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홍기민 >
야구에도 유행이 있다. 2010년대 후반 이후 많은 투수가 하이 패스트볼을 던졌다. 2025시즌 타자들은 어뢰 배트도 휘둘렀다. 효과가 입증되면 선수들은 빠르게 따라 한다. 처음엔 소수의 선택이었던 것이 어느새 리그의 표준이 된다.
포수의 포구 자세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2025년 현재 MLB 대다수 포수는 한쪽 무릎을 땅에 댄 채 공을 받는다. ‘원 니 다운(one-knee-down)’이라 불리는 이 자세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몇몇 포수들의 실험이었다. 그러나 이제 새로운 MLB 트렌드가 되어가고 있다.
한 무릎 자세 트렌드


< Baseball Savant의 Catcher Stance Leaderboard >
MLB 포수 수비 자세 데이터는 서번트에서 2020시즌부터 제공하고 있으며 투구 시점을 기준으로 포수의 자세를 네 가지로 구분한다. 먼저 ‘both-knees-up’은 양 무릎을 모두 세우고 앉는 전통적인 포구 자세를 뜻한다.
‘both-knees-down’은 양 무릎이 모두 지면으로부터 9인치(약 23cm) 미만인 경우다. ‘left-down, right-up’과 ‘left-up, right-down’은 각각 왼쪽 또는 오른쪽 무릎이 지면에 가까운 경우를 일컫는다. 이 세 가지를 통틀어 ‘knee(s)-down’으로 분류한다.
다만 ‘both-knees-down’의 비중이 매우 낮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편의상 ‘knee-down’을 한 무릎 자세, ‘both-knees-up’을 전통 자세로 지칭한다.

< 정규시즌별 MLB 포수 한 무릎 자세 비율 >
MLB 포수들의 한 무릎 자세 비율은 최근 5년간 우상향했다. 2020시즌 24%였던 반면, 2025시즌 95%까지 치솟았다. 이젠 전통 자세로 포구 받는 포수가 손에 꼽히는 셈이다. 한 무릎 자세는 어떤 장점이 있을까?
한 무릎 자세 효과

< 정규시즌별 MLB 포수 한 무릎 자세에 따른 포수 수비 세부 지표 >
먼저 블로킹과 도루 저지 기여도, 프레이밍 같은 세부 지표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확인할 수 있다.
[블로킹] 2020~2025시즌 평균 (PB+WP1)/100 pitches
- 한 무릎 자세: 0.583
- 전통 자세: 0.550
시즌별 100구당 블로킹 실패율(PB+WP 기준)에 대한 평균은 한 무릎 자세가 전통 자세보다 근소하게 앞서있다. 2023년에 ‘피치컴(PitchCom)’이 도입돼 사인이 엇갈릴 가능성이 줄어든 영향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2020~2022년 데이터만 봐도 이야기는 같다. 블로킹 측면에선 한 무릎 자세가 전통 자세보다 다소 불리한 것이 사실이다.
[도루 저지 기여도] 2020~2025시즌 평균 Caught Stealing Runs Above Avg. per 100 attempts
- 한 무릎 자세: -1.283
- 전통 자세: 0.800
도루 저지 기여도를 나타내는 Caught Stealing Runs 수치를 기준으로 전통 자세는 100회 시도당 0.800, 한 무릎 자세는 -1.283을 기록했다. 다만 도루 저지 기여도는 시즌별 변동 폭이 큰 모습을 보였다.

< 정규시즌별 무릎 자세에 따른 도루 저지 기여도 차이 >
이를테면 2023년엔 한 무릎 자세(+0.1)가 전통 자세(-0.3)보다 나았고, 2024년엔 전통 자세(+0.8)가 한 무릎 자세(-0.6)를 앞섰다. 그리고 올해는 한 무릎 자세가 훨씬 효과적(한 무릎 +0.0/100, 전통 -0.4/100)이었다.
즉, 한 무릎 자세가 도루 저지에 있어 불리하다는 명확한 증거는 없다. 이는 포수 개인의 송구 능력, 투수의 견제 동작, 주자의 스타트 타이밍 등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프레이밍] 2020~2025시즌 평균 Called Strike on edges
- 한 무릎 자세: 48%
- 전통 자세: 45%
2020년부터 2025년까지 스트라이크존 가장자리(shadow 영역)에서 한 무릎 자세의 스트라이크 판정률은 48%로 45%인 both-knees-up 자세보다 3%P 높았다.

< 정규시즌별 MLB 포수 L/R down에 따른 Shadow존 스트라이크 판정률 >
흥미로운 점은 어느 무릎을 내리든 전통 자세인 45%를 웃도는 판정률을 기록했다.

< 2025시즌 MLB 포수 포구 자세 분포도 >
추가로 2025시즌 MLB 포수들은 약 49% 오른 무릎, 약 42% 왼 무릎을 굽혔다. 양쪽 무릎을 모두 대는 ‘both-knees-down’까지 포함하면 95%가 무릎을 땅에 대며 공을 받았다. 전통 자세는 약 5%에 불과했다.

