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수함 투수들의 침몰

<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이혜윰 >

일명 ‘잠수함 투수’로 불리는 사이드암, 언더핸드 투수들은 특이한 투구폼과 변화무쌍한 무브먼트의 공을 자랑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들은 임창용이나 김병현 같은 특이 케이스를 제외하면 투구 메커니즘 상 오버핸드, 쓰리쿼터 투수들에 비해 평균 구속이 낮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상술한 요인들을 바탕으로 타자들을 제압하며 장기간 투수진의 한 자리를 차지해 왔다.

그러나 현대 야구에서 이들이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KBO리그 잠수함 투수들의 성적과 팀에서의 비중은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여기에 지난해 도입된 ABS는 잠수함 투수들의 부진에 결정타를 날렸다고도 한다. 그렇다면 정말 ABS 때문에 잠수함 투수들이 부진했을까? 본 글에서는 ‘잠수함 투수들의 부진에 있어 ABS의 비중’과 ‘ABS 외에 잠수함 투수들의 부진 요인을 알아보고자 한다.

 

잠수함 투수들의 고전

잠수함 투수들의 부진이 본격적으로 부각되기 시작한 시점은 2024시즌이다. 2024시즌은 타고투저 시즌으로 평가받는다. ABS가 처음 도입됐으며 공인구 반발계수 역시 전년 대비 늘어났다. 2024시즌 사이드암/언더핸드 투수들의 평균 ERA는 5.57로 스탯티즈 기준으로 KBO 출범 이래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sWAR은 10.96으로 역대 34위이다.

ABS가 하향 조정된 2025시즌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전반기까지 리그 전체 사이드암/언더핸드 투수들의 평균 ERA는 4.78로 역대 38위다. sWAR은 전반기 종료 시점에서 4.75인데 이 페이스로 잔여 경기를 모두 소화했다고 가정하면 7.77(역대 41위)에 그친다.

< 2015~2025시즌 사이드암/언더핸드 투수 평균 ERA >

< 2015~2025시즌 사이드암/언더핸드 투수 sWAR >

사이드암/언더핸드 투수들의 활약은 2021시즌 고영표를 필두로 한 선발 투수의 활약으로 고점을 찍었다. 그러나 2022시즌 전년 대비 6.53 하락한 것을 시작으로 잠수함 투수들의 입지는 급격히 줄어들었다. 2023시즌에는 최원준, 원종현, 정우영 등의 1군급 투수들이 부상 등의 사유로 크게 부진했고 다음 해에는 고영표도 부상으로 커리어 로우를 갱신했다.

자연스레 이들이 1군 투수진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하락했다. 2015~2023시즌까지 리그 전체 이닝에서 사이드암/언더핸드 투수들의 비중은 10~14% 수준에서 유지됐다. 그러나 지난해의 집단 부진으로 7.7%로 급락했으며 2025시즌에는 6%로 더 하락했다.

sWAR도 마찬가지다. 2022시즌까지는 전체 투수 sWAR에서 사이드암/언더핸드 투수의 비중은 10% 대를 유지했으나 2023시즌부터는 6.4%, 4.9%, 3.5%로 매년 입지가 줄어들고 있다. 2025시즌에는 고영표, 박명근, 최원준, 우규민, 박치국 정도만이 1군에서 뛸 만한 기량을 보여주고 있다.

 

ABS가 원인일까?

이러한 집단 부진의 주요 원인으로 당사자들은 ABS를 주로 언급했다. LG 박명근은 “사이드암 투수는 바깥쪽 스트라이크가 가장 자신 있는 코스인데 ABS는 이를 잘 잡아주지 않으니 던질 공이 없어진 느낌이었다”고 토로했다. KIA 임기영 역시 “평소 바깥쪽 낮은 곳을 많이 활용하는 스타일인데 ABS에 걸리지 않다 보니 공이 가운데로 몰리며 결과가 좋지 않았다”고 밝혔다. ABS 도입으로 스트라이크 존 바깥쪽과 낮은 쪽에 구사되는 공이 볼로 판정돼 사이드암/언더핸드 투수들이 타자와의 승부에서 어려움을 겪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잠수함 투수들은 ABS 도입 전에는 이들은 낮은 쪽에 공을 던졌을 때 확실히 이득을 보았다. 프로야구 넘버스북 2025에 따르면, 2023시즌 스트라이크존은 2024시즌보다 16.3% 작았다. 스트라이크존 아래로 벗어난 공을 잡아주는 경우가 많았고 반대로 스트라이크존 상단을 통과한 공 다수는 볼로 판정받았다. 

