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노승유 >
# 서론 : 비극의 나비효과, 울산의 풀뿌리 야구를 끝장낼 뻔하다.
지난 3월 29일 창원 NC파크에서 구장에 설치된 루버가 추락하여 관중 한 명이 사망하고 두 명이 중상을 입었다. 모두의 환호가 이어져야 할 경기장은 순식간에 비극의 현장이 되었다.
국토교통부는 정밀 안전 점검에 나섰고, NC 다이노스는 불가피하게 대체 구장을 찾아야 했다. 지난 5월 8일 NC 다이노스는 울산 문수야구장을 정밀 점검 완료 시까지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이 결정은 롯데 자이언츠의 제2 홈구장을 NC 다이노스가 사용하는 문제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거의 다뤄지지 않은 근본적인 문제가 존재했다. 울산의 사회인야구 리그는 경기장 사용 문제로 리그가 파행 운영 위기에 놓였다. 울산의 한 야구협회는 소속팀 선수들에게 지자체에 민원을 제기해달라고 요청했다. 당시 상황은 그 정도로 심각했다.
그렇다면 왜 NC 다이노스의 문수야구장 사용이 울산 사회인야구계에 이렇게 큰 파장을 일으킨 것일까? 그 답은 울산의 지역 야구 인프라와 이를 관리하는 방식에 있다.
# 울산광역시 지역 야구 인프라 분석 – 어째서 이런 문제가 발생하였는가
울산에는 지역 야구에 사용되는 주요 경기장이 다섯 곳이 있다. 장생포야구장, 중구야구장, 성암공원 야구장, 두서화랑체육공원, 그리고 유일한 전용 구장인 문수야구장이다. 문수야구장을 제외한 네 구장은 풋살장이나 축구장을 개조한 다목적 구장이다.
이는 울산의 사회인야구 인프라가 가지고 있는 야구장 규격 문제와 안전 문제를 이해하기 위한 시작점이다. 일반적으로 축구장은 FIFA 규격(105m x 68m)을 따르며, 풋살 경기장은 이보다 작은 크기로 축구장을 네 개 정도로 나누는 방식으로 구성된다.
그러나 야구장은 KBO 기준으로 91년 이후 지어진 구장에 한해 최소 거리를 91m로 규정하고 있다. 사분원에 가까운 모양으로 지어지는 야구장은 이로 인해 추가 부지가 필요하다. 하지만 울산 지역의 특성상 밀집된 도시 설계로 인해 추가 부지 구성에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같은 면적이라도 울산 지역의 야구장은 규격을 충족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규격 문제는 문수야구장, 두서화랑체육공원을 제외한 나머지 3개 구장에서 두드러진다. 이 구장들은 규격 미달로 전국체전과 같은 공식 대회를 유치할 수 없어 사회인야구 구장으로 전용하게 됐다. 활용도 대비 수익성은 낮고, 울산광역시는 야구장 인프라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를 꺼리는 실정이다.
특히 중구야구장은 설립 이후부터 시설 미비로 인한 문제가 대두됐다. 경기 중 파울볼이 경기장을 넘어가 주변 기물을 파손시키는 문제가 발생했다. 울산시설관리공단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여전히 이 문제는 지속되고 있다.

< 울산 중구야구장 >
두서화랑체육공원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이곳은 원래 축구장이다. 야구 경기가 있을 때만 야구장으로 임시 전용하여 사용 중이다. 경기 전 선수들이 직접 담장을 설치해 야구장의 형태를 갖추고 경기를 치러야 한다.
특히 우측 담장이 없어 수비 부담이 크다. 일부 팀에서는 이로 인한 부상자도 발생했다. 게다가 경기장 인근으로 KTX 선로가 지나가 의사소통에 방해가 되기도 한다. 오전 9시 기준 경기 시간대에는 약 20분 간격으로 통과하기도 한다.

