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볼 프로메테우스 2편 – 공을 놓을 수 없던 투수, 조부겸

<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한태현 >

세상에는 최고의 무대에서 빛나기 위해 오늘도 땀 흘리는 어린 선수들이 있다. 그러나 모두가 그 영광을 누리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이들은 불운한 사고로 어린 나이에 거대한 역경에 맞닥뜨리며 꿈을 접어야만 한다. 그런데도 이에 굴하지 않고 끝까지 한계를 극복해 나가는 청년들이 있다. 비록 최고의 자리에 오르지 못하더라도 그들은 누구보다 더 큰 노력과 치열한 고민으로 살아가며, 누구나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한다.

이 글은 2025년 8월 10일 조부겸과 진행한 인터뷰를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

조부겸은 투수다. 하지만 지금의 그는 마운드 위에서 공을 던지지 않는다. 그는 마운드보다 몇 미터 앞에서 공을 던지며 팀의 승리를 도와주는 배팅볼 투수이기 때문이다.

 

뒤늦은 출발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도 한때는 관중이 가득 찬 야구장 마운드 위에 올라서기를 꿈꿨다. 조부겸이 정식으로 야구를 시작한 건 중학교 3학년. 보통의 한국 유소년 선수와 비교해 상당히 늦은 시점이지만, 취미로 하던 야구였음에도 충분히 소질을 갖췄기에 새로 들어간 야구부에서 주전 자리를 꿰찼다.

조부겸의 첫 번째 고비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찾아왔다. 실력의 문제가 아니었다. 한국 체육계가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문제 ‘내리갈굼’은 신생팀 신흥고에도 고스란히 수입됐다. 조부겸의 어머니는 그만둬도 좋다고 그에게 조언했지만 아버지는 조금만 버티면 좋은 날이 올 것이라고 격려했다. 그와 함께 정신적인 고통을 분담하던 동기들도 큰 버팀목이었다.

2학년 때 정식경기와 연습경기를 포함해 100이닝 넘게 던진 조부겸은 자신감이 생겼다. 3학년 때 연고지 팀 KT의 유니폼을 꿈꾸며 야구 명문 장안고로 전학을 선택했다. 그 사고가 발생하기 전까지는.

 

아직도 눈에 선한 그 장면

< 장안고 시절 조부겸 (당시 등록명 조상훈) >

고등학교 3학년, 조부겸은 병원 생활을 두 번이나 했다. 하나는 투수라면 통과의례처럼 받게 되는 팔꿈치 인대 접합수술, 소위 토미 존 수술. 그러나 그걸 받기 전 머리에 형용할 수 없는 큰 외상을 받아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었다.

전학 페널티로 인해 주말리그에서는 나가지 못했지만, 청룡기에서는 기회를 받았다. 첫 경기는 아쉬웠지만 곧바로 천안북일고와의 32강전에서 선발로 나섰다. 첫 4이닝을 노히트로 처리한 후 승리투수 요건을 채우기 위해 등판한 5회. 비록 노히트는 깨졌지만 조부겸은 이닝을 마무리하기 위해 마운드에 남아있었다.

그러나 조부겸은 그날 15번째 아웃을 잡지 못했다. 바깥쪽 빠른공을 걷어낸 타자의 타구가 그의 머리로 날아왔고, 그는 피하지 못했다. 폭탄에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고, 머리뼈가 함몰됐다.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하던 상황에서도 그는 ‘이번 이닝을 마치겠다’고 외쳤다. 하지만 바로 달려온 응급차의 사이렌에 묻혀버렸다. 뇌압이 너무 높아 으스러진 머리뼈를 곧바로 수술하지 못했고, 약물치료를 진행하며 한 달 반 동안 병상에 누워야만 했다.

조부겸은 아직도 공이 날아오는 장면이 눈에 선하다고 말했다. 배팅볼을 던지는 지금도 공이 자기 앞으로 날아올 때 그 순간이 떠오른다고 덧붙였다.

 < 입원 생활 중 (출처: 본인) >

 

새로운 삶, 새로운 생활 방식

조부겸은 기록하는 습관을 새로 시작했다. 머리에 받은 큰 충격으로 인해 단기기억에 이상이 생겼다. 그는 면회 온 사람을 까먹지 않고 보답하기 위해 날짜와 이름을 빠짐없이 적었다.

하지만 회복은 쉽지 않았다. 항생제와 같은 일반적인 약 외에도 뇌 기능 개선제와 치매 방지제 등 몸에 무리가 가는 약을 다량으로 먹어야만 했다. 잦은 피로감과 더 이상 야구를 할 수 없게 된다는 무력감은 우울증으로 이어졌다. 매일 울면서 병상 생활을 이어갔다.

드래프트와 대학 진학은 그의 것이 아니었다. 어느 팀도, 어느 학교도 미래가 불안할 수밖에 없는 조부겸을 선택하지 않았다. 하지만 병무청은 그를 선택했다. 이해가 가지 않지만, 그는 머리 부상으로는 현역 1급 판정을 받았다. 오히려 토미 존 수술을 받은 팔꿈치가 3급 판정을 받았다. 조부겸에겐 다른 선택이 없었다. 친한 동기 김교중과 함께 동반입대를 선택해 빠르게 병역을 해결한 후에 야구의 문을 다시 두들기기로 했다.