그 결과 스트라이크존은 아래로 치우쳐진 약간의 타원형 모양이 되었다. 그러나 ABS 도입으로 스트라이크 존이 완전한 사각형 모양이 되며 스트라이크로 잡아주던 공들이 볼로 판정받게 되었다. 그렇다면 과연 이들의 부진은 ABS가 결정적이었던 것일까? 데이터의 대답은 투수들의 생각과 달랐다.

< 표1. 2023~2025시즌 사이드암/언더핸드 투수들의 투구 결과 >

표1의 2023~2025시즌 사이드암/언더핸드 투수들의 투구 결과를 보면 2024시즌은 2023시즌 대비 루킹 스트라이크의 비율이 1.2%P 하락했다. 반면 헛스윙률은 올라 CSW%1와 전체 투구 대비 스트라이크 비율은 오히려 상승했다.(물론 각각 0.2%P, 0.5%P 상승으로 변동폭이 크진 않다.)

그 결과 삼진율은 올랐고 볼넷률은 줄어들었다. 루킹 삼진은 24.9%로 최근 10시즌 중 가장 높았다. ABS가 사이드암/언더핸드 투수들의 부진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면 루킹 스트라이크가 줄어들었으니 삼진은 줄고 볼넷은 늘어나야 한다. 실제 결과는 반대였다.

2025시즌을 앞두고 KBO는 ABS 높이를 하향 조정했다. 이는 낮은 존을 주로 공략하는 사이드암/언더핸드 투수들에게는 호재라 할 수 있다. 하향 조정한 결과는 어땠을까? 전년 대비 CSW%은 소폭 상승했다. 그러나 볼넷률도 함께 올랐고 루킹 삼진은 20.3%로 지난해와 반대로 최근 10시즌 중 가장 낮았다. 즉, ABS의 도입이 사이드암/언더핸드 투수들의 투구 결과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보기 힘든 것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해 봤을 때 이들의 부진 원인을 ABS만으로 설명하는 것은 무리다. 상술했듯이 ABS가 도입되기 전부터 사이드암/언더핸드 투수들의 성적은 하락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2024시즌의 집단 부진은 이전부터 진행되어 온 잠수함 침몰의 일부였을 뿐이다.

 

잠수함 투수들의 근본적인 한계

ABS보다는 현대 야구 흐름에서 잠수함 투수들의 한계가 보다 명확한 답일 것이다.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은 단연 ‘느린 패스트볼 구속’이다. 사이드암/언더핸드는 투구 메커니즘 상 오버핸드/쓰리쿼터에 비해 구속 측면에서는 경쟁력이 떨어진다.

더 빠르고 더 강한 공을 던지려는 최근 야구의 흐름에서는 불리할 수밖에 없다. 2025시즌 사이드암/언더핸드 투수들의 전년 대비 포심 패스트볼 평균 구속이 3.6km/h나 증가했다. 그러나 여전히 리그 평균(145.9km/h)과 오버핸드 투수들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물론 구속 증가를 위한 노력도 있었다. 한 예로 두산의 최원준은 2025시즌을 앞두고 미국 트레드 애슬레틱스를 찾아 구속 증가를 위해 팔 각도를 높였다. 그 결과 지난해 137.4km/h에 그쳤던 최원준의 포심 패스트볼 평균 구속은 7월 8일 기준 142.3km/h를 기록했다. 올해 중계에 표출되는 구속의 측정 장비가 PTS에서 트랙맨으로 바뀐 걸 감안한다면 약 2~3km/h 정도 증가했다. LG 정우영 등도 비시즌 미국으로 건너가 구속과 구위 회복을 위한 훈련에 매진했다.

