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김성윤 >
테니스/배드민턴 계열의 스포츠를 즐겨보는 사람들은 야구에서 타율이 3할을 넘는 타자가 드물다는 사실을 쉽사리 납득하지 못한다. 타자는 투수로부터 날아오는 공을 제자리에서 치기 때문이다. 상술한 종목의 선수들은 넓은 그라운드 전체를 쉴 새 없이 누빈다. 상대 선수와 랠리를 이어 나가는 모습과는 대조적이다. 또한 야구공이 도달하는 곳도 스트라이크 존 근처다. 앞서 언급한 종목에 비하면 공이 향하는 범위가 훨씬 좁다.
< 테니스 선수들이 랠리를 주고받는 모습. 단식 종목에 출전한 선수들은 가로 8.23m, 세로 23.77m 규격의 코트를 누비며 승부를 겨룬다.>
스피드건에 찍히는 속도도 느리다. 야구 역사상 가장 빠른 구속으로 투구돼 스피드건에 기록된 공(기네스북 기록 기준)은 아롤디스 채프먼(현 보스턴 레드삭스 소속)이 2010년 9월 14일에 던진 시속 105.8마일(약 170.3km/h)의 포심 패스트볼이다.
테니스에서는 남자 선수 기준 서브의 평균 속도가 스피드건 상 시속 120마일(약 193km/h)을 넘는다. 배드민턴에서는 스피드건 상 300km/h 이상의 스매시가 날아간다. 야구에서 투수가 던지는 공은 이에 비하면 느리다.
< 배드민턴 복식 종목으로 출전한 랑키레디 사이라즈가 점프 스매시를 시도하는 모습. 2025년 그는 스피드건 상 565km/h의 스매시를 날리며 기네스북에 자신의 이름을 남겼다. >
그런데도 상대편에게서 날아오는 공에 헛스윙하는 빈도는 야구가 상술한 종목들에 비해 명백히 높다. 배트에 공을 맞힌다 하더라도 공이 뒤로 날아가기도 한다. 공을 앞으로 보낸다 하더라도 수많은 타구가 하늘로 치솟는 뜬공이나 맥없는 땅볼이 되어 수비수에게 잡히고 안타로 연결되지 못한다.
그 결과 규정 타석을 채운 타자들 중 가장 타율이 높은 타자들조차 3할 중반 정도의 타율밖에 보여주지 못한다. 제자리에서 스트라이크 존 부근의 공만 치면 되는 타자를 이토록 좌절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그 실마리는 타자가 휘두르는 배트에서 찾을 수 있다.
< 표1. 2014년부터 2024년까지 수위타자 타이틀을 차지한 선수들의 타율 >
1. 공을 컨택하기 불리한 구조의 배트
공을 타격하면서 경기가 진행되는 스포츠는 휘두르는 도구의 폭(최대 폭 기준)이 공의 지름보다 큰 경우가 많다. 그 차이는 작게는 약 1.5배, 크게는 3배~4배 정도다.
반면 야구 배트의 폭은 공의 지름보다도 작다. 공의 지름은 약 7.3cm~7.5cm다. 반면 야구 규정상 야구 배트는 가장 두꺼운 부분이 2.61인치(약 6.6cm)를 초과할 수 없다. 이 때문에 공을 맞히기 위해서는 다른 스포츠에서 요구하는 것보다 훨씬 더 정교한 스윙이 이뤄져야 한다. 야구에서 다른 스포츠보다 높은 빈도로 헛스윙이 양산되는 이유이다.
< 표2. 종목별 배트의 폭과 공의 지름 >
2. ‘강한 임팩트’에 최적화된 대신, 극한의 컨트롤을 요구하는 배트
테니스와 배드민턴 등의 종목은 랠리를 주고받는 ‘상호작용’을 전제로 한다. 이에 따라 상대방이 치기 어려운 코스로 공을 보내야 하는 한편, 좁은 코트 안으로 타구를 보내야 하는 이중성을 지닌다.
반면 야구는 단방향의 성격을 갖는다. 상대 수비수들이 잡을 수 없는 곳으로 공을 보내야 한다. 다른 종목에서보다 타구에 강한 임팩트를 가하는 것이 매우 큰 가치를 가진다. 따라서 야구 배트는 타구에 강한 힘을 전달하기 용이한 대신 제어하기 어려운 구조로 그 형태가 정립되었다.
(1) 헤드 쪽에 집중되어 있는 무게 분포
공의 반발 계수*가 일정하다면, 배트의 무게가 무거울수록 공의 타구 속도는 증가한다. (물론 투수가 던지는 공의 구속 등 다른 조건이 동일하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야구 배트의 무게 분포는 두 가지 이유에서 강한 타구를 만들어 내는 데에 최적화되어 있다.
* 반발계수 : 두 물체가 충돌할 때, 충돌 전후 두 물체가 가까워지는/멀어지는 속도 변화의 비율을 나타내는 값
- KBO 타자들이 사용하는 야구 배트의 무게는 대개 0.85kg~0.91kg이다. 테니스/배드민턴에서 사용하는 라켓보다 무게가 훨씬 무겁다.
- 야구 배트는 회전축에 해당하는 손잡이에서 멀어질수록 폭이 크다. 즉 공을 맞히는 스위트 스팟(Sweet spot) 근방에 무게가 집중되어 있다.
한편 이러한 무게 분포로 인해 야구 배트는 회전시키는 데 여타 종목보다 훨씬 더 큰 근력이 필요하다. 물리학에는 물체를 회전시키기 위해 힘이 얼마만큼 필요한지 나타내는 척도로 관성 모멘트라는 개념이 존재한다. 물체의 관성 모멘트가 클수록, 그 물체를 특정한 각가속도*로 회전 운동시키기 위해 필요한 힘이 커진다.
