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한태현 >
# 서론 : ‘어뢰 배트’의 대유행
올해 메이저리그는 일명 “어뢰 배트”에 대한 화두로 뜨거웠다. 이 명칭은 기존 배트와 달리 몸통 중간 부분을 불룩하게 설계하고 끝부분으로 갈수록 얇아지도록 설계한 것이 어뢰와 비슷하다고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뉴욕 양키스가 이 배트의 덕을 톡톡히 보게 되면서 큰 화제가 됐다. 뉴욕 양키스는 3월 27일부터 30일까지 벌어진 밀워키 브루어스와의 3연전에서 총 15홈런과 40득점을 몰아치며 시리즈 싹쓸이에 성공했다. 홈런 중 60%에 해당하는 9홈런을 어뢰 배트를 사용한 선수들이 기록하면서 이 배트에 관해 관심이 커졌다.

< (아래) 표준 배트와 (위) 어뢰 배트 (출처 = 케빈 스미스 X) >
이 배트는 현재 마이애미 말린스 필드 코디네이터로 활동하고 있는 애런 린하트가 고안하여 제작됐다. 린하트는 타격 시 주로 공에 맞는 부분이 기존 배트의 스위트 스팟보다 더 안쪽에 있다는 데이터를 바탕으로, 스위트 스팟을 손잡이 쪽으로 6인치 정도 이동해 배트를 제작했다.
이러한 데이터 분석의 힘인지 어뢰 배트는 현재까지는 메이저리그 내부에서 상당한 주목을 받는다. 그렇다면 이러한 변화가 처음이었던 것일까? 대체 어떤 변화가 있기에 사용자들이 장타를 치고 있는 것일까? 이번 칼럼에서는 지난 15년간 화제가 되었던 배트 디자인에 관한 주요 시도 3가지를 살펴보고, 디자인 변화에 따른 타격 양상에 대한 약간의 분석을 진행한다.
# 화제가 된 배트 디자인들
가장 먼저 소개해 볼 배트는 컵드 배트(Cupped Bat)다. 배트의 손잡이 반대쪽 말단부를 1.25인치 지름의 반구 양으로 깎은 배트다. 기사에 따르면 선수에 따라 기존보다 스위트 스팟이 약 0.5인치 정도 손잡이 쪽으로 이동했다고 한다.
이러한 디자인은 스위트 스팟의 이동보다는 배트 회전 속력의 증가를 위한 것이며, 1975년 사용이 허가되어 토니 그윈 같은 일부 선수가 선호했다는 야구사적 기록이 존재한다. 이후 2021년 브랜든 도노반이 사용하며 화제가 되었다. 다만 시즌 초창기 화제가 되었던 것과 달리, 시즌 기록을 기준으로 했을 때 브랜든 도노반의 기록에는 유의미한 변화가 없었다.
최근 화제가 된 어뢰 배트(Torpedo Bat) 역시 컵드 배트와 비슷하게 스위트 스팟의 이동이 존재하는 배트다. 어뢰 배트는 데이터에 맞게 배트의 가장 두꺼운 지점이 약간 손잡이 쪽으로 이동하도록 배트를 볼링핀 모양으로 깎은 배트다. 기사에 따르면 선수에 따라 기존보다 스위트 스팟이 약 0.6인치 정도 손잡이 쪽으로 이동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러한 디자인은 특히 뉴욕 양키스의 재즈 치좀 주니어와 신시내티 레즈의 엘리 델 라 크루즈에게 극적인 변화를 가져다주었는데, 통산 장타율, OPS와 비교했을 때 2배 이상으로 올랐음을 알 수 있다.
스위트 스팟이 이동하는 변화는 없지만, 배트의 손잡이를 바꾼 배트도 있었다. 바로 엑스 핸들 배트(Axe Handle Bat)다. 배트의 손잡이 부분을 도끼의 손잡이와 비슷한 모양으로 깎은 배트다.