< 2015~2025시즌 좌/우 오버핸드와 사이드암/언더핸드 투수 포심 패스트볼 평균 구속 >

이들의 낮은 포심 패스트볼 구속은 장타를 노리고 타구를 띄우려는 요즘 타자들을 상대하는 데도 위험하다. 일반적으로 사이드암/언더핸드 투수들은 땅볼 유도에 주력하는 편이다. 타자들이 장타와 강한 타구 생산에 집중하는 흐름에서는 인플레이 타구가 발생하는 것 자체가 위험하다.

메이저리그에서는 타자들이 장타를 위해 공을 퍼올리기 시작하자 투수들은 강력한 하이 패스트볼로 헛스윙을 유도하는 것으로 응수했다. KBO 리그 역시 매 시즌 타자들이 타구를 외야로 띄우는 비중이 증가하고 있으며 그에 따라 헛스윙률도 늘어나는 추세다.

< 2023/2024~2025시즌 사이드암/언더핸드 투수 구역별 포심 구사율 >

투수들도 이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사이드암/언더핸드 투수들의 하이 패스트볼 구사는 ABS 도입 이후로 상당히 늘어났다. 상술했듯이 잠수함 투수들은 존에서 벗어난 낮은 공을 스트라이크로 판정받는 나름의 혜택을 누려왔다. 그러나 ABS 도입 이후 낮은 존에 대한 수혜가 사라졌다. 결국 느린 패스트볼의 위력을 살리기 위해선 하이 패스트볼을 던져야 했다. 구속이 낮더라도 패스트볼을 높게 던지는 것이 그나마 더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 표2. 2023~2025시즌 잠수함 투수 및 리그 평균 헛스윙률, 피안타율, 피장타율 >

그럼에도 사정은 딱히 나아지지 않았다. 전체 투구에서 리그 평균보다 헛스윙률이 낮았고 장타도 더 많이 허용했다. 패스트볼 자체 성적도 그리 좋지 않았다. 2024시즌 포심 패스트볼의 피안타율은 0.349로 전년 대비 0.045나 상승했다. 포심 패스트볼을 높게 던지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하이 패스트볼도 타자들이 상대할수록 눈에 익기 마련인데 사이드암/언더핸드 투수들은 구속 면에서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 ABS 도입 전후 사이드암/언더핸드 투수 구역별 체인지업 구사율 >

변화구에도 문제가 있었다. 상술했듯이 ABS가 도입되면서 주로 던지던 스트라이크존 낮은 쪽과 좌우 보더라인에서 더 이상 이점을 볼 수 없게 됐다. 패스트볼뿐만 아니라 변화구의 로케이션 조정도 필요해진 것이다. 이들이 주로 구사했던 체인지업과 슬라이더를 살펴보겠다.

체인지업은 ABS가 도입된 후로는 이전보다 더 낮게 투구되는 경향이 나타났다. ABS 높이가 하향 조정된 2025시즌에는 스트라이크존 하단에 투구된 체인지업이 전년 대비 약 9%P 증가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스트라이크존 한복판에 몰리는 체인지업도 함께 증가했다는 것이다. 

이는 피장타 증가로 이어졌다. 2023시즌 0.354였던 체인지업의 피장타율은 2024시즌 0.521로 폭증했다. 가운데로 투구된 체인지업의 구사율도 2024시즌 5.1%로 상당히 늘었다. 그 결과 좌타자의 사이드암/언더핸드 투수 상대 OPS도 0.869로 급상승했다. 잠수함 투수들이 좌타자 상대 시 체인지업을 주로 사용하는 것을 고려하면 가운데로 몰린 체인지업 증가가 좌타자와의 승부를 어렵게 만들었을 가능성이 높다.

< ABS 도입 전후 사이드암/언더핸드 투수 구역별 슬라이더 구사율 >

슬라이더는 보더라인으로의 구사 비중이 줄어든 반면, 바깥쪽 낮은 코스로의 투구가 증가했다. 잠수함 투수들이 던지는 슬라이더는 우타자 기준 바깥쪽으로 크게 휘어져 나가는 무브먼트를 가진다. 그러나 ABS 도입 이후 스트라이크존 좌우 폭이 좁아져 보더라인에서 루킹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기 어려워졌다. 이에 타자들이 가장 대처하기 어려워하는 바깥쪽 낮은 코스에 슬라이더를 던져 헛스윙 유도를 노린 것으로 보인다.

