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꿈꾸었던 야구와, 우리가 걸어온 야구
<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서영채 >
이름이 불리던 날
신인드래프트가 끝나면 선수들은 새 유니폼을 들고 사진을 찍는다. 누군가는 가장 먼저 이름이 불리고, 누군가는 몇 시간을 기다린 끝에 자신의 이름을 듣는다. 지명 순번도 다르고 기대도 다르다. 그래도 그날만큼은 모두 비슷한 방향을 바라본다.
프로야구 선수로 살아가는 것.
다만 그 안에서 그려본 미래의 모습까지 같지는 않았을 것이다. 1군 마운드에 처음 올라가는 날을 상상했을 수도 있고, 만원 관중 앞에서 자신의 응원가가 울려 퍼지는 장면을 떠올렸을 수도 있다. 국가대표 유니폼이나 골든글러브를 꿈꾼 선수도 있었을 것이다.
적어도 처음부터 백업 선수가 되거나, 2군과 1군을 오가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며 프로에 들어온 선수는 많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처음 그렸던 미래와 실제로 걸어가게 된 길 사이에는 조금씩 거리가 생긴다.
드래프트는 그래서 이상한 날이다. 미래를 가장 크게 꿈꾸는 날이면서도, 훗날 돌아보면 그 미래가 얼마나 달라질지 아무도 알 수 없는 날이다. 같은 유니폼을 들고 같은 카메라 앞에서 웃지만, 몇 년 뒤 어떤 선수는 한국시리즈 마운드에 서고 어떤 선수는 퓨처스리그에서 마지막 공을 던진다. 그리고 어떤 선수는 야구장이 아닌 곳에서 자신의 이름을 만들어간다.
그날 그렸던 미래
영화 ‘싱 어게인’의 릭도 한때 자신의 노래로 성공한 록스타를 꿈꿨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 그의 무대는 거대한 공연장이 아니라 결혼식장이 되었다.
젊은 날 꿈꾸었던 모습과는 꽤 다른 곳에 서 있다. 그렇다고 그가 음악을 그만둔 것은 아니다. 꿈꾸었던 삶과 실제로 살아온 삶 사이의 간격 속에서도 그는 계속 노래한다.
< 영화 싱 어게인, 결혼식장에서 노래하는 릭 >
그렇다면 야구에서는 어떨까.
1982년부터 2020년까지 신인드래프트에서 이름이 불린 선수는 총 2,955명이었다. 그날 각자가 그려본 미래의 모습은 달랐겠지만 자신의 이름이 불린 순간만큼은 앞으로 펼쳐질 야구를 한 번쯤 떠올려봤을 것이다.
이 가운데 선수 프로필과 연결해 이후 기록을 확인할 수 있었던 선수는 2,589명이었다. 그중 1군 데뷔 연도가 확인된 선수는 1,296명이었다.
그들이 첫 1군 기록을 남기기까지 걸린 시간은 서로 달랐다. 1,296명 가운데 1,046명(80.7%)은 지명된 해에 곧바로 1군 기록을 남겼다. 69명(5.3%)은 1년 뒤, 38명(2.9%)은 2년 뒤에 데뷔했고, 143명(11.0%)은 첫 1군 기록을 남기기까지 3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다.
< 드래프트 지명 이후 1군까지 걸린 시간 >
같은 날 프로의 문을 통과했지만, 그 뒤 선수들에게 흐른 시간의 속도까지 같지는 않았다.
그리고 우리가 흔히 화려한 커리어의 상징으로 떠올리는 개인상을 받은 선수는 더 적었다. 전체 지명자 2,955명 가운데 MVP와 신인왕, 골든글러브 등을 포함한 주요 개인상을 한 번이라도 받은 선수는 180명, 전체의 6.1%였다.
< MVP·신인왕·골든글러브 최다 수상 선수 TOP 10 >
물론 이 숫자가 선수들의 야구를 성공과 실패로 나누는 기준이 될 수는 없다. 개인상을 받지 못했다고 해서 그들이 보낸 시간이 의미를 잃는 것도 아니다.
다만 기록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한 선수의 이름이 멈추는 지점이 찾아온다. 더 이상 1군 등판도, 타석도, 새로운 시즌도 기록되지 않는 순간이다.
하지만 선수의 삶까지 그곳에서 멈추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유니폼을 벗은 뒤 야구와 전혀 다른 길을 걷고, 누군가는 다시 야구장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어떤 사람에게는 떠나온 야구가 오래도록 마음속에 남는다.
기록이 끝난 뒤에도, 야구는 그렇게 쉽게 끝나지 않았다.
야구를 떠나도 남는 것
< 전 넥센 히어로즈 이재승 >
2018년 넥센 히어로즈에 입단한 이재승은 프로에 오기 전부터 한 번 야구를 잃을 뻔했다. 고교 1학년 때 팔꿈치 수술 긴 재활을 거쳤고 3학년이 되어서야 다시 마운드에 섰다. 청룡기에서 시속 154㎞를 찍으며 기회를 잡았고 결국 프로 유니폼을 입었다.
하지만 프로에서는 어깨가 버티지 못했다. 진통제를 먹고 경기에 나설 정도로 버텼지만, 몸은 더 이상 따라주지 않았다. 2022년 스물셋의 겨울, 그는 야구를 그만두기로 했다.
그 뒤의 행선지는 야구장이 아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카메라와 노트북을 샀고 유튜브를 시작했다. 이후 마케팅과 사업을 경험했고 인도 벵갈루루의 대학으로 향하며 야구와 전혀 다른 삶을 시작했다.
