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 연금 활성화, 이제는 고려해야 할 때
< 일러스트 야구공작소 김은빈 >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국인 메이저리거들의 연금 액수를 접해봤을 것이다. MLB 서비스 타임 10년 이상 채운 박찬호, 류현진, 추신수는 62세에 연금 수령 시 현재 환율 기준 매년 4억 원 이상 받을 수 있고 김광현, 양현종, 김현수처럼 1~2년 짧게 뛰었던 선수도 노후에 연금을 받는다.
KBO의 연금 제도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KBO 공식 사이트나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이상 KPBPA), ‘한은회’ (사단법인 한국프로야구 은퇴선수협회) 등 어느 단체 사이트를 방문해도 구체적으로 선수 연금에 대한 언급이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지 않다.
물론 올림픽, 아시안게임 대회 등 국가대표에서 성과를 이룬 선수들은 경기력 성과포상금 1이라는 체육 연금을 받지만, 이런 연금을 받는 사람의 수는 제한적이다. 이유는 2가지다. 국제 대회에서 거둔 성과를 여러 번 이뤄야 점수가 쌓이는 마일리지 형식이고 모든 선수는 국가대표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빅리그 경험자, FA 계약자, 또는 국가대표로서 성과를 이루고 연금을 받는 선수는 재정적으로 큰 걱정이 없다. 하지만 현역 시절 큰 빛을 발휘하지 못하고 유니폼을 벗은 선수들은 제2의 삶에서 생계를 위해 또다시 노력해야 한다.
이들은 프로 스포츠 선수로서 직업 수명이 아주 짧아 비교적 어린 나이에 제2의 삶을 살아야 한다. 일반인에 비해 늦게 사회에 진입한 은퇴 선수들은 불안정한 수입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KBO에서 활약한 선수들뿐만 아니라 조금이나마 발을 담갔던 선수들도 리그의 소중한 자원이다. 프로 리그 내 연금 제도는 리그와 선수의 장기적인 윈윈 생태계를 마련할 수 있는 중요한 장치다.
KBO 연금 vs MLB 연금
KBO에 연금 제도가 잘 알려졌지만, 연금 시스템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1988년 故 최동원 선수는 프로야구 초창기 시절 선수 복지의 열악함을 이유로 ‘프로야구 선수협의회’를 만들었지만, 구단과 KBO는 이에 반대했고 대신 선수회 백지화를 조건으로 연금 제도를 내세웠다. 이 제도는 연금 운용 주체와 연금 규모에 대한 논쟁으로 곧바로 시행되지 않았고 4년 후인 1992년부터 처음 시행되어 선수와 심판, 코칭스태프를 대상으로 운용해 왔다.
< KBO 연금 시스템 >
그러나 최근 시스템에 따르면 선수들이 받을 돈의 양은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1992년 첫 시행 당시 KBO와 선수는 각각 매년 168,000원씩 납입했다. 30년 이상 지난 현재 선수와 KBO는 매년 60만 원씩 10년간 납입한다. 10년을 채울 경우 원금 기준 적립액은 1,200만 원이다. 일시금은 4,000만 원, 분할 수령의 경우 월 35만 원 정도 받을 수 있다.
< 2026년 기준 MLB 서비스 타임별 62세부터 수령 시 연간 연금 액수 >
MLB 무대를 경험한 선수들은 한 시즌 경기 일수인 172일의 ¼인 43일 동안 등록되면 자동으로 연금 자격을 달성한다.
MLB에서 10년 이상 활약한 선수들은 62세까지 기다렸다가 연금 수령을 신청할 경우 연간 최대 29만 달러(약 4억 원)를 받을 수 있다. 추가로 연금은 매년 1.8% 물가상승률(COLA)을 조정받아 매년 받을 수 있는 돈이 1.8%씩 증가하게 된다. 즉, 연간 10만 달러의 연금 혜택을 받은 선수는 이듬해에 10만 1,800달러를 받을 수 있다.