이 배트의 경우 스위트 스팟의 위치가 변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대신 그립에 안정성을 더하고 부상 위험은 떨어뜨린다. 기존 배트는 배트 손잡이 부분의 노브(Knob)가 약지 부근 손바닥에 강한 압박을 주어 타격 시 부상 원인이 될 수 있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손잡이를 도끼 손잡이와 비슷한 모양으로 만들어 손바닥 부하를 줄였다. 해당 디자인은 2009년 승인되어 2010년대에 일부 유명 선수들이 사용하며 화제가 된 바 있다.
# 다양한 시도의 공학적 분석 – 실험 조건
사실 배트 디자인을 바꾸는 시도는 하루이틀 일이 아니다. 배트의 무게를 줄이고 그립을 바꾸는 등 다양한 시도들이 있었는데, 화제가 됐던 여러 디자인들을 모아 어떤 점이 다른 것인지 보자.
해당 배트의 관성 모멘텀 변화와 더불어, 스위트 스팟에 맞았을 때 동일한 각도의 타구에 대해 타구 속력과 비거리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살펴볼 것이다. 관성 모멘텀의 감소는 회전시키는 것에 필요한 힘의 감소를 의미한다. 이는 배트에 같은 힘을 줄 때 회전하는 배트의 속도가 빨라짐을 뜻하고, 곧 비거리 증가로 이어질 것이다.
앞으로 진행할 분석의 주요 가정을 그림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어뢰 배트와 컵드 헤드 배트에 사용될 분석의 스펙 >
모든 배트가 밀도 700kg/m^3의 메이플 나무를 사용했다 가정한다. 배트 몸통이 원기둥 모양에 가깝단 것을 바탕으로 스위트 스팟의 이동을 반지름 1.5인치, 높이 5인치, 무게 0.305kg인 원기둥의 위치 변경으로 근사한다. 기존 배트의 평균 지름을 반지름 1인치로 생각한다. 배트의 길이는 34인치로 근사했다. 통상 스위트 스팟의 위치는 손잡이로부터 약 27인치 정도 지점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기존의 관성 모멘텀은 워싱턴 주립대학교 자료의 중간인 0.1646kg*m^2를 사용한다.
이 분석에서는 공기 저항을 고려하지 않으며, 기존 배트로 타격했을 때 속도는 98mph, 각도 26도라고 가정한다. 이는 배럴 타구 기준의 최소 속도, 최저 발사 각도이다. 어떤 배트를 활용해 타격하든 발사 각도는 동일할 것이라고 가정한다.
이를 바탕으로 통상적인 배트를 사용하던 선수가 새로운 디자인을 시도했을 때 얻을 효과에 대해 알아보고, 실제 선수들이 비슷한 효과를 얻었는가에 대해서도 알아보도록 하자.
# 다양한 시도의 공학적 분석 – 물리량 변화의 영향
1. 어뢰 배트 (토피도 배트, Torpedo Bat)
앞서 나온 근사를 활용하여 어뢰 배트의 물리량적인 변화를 측정해 보자. 적절한 가정을 하여 변화를 측정해 보면, 관성 모멘텀은 0.0004kg*m^2, 약 0.3% 정도 감소했다. 동일한 반발계수를 가정하면 스위트 스팟에서 공에 전달되는 에너지는 0.2% 정도 늘었다.
이는 타격 속도를 98.1 마일로 만들어 최적의 조건을 가정 시 최소 1m에서 최대 3m 정도의 비거리 증가를 일으킨다. 담장에서 잡힐 공이 담장을 넘을 정도의 비거리 증가이다. 다시 말해 데이터에 맞는 스위트 스팟의 위치 조정이 선수의 성적 향에 영향을 주었음을 시사한다.
2. 액스 핸들 배트(Axe Handle Bat)

< (좌)기존 배트를 길게 잡은 그립의 방식, (우)액스 핸들 배트 >
이 디자인은 무키 베츠, 크리스 브라이언트 등이 주로 사용했다. 특히 크리스 브라이언트는 사용 전후로 OPS가 기존 0.689에서 1.077로 약 0.4 정도의 급격한 상승을 보이는 등, 그립의 안정성 역시 선수의 타격 성적에 영향을 미쳤음을 알 수 있다.
3. 컵트 배트(Cupped Bat)
앞서 나온 가정을 활용하여 물리량의 변화를 측정해 보자.

