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한 야구, 뒤처진 유니폼

<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김승희 >

야구는 진화했다. 공은 더 빨라지고 스윙은 더 정교해졌다. 선수들의 훈련과 전략은 과학과 함께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야구장도 더 커지고 더 스마트해졌다.

하지만 정작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것, 선수들의 몸을 감싸는 유니폼은 과연 어떨까? 100년 전의 야구 유니폼을 지금 선수들에게 입혀도 크게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더딘 변화를 하고 있다. 겉보기엔 로고가 커지고 색이 화려해졌지만 유니폼의 본질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다.

 

야구 유니폼의 탄생과 혁명

야구 유니폼은 1849년 뉴욕 니커보커스 선수들이 처음 입었다. 당시 복장은 파란색 양모 바지, 흰색 플란넬 셔츠, 그리고 밀짚모자였다. 특이한 점은 담요에 자주 사용하는 플란넬 소재를 사용했다는 점이다. 플란넬은 땀에 젖으면 무게가 상당해 플레이에 부정적인 영향을 줬다.

그러나 니커보커스는 유니폼 소재의 차별화로 자신들을 노동자 계층과 분리하고자 했다. 이 때문에 노동 계급의 옷으로 여겨지던 저렴하고 편안한 면 소재 옷을 기피했다. 색상도 마찬가지다. 당시 사회적 위상이 낮은 집단들이 주로 사용하던 밝은 빨간색을 기피했다.

1970년 7월 16일, 피츠버그 파이리츠는 새로운 구장 스리 리버스 스타디움의 개장에 맞춰 혁명적인 유니폼을 선보였다. 이 유니폼은 세 가지 혁신을 담았다. 단추 없는 풀오버 저지로 바뀌면서 걸리적거리는 부분이 사라지니 선수들이 팔을 더 크게 휘두르기 수월했다. 단추 라인이 사라진 전면은 하나의 캔버스가 되었다. 더 밝고 선명한 색 표현이 되는 소재에 복잡한 로고 같은 그래픽 표현이 가능해졌다.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레인보우 저지와 유사한 창의적인 디자인은 마케팅으로도 이어졌다.

< 휴스턴의 레인보우 유니폼 >

둘째는 벨트가 없는 신축성 허리 밴드 바지였다. 1960년대를 풍미하고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우완 투수 후안 마리샬이 다리를 높이 차는 동작이 훨씬 수월해졌다고 말할 정도로 선수들의 움직임을 극대화했다.

마지막은 소재였다. 기존의 무거운 플란넬 대신 나일론과 면으로 만들어진 합성 소재를 사용했다. 가볍고 통기성이 뛰어난 소재는 한여름 경기력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줬다. 비싸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드라이클리닝 없이도 세탁이 가능해졌다. 구단은 상당한 운영 비용과 시간을 절약할 수 있었다.

새로운 유니폼은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퍼졌다. 피츠버그가 새 유니폼을 선보인 지 불과 2년 반 만인 1973년 시즌 개막 시점에는 모든 구단이 유니폼을 교체했다. 거의 모든 팀이 풀오버 저지와 벨트 없는 바지를 입게 되었다.

 

결국 다시 퇴보한 야구 유니폼

하지만 혁명은 오래가지 못했다. 1990년대 야구 유니폼은 진화가 아닌 퇴보의 길을 선택했다. 기점은 시카고 화이트삭스가 기획한 Turn Back the Clock 프로모션이었다. 1917년 스타일의 유니폼을 입는 등 과거의 분위기를 연출한 이 행사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레트로 제품이 돈이 되자 다른 구단들은 앞다투어 모방하기 시작했다. 때마침 1990년대는 구단들이 모자, 유니폼 등 라이선스 상품을 대중에게 본격적으로 판매하기 시작한 시기였다. 유니폼의 영역은 대량 생산되는 패션 의류의 역할까지 확장되었다.

1991년 화이트삭스의 리브랜딩은 복고 마케팅의 결정판이었다. 팬 포커스 그룹을 통해 개발된 검은색, 은색, 흰색의 핀스트라이프 디자인은 ‘클래식하면서도 현대적인’ 모습으로 큰 호응을 얻었다. 아이스 큐브, 닥터 드레와 같은 당대 최고의 힙합 아티스트들이 착용하며 문화적 현상으로 번졌다. 결과는 놀라웠다. 화이트삭스 모자 판매량은 1990년 리그 18위에서 1991년 3위로 수직 상승했다. 생산량은 9,000개에서 544,000개로 60배 이상 증가했다.