다만 슬라이더를 더 낮게, 더 바깥쪽으로 던지는 전략은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우타자 상대 슬라이더 헛스윙율은 2023시즌 26.7%, 2024시즌 28.9%, 2025시즌 26.6%로 큰 변동이 발생하지 않았다.

위에서 보이듯 잠수함 투수들은 바깥쪽 낮은 코스에 슬라이더를 자주 던져왔다. 본래도 많이 던지는 코스에 구사 비율을 더 늘린다면, 아무리 좋은 슬라이더를 던져도 타자에게 읽힐 가능성은 높아지기 마련이다. 실제로 2024시즌 우타자 슬라이더 스윙률은 49%로 전년 대비 4%P 올랐지만 2025시즌에는 1.7%P 하락했다. 반면 슬라이더 피안타율은 2023시즌 0.278에서 2024시즌 0.289, 2025시즌 0.342로 큰 폭으로 상승하고 있다.

타자의 스윙을 유도하지 못한다면 볼 카운트가 불리해져 상술한 임기영의 경우처럼 존 안에서 승부하다 공략당할 위험도 배제할 수 없다. 구속에서 경쟁력이 떨어지는 언더핸드/사이드암 투수들은 더더욱 그렇다.

< 2015~2025시즌 리그 전체 타석/이닝 중 좌타자/잠수함 투수 비중 >

또 하나 악재는 리그에서 점점 좌타자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1982년 프로야구가 출범할 당시 리그 전체 타석에서 좌타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13.6%였다. 리그에서 좌타자의 비중은 1984년 21.8%, 1989년 31%, 2015년 40.1%를 차례대로 돌파하며 꾸준히 증가해 왔다. 2015년 처음으로 40%를 넘긴 뒤 2022년 49.4%로 정점을 찍었다. 고교야구에서도 2000년대 후반부터 좌타자 편중 현상이 관찰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흐름은 태생적으로 좌타자에게 약한 사이드암/언더핸드 투수들에게는 꽤 치명적이다. 앞서 리그 전체 이닝에서 사이드암/언더핸드 투수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줄어든다고 언급한 바 있다. 위 그래프에서 보이듯이 리그에서 좌타자의 비중이 증가하는 동안 사이드암/언더핸드 투수들의 비중은 감소했다. 이는 좌타자에 약한 잠수함 투수들의 태생적인 한계가 반영됐을 가능성이 크다.

 

결론

사이드암/언더핸드 투수들의 시대는 저물고 있는 것일까. ABS 도입, 낮은 구속의 한계, 좌타자의 증가 등 복합적인 요소들이 이들의 입지를 압박하고 있다. 이는 사이드암/언더핸드 투수들과 현대 야구의 흐름이 어긋나고 있음을 내포한다.

2024년 프리미어 12 대만전에서 류중일 당시 감독은 생소함을 이유로 언더핸드 투수 고영표를 선발로 낙점했다. 그리고 대만전에서 고영표는 2피홈런을 허용하며 대만의 좌타자들을 제압하지 못했다. 더 이상 생소함이 투수들의 생존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신호다. 

다수의 투수들은 패스트볼 구속 증가와 새로운 변화구 개발 등에 매진하고 있다. 그 목적은 바로 생존이다. 메이저리그 투수들은 하이 패스트볼이 한계에 봉착하자 싱커를 다시 던지며 돌파구를 마련했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타일러 로저스는 슬라이더를 높게 던져 기량이 만개했다. 잠수함 투수에게도 해법은 있을 수 있다. 사이드암/언더핸드 투수들 또한 살아남기 위해선 변화와 새로운 도전이 필요한 시점이다.

 

참조 = 스탯티즈, 네이버 스포츠, 프로야구 넘버스북 2025

야구공작소 조승화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조광은, 전언수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이혜윰

ⓒ야구공작소. 출처 표기 없는 무단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상업적 사용은 별도 문의 바랍니다.

  1. CSW% : 콜 스트라이크 + 헛스윙 비율

1 Comment

  1. 키움 이강준 선수 같이 빠른공을 던질수있는 사이드암 투수 들도 활약하면 더 선전할수도 있을것같아요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