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홍기민>
지난해 KBO리그는 1,088만 관중을 동원하는 엄청난 흥행 시즌을 보냈다. 이는 한국 프로스포츠 사상 최초로 1,000만 관중을 달성한 것으로 한국 최고의 인기 스포츠는 야구임을 입증했다.
하지만 야구의 형제뻘인 베이스볼 5는 사정이 다르다. 베이스볼 5는 기존 야구의 룰과 장비 등을 많이 간소화한 길거리 주먹야구’다. 전반적으로 야구 및 소프트볼의 룰에 기반을 두되 장비와 룰이 간소화된 형태로, 매우 빠르고 생동감 넘치는 공격과 수비를 펼치는 종목이라 할 수 있다.
베이스볼 5는 인프라와 낮은 인지도 탓에 프로야구 흥행 열기와는 무관해 보인다. 2023년에 ‘주먹 쥐고 국가대표’라는 예능 프로그램이 방영됐지만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했다.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이하 KBSA)가 2021년부터 여러 대회 개최를 통해 베이스볼 5 알리고 있지만, 사실상 야구에만 올인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선수들은 한 단계 성장하기 위해 오늘도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지만 꿈을 향해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갈 뿐이다. KBO 리그가 43번째 대장정에 돌입한 3월 말, 필자는 한국 베이스볼 5의 현주소를 짚어보기 위해 김상겸, 김요섭, 김용욱, 이지예 선수를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베이스볼 5와의 첫 만남
이들과 베이스볼 5의 첫 만남은 각자 달랐다. 김상겸, 김요섭과 김용욱은 학교를 통해 베이스볼 5를 접했다. 문현고등학교 출신 김요섭은 학교에서 개최된 베이스볼 5 강습회에 참여한 것이 첫 만남이었다. 김상겸과 김용욱은 선생님의 권유로 각각 국가대표 선발전과 대한체육회장기 대회를 준비했던 것이 계기가 됐다. 소프트볼 선수인 이지예는 KBSA의 국가대표 선발 공문을 통해 베이스볼 5를 처음 접했다고 밝혔다.
첫 만남은 각자 달랐지만 베이스볼 5의 매력에 빠졌다는 것은 같았다. 그렇게 시작한 선수 생활에서 이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고 있다. 이들은 지난해 대한체육회장기, 평화통일배 대회 등의 국내대회에 출장해 우승 혹은 준우승이라는 성과를 올렸다. 특히 태극마크를 꿈꿨던 김요섭과 이지예는 2023년 말레이시아에서 개최된 청소년 아시안컵 대회에 출전해 한국 대표팀이 3위에 오르는 데 힘을 보탰다. 김상겸 역시 여러 국제대회에 출전하여 대표팀에 힘을 보탰다.

<사진 출처 = WBSC Youtube>
선수들이 느끼는 한국 베이스볼 5
“갈 길이 멉니다”
선수들이 인터뷰에서 가장 자주 사용했던 말 중 하나다. 프로야구의 인기와 달리 여전히 마이너의 영역에 머무는 베이스볼 5의 현실을 가장 잘 함축하기도 한다. 각자의 목소리와 표현은 달랐지만 베이스볼 5의 현실에 대한 막막함은 똑같이 묻어나왔다.
선수들이 공통적으로 아쉬움을 토로했던 부분은 단연 ‘선수 수급과 경기 환경’이었다. 일단 선수 수급 자체가 어려워 정식 팀 수 또한 한 손에 꼽을 정도다. 협회에 정식으로 등록된 팀들 또한 8명을 온전히 채우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대회마다 매번 같은 팀, 같은 선수를 만나게 되는 것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했다.

<사진 출처 = WBSC>
경기 환경 또한 문제다. 우선 국내에는 정식 경기장이 없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훈련이나 경기는 초/중/고등학교의 체육관을 대관해 진행하며 테이프로 임시 구장과 베이스를 만들어야 하는 현실이다. ‘play everywhere’라는 취지를 살려 주차장이나 길거리에서 연습을 해본 적도 있지만, 경기를 진행할 만한 장소를 구하기는 쉽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김용욱은 “주로 실내에서 훈련과 경기가 진행되다 보니 사람들이 오가면서 경기를 지켜볼 기회가 없다. 하지만 시도대항전 및 국제 대회와 마찬가지로 미디어로 송출하고 있기에 이를 알린다면 홍보가 되지 않을까 싶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이외에도 경기 수 자체도 적어 대회를 빠른 진행을 위해 선수들이 하루에 여러 경기를 뛰게 되는 경우도 잦다고 한다. 이로 인한 선수들의 피로도와 부상 문제도 우려된다. 비단 선수뿐만 아니라 전문 심판이 없어서 야구나 소프트볼 심판이 겸임하는 실정이다. 대회 개최지에 대한 아쉬움도 있었다. 이지예는 “지금까지 대회가 대부분 강원도에서만 개최되었는데 수도권 지역에서도 진행됐다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을 것이다”라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베이스볼 5의 핵심 모토는 ‘누구나, 어디에서든, 공 하나를 가지고 연령 상관없이 야구를 즐길 수 있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관건은 인지도다
선수들이 인터뷰에서 가장 강조한 것은 ‘종목의 인지도를 끌어올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소프트볼 역시 선수 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베이스볼 5와는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소프트볼 선수로도 활동 중인 이지예는 베이스볼 5는 신생 종목이기에 아직 인지도가 낮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고 김요섭과 김용욱 역시 아직 도입 초기 단계임을 강조했다.