야구 배트는 테니스, 배드민턴 라켓보다 훨씬 더 큰 관성 모멘트를 갖는다. 즉 회전 운동을 시키는 데 더 많은 힘이 필요하다. 당연히 컨트롤의 난이도도 높아진다. (동일한 각가속도로 회전운동시키는 것을 전제로 할 때 배드민턴 라켓의 약 20배, 테니스 라켓의 약 5배)
* 각가속도 : 물체의 회전 속도가 얼마나 빠르게 변화하는 지 나타내는 물리량.
- 야구 배트는 테니스/배드민턴 라켓보다 무겁다. 무거운 물체를 더 회전시키기 어렵다는 것은 분명하다.
- 야구 배트는 회전축인 손잡이에서 멀어질수록 무겁다. 즉 무게 중심이 헤드 쪽에 집중되어 있어 회전축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이는 관성 모멘트를 크게 하는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 표3. 스포츠 종목별 배트/라켓의 무게, 관성 모멘트 >
< 테니스 라켓(왼쪽)과 야구 배트(오른쪽)의 모습. 야구 배트는 손잡이에서 멀리 떨어진 부분에 무게 분포가 집중되어 있어 관성 모멘트가 매우 크다 >
(2) 원통 모양의 배트
동그란 공을 타격하는 종목에서 사용되는 도구는 공을 치는 면이 평평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테니스, 배드민턴, 골프, 탁구뿐 아니라 야구와 흡사하다고 알려진 크리켓 또한 평평한 면으로 공을 타격한다.
반면 야구는 원통 모양의 배트로 공을 타격한다. 동그란 단면을 갖는 물체는 평평한 단면의 물체보다 더 높은 강도와 강성*을 갖는다. 따라서 원통 모양의 배트는 평평한 배트보다 타구를 더 강하고 멀리 보낼 수 있다.
* 강성 : 물체가 외부의 힘에 얼마나 변형되는지를 나타내는 물리량. 강성이 클수록 동일한 힘이 가해졌을 때 적게 변형됨.
한편 배트의 단면이 원형이라는 것은 배트와 공이 충돌하는 지점에 따라 공이 배트로부터 힘을 받는 방향이 완전히 달라짐을 의미한다. 다른 종목에서는 헤드의 각도를 설정한 채 공을 타격하는 것과 달리, 야구에서는 공을 타격하는 지점에 따라 배트가 힘이 가해지는 방향이 달라진다. 이로 인해 야구에서는 원하는 각도로 타구를 띄우고 가라앉히거나 공에 스핀을 주는 등 타구를 컨트롤하는 난이도가 매우 높다.
< 야구공이 배트와 맞는 지점에 따라 타구의 방향과 공에 걸리는 스핀이 달라진다. 공의 밑동이 배트와 맞으면(왼쪽) 공에 백스핀*이 걸리며 지면에서 뜨는 타구가, 공의 윗부분이 맞으면(오른쪽) 탑스핀*이 걸리며 가라앉는 타구가 형성된다. >
* 백스핀 : 구기 종목에서 공의 운동 방향과 반대로 걸리는 회전을 일컫는 말. 다른 조건이 동일할 때 백스핀이 걸린 타구는 회전이 걸리진 않은 타구보다 멀리 뻗어나간다.
* 탑스핀 : 구기 종목에서 공의 운동 방향과 동일한 방향으로 걸리는 회전을 일컫는 말. 탑스핀이 걸린 타구는 회전이 걸리지 않은 타구보다 점점 가라앉는다.
앞으로 뻗는 라인드라이브 타구를 만들기 위해서는 공과 배트가 충돌하는 순간에 공과 배트의 중심이 거의 완벽하게 일치해야만 한다.
공의 밑동이 배트에 맞으면 백스핀이 걸리고 뜬공이 자주 나오는 대신, 타구가 뒤로 가거나 내야에 갇히는 뜬공이 나오는 경우가 잦다. 반면 공의 윗부분이 배트에 맞으면 타구에 탑스핀이 걸리고 땅볼이 양산된다. 야구에서 타자들이 친 타구들 중 하늘로 치솟기만 하는 뜬공이나, 맥없이 굴러가는 땅볼이나, 심지어 스윙 궤도와 반대 방향으로 날아가는 파울타구가 나오는 이유다.
결론
< 2020년대 타자들 중 가장 압도적인 타격 성적을 보여주고 있는 애런 저지. 21세기 청정 타자 중 최고의 타자라는 찬사를 듣는 그조차 타율 4할의 벽을 뚫지 못한다. >
야구에서 타격은 여타 종목들에 비해 정적인 포지션에서 한정된 영역의 공을 상대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타자는 공보다도 얇은 배트로 공을 맞히기 위해 극한의 정교함을 갖춰야 한다. 동시에 강한 임팩트에 최적화된 배트를 정확히 컨트롤하기 위해 엄청난 근력과 협응력*을 겸비해야 한다. 다른 종목과 달리 야구에서 3할 타자가 위대한 타자로 칭송받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지 않을까.
* 협응력 : 신체의 신경 기관, 운동 기관, 근육 따위가 서로 호응하며 조화롭게 움직일 수 있는 능력
참조 = tennisnerd.net, Performance versus moment of inertia of sporting implements, https://www.thetechoutlook.com, MLB.com, https://www.koreabaseball.com
야구공작소 조승택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이금강, 장호재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김성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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