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공작소 17시즌 리뷰] kt wiz – kt가 ‘kt’했을 뿐

(일러스트=야구공작소 최경령)

시즌 성적 – 50승 94패(10위)

[야구공작소 김경현] 성적 부진과 선수단 관리 부실의 이유로 조범현 감독과 작별한 kt는 김진욱을 2대 감독으로 선임했다. 김진욱 감독은 육성·근성·인성에 성적을 더한 4성 야구, 팬들에게 감동을 주는 야구를 천명하고 kt 2기의 시작을 알렸다. 김진욱 감독은 부임과 동시에 프런트에 ‘선물’을 요구했고, 프런트 또한 통 큰 투자를 약속하며 팬들의 마음에 불을 지폈다. 하지만 언제나처럼 그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kt는 외국인 선수 돈 로치와 조니 모넬을 제외하고는 작년과 동일한 전력으로 시즌에 돌입한다.

kt는 개막 3연전에서 SK를 스윕하며 가볍게 첫발을 내디뎠다. 4월 9일 피어밴드의 완봉승으로 창단 첫 단독 1위에 올라섰고, 개막 10경기에서 7승 3패를 거두며 팀 역사상 최고의 스타트를 끊었다. 해당 기간 팀 평균자책점은 2.35로 리그에서 압도적인 1위였다. 탄탄한 마운드를 기반으로 kt는 드디어 꼴찌를 벗어나는 듯했다. 그땐 그렇게 생각했다.

 

고난의 행군

빠던을 좋아하던 모넬은 본인이 던져버린 배트처럼 저 멀리 사라졌다. (사진 = kt wiz 제공)

하지만 시즌이 진행될수록 kt의 고질적인 문제들이 발목을 잡기 시작했다. 리그에서 가장 얇은 선수층, 리그 최악의 물 타선, 내외야 가릴 것 없는 수비 불안까지. 거기에 kt 득점의 대부분을 책임지는 박경수, 유한준, 이진영 베테랑 삼인방의 부진까지 겹치며 kt는 한도 끝도 없이 추락하기 시작했다.

kt는 6월 5승, 7월 3승, 8월 8승을 하며 단순히 꼴찌를 넘어서 또다시 100패를 걱정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팀 역사상 최초로 3선발까지 안정적으로 로테이션을 소화, 계산이 서는 선발진 운용이 가능했지만 야수진이 그들을 받쳐주지 못했다. 시즌 전 넓은 선수층이 강점으로 손꼽히던 외야는, 유한준을 제외하곤 제 몫을 해내는 이가 없어 구상이 어그러졌다. 내야는 모넬이 타율 .165로 일찌감치 낙마하고 정현과 심우준으로 구멍을 틀어막았으나 그 형세가 힘겹게 둑을 막고 있던 네덜란드 소년과 같았다.

리그 차원의 골칫거리가 된 kt는 살기 위해 몸부림을 친다. 롯데에 장시환, 김건국을 내주고 오태곤, 배제성을, NC에게는 김종민을 보내고 강장산을 영입한다. 모넬의 대체 선수로 외야수 멜 로하스 주니어를 데려오고, 마지막으로 넥센에 정대현, 서의태를 보내고 윤석민을 영입한다. 그리고 이는 신의 한수가 되었다.

 

터닝 포인트 – 로하스, 윤석민 듀오 결성

모넬의 대체 용병으로 들어온 로하스는 선임자와는 달랐다. 코치진의 조언을 무시하며 자기 방식만 고집하던 모넬과 다르게 김광림 코치의 말을 받아들였다. 그 변화는 즉각 성적으로 나타났다. 로하스는 첫 13경기에서 홈런 없이 장타율 .292에 그쳤지만, 타격폼 수정 후 13경기 4홈런 장타율 .586을 기록하며 반격의 서막을 알렸다.

윤석민도 트레이드를 통해 kt에 합류하며 김진욱 감독과 질긴 인연을 과시했다. 그는 첫 경기부터 4타수 3안타 1홈런 3타점 2득점을 기록하며 kt 타선의 든든한 선물이 되어주었다. 윤석민도 kt에 와서 개인 통산 최초로 3할 20홈런 100타점을 달성하며 커리어 하이를 기록했다.

후반기 로하스, 윤석민 주요 스탯

둘은 후반기에만 27홈런 97타점을 합작하며 전체 팀 득점의 32%를 책임졌다. 이른바 ‘로윤’ 듀오의 활약으로 전반기 압도적인 득점 꼴찌에 그쳤던 kt는 후반기 득점 6위까지 올라설 수 있었다.