 

버릴 수 없던 야구

평생 야구만 하다가 부대에서 해보지 않았던 일을 하게 된 조부겸은 자신이 야구 외 다른 일을 할 수 없다고 느꼈다. 비록 야구계가 건강을 이유로 자신에게 퇴짜를 한 번 놨지만, 다시 건강을 되찾아 야구계에 재도전할 날을 기다렸다.

그에겐 한순간이라도 사회로 빨리 복귀할 방법이 있었다. 복무 중 신체 등급이 4급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함께 부대로 온 동기와 전우와 끝까지 함께하는 선택을 했다. 코로나19로 외출이 제한된 상황에서 그는 연병장에서 캐치볼을 하며 선수로 복귀할 미래를 차근차근히 그려갔다.

조부겸에겐 자신이 쓰러졌던 마운드란 공간은 두려운 존재였다. 하지만 그는 천성이 전사였다. 투구판에 발을 딛자 피가 끓어올랐고, 자신에게 날아오는 공의 잔상보다는 당장 내 앞에 있는 타자만 눈에 보였다. 왜 자신이 토미 존 수술 후 체계적인 재활을 진행하지 않았는지 아쉬움이 두려움보다 더 커졌다. 조부겸은 첫 등판 때 이닝을 마무리하는 삼진을 잡고 소심하게 어퍼컷한 순간을 잊지 못한다고 말했다.

< 성남 맥파이스 시절 조부겸 (출처: 본인) >

 

(조금 다른) 프로 유니폼을 입다

독립야구에서 꿈을 이루기 위해 준비했지만, 슬슬 현실적인 한계에 부딪히고 있던 조부겸. 그러던 그에게 2023년 5월 갑작스러운 프로 입단 제의가 찾아왔다. 그것도 최근 몇 년 동안 포스트시즌을 놓치지 않았던 LG 트윈스로부터.

기쁜 제안이었지만 그러나 그건 자기가 지난 십수 년 동안 생각한 것과 방향이 완전히 달랐다. 투수는 타자의 헛침을 유도하는 것이 일이지만, 앞으로 그는 타자에게 정타를 맞기 위해 공을 던져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는 꿈에 그리던 프로 유니폼을 입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조부겸에게 입사 후 한동안은 너무나 힘겨웠다. 야구를 같이한 선후배와 같은 유니폼을 입고 경기장에 출근했지만, 정작 팬 앞에서 자기가 할 수 있는 건 저 우뚝 선 마운드에 올라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재확인하며 가슴앓이하는 것밖에 없었다. 자기와 비슷한 처지인 선배 스태프 안다훈 불펜포수가 조부겸에겐 큰 버팀목이었지만, 나의 꿈은 여기서 끝났다는 생각을 완전히 떨쳐내진 못했다.

그러나 하루하루 견뎌내며 그는 배팅볼 투수로 성장했다. 어떤 선수는 경기 전 조부겸을 따로 불러 한 시간 동안 특타를 요청할 정도로 선수들이 찾는 배팅볼 투수가 됐다. 직장 내 많은 사람들과 함께 그는 어엿하게 국내 최고 인기 구단의 일원으로 팀의 우승을 향해 달려간다.

< 한국시리즈 우승 후 잠실야구장에서 (출처: 본인) >

 

이 또한 지나가리라

국내 최고의 선수들과 함께 지내며 조부겸은 입사 첫 해 우승의 기쁨을 누렸다. 그러나 조부겸은 꿈꾸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매 순간 최고의 배팅볼 투수가 되려고 노력하지만 동시에 그에겐 새로운 욕심이 생겨났다.

큰 부상 직후엔 평범한 일상을 사는 것이 삶의 목표였고, 군대에서는 다시 야구 선수가 되는 것이 목표였다. 이제는 자기가 야구계에 어떤 이바지를 할 수 있을지 끊임없이 연구하고 시선을 넓히고 있다. 전력분석이나 코치의 세계는 그가 앞으로 개척해 보고 싶은 영역이다.

그는 어려움에 부닥친 어린 선수에게 ‘힘내’ 혹은 ‘견뎌내’라는 말은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대신 자기가 어려울 때 되새겼던 말, ‘이 또한 지나갈 것이다’를 강조했다. 어떤 기쁜 일이든 힘든 일이든 시간이 모든 것을 치유해 주며, 나쁜 생각하지 않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면 언젠간 좋은 날이 온다고 믿는다.

조부겸은 자신과 같은 부상이 또다시 나오지 않기를 그 누구보다도 기원한다. 그러나 어떤 종목의 어린 선수가 선수 생명을 위협하는 부상을 당했다면, 그리고 그걸 극복할 방법을 알고 싶다면 언제든지 자기를 찾아오길 바란다. 비록 자신은 가장 힘든 시기에 누구로부터 영감을 받지 못했지만, 그는 희망의 전령이 되기를 희망한다.

 

참고 = 베이스볼코리아, LG트윈스

야구공작소 이금강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장호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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