< 시카고 화이트삭스 모자를 착용한 아이스 큐브 >

유니폼 판매가 빼어난 수익성을 보이자 디자인의 목적은 선수에서 관중석의 팬으로 이동했다. 단추형 저지는 단추를 풀어 입을 수 있어 다양한 체형의 대중들에게 패션 아이템으로서 매력적이었다. 반면 몸에 맞는 풀오버 스타일은 일부 팬들에게 파자마나 운동복 바지처럼 보인다는 인식이 있었다.

돌아온 단추 유니폼은 치명적인 결함을 안고 있었다. 가장 눈에 띄는 저지 중앙을 가로지르는 단추 라인은 가슴의 팀명을 망가뜨린다. 글자들이 어색하게 반으로 잘리거나 단어 전체가 한쪽으로 쏠려 불균형하게 보인다.

야구는 심한 마찰이 발생할 수 있는 흙바닥에서 슬라이딩을 할 때 강한 충격을 받는다.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은 선수의 가슴과 복부를 지면, 베이스와 직접 접촉하게 한다. 이때 단추는 여러 개의 압박점을 만든다. MLB는 유리 단추와 광택 있는 금속 사용을 금지하며 간접적으로 단추의 위험성을 인정한다.

 

전통과 혁신의 충돌이 만든 결과

2024년에 공개된 새 나이키-파나틱스 유니폼은 선수들과 팬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선수들은 일반화된 사이즈 때문에 옷이 몸에 맞지 않아 불편하게 느껴진다는 불만을 끊임없이 제기했다. 카를로스 에스테베스는 다른 사람의 바지를 입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불평했다.

무엇보다 논란이 된 건 얇고 투명한 바지 원단이었다. 축구, 농구에서 사용한 초경량 소재는 너무 얇고 투명해 선수들의 속옷이 그대로 드러나 이슈가 되었다. 내구성도 문제가 심각했다. 프로야구의 거친 슬라이딩과 반복 세탁을 견디기 힘들었다. 등번호와 이름 크기를 줄이면서 디자인적으로도 논란이 됐다. 트레아 터너는 비즈니스적인 부분은 이해하지만 모두가 이 유니폼을 싫어한다고 말했다.

< 재즈 치좀 유니폼 후면 (2023/2023) >

터너의 말처럼 혁신과 비용 절감을 중시하는 의류 기업의 비즈니스와 전통을 중요시하는 메이저리그 유니폼이 충돌해 생긴 문제다. 기존의 유니폼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효율과 수익을 위해 표준화, 대량 생산을 선택한 것이다.

 

다른 스포츠와 대비되는 야구 유니폼, 이제는 변화해야 할 때

여전히 야구 유니폼은 멋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다. 기능적으로 낡았다는 점이다. 현재의 야구 유니폼은 선수 중심이 아니기 때문이다. 역사적 상징성과 상품성에 갇혀 스포츠 장비로서 기능을 잃었다.

축구 유니폼은 특정 부위에 특수 메시 패널을 넣어 통기성을 극대화했다. 유니폼에 압축 원단을 통합하여 혈액 순환을 개선하고 근육의 피로를 줄여 경기력을 향상했다. GPS나 생체 정보 센서와 같은 웨어러블 기술도 탑재된다. 플라스틱병을 재활용해 만드는 등 친환경적으로 생산하기도 한다. 농구 유니폼 역시 마찬가지다.

야구도 플레이 특징에 맞게 하체, 복부에 내구성이 강화된 섬유나 포지션별 맞춤 유니폼 같은 야구에 최적화된 맞춤 유니폼이 필요하다. 유니폼은 가장 먼저 갖춰야 할 장비이자 선수와 가장 가까운 동반자다. 다른 야구 시스템들의 진화와 함께 야구만의 유니폼도 진화해야 한다.

 

참조 = Getty Images, baseballhall, MLB.com, cbsnews, nbcsports, @fuzzyfromyt

야구공작소 이동건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강상민, 도상현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김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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