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김범수 >
이전 시리즈에서는 KBO의 사랑의 골든글러브와 일본 프로야구(이하 NPB)의 ‘골든 스피릿상’을 통해, 한국과 일본 야구가 사회공헌 활동을 어떻게 장려하고 평가해 왔는지를 살펴봤다.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선수에게 주어졌던 ‘사랑의 골든글러브’는 의미 있는 상이었지만, 아쉽게도 2021년을 끝으로 별다른 설명 없이 폐지됐다. 반면 일본의 골든 스피릿상은 지금도 꾸준히 시상되고 선수들의 사회적 책임과 공헌 활동을 적극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이번 시리즈에서는 일본 프로야구가 사회공헌 활동을 어떻게 장려하고 표창하는지, 그리고 왜 사회공헌 활동을 적극적으로 알리는 것이 중요한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기부 압박 말고, 사회공헌 환경부터
최근 한 미디어에서 프로야구 선수들이 사회적 기부에 매우 소극적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고액 연봉을 받는 선수들이 기부에 인색하고, 팬들의 사랑을 받는 만큼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이러한 시각은 몇 가지 중요한 문제를 간과하고 있다.
우선 기부와 사회공헌 활동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가치관과 신념에 따른 자발적 선택이다. 사회적 책임이 중요해도 특정 직업군에 기부를 강요하거나, 하지 않는다고 비난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선수들이 흘린 땀과 노력의 대가는 선수와 가족을 위한 것이다. 기부는 선택이지 의무가 아니다.
더 큰 문제는 사회공헌의 책임을 전적으로 선수 개인에게 돌리는 구조적 한계다. 앞선 칼럼들에서 소개했듯 일본 프로야구는 사회공헌을 선수 개인의 선의에만 맡기지 않는다. 각 구단이 연고지 주민과 함께하는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선수들은 자연스럽게 참여한다. 또한 NPB는 골든 스피릿상을 통해 사회공헌 활동을 평가하고 보상하는 공식 제도도 갖추고 있다.
반면 KBO는 2021년 사랑의 골든글러브 폐지 이후 사회공헌 활동을 장려하거나 조명하는 공식 시스템조차 사라졌다. 사회공헌 활동을 지속할 동기와 환경을 마련해주지 않은 채, 그 책임을 선수 개인에게만 떠넘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또한 ‘보도될 만한 기부’만 가치 있다고 여기는 인식은 사회공헌 문화를 왜곡한다. 보도 여부와 관계없이 꾸준히 이어지는 선행들도 충분히 가치 있다. 오히려 이런 활동들이 건강한 사회공헌 문화를 만들어가는 중요한 밑거름이 된다. 기부와 언론 노출을 동일시하는 접근은 사회공헌의 본질을 흐리게 만든다.
결국 프로야구 선수들의 사회공헌 문화가 자리 잡지 못한 이유는 선수 개인의 이기심 때문이 아니다. 리그 차원의 제도 부재, 구단의 무관심, 언론의 선정적 보도 관행, 팬들의 인식 부족이 맞물린 결과다. 기부는 비난과 강요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구단, 리그, 팬, 언론이 함께 사회공헌을 자연스러운 문화로 자리 잡게 하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먼저다. 정말 필요한 질문은 ‘프로야구 스타들은 왜 기부에 인색할까’가 아니라 ‘한국 프로야구는 왜 사회공헌 문화를 만들지 못했을까’다.
<KBO 구단들의 대표적인 연말 사회공헌활동인 연탄 나눔 후원>
니혼햄 파이터즈, 사회공헌은 ‘알리는 것까지가 책임’
니혼햄 파이터즈(이하 니혼햄)의 사회공헌 활동은 단순한 봉사활동이나 이벤트를 넘어 구단 핵심 철학인 ‘Sports Community(스포츠 커뮤니티)’ 개념으로 자리 잡았다.
니혼햄은 2004년 연고지를 홋카이도로 옮긴 직후부터 ‘스포츠와 생활이 가까이 있는 커뮤니티’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구단은 스포츠를 통해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지역사회에 활력을 불어넣는 활동을 꾸준히 이어왔다.
홋카이도는 일본에서도 면적이 넓고 인구 밀도가 낮은 지역이다. 수도권처럼 야구팬층이 두텁지 않다. 그 속에서 구단은 존재감을 알리고 지역과 함께 성장하기 위해 선수들이 직접 지역을 찾아가 주민들과 교류하고 다양한 스포츠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연고지 밀착 활동을 펼쳐왔다.
니혼햄은 단순한 사회공헌을 넘어 스포츠 진흥, 환경 보호, 지역사회 문제 해결 등 폭넓은 분야에서 선수와 팬이 함께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해 왔다. 이러한 활동들은 구단 공식 홈페이지와 연례보고서를 통해 투명하게 공개되며, 누구나 그 과정과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
니혼햄은 선수와 구단의 선한 영향력이 지역사회에 긍정적으로 확산되도록 노력한다. 이를 위해 사회공헌 활동을 적극적으로 실천하고 알리며, 팬들과 함께 그 가치를 나누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이러한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 구단의 철학이다.