MLB와 비교해 보면 KBO의 연금 시스템이 얼마나 부족한지 직접 체감할 수 있다. 연금 자격 난이도는 KBO(10년)가 MLB(43일)보다 훨씬 어려운데 받는 돈의 양은 MLB가 더 많다. 물론 MLB 무대를 밟기까지 뚫어야 하는 관문이 어렵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지만 MLB 데뷔 후 43일을 버티면 향후 노후에 대한 부담이 줄어든다.
< 한국인 메이저리거 연금 TOP 10 2 , 계산 = MLB Pension Calculator >
다음 표는 MLB에서 활약하거나 활약 중인 한국인 메이저리거들이 62세가 되면 매년 받을 연금 액수다. 이들은 이미 MLB에서 많은 연봉을 받았음에도 62세부터 연 1억 이상 연금을 받으며 노후에 풍족한 삶을 살 수 있다.
김하성이 내년에도 MLB에서 뛴다면 미래에 받을 연금 액수는 지금 예상 액수보다 더 많이 받을 것이다. 지금은 표에 없지만 2024년 이후 MLB에 진출한 이정후, 김혜성, 송성문처럼 아직 서비스 타임이 많이 채워지지 않은 선수들도 MLB에서 꾸준히 활약하면 추후 한국인 메이저리거 연금 TOP 10에 등재될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오랫동안 활약한 선수들은 물론 짧게 활약한 선수들도 챙겨주는 것이 MLB 복지의 가장 큰 특징이다.
KBO도 이제는 돈을 버는 리그
< MLB 연금 주체와 연금 재원 >
MLB 연금은 선수 노조가 운영하며 MLB 사무국의 중계권료 등 수익 일부와 각 구단의 분담금 선수들의 기여금으로 연금 재원을 충당한다.
지난 2024년 겨울 후안 소토가 뉴욕 메츠와 15년 7억 6,500만 달러의 계약을 맺으며 이제 계약 규모에서 조 단위가 보이기 시작했고, MLB 중계권료는 약 2조 7천억에 달한다. 이 중 일부를 기여금으로 충당해도 상당한 연금 재원이 쌓인다.
비록 KBO는 MLB 시장 규모를 따라가기에 무리가 있지만 연금 제도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점에서 MLB의 모델을 참고해 볼 만하다.
KBO는 2024년부터 2026년까지 3년간 지상파 3사와 연간 540억, 유 · 무선(CJ ENM 티빙)과 연간 450억으로 총 연간 990억 규모의 중계권 계약을 맺었다. 중계권료로 3년간 총 2,970억을 벌 수 있었다.
또한 2025년 11월 KBO와 기존 중계권사 티빙이 우선 협상을 타결해 2027년부터 2031년까지 5년 연장 계약을 체결하며 연간 중계권료는 900억으로 2배 올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유 · 무선 중계권료만 5년간 4,500억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올 시즌 종료 이후 재협상해야 하는 지상파 중계권료에 따라 2027년부터 연간 중계권료는 1,500억을 돌파할 가능성이 크다.
중계권료는 10개 구단에 분배하는데 중계권료로 각 구단이 벌어들일 수 있는 돈도 점점 많아질 것이다.
< 최근 5년간 10개 구단 매출 총액 3, 입장 수, 2021년은 코로나19로 인한 무관중, 관중 제한 >
2026시즌 KBO 리그의 최종 관중 수는 지난해 기록을 또 경신할 추세 4로 흘러가고 있고 매출액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구단의 매출이 늘었기 때문에 무작정 연금 재원에 돈을 쓰라는 의미는 아니다.
코로나 팬데믹이 끝난 이후 KBO 리그는 2024년부터 1,000만 관중을 처음 돌파하며 구단별 입장 수익, 팬들의 다양한 굿즈 수요 증가로 매출액이 꾸준히 증가하며 많은 돈을 벌고 있다. 하지만 선수 인건비(FA 계약, 연봉 등)와 판매 매출에 따른 매출원가 지불로 빠져나가는 비용도 무시할 수 없다.