< 2025시즌 L/R 타자에 따른 포구 자세 상세 분포도 >
그리고 우타자를 상대할 때 왼 무릎을 굽히는 것이 판정률이 우세했고, 좌타자는 비슷했다. 정리하자면 스트라이크존 가장자리에서 한 무릎 자세가 전통 자세보다 높은 스트라이크 판정률을 기록했으며 구체적으론 왼 무릎을 굽혔을 때 조금 더 좋았다.
이러한 세 가지 세부 지표를 합산해 어떤 자세가 더 효과적인지 서번트가 제공하는 Fielding Run Value(FRV)2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 정규시즌별 무릎 자세에 따른 포수 Fielding Run Value >
2020년 이후 한 무릎 자세의 FRV는 +131인 반면, 전통 자세의 FRV는 -167을 기록했다. 포구 수 차이를 보정하기 위한 FRV per 1,000 pitches(1,000구당 수비 기여도)도 2020년 이후 한 무릎 자세가 평균 +0.052점, 전통 자세는 −0.221점으로 나타났다. 한 무릎 자세는 매 시즌 1,000개의 투구마다 평균적으로 약 0.27점의 수비 가치 우위를 보인 셈이다.

< FRV / Tracked Pitches * 1,000 값을 라인 차트로 나타냈다. >
COVID-19로 인해 단축된 2020시즌을 제외하면, 한 무릎 자세는 최근 네 시즌 연속 전통 자세보다 우월했다.
지금까지 한 무릎 자세의 가치를 데이터 기반으로 설명했다. 하지만 이 자세에는 현장이 몸으로 체감하는 또 한 가지 장점이 있다. 바로 체력 비축이다.
야수 중에서 체력 소모가 가장 큰 포지션은 포수라는 점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유일하게 5kg가량의 장비를 착용하고 경기에 임한다. 그라운드에서 유일하게 쪼그려 앉는 자세를 취한다. 체력 소모가 가장 큰 포수들에게 체력 안배는 매우 중요하다.
2021년, J.T. 리얼무토가 무릎을 대는 포구 자세로 전환했을 때, 당시 필리스 감독이자 15년 경력의 포수였던 조 지라디는 “이 자세가 리얼무토의 몸에 가해지는 소모를 상당히 줄여준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한 2020~2024년 한 무릎 자세가 33%에 불과했던 반면 2025년 95%까지 오른 레이스의 대니 젠슨 역시, 올해 봄 훈련에서 몸이 덜 부담스럽다(less taxing)고 말한 바 있다.
포구 자세에 따른 누적된 신체 부담을 과학적으로 증명하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다만 포수들이 올해 예전보다 더 많이 출장했던 모습에 대한 근거로 한 무릎 자세의 유행을 얘기할 수 있을 것이다.
2022년엔 400타석을 채운 포수가 고작 9명이었다. 이는 불과 10년도 안 된 2014년의 22명에 비해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치였다. 20개 팀밖에 없었던 1967년에 기록한 8명 이래 최저치였다. 하지만 2025시즌엔 400타석을 넘기는 포수가 24명에 달했다. 한 무릎 자세에 모든 공을 돌리는 건 비약일 수 있지만, 이러한 변화에 영향을 미친 요소라는 것을 다소간 짐작할 수 있다.
결론
포수 수비도 야구의 다른 모든 영역처럼 진화한다. 오래된 이야기지만 한때 모든 포수가 서서 공을 받았고, 얼굴 보호 마스크조차 쓰지 않았다. 전통 자세와 한 무릎 자세 중 어느 쪽이 옳은지 절대적인 답은 없다.
그러나 한 무릎 자세가 MLB 시류가 된 것은 분명하다. 앞으로 경기를 지켜보며 포수가 앉는 자세를 바꾼다면 ‘힘들어서 다리 내리네’가 아닌 ‘효율적인 자세로 경기하네’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번외 – KBO에도 한 무릎 열풍이 불 수 있을까

< 250801 SSG vs 두산 경기 1회 초 무사 상황 양의지 포수의 자세(좌) / 1회 초 무사 1루 상황 양의지 포수의 자세(우) >
KBO에는 아직 포수의 포구 자세에 대한 공식 통계가 없다. 그러나 중계를 유심히 지켜보면 흥미로운 장면이 포착된다. 일부 포수들은 주자가 없을 때는 한 무릎 자세로 포구하다가, 주자가 상에 오르면 곧바로 무릎을 들고 전통 자세로 전환한다. 반대로 전통 자세에서 한 무릎 자세로 바꾸는 경우도 간혹 보인다.
앞서 살펴본바, 한 무릎 자세는 수비 효율을 높이기 위한 행위다. 프레이밍을 의식하며 블로킹 동작을 더 빠르게 가져가기 위한 선택일 수 있다. 다만 KBO는 현시점 전면 ABS가 도입된 리그이기 때문에 MLB처럼 프레이밍에서 얻는 이점은 없다. 현재 KBO 포수들이 체력 안배를 위해 자세를 바꾸는지 혹은 선수별 습관에 의해 자세를 바꾸는지 단정 지을 수 없다. 아직 완전히 한 무릎 자세를 고수하는 선수는 없지만, 이 변화를 ‘효율성’의 문제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참조 = Fangraphs, MLB.com, Baseball Savant, KBO, TVING
야구공작소 김용환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장호재, 민경훈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이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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