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리즈 7차전. 2-2 동점. 15회말 1사 주자 만루. 병살타가 나오면 경기가 끝난다.
당신이 감독이고 아래 네 타자 가운데 한 명을 타석에 내보낼 수 있다면 누구를 선택하겠는가.
① 고승민
② 구자욱
③ 심우준
④ 한동희
병살타 회피가 목적이라면 43년 만에 규정타석을 채우고도 병살타를 하나도 기록하지 않은 고승민을 고르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워 보인다. 그런데 위 질문에 고승민이라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답하기에는 약간 불편했다.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다. 먼저 이 글은 고승민의 기록을 비토하기 위한 글이 아님을 분명히 한다. 43년 만에 나온 규정타석 병살타 0개 기록은 충분히 축하받을 만하다. 그 희소성 역시 존중할 가치가 크다.
다만 기록의 희소성과 그 기록을 어떻게 해석할지는 별개의 문제다.
병살타는 아무 때나 기록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타격 기록은 많을수록 좋다. 안타를 많이 치고, 홈런을 많이 치고, 볼넷을 많이 얻는 것은 좋은 일이다. 반대로 적을수록 좋은 기록도 있다. 삼진과 병살타가 대표 사례다.
병살타가 나오려면 먼저 조건을 갖춰야 한다.
무사 또는 1사여야 하고 1루 주자를 포함한 주자 상황이어야 한다. 타구도 인플레이로 이어져야 한다. 타자와 선행 주자의 주력도 결과에 영향을 준다. 타구 속도와 방향, 상대 수비 수준도 병살타 여부를 바꾼다.
타자 혼자 결정할 수 없는 외부 조건이 많다.
이런 이유로 어떤 선수의 병살타 회피 성향 혹은 능력을 평가하면 병살타 개수만으로 줄을 세우기에는 조금 아쉬움이 남는다.
이번 글에서는 무사 또는 1사, 그리고 1루 주자를 포함한 상황의 타석만 따로 떼어냈다. 이후 리그의 병살타 발생 수준을 기준으로 각 타자의 기대 병살타 수를 구했다. 선수마다 병살타 상황에 들어선 횟수가 다르므로 결과는 병살타 가능 타석 100회 기준으로 환산했다.
데이터에서 희생번트 시도 여부를 별도로 식별할 수 없어 번트 시도 타석은 별도 제외하지 않았다.
‘병살타-‘ 계산
병살타 가능 타석을 100회 기준으로 맞춘 뒤 리그 평균 수준의 기대 병살타1와 실제 병살타의 차이를 계산했다.
병살타- = 실제 병살타 – 기대 병살타
예를 들어 병살타 가능 100PA에서 기대 병살타가 10개인데 실제 병살타가 6개라면 병살타-는 -4다.
병살타-가 낮을수록 같은 기회에서 기대보다 병살타를 덜 기록했다는 뜻이다.
< 2018 ~ 2026 시즌별 병살타 가능 타석과 병살타- >
이 기준에서도 고승민의 2026년은 좋은 성과를 보였다. 하지만 가장 낮은 값은 아니었다. 심우준은 병살타 가능 100PA당 기대보다 약 8.5개의 병살타를 덜 기록했다. 고승민은 약 7.1개였다. 고승민은 병살타를 하나도 치지 않았다. 심우준은 2개를 기록했다. 그러나 병살타 기회를 100타석으로 맞추면 심우준의 병살타-가 더 낮았다.
0개라는 절대값과 같은 기회에서 얼마나 병살타를 줄였는지는 다른 문제다.
< 2026 규정타석 타자 병살타- 우수 10명 >
병살타는 인플레이에서만 나온다.
여기서 한 가지를 더 살펴볼 필요가 생긴다. 병살타는 인플레이 타구에서만 발생한다는 점이다.
병살타 가능 상황에서 삼진이나 볼넷, 홈런처럼 인플레이가 아닌 결과가 많아질수록 병살타가 발생할 수 있는 인플레이 타구의 수가 줄어든다. 극단적으로는 병살타 가능 타석에서 매번 삼진을 당하는 것만으로도 병살타 0개를 만들 수 있다.
물론 실제 야구에서 그렇게 타격하는 선수는 없다. 이 예시는 병살타가 0이라는 결과만으로 타석의 내용을 모두 설명하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한 사고실험이다.
비인플레이 결과도 내용은 서로 다르다. 볼넷과 홈런은 병살타 가능성을 없애면서 타석에서 성과를 남기지만, 삼진은 병살타 가능성을 없애는 대신 아웃 하나를 소비한다. 그래서 병살타 회피를 살펴볼 때는 전체 타석 수만 볼 게 아니라 병살타 가능 타석이 인플레이와 비인플레이로 어떻게 나뉘었는지도 함께 볼 필요가 있다.
이번 글의 초점은 병살타 회피 능력 혹은 성향이다. 이것이 실제 능력인지, 상황이 만든 결과인지, 반복되는 성향에 가까운지는 뒤에서 따로 살펴본다. 여기서는 인플레이 타구가 안타였는지 아웃이었는지 같은 타구의 성과는 논외로 하고, 비인플레이 가운데 삼진이 얼마나 차지했는지를 함께 살펴봤다.