그런데 새로운 삶을 살아가면서도 가끔 꿈에서는 다시 야구장에 섰다. 아무도 없는 야구장에서 혼자 공을 던졌고, 잠에서 깨면 울고 있었다고 했다. 동시에 그는 야구에 모든 것을 쏟아본 뒤 오히려 좌절이 두렵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스물셋에 끝난 선수 생활은 그렇게 그의 다음 삶을 시작하는 경험이 됐다.
아픔이 다시 쓰이는 곳
< 전 삼성 라이온즈 이정호 >
이정호의 출발은 화려했다. 고교 시절 추신수와 함께 최고 투수로 평가받았고, 2000년 삼성과 당시 고졸 최고액이었던 계약금 5억 3,000만 원에 계약했다. 입단 첫해에는 시속 157㎞를 던졌다.
그러나 그의 1군 기록은 10년 동안 46이닝, 1승에 머물렀다. 부상과 재활이 반복됐고 처음 프로에 들어올 때 받았던 기대와 기록 사이에는 큰 간격이 남았다.
은퇴 뒤 그는 그 간격을 지우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가장 아팠던 시간을 들고 다시 야구장으로 돌아왔다.
재활군 코치가 된 그는 선수들에게 부상을 숨기지 말고, 빨리 복귀하려 조급해하지 말라고 이야기했다. 자신 역시 부상을 안고 자리를 지키려 애썼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그는 선수 시절 겪은 절망이 지금의 지도자 생활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
선수 시절의 부상은 그의 기록을 멈춰 세웠다. 하지만 지도자가 된 뒤에는 바로 그 경험이 다른 선수에게 건넬 수 있는 말이 됐다.
1승으로 끝난 줄 알았던 그의 야구는 그렇게 다른 선수의 마운드에서 이어지고 있었다.
유니폼을 벗은 뒤의 마음
‘혼이 나더라도 내 야구를, 내가 하고 싶은 야구를 해보고 싶다.’ — 나승현
기록이 비슷하다고 해서 선수들이 자신의 야구를 기억하는 방식까지 비슷한 것은 아니었다.
2006년 롯데의 1차 지명을 받은 나승현은 데뷔 첫해 16세이브를 올렸지만 이후 자신의 자리를 만들지 못했다. 시간이 흐른 뒤 그가 가장 아쉬워한 것은 기록보다 ‘자신의 야구’를 해보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선수 생활 내내 투구폼을 바꾸며 정작 자신의 모습을 잃었다고 돌아봤다.
이동걸의 기억은 달랐다. 12년 동안 1군 풀타임 시즌은 한 번도 없었고 통산 등판은 84경기였다. 그래도 그는 자신의 선수 생활을 행복했다고 말했다. 프로야구 선수가 되는 것이 어린 시절의 꿈이었고, 실제로 그 꿈을 살았다.
최익성에게는 야구와 거리를 두는 시간이 필요했다. 은퇴 후 몇 년 동안 야구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사업과 방송, 연기 등 전혀 다른 세계를 경험한 뒤에야 그는 다시 야구를 바라볼 수 있었다. 선수 시절 싫어했던 ‘저니맨’이라는 별명도 시간이 흐른 뒤에는 자신의 삶을 설명하는 이름으로 받아들였다.
같은 프로야구 선수 생활도 나승현에게는 아쉬움으로, 이동걸에게는 행복으로, 최익성에게는 한동안 거리를 두어야 했던 기억으로 남았다.
결국 커리어의 의미는 경기 수나 승수만으로 정리되지 않았다. 같은 프로의 시간을 지나왔어도, 그 야구가 각자에게 남긴 마음은 달랐다.
우리가 걸어온 야구
< 영화 싱 어게인 중 >
선수의 커리어를 정리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몇 번째로 지명됐는지, 몇 경기에 나왔는지, 몇 승을 했는지, 어떤 상을 받았는지 기록을 따라가면 된다. 그렇게 보면 누구의 야구가 더 화려했는지도 비교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기록만으로는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다.
84경기를 행복이라고 기억하는 마음도, 한동안 야구를 쳐다볼 수 없었던 시간도 기록에는 남지 않는다. 아무도 없는 야구장에서 다시 공을 던지는 꿈도, 선수 시절의 아픔이 훗날 다른 선수에게 건넬 말이 되는 순간도 숫자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싱 어게인에는 같은 노래도 사람마다 다른 의미로 남는다. 야구도 어쩌면 그렇지 않을까.
드래프트에서 이름이 불렸어도 누군가에게 야구는 평생의 직업이 되었고, 누군가에게는 짧았지만 가장 뜨거웠던 시간이 됐다. 누군가에게는 떠나야 비로소 바라볼 수 있었던 기억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한 선수의 야구를 성공과 실패라는 두 갈래로만 나누기에는 그사이를 걸어온 시간이 너무 깊다. 처음 꿈꾸었던 모습에 도착하지 못했더라도 그 과정에서 보낸 시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꿈꾸었던 야구와 우리가 걸어온 야구는 다를 수 있다.
그러나 도착한 곳이 달라졌다고 해서 출발하던 날의 마음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어떤 꿈은 이루어진 모습보다, 그 꿈을 향해 걸었던 시간으로 더 오래 남는다.
참조 = 하드힛, 야구나라, 일요신문, 아주경제, 이슈메이커, OSEN
야구공작소 박태신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도상현, 정세윤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서영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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