구단은 단순히 좋은 일을 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사회공헌 활동의 과정과 의미를 기록하고 공개해, 구단·선수·팬이 함께 만들어가는 문화로 발전시켰다. 이를 통해 사회공헌 활동은 널리 알릴 때 더 큰 의미와 가치를 갖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니혼햄 파이터즈의 사회공헌활동 브랜드 Sports Community>
한신 타이거즈의 팀 철학이 된 사회공헌 활동
일본 프로야구 구단들의 공식 홈페이지에는 매 시즌 선수들의 사회공헌 활동을 정리한 페이지가 있다. 봉사활동, 지역 프로그램, 재난 구호 및 기부 내역까지 투명하게 공개해 구단과 선수들이 사회에 어떤 기여를 했는지 팬들과 공유한다.
이러한 기록은 단순한 홍보가 아니다. 구단이 선수의 선행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행위이며, 동시에 선수의 가치 실천을 알리는 역할도 한다. 또한, 후배 선수들에게 사회공헌의 의미와 가치를 자연스럽게 학습할 수 있도록 돕는 교육 자료가 된다.
일본 구단들은 사회공헌을 일회성 이벤트로 끝내지 않는다. 구단-선수-팬이 함께 만들어가는 지속 가능한 문화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활동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공식 기록으로 남긴다. 이런 구조 덕분에 일본에서는 선수 개인이 사회적 책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환경이 조성돼 있다.
한신 타이거스(이하 한신)는 2011년부터 팀 차원의 사회공헌 문화 정착을 위해 ‘와카바야시 다다시상’을 제정했다. 와카바야시 다다시는 성적을 넘어 어린이 야구 보급, 지역사회 봉사, 팬 서비스에 앞장서며 일본 야구의 사회공헌 문화를 개척한 선구자다. 한신은 그 뜻을 기려 매년 꾸준히 사회공헌과 팬서비스 활동에 앞장선 선수를 선정해 시상한다. 코치진과 프런트 직원도 대상이 되는 별도의 특별상도 마련했다.
이 상은 단순히 선행을 표창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구단이 공식적으로 사회공헌 활동을 기록하고 선수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시스템으로 자리 잡았다.
<2024년 와카바야시상을 수상한 이와자키 스구루>
도리타니 다카시가 전하는 사회공헌활동을 ‘알리는 것’의 중요성
한신의 레전드 도리타니 다카시 역시 현역 시절부터 사회공헌 활동에 앞장섰다. 2015년 시작한 ‘RED BIRD 프로젝트’를 통해 아시아 각국 아이들에게 글러브와 운동화를 기부하고, 현지에서 아이들과 야구하며 꿈과 희망을 전하는 활동을 이어왔다.
도리타니는 사회공헌이 프로야구 선수로서 당연한 책임이라고 말한다. 팬들의 사랑으로 성장한 선수라면, 그 사랑을 사회에 돌려주는 것이 진정한 프로의 길이라는 것이다.
특히 그는 ‘알리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아무리 좋은 활동도, 알리지 않으면 이어지기 어렵다. 실제로 그는 HEROs AWARD1 수상을 통해 활동이 널리 알려지면서, 더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낸 경험이 있다.
“선수들이 어떤 활동을 하고, 어떤 생각으로 사회공헌에 참여하는지 알리면, 팬들도 공감하고 함께할 수 있다. 이런 선순환 구조가 스포츠의 사회적 가치를 키우는 길이다.”
도리타니는 사회공헌 활동이 선수 자신에게도 큰 의미를 준다고 말한다.
“병원에서 만난 아이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더 노력하게 되고, 완치된 아이가 야구장을 찾았을 때의 감동은 그 어떤 경기보다 더 깊이 남았다. 사회공헌은 팬과 사회를 위한 일이면서, 결국 선수 자신도 성장시키는 과정이다. 더 많은 후배들이 이런 경험을 하길 바란다.”
<2017년도에 RED BIRD 프로젝트로 HEROs AWARD를 수상한 토리타니 타카시>
니혼햄의 Sports Comuunity, 한신의 와카바야시 다다시상, 그리고 도리타니 타카시가 강조한 ‘사회공헌을 알리는 것의 중요성’이 보여주는 핵심은 하나다. 바로 사회공헌을 개인의 선행이 아닌 모두가 함께 만들어가는 문화로 자리 잡게 하는 것이다.
사회공헌은 일부 선수들의 선의에만 맡길 일이 아니다. 구단-리그-팬이 함께 참여하고 선수들의 활동은 공식적으로 기록·공개해 팬들과 공유해야 한다. 좋은 일은 숨기지 말고 알려야 더 큰 의미를 가진다. 알려질 때 더 많은 공감과 참여를 이끌어낸다. 스포츠의 사회적 영향력도 함께 커진다. 사회공헌 활동은 선수 개인의 일이 아니라 한국 프로야구 전체가 함께 만들어가야 할 문화인 것이다.
참고 = 주간조선, 한신 타이거즈, NPB 야구의 전당 박물관, RED BIRD 프로젝트, 일본재단, 두산베어스, 착한 자본의 탄생(김경식 저), Gratton, Chris; Preuss, Holger (2008). ISO26000(국제표준화기구 사회적 책임 표준), etc.
야구공작소 천태인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강상민, 야구공작소 전언수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김범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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