무토는 ‘플라이볼 혁명’이라 불리는 트렌드에 맞춰 뜬공과 강한 타구의 비율을 증가시켰고, 내야 뜬공을 큰 폭으로 줄이는 동시에 더 많은 볼넷을 얻어냈다.
표: 리얼무토의 2016, 2017시즌 타격 지표
하지만 반대로 마운드 쪽에서는 중심 선수의 부재를 매섭게 실감할 수밖에 없었다. 팀 fWAR은 무려 28위(5.9)였고, 평균자책점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은 25위(4.82)였다. 선발투수들이 기록한 5.12의 평균자책점은 1993년 창단 이래 3번째로 높은 수치. 투구 내용이 좋지 못하니 많은 이닝을 소화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올 시즌 마이애미 선발진이 투구한 830.2이닝은 단축 시즌인 1994년을 제외하면 팀 역사상 가장 적은 이닝이었다.
불펜진의 부진도 예사롭지 않았다. 선발투수들의 부진이 워낙 컸기에 상대적으로 묻혔을 뿐, 불펜 평균자책점 20위(4.40), fWAR 23위(2.0)의 성적은 결코 좋다고 말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팀 역사상 3번째로 많은 26회의 블론세이브(26회)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처럼 올 시즌 마이애미의 투수진은 햇빛 아래서 녹아내리는 밀랍과도 같아서, 전혀 손을 쓸 수가 없는 수준이었다.
최고의 선수 – 지안카를로 스탠튼 (NL MVP)
시즌 성적: 0.281/0.376/0.631 59홈런 132타점 85볼넷 163삼진 bWAR 7.6 fWAR 6.9
드디어 풀린 난제, 풀 시즌 스탠튼의 홈런 개수
당연하고, 당연했고, 당연할 수밖에 없었던 결과. 리그 최고의 선수가 라인업을 지키고 있는데도 팀내 최고의 선수로 선정되지 않았다면 그것이 더 이상한 일 아닐까. 늘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렸던 스탠튼이지만, 올해는 커리어 최초로 150경기 이상에 출전하면서 건강한 시즌을 보냈다.
많은 메이저리그 팬들의 궁금증이었던 ‘건강하게 풀 시즌을 치른 스탠튼의 홈런 개수는 몇 개일까?’라는 질문에도 친절하게 59개라는 답을 내려줬다. 60홈런을 아쉽게 놓치기는 했지만, 59개의 시즌 홈런은 마이애미 구단 역사상 최다이자 메이저리그 역대 공동 9위에 해당하는 대단한 기록이다.
홈런 개수만 많은 것도 아니었다. wRC+는 전체 5위였고(156), 6.9의 fWAR 역시 공동 3위에 해당하는 수치였다. 스탠튼은 이러한 활약을 바탕으로 행크 애런 상 수상자로 선정됐으며, 2016 시즌의 마이크 트라웃에 이어 역대 7번째로 루징 팀 소속으로 MVP를 수상하는 영광을 누렸다.
만약 스탠튼이 올 시즌처럼 건강하게 남은 커리어를 보낼 수 있다면 내년부터 수령해 갈 연 2500만 달러도 생각만큼 크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내년에도 올해처럼 건강할지, 그리고 여전히 마이애미 유니폼을 입고 홈런을 쳐낼 것인지는 두고 봐야 할 문제다.
가장 발전한 선수: 마르셀 오주나
시즌 성적: 0.312/0.376/0.548 37홈런 124타점 64볼넷 144삼진 bWAR 5.8 fWAR 4.8
2008년 아마추어 드래프트를 통해 말린스의 일원으로 합류한 오주나는 마이애미의 현 주전 외야수들 중에서는 가장 적은 관심과 주목을 받았던 선수다. 마이애미 구단이 스탠튼과 13년 3억 2500만 달러의 역대 최대 규모 연장계약을 체결하는 동안에도, 그리고 옐리치와 7년 4960만 달러의 연장계약을 체결하는 동안에도 오주나의 연장계약 논의는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올 시즌 이후로는 오주나도 자신의 목소리를 확실하게 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37개의 홈런과 124개의 타점은 모두 스탠튼에 이은 팀내 2위의 기록이었고, 리그 전체로 범위를 넓혀도 각각 공동 11위, 단독 3위에 해당하는 엄청난 성적이었다. 스탠튼이 아니었다면 올 시즌 마이애미 최고의 선수는 단연 오주나의 차지가 되었을 것이다.
수비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지난해까지 좌익수를 맡았던 옐리치와 수비 위치를 바꾼 것이 그야말로 ‘신의 한 수’였다. 이전까지는 수비능력에 의문부호가 붙는 중견수였던 오주나이지만(DRS -12), 좌익수 자리로 옮겨 가서는 상당히 좋은 수비를 보여줬다(DRS +11, 500이닝 이상 좌익수 중 ML 전체 2위).
최근 2시즌 동안 꾸준하게 상승세를 이어오고 있다는 사실도 고무적이다. 리그 3년차였던 2015시즌 갑작스러운 부진에 빠졌던 오주나는 지난 시즌부터 확실하게 반등의 계기를 마련했다. 특히, 홈런 개수(10 -> 23 -> 37)와 선구안(BB/K 0.27 -> 0.37 -> 0.44)에서 모두 상승일로에 있다는 사실이 인상적이다.