< 필자가 직접 촬영한 두서화랑체육공원 경기 모습. 우측 담장이 존재하지 않는다. >
따라서 울산 내 최소한의 인프라를 갖춘 성암공원야구장, 장생포야구장, 문수야구장의 세 곳을 총 176개에 달하는 울산 사회인야구팀들이 공동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각 구 소속 야구장들은 문수야구장과 하나의 선택 구장을 골라 두 곳에서 리그전을 진행한다.
이 때문에 문수야구장 사용은 특히 중요하게 여겨진다. KBO 규격을 충족하는 울산 유일의 전용 구장으로 전국 대회를 대비할 수 있는 드문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문수야구장은 롯데의 제2 홈구장이기도 하지만, 시민을 위한 중요한 스포츠 인프라이기도 하다.
단순히 공간의 문제만이 아니다. 누가 어떤 기준으로 경기장 운영 우선순위를 정하는가? 시민의 목소리는 어떤 절차를 통해 반영되는가? 이 사태는 울산 지역 스포츠 인프라의 ‘운영 구조’가 공정하고 민주적인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는지를 묻는다. 다시 말해, 지역 스포츠 거버넌스의 문제다.
# 거버넌스란 무엇인가?
거버넌스(Governance)는 단순한 행정 관리가 아니다. 정부와 시민, 기업과 지역 단체 등 다양한 주체가 함께 참여하고 조율해 공공 결정을 만드는 과정이다.
이를 건강하게 유지하려면 참여와 투명성, 책임성과 효율성, 형평성과 법치주의가 핵심 원칙이다. 스포츠 분야도 마찬가지다. 인프라는 행정 편의가 아니다. 생활체육 참여자와 프로구단, 지역 사회가 함께 조율하며 구성돼야 한다.
문수야구장 사태는 이 원칙이 무너졌을 때 어떤 혼란이 생기는지를 보여준다. 사회인야구 참여자들은 결정 과정에서 배제됐고 절차나 기준은 공개되지 않았다. 문제가 불거졌을 때도 책임지는 주체는 없었다.
문수 야구장 일정 집중은 전체 리그 운영에 지장을 줬고 시민 체육은 프로구단에 밀려 사실상 양보를 강요당했다. 기준이 되어야 할 규정과 제도는 작동하지 않았고 임시방편 대응만 반복됐다.
이 사건은 단순한 행정 실수가 아니다. 거버넌스가 무너질 때 풀뿌리 스포츠 생태계가 얼마나 쉽게 흔들리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 울산만의 문제가 아니다 – 비수도권 지역 야구 인프라의 실태
이러한 문제는 울산만의 일이 아니다. 대전 천변 야구장은 집중호우가 올 때마다 경기장이 초토화되어 정상적인 경기 진행이 어렵다. 광주는 단 두 곳의 야구장에 의존해 리그를 운영할 정도로 인프라가 열악하다.
이상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비수도권의 지역 야구 인프라는 오랜 침체를 겪고 있다. 만약 문수구장이 아닌 다른 지역의 야구장이 대체 구장으로 선정되었더라도 유사한 문제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다.

< 대전의 천변야구장 중 하나인 갑천야구장. 지난해 8월 집중호우로 큰 피해를 입었다. >
# 결론 : 지역 스포츠 거버넌스에 대한 문제 의식
비극적인 사고의 나비효과는 단지 안전 문제를 넘어, 프로야구 중심으로 기울어진 야구 생태계 전반을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 프로야구 인기가 높아지며 곳곳에서 프로야구 11구단 창단을 논의하고 여러 지자체가 이를 유치하고자 노력하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반면 풀뿌리 야구는 여전히 안전한 경기장을 찾지 못한 채, 제대로 된 야구를 할 수 있는 환경을 찾아 전전긍긍하고 있다.
생활체육 참여자들의 절실한 목소리가 스포츠 행정 전반에 걸쳐 좀처럼 반영되지 않고 있다. 야구장 안전에 대한 민원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참여자들은 경기력, 일정, 안전 등 여러 방면에서 좌절을 겪고 있다.
지역 기반이 흔들리면 생활체육이 침체되고, 야구에 대한 관심 저하라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상황을 막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지금 즉시 스포츠 거버넌스에 대한 이해와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다른 나라들은 어떻게 이러한 인프라 문제를 극복해 나가고 있을까? 다음 글에서는 독일의 ‘페어아인(Verein)’ 문화와 일본의 사회인 야구 문화를 통해 스포츠 거버넌스 개선의 실마리를 알아보도록 하겠다.
참고 = 울산중구도시관리공단, 경상일보, 충청투데이, 무등일보, 국제스포츠협력센터
야구공작소 표상훈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천태인, 장호재, 전언수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노승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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