< (좌)컵드 배트와 (우)일반 배트 >
적절한 근사를 하여 변화를 측정해 보면, 관성 모멘텀은 앞서 본 어뢰 배트와 비슷하게 0.3% 정도 감소했다. 동일한 반발계수를 가정하면 스위트 스팟에서 공에 전달되는 에너지는 0.2% 정도 늘었다. 동일한 반발계수를 가정하면 스위트 스팟에서 공에 전달되는 에너지는 앞서 나온 어뢰 배트와 비슷하게 0.2% 정도 늘었다. 이는 타격 속도를 98.98 마일로 만들어 약 3m 정도의 비거리 증가를 일으킨다.

< 어뢰 배트와 컵드 헤드 배트의 실험 결과 요약 >
이는 앞서 나온 어뢰 배트와 비슷한 결과지만, 어뢰 배트만큼의 유의미한 타격 결과 상승을 이끌지 못했다.
이는 단순히 무게를 가볍게 하기 위한 움직임이 우연히 데이터와 맞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공이 스위트 스팟에 맞도록 스위트 스팟의 위치를 조정하는 것이 단순 비거리 증가보다 성적 향상에 더 큰 영향을 주었음을 시사한다. 실제로 브랜든 도노반의 기록 역시 유의미한 상승을 부르지는 않았다.
이상의 내용은 향후 배트 디자인의 변경에서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할 점이 에너지의 변화가 아닌, 스위트 스팟에 맞는 빈도와 그랩의 안정성임을 보여준다.
컵드 배트의 사용자들에게서 유의미한 변화가 보이지 않았던 것과 달리 치좀 주니어, 델 라 크루즈, 그리고 베츠에게서 보인 변화는 향후 배트 디자인 철학이 스위트 스팟에 맞는 빈도의 증가와 그랩의 안정성에 더 집중하여야 함을 시사한다.
# 배트는 마법의 도구가 아니다
추가로 배트 디자인이 선수와 맞지 않는다면 디자인 변화는 오히려 선수의 부진을 발생시킬 수 있다. 실제로 LA 다저스의 맥스 먼시는 25시즌 초반 어뢰 배트를 사용한 후 12경기 연속 무안타로 매우 부진한 양상을 보였고, 이후 기존 배트로 교체 후 성적이 상승한 바 있다. 앞서 소개된 어뢰 배트의 개발자 린하트도 배트에 대한 급격한 관심에 우려를 표하며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타자 자신”이라는 뜻을 나타냈다.
실제로 앞서 말했듯 어뢰 배트는 여러 선수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평균을 활용해 디자인을 수정한 것인데, “평균의 함정”이라는 말이 암시하는 것처럼 선수 개개인별로, 상대하는 투수에 따라 배트의 맞는 지점 등이 달라질 수 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해 토피도 배트도 선수별 커스텀 제품을 지원한다. 하지만 선수 개개인이 상대하는 투수 상황에 따라 배트 사용성이 달라질 수 있어 단순히 배트를 바꾸는 것만으로 장타력 상승을 꾀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결국 여러 스포츠 기술이 보여주듯 중요한 것은 언제나 선수다.
# 마치며 : 창의적인 배트, KBO에서 볼 수 없는 이유
이렇듯 데이터에 기반한 새로운 디자인들은 선수에 따라 타격 생산성을 크게 증가시키는 등 혁신을 불러오고 있다. 그러나 한국프로야구에서는 상대적으로 이런 배트를 보기가 쉽지 않다.
이는 KBO의 사전 승인 방식과 연관이 있다. KBO는 개막 이전 사용할 공인 배트의 샘플을 받아 한 번만 검수하는 방식으로 프로야구 시즌 중 사용될 배트를 결정하는데, 이에 따라 이번 시즌에는 어뢰 배트를 사용할 수 없다.
이는 다른 디자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이로 인하여 앞으로도 한국 프로야구는 새로운 배트의 디자인을 도입하는 것에서 더더욱 느려질 수밖에는 없다. 적극적인 기술 도입을 위하여 1년에 1번 진행되는 인증제 방식의 개선이 조금은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참조 = https://blogs.fangraphs.com/the-physics-of-the-torpedo-bat/
야구공작소 표상훈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오연우, 전언수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한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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