분명한 사실은 중계권료, 우상향하는 매출액과 총관중 수는 매년 KBO 리그의 산업이 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산업이 성장하고 있으니 이를 선수 복지에 재투자해 리그 생태계 선순환을 유도하는 투자를 해보는 것도 KBO가 한 층 더 발전할 수 있는 좋은 방향이 될 수 있다.
KPGA가 보여준 선례
< KPGA와 하나은행 연금 협약 >
한국프로골프협회(KPGA)는 지난 2025년 3월 10일 하나은행과 함께 신탁 기반의 연금 제도를 도입했다. 협회, 선수, 전문가들이 연금 위원회를 운영하고 하나은행의 신탁으로 투명하고 안정적으로 관리된다.
KPGA 투어 상금의 3%를 연금 재원으로 마련하고, 이 중 3분의 2는 컷 통과(본선 진출) 연금, 3분의 1은 포인트 연금으로 사용한다. 선수의 KPGA 투어 성적에 따라 개인별로 차등 적립되고 선수들이 일정 기간 투어에 참여해야 연금 수령 자격을 취득할 수 있다. 이는 대한민국 프로스포츠 최초로 선수들의 안정적인 노후 대비를 위해 마련한 신탁 기반의 연금 제도였다.
하나은행이 KPGA 타이틀 스폰서십을 맡고 있듯이 신한은행도 2037년까지 KBO 타이틀 스폰서를 예약한 상태다.
< 신한은행과 KBO 타이틀 스폰서십 연장 계약 체결 >
지난 2018년부터 KBO의 타이틀 스폰서를 담당하는 신한은행은 작년 11월 KBO와 2037년까지 10년간 1,150억 계약 규모에 타이틀 스폰서 연장 계약을 발표했다.
신한은행은 이미 야구 연계 금융상품 출시와 같은 협업 마케팅과 유소년 야구 지원, 국가대표 공식 후원 확대와 같은 야구 발전을 위한 공헌 활동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추가로 선수 복지를 위한 신탁 기반의 연금 제도도 고려할 만하다.
비록 KPGA 연금은 개인별 성적이 차등 반영되어 KBO에 동일하게 적용할 수 없지만 KPGA와 KBO는 은행이 타이틀 스폰서를 맡는 공통점이 있다. 은행에 신탁받아 선수의 연금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는 점에 KPGA 연금은 KBO가 참고할 수 있는 모델이다.
KBO만의 연금 제도 개편안
기존 KBO 연금 시스템의 문제는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과 선수들이 긴 자격 조건(10년 납입)에 비해 상대적으로 받아 가는 돈이 부족했다는 점이다.
여기서 MLB 연금 제도를 다시 보면 자격 조건 43일은 한 시즌 경기 일수(172일)의 ¼에서 나온 값이었다. 그렇다면 왜 ¼일까? 미국의 사회보장 연금의 수령 자격은 최소 40 크레딧 5을 쌓는 것이다. 근로를 통해 1년에 최대 4 크레딧을 얻을 수 있고 10년간 세금을 내고 근로하며 40 크레딧을 채우면 연금 수령 신청이 가능하다. 또한 일반 직종과 달리 야구 선수들은 겨울에 비시즌을 보내는 계절노동 특성을 갖는다.
MLB는 미국 사회보장 연금의 시스템과 운동선수의 직업 특성을 고려해 172일을 4분기로 나눈 43일을 자격 조건으로 설정했고 10시즌을 만기로 세운 것이다.
KBO는 어떻게 설정하는 것이 좋을까? 우선 KBO 1시즌 1군 등록 기간 인정 일수인 145일의 ⅕인 29일을 1 크레딧으로 설정해 29일을 채운 선수부터 자격을 취득하는 조건을 세운다.