표: 오주나의 2016, 2017시즌 타격 지표
불안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다. 급등한 뜬공 대비 홈런 비율과 BABIP는 올 시즌의 활약이 어느 정도는 ‘플루크’였을 수도 있다는 의심을 가능케 한다. 하지만 강한 타구의 비율도 늘어나고 있는 만큼, 우선은 조금 더 지켜보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가장 아쉬운 선수 – 첸 웨인
시즌 성적: 9경기(5선발) 33이닝 2승 1패 ERA 3.82 bWAR 0.5 fWAR 0.5
이 시절을 기대했지만…
‘형이 왜 거기서 나와?’ 첸 웨인을 보고 이 유행어를 떠올린 사람들이 제법 있을 듯싶다. 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없는 법. 마이애미 이적 후 거듭된 부상과 부진으로 존재감을 상실해버린 첸 웨인에게 대단한 성적을 바랐던 이는 아마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것보다는 잘해줘야 했고 건강해야 했다. 호세 페르난데스를 떠나보낸 마이애미 선발진의 중심을 잡아줘야 하는 선수였고, 팀내에서 가장 많은 연봉(1550만달러)을 받는 선수인 만큼 구단의 기대도 결코 작지는 않았을 것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호세 우레나가 생각보다 괜찮은 시즌을 보냈고, 댄 스트레일리에게도 솔리드한 3선발 정도의 역할을 기대해 볼 만하다. 이렇다 할 반등 요소가 없는 마이애미 선발진의 현재 구성을 감안하면 첸 웨인의 부활은 그나마 기대를 걸어볼 수 있는 부분 중 하나다. 이 세 명의 선발투수가 정상적으로 가동된다면 마이애미의 선발진은 적어도 최하위권에서는 탈출할 수 있을 것이다.
키 포인트 – 굿바이 로리아!
(일러스트=야구공작소 황규호)
마이애미는 올 한 해 동안 스타 선수 영입이나 연장계약 같은 화젯거리가 될 만한 일들을 거의 진행하지 않았다. 가을 야구를 본격적으로 노릴 정도의 전력을 갖춘 상황도 아니었다. 그렇게 마이애미는 다소 애매한 사정 속에서 한 시즌을 흘려보냈다.
대신 구단 조직의 최상층인 구단주 자리에 변화가 있었다. 부임한 지 15년째가 되던 지난 시즌, 호세 페르난데스의 죽음으로 큰 슬픔을 느낀 제프리 로리아 구단주가 마침내 구단 매각을 결정하고 만 것이다.
시즌 전부터 무성했던 소문은 8월 12일, 데릭 지터가 포함된 투자가 그룹이 12억 달러에 마이애미를 인수했다는 소식이 공표되면서 그 실체를 드러냈다. 2500만 달러를 투자했다고 알려진 지터는 구단 운영 부문을 담당하게 되었고, 투자가 그룹의 대표인 브루스 셔먼이 구단주로 취임했다.
본격적으로 마이애미의 지휘봉을 잡은 지터는 로리아의 조언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구단 인선을 통해 전임 구단주와는 다른 길을 밟을 것이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팬들에게 전했다. 말도 많았고 탈도 많았던 로리아와의 이별은 말린스의 앞날에 과연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마치며 – 그리고 아무 것도 없었다
온갖 기행을 일삼던 구단주는 사라졌지만, 그렇다고 마냥 장밋빛 미래가 기다리고 있는 상황은 아니다. 전진하기에도 후퇴하기에도 모두 애매한 것이 바로 마이애미의 현위치이기 때문이다.
이미 팀의 연봉 총액은 1억 달러를 넘었으며, 당장 내년부터 스탠튼과 첸 웨인 두 선수에게만 지불해야 할 금액이 4600만 달러에 이른다. 마이너리그의 상황도 심각하다. 팀내 유망주 중 그 누구도 MLB Pipeline이 시즌 종료 후 발표한 유망주 랭킹 TOP 100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블리처 리포트가 발표한 마이너리그 팜 랭킹에서도 마이애미의 위치는 30개 구단 중 28위가 고작이었다.
신임 CEO로 취임한 데릭 지터는 팀 페이롤을 감축하기 위해 간판 스타 스탠튼을 트레이드 시장에 내놓았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디 고든을 포함한 2:4 트레이드를 진지하게 논의하고 있다는 보도가 매스컴을 달구고 있는 가운데,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 보스턴 레드삭스도 스탠튼에 대한 강한 관심을 드러냈다고 한다. 숱한 프랜차이즈 스타들을 떠나보내야 했던 마이애미의 팬들에게 또 한 번의 아픔이 다가오고 있다.
매년 ‘스탠튼만 건강했다면…’ 을 외쳤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스탠튼이 가장 건강한 시즌을 보낸 올해의 마이애미 말린스는 아무런 성과를 올리지 못했다. 2년 만에 자신들의 투타 코어를 모두 잃어버릴 위기에 처한 마이애미. 과연 이들의 새로운 수장 지터는 어떤 해답을 내놓을 수 있을까.
기록 출처: Baseball Reference, Fangraphs, ML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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