현재 세계랭킹 1, 2위인 일본, 대만과 6위인 한국의 차이 역시 인지도와 관심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했다. 일본의 경우, 다수의 고등학교에서 베이스볼 5 팀을 창단해 대회를 개최하고 있으며 대만 역시 한국에 비해 베이스볼 5에 대한 관심도가 높다. 그 결과, 좋은 실력을 갖춘 선수가 발굴되고 인프라 면에서도 한국과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홍보라고 입을 모았다. 베이스볼 5는 한국에는 2019년 무렵에 도입됐는데 직후 발생한 코로나19로 인해 초기에 제대로 된 홍보가 이뤄지지 못했다. 이에 김요섭은 “신생 종목인 만큼 홍보가 중요한데 엘리트 체제보다는 생활체육 방향으로 홍보가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을 개진했다. 김상겸은 “인스타그램 릴스에 베이스볼 5가 노출되며 사람들의 호기심을 유발시키는 것은 긍정적이다”라며 SNS를 통한 홍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사진 출처 = WBSC>
어린 학생들을 위주로 베이스볼 5를 교육하며 인지도를 높여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베이스볼 5 강사로도 활동 중인 김용욱은 티볼을 예로 들며 학교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티볼이 학교 교육을 기반으로 국내에서 활성화됐다며 “현재 인천교육청에서 초등학교를 대상으로 베이스볼5 수업을 시작했고 학교에서의 교육이 활성화되고 있는 만큼 약 3~4년 뒤에는 더 많은 선수들이 배출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선 각 시도 교육청의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세계 무대를 넘어선 꿈
선수들은 오늘도 구슬땀을 흘리며 보이지 않는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 선수들은 공통적으로 국제 무대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이 목표이다. 김요섭은 베이스볼 5 강국인 일본, 쿠바 등 다른 나라의 선수들과 교류하며 베이스볼 5를 더 공부할 예정이다. 김용욱도 해외 선수들과 교류하며 태극마크를 꿈꾸고 있다. 이지예와 김상겸은 개인 기량을 좀 더 갈고 닦아 국제무대에서 금빛 활약을 하고자 한다.
이들의 꿈은 한국 대표팀이 아시안컵, 월드컵, 올림픽 등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꿈의 종착지는 자신들이 거둔 국제대회 성적을 바탕으로 한국에서 베이스볼 5를 널리 알리는 것이다. 이들의 시선은 개인 성적을 넘어서 종목 전체를 향하고 있다. 지난 3월 14일 한국 U-18 베이스볼5 대표팀은 아시안컵에서 3위에 올라 멕시코에서 열리는 유스 베이스볼5 월드컵 출전권을 획득했다. 여전히 많은 주목은 받지 못하고 있지만 이들의 꿈은 다른 선수들과 함께 현재 진행 중이다.
마치며
프로야구의 전성시대에 베이스볼 5는 앞으로 어떤 길을 걷게 될까? 프로야구와 같은 배를 타고 오버그라운드의 영역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아니면 프로야구에 가려져 언더그라운드에 머물까?
이러한 질문에 답하기 이전에 한국 베이스볼 5가 해결해야 할 과제는 산적해 있다. 최소한의 경기 환경과 인프라가 조성되어야 하며 저출산 시대에 선수 수급 또한 매우 중요한 문제다. 그리고 이 같은 문제들의 근본적인 원인인 종목 자체의 낮은 인지도를 끌어올리기 위한 홍보 역시 필수라고 할 수 있다.
지난해 4월 서울에서 개최된 제2회 SA 베이스볼 5 아시안컵 당시 올림픽 공원 평화의 광장에 특설 경기장이 설치된 바 있다. 비록 정식 경기장 도입으로 이어지지 않았지만, 특별한 모멘텀이 있다면 한국에도 베이스볼 5를 위한 인프라를 확보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라고 생각된다. 이를 위한 협회 혹은 지자체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단기간에 가시적인 결과를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그렇기에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 국내에서 베이스볼 5 활성화에 대한 진지한 고찰과 지원 등이 필수적이다. 야구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 베이스볼 5가 한국에서 많은 이의 박수를 받을 날을 기대해 본다.
참고 = WBSC, KBSA
야구공작소 조승화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이금강, 전언수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홍기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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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체육시간에 많이 해야 인지도가 오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