MLB와 달리 ⅕로 설정한 이유는 KBO 정규시즌 경기 수(144경기)가 MLB(162경기)보다 짧기 때문이다. 1시즌 완주 시 5 크레딧을 적립하고 10시즌을 뛰면 50 크레딧을 채워 만기를 채우도록 하는 시스템을 제안한다. 약 1달간 KBO 리그 1군에 버틴다면 1군과 2군을 오갔다 일찍 유니폼을 벗은 선수에게도 은퇴 후 연금을 제공할 수 있는 틀을 마련할 수 있다.
< MLB 모델을 참고한 KBO 연금 시스템 제안 >
현실적으로 MLB의 연금 액수를 KBO가 똑같이 지급할 수 없다. 시장의 규모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대신 참고할 수 있는 상한선 금액이 선수 경기력 성과 포상금이다. 상한선은 월정금 100만 원으로 10년 만기를 채운 선수들에게 월 100만 원을 상한선으로 두면 다음 표와 같은 액수가 나온다.
선수들은 모두 국민연금 대상자다. 1969년생 이후 출생자는 만 65세부터 국민연금을 받을 수 있다. 40세 초반에 은퇴한다면 65세까지 약 25년의 공백이 발생한다. 제2의 삶에서 돈을 버는 사람도 있겠지만 소득 공백기를 겪는 사람도 생길 수 있다. 따라서 이런 이유로 65세부터 연간 수령으로 기준을 설정한 것이다.
연금 재원 조성 방식도 고려해야 한다. 선수들에게 연금을 제공하기 위해선 돈을 모아야 하는데 어느 주체가 얼마나 많은 돈을 부담해야 하는지 결정하는 것도 중요한 사항이다.
< KBO 리그 연금 재원 주체 및 내용 >
KBO 사무국과 구단, 선수 노조를 주체가 되어 KBO가 그중 주연이 되어 중계권료, 스폰서십, 입장료 등 다양한 곳에서 나오는 수익 일부를 재원으로 충당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미 언급했듯이 KBO는 이제 돈을 버는 리그가 됐다. 향후 연간 1,500억 이상 될 것으로 예상되는 중계권료, 20년 장기계약을 맺은 스폰서십, 3년 연속 1,000만 관중을 돌파하며 늘어난 입장료 중 일부를 연금 재원으로 충당하기에 적합한 위치에 있다.
반면, 구단과 선수 노조는 연금 재원 주체의 조연이 되어 구단의 경우 샐러리캡 위반 시 사치세 일부를 연금 재원으로 충당하는 것, 선수 노조는 연봉과 FA 계약금의 일부를 연금 재원으로 충당하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이제는 고려해야 할 시간
프로 스포츠 선수 평균 경력 기간은 다른 직종에 비해 짧다. 실력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훌륭한 실력을 갖춘 선수는 20년 이상 뛸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선수는 1년 만에 유니폼을 벗을 수 있다.
은퇴한 야구 선수들은 제2의 삶으로 지도자, 뉴미디어, 개인 사업, 해설가, 행정가 등 여러 분야로 진출한다. 이중 재정적으로 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는 유명 선수들이 있지만 그렇지 않은 프로야구 선수 출신들도 많다.
2000년대 후반 ~ 2010년대 초반에도 그렇고 최근에도 그렇고 야구는 계속해서 대한민국 인기 스포츠였다. 차이라면 지금은 그때와 달리 KBO의 산업화로 시장에 경쟁력을 보여줄 수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산업화된 KBO 리그에서 새로운 연금 제도로 KBO에서 수많은 업적을 세웠던 선수부터 조금이라도 1군에 몸담았던 선수를 위해 선수 복지에 재투자하는 것은 어떨까?
참고 = 인천일보, 국민체육진흥공단, 한국경제, Moment Private Wealth, 뉴스브라이트,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머니투데이, MLB Pension Calculator, 월간 중앙,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야구공작소 강형주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이희원, 정세윤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김은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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