이 둘은 수비에서도 kt를 바꿔놓았다. 로하스는 kt 팬들에게 수비 범위 넓은 중견수가 팀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여실히 보여주었다. 단순한 아웃 카운트가 아니라 경기의 흐름을 바꿔버리는 그의 다이빙 캐치는 그를 수원에서 제일 유명한 도미니칸, 조원동 섹시가이로 만들었다.

16년부터 꾸준히 내야의 골칫거리로 남아있던 1, 3루도 윤석민이 온 후 안정됐다. 오태곤과 번갈아 가며 1, 3루를 소화한 윤석민은 화려하진 않지만 견실한 수비로 kt의 코너를 책임졌다. 특히 윤석민은 故 앤디 마르테 이후 최초로 공수 양면에서 마이너스 스탯을 기록하지 않은 3루수가 되었다.(윤석민 3루 평균 대비 수비 득점 기여도 0.76, wRC+ 113.2)

 

시즌 MVP – 피어밴드

8승 10패 160이닝  3.04ERA 132탈삼진 WAR 5.32

01년 박석진 이후 최초로 평균자책점 1위 투수가 10승을 거두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했지만,

피어밴드는 이에 개의치 않고 팀과 팬을 먼저 생각했다.(사진 = kt wiz 제공)

17년 kt 최고의 선수는 역시 라이언 피어밴드다. 이견이 있을 리 없다. 피어밴드는 2001년 박석진, 2010년 류현진에 이어 역대 3번째 꼴찌팀 평균자책점 1위에 등극, 팀 최초의 타이틀홀더가 되었다. 실책 리그 최다 1위, DER 리그 7위 팀에서 이뤄낸 쾌거이다. 평균자책점뿐만 아니라 피안타율, 피출루율, WHIP, K/BB, QS% 등에서 리그 1위를 차지했다.

피홈런밴드, 꾸역밴드로 불리던 피어밴드. 그의 성공신화에 너클볼을 빼놓을 수 없다. kt 팬들에게 너클볼은 독특한 구종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바로 kt 초대 에이스 크리스  옥스프링의 향수 때문이다. 아버지에게 너클볼을 전수받은 피어밴드는 kt로 이적하고 장성우와 kt 코치진에게 옥스프링식 너클볼 스킬을 전수받았다. 거기에 자신만의 노하우를 섞은 결과 그의 너클볼은 상대적으로 빠르고 어느 정도 제구를 할 수 있는, R. A. 디키의 그것을 연상시키는 구질이 되었다.(피어밴드 너클볼 평균 구속 120km, zone% 46.5)

옥스프링이 은퇴한 이후, KBO리그 선발투수 중 너클볼을 던지는 선수는 피어밴드가 유일하다. 독립구단을 포함하여 여러 마이너리그팀을 전전하던 피어밴드는 한국에서도 대체 선수로 들어와 다른 대체 선수에게 밀려나며 쉽지 않은 야구 인생을 겪었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만의 무기 너클볼로 리그 최강의 투수가 되었다.

 

발전한 선수 – 투수 코어 3

고영표, 심재민, 엄상백은 감히 kt의 투수 코어 3라 불릴 만하다. 15년부터 1군에서 동고동락하던 그들의 재능은 17년 드디어 만개하기 시작했다. 고영표는 이전부터 땅볼 유도능력으로 주목받았는데 올해 선발로 완벽하게 자리 잡았다. 특유의 체인지업과 칼 같은 제구를 바탕으로 고영표는 K/BB 7.81이라는 역사적인 스탯을 기록한다. 이는 95년 선동렬, 91년 선동렬, 93년 선동렬을 제외하면 최고의 성적이다.(100이닝 이상 투구 기준) 회전근 염증으로 아쉽게 규정 이닝은 진입하지 못했지만 kt 최고의 토종 선발투수로 발돋움했다.

심재민은 세 명의 선수 중 가장 드라마틱한 성장폭을 보여줬다. 15년 솜털이 보송보송하던 애송이 투수는 16년에 제구를 잡더니 올해는 그 제구를 유지하며 탈삼진 능력까지 갖췄다.