2026년 고승민은 병살타 가능 상황에서 81타석을 소화했다. 이 가운데 58타석에서 인플레이가 나왔다. 인플레이 비율은 71.6%였다. 구자욱은 72.6%, 심우준은 73.4%였다.
세 선수의 인플레이 비율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차이는 비인플레이 타석에서 나타났다.
비인플레이 타석 가운데 삼진의 비율은 구자욱 51.4%, 심우준 66.7%, 고승민 78.3%였다.
< 2026 병살타- 우수 10명의 비인플레이 타석과 삼진 비율 >
고승민의 병살타 0개를 조금 더 자세히 보면 두 가지가 함께 보인다.
고승민은 병살타 가능 81타석에서 병살타를 하나도 기록하지 않았다. 심우준은 79타석에서 2개를 기록했지만, 기대 병살타 수준이 더 높아 100PA 기준 병살타-는 심우준이 더 낮았다.
여기에 비인플레이 타석에서 높은 삼진 비율도 따라왔다.
병살타 0개가 주는 상징성은 분명하다. 적어도 병살타라는 가장 나쁜 결과로 팀에 큰 손실을 안기지는 않았다. 하지만 0이라는 숫자 뒤의 타석까지 모두 같은 내용은 아니었다. 이 차이를 조금 더 비교하기 위해 삼진도 같은 방식으로 다시 봤다.
병살타 가능 상황의 리그 삼진율을 기준으로 기대 삼진 수를 구한 뒤 병살타-와 같은 방식으로 삼진-을 계산했다. 삼진- = 실제 삼진 – 기대 삼진이며 병살타 가능 100PA 기준으로 환산했다. 표의 K%는 비인플레이 타석을 분모로 한 값이다.
병살타-와 삼진-을 함께 놓으면 한 숫자만으로는 보이지 않던 차이가 드러난다.
< 2026 병살타- 우수 20명 + 비교대상 — 병살타- × 삼진- >
왼쪽으로 갈수록 기대보다 병살타가 적다. 아래로 갈수록 기대보다 삼진이 적다. 왼쪽 아래에 놓인 선수는 병살타와 삼진을 모두 기대보다 적게 기록했다. 처음 제시한 네 선수는 비교를 위해 빨간색으로 표시했다.
고승민은 병살타-에서 낮은 값을 기록했지만 삼진-에서는 위쪽에 놓인다. 심우준은 고승민보다 병살타-가 더 낮다.
구자욱은 병살타-에서는 두 선수보다 조금 높지만 삼진-은 더 낮다. 한동희는 병살타-는 네 선수 중 가장 높지만 삼진-은 구자욱보다도 낮다.
병살타 회피, 운인가 실력인가
이왕 여기까지 온 거 또 다른 궁금증이 생겼다. 병살타를 잘 피하는 모습은 해마다 반복될까. 2018년부터 2026년까지 여러 시즌 규정타석을 채운 선수들의 기록을 확인했다.
연속 두 시즌 모두 기록이 있는 선수-시즌 262쌍을 묶어 비교한 결과, 전년도 병살타-와 다음 해 병살타-의 피어슨 상관계수는 약 0.40이었다. 강한 상관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해마다 완전히 무작위로 바뀌는 기록 역시 아니었다.
개별 선수의 기록에서도 비슷한 모습이 보였다.
구자욱은 분석 대상 8개 시즌 모두 기대보다 병살타를 적게 기록했다. 최지훈은 7시즌, 김혜성은 6시즌 동안 같은 방향을 보였다.
반대 사례도 나왔다. 이대호는 분석 대상 5개 시즌 모두 기대보다 병살타가 많았다. 페르난데스와 한동희 역시 여러 시즌 같은 방향이 이어졌다.
병살타 회피를 전부 운으로 돌리기는 어렵다. 다만 반복성은 강하지 않았다.
병살타는 여전히 선행 주자의 주력, 상대 수비, 타구의 형태와 경기 상황에 영향을 받는다. 한 시즌의 병살타 수를 그대로 타자의 능력으로 읽기 어려운 이유다.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한국시리즈 7차전. 2-2 동점. 15회말 1사 주자 만루. 최악의 결과인 병살타를 피하면서 어떻게든 상황을 이어가야 한다.
43년 만에 규정타석을 채우고도 병살타를 하나도 기록하지 않은 고승민만이 정말 최고의 선택일까.
고승민보다 병살타 가능 100PA당 회피 성과가 좋았던 선수는 심우준이었다. 회피 성과는 조금 낮지만 비인플레이 타석에서 삼진 비율이 더 낮았던 구자욱 역시 좋은 선택지가 된다. 반면 한동희는 삼진-에서는 좋은 값을 보였지만 병살타-가 네 선수 가운데 가장 높았다.
마지막으로 누적 병살타-가 낮은 선수, 0에 가까운 선수, 높은 선수를 각각 10명씩 골라 연도별 기록을 펼쳐봤다. 아래 도표에서는 이 반복성이 선수별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났는지 확인할 수 있다.
< 2018 ~ 2026 누적 병살타- 우수·0 부근·하위 10명의 연도별 병살타-2 >
참조 = 하드힛 ( https://hardhit.ai )
야구공작소 익명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오연우, 전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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