심재민의 연도별 성적 변화

장시환 트레이드 이후 얇아진 불펜 투수진 때문에 심재민은 전반기 팀 내 불펜 투수 중 소화 이닝 1위, 출장 2위를 기록할 정도로 혹사당했다. 그 결과 전반기는 평균자책점 3.86으로 선전했지만 후반기엔 평균자책점 7.12로 무너졌다. 아쉽게도 그의 시즌 평균자책점은 5.18에 그쳤지만 관리만 해준다면 분명 더욱 좋은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엄상백은 그저 그런 속구와 체인지업으로 먹고 살던 투수였지만 올해 파이어볼러로 각성했다. 5월 3일 롯데전 갑자기 속구 평균 구속 149.1km를 기록하더니 이후로 150km에 육박하는 공을 뿌리기 시작했다. 시즌 평균 구속은 146.3km이며, 엄상백보다 빠른 속구를 뿌린 토종 투수는 장시환, 김강률, 원종현, 손승락, 김세현뿐이다.(50이닝 이상 투구 기준)

세 선수는 이제 유망주라는 껍데기를 깨고 팀의 주축으로 성장했다. 내년부터 고영표, 심재민은 선발, 엄상백은 필승조로 활약하리라 예상된다. 보기만 해도 배부른 이들의 활약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진심으로 궁금하고 기대된다.

 

아쉬움 – 야수 육성

17년 kt 저득점의 주요 원인 중 하나는 박경수, 유한준, 이진영  베테랑 삼인방의 동반 부진이다. 16년 44홈런 216타점을 합작한 셋은 올해 30홈런 148타점을 수확하는 데 그쳤다. 그나마 박경수, 유한준이 두 자릿수 홈런과 평균치에 근접한 wRC+를 기록해 체면치레나 겨우 했을 뿐이다.(박경수 96.0 유한준 105.8)

베테랑 삼인방의 부진이 득점력 하락의 직접적인 원인이라는 사실은, 그 셋이 부진에 빠졌을 때 이를 메꿀 만한 다른 선수들이 전무했다는 말이 된다. 그나마 올해는 후반기에 정현의 발견으로 수확이 아주 없진 않았다.(정현 후반기 .330 .389 .455) 오태곤 또한 통산 첫 100안타와 더불어 커리어 하이를 기록했다. 그러나 이 둘은 모두 외부 영입 선수들이다.

kt의 자체 생산 야수들은 3할 타율은 고사하고 단 한 번도 규정타석을 채워본 적도 없다. 17 심우준이 기록한 303타석이 자체생산 야수 중 최고 기록일 뿐이다. 야구는 흔히 투수놀음이라 말한다. 하지만 야구는 투타놀음이다. kt의 주전 야수는 모두 외부 영입 선수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제 1군에 진입한 지도 3년이 지났다. 앞으로도 자체생산 야수 없이 빈자리를 외부영입으로 메꾸려 한다면 몇십 년이 흘러도 빌딩은 없을 것이다.

 

마치며 – 빌딩, 빌딩, 빌딩

작년보다 3승을 덜 거두긴 했지만 kt는 아주 큰 성과를 거두었다. 드디어 내야 빌딩이 얼추 끝이 난 것이다. 부동의 2루수 박경수를 중심으로 윤석민, 오태곤, 심우준, 정현의 젊은 내야진을 꾸릴 수 있게 됐다. 포수도 안정적인 수비와 좋은 스프레이 히터의 자질을 갖춘 장성우, 강한 어깨와 한 방을 자랑하는 이해창이 버티고 있다.

무엇보다 최초로 사회면에서 익숙한 이름을 발견하는 불쾌한 경험을 하지 않았다. 연례행사였던 사장, 단장의 변화도 없다. 임종택 현 단장도 이전 단장들과 다르게 빠른 피드백을 보여주고 있다. 드디어 선수단 외적으로도 체계가 갖춰졌다.

kt는 다양한 행사를 통해 모자란 성적에도 수원에 성공적으로 뿌리를 내렸다. 워터 페스티벌은 이제 KBO리그의 대표 행사가 됐고 위즈맘 페스티벌로 가족 단위 관중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정조대왕 능행차를 비롯한 각종 수원시 행사에 응원단을 파견하여 kt의 지역적 정체성을 꾸준히 강조하고 있다. 무엇보다 지역 유소년 선수들을 꾸준히 구장에 초청해 그들에게 꿈과 희망 그리고 ‘우리’ 팀이란 생각을 심어주고 있다.

3년의 세월 동안 뿌린 씨들이 내야의 빌딩, 프런트의 체계, 연고지 정착이란 결과물로 돌아오고 있다. 이제 정말 남은 것은 성적뿐이다. 앞으로는 시구, 이벤트로만 기억되는 팀이 아니라 야구를 잘하는 팀이 될 시간이다. 신생팀이란 핑계는 지긋지긋하다. 암흑기가 앞으로도 지속된다면 겨우 붙잡은 관중마저 발길을 돌리고 말 것이다. 탈꼴찌를 위한 답은 나와 있다. 이제 공은 프런트에게 넘어갔다. 그들이 진심으로 팀을 생각한다면, 진정으로 팀을 위한다면 당장 행동해야 한다. 바로 지금이 마지노선이다.

기록 출처: STAT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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