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2022년 8월 24일
참석자: 이진하, 정준영(장충고), 이주민, 이승주, 이은서, 이재성, 최준혁(야구공작소)
“미래는 예전의 미래가 아니다”라는 요기 베라의 명언이 있다. 미래라는 것은 그 자리에 멈춰 있는 것이 아니다. 어제와 오늘의 나로 인해 미래는 바뀌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예측 불가능한 미래의 특성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쉽게 자신의 목표를 포기하곤 한다.
하지만 서울 중구에 위치한 장충고등학교의 야구부원 이진하, 정준영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인터뷰 중 어떤 선수가 되고 싶냐는 질문에 ‘노력’이라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노력하고 노력하여 프로에서도 팬들에게 노력하는 성실한 선수로 보여지기를 원했다. 동시에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그들은 고등학생답지 않은 야구에 대한 풍부한 생각을 보여줬다.
한편 고교야구선수는 아직 학생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서로에 대해 귀여움을 느낄 정도로 어린 고등학생의 순수함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었다. 여담으로, 필자는 우연히 인터뷰 장소였던 장충고등학교 운동장에 다소 이른 시간에 도착했다. 잠시 운동장을 헤메던 필자는 우연히 장충고등학교의 교사들을 만날 수 있었다. 장충고등학교를 방문한 이유를 묻던 그들은 이후 이진하에게 ‘진하’라는 친근한 칭호로 지칭하며 최근에 봤다는 식으로 말을 걸며 도움을 주려고 했다. 교사들에게 역시 고교야구 선수들은 야구선수 이전에 학생이었다.
그래서인지 이날 인터뷰는 진지한 이야기와 더불어 솔직담백한 이야기도 함께했다. 야구와 일상에 관한 이야기 모두에서 말이다.
이진하, 정준영와의 커플 인터뷰
이진하는 영남중학교를 졸업하고 2020년 장충고에 입학했다. 그 해 허리 수술을 받고 1년을 쉬었지만, 2021년 돌아와 23이닝 동안 단 4자책점만을 내주는 팀의 에이스로 발돋움했다. 올해는 25.2이닝 동안 단 2자책점만을 기록했다. 탈삼진 또한 37개로 작년보다 한 층 더 발전한 구위를 선보였다. 올해 마지막 등판이었던 전주고와의 경기에서는 패전을 안았다. 그러나 황준서, 육선엽에 이어 구원 등판해 5.2이닝동안 삼진 10개를 잡아내며 호투했다.
정준영은 고등학교 1학년 시기부터 항상 3할을 뛰어넘는 타율을 유지해 온 교타자다. 여기에 매년 도루 10개 내외를 기록하는 빠른 발과 빼어난 야구 센스로 상대팀 수비진을 흔드는 데도 능하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된 올해는 홈런도 4개를 기록하는 등 장타력까지 갖춘 선수가 됐다. 타격 못지 않게 뛰어난 수비능력도 그의 매력 포인트이다. 176cm의 작은 키임에도 눈에 띄게 두꺼운 허벅지와 진중한 인터뷰 태도는 그의 야구에 대한 열정을 보여줬다.
간단한 자기소개와 3행시로 운을 띄운 뒤, 가벼운 분위기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Q: 야구선수로서 야구가 가장 재밌었을 때?
이진하: 고등학교 2학년 때가 가장 재밌었다. 1학년 때 허리 수술을 받고 재활하고 있었는데, 뒤, 2학년 때부터 많은 기회를 잘 잡아서 잘 던져 재밌었다.
정준영: 1번타자이다 보니 1회 첫 타석이 가장 재밌다. 내가 잘해야 경기 초반 분위기가 살아나는데 그런 분위기를 즐기는 것이 재밌다.
‘야구가 가장 재밌던 순간’라는 질문에 단순히 과거의 한 순간을 뽑을 줄 알았다. 그런데 정준영은 ‘1회 첫 타석’을 꼽았다. 본인이 주인공이 돼 맞이하는 야구의 시작을 야구가 가장 재밌을 때라고 말한 셈이다. ‘장충고의 1번타자’라는 뚜렷한 정체성을 확인했고, 동시에 야구 하는 순간을 진심으로 좋아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Q: 팀 동료로서 서로에게 도움을 받았던 기억 또는 동료로서 서로에게 감탄했던 기억?
이진하: 준영이는 팀의 핵심이다. 1번타자로서의 타격과 외야수로서의 수비도 발군이다. 매일 경기 끝나면 잘했다고 말하게 된다.
정준영: 진하가 올라오면 일단 이겼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스윙 연습을 할 때에도 스윙에 대해 충고를 해주기도 한다.
Q: 서로가 생각하는 상대방의 매력
이진하: 준영이는 작은 키에서 나오는 귀여운 얼굴이 매력이다.
정준영: 진하는 덩치에 맞지 않는 그런 귀여움이 상당하다. 나도 귀여움으로 하겠다.
Q: 서로 맞붙는다면 누가 이길까? 그리고 이진하 선수는 초구로 어떤 공을 던지고 싶은가?
이진하: 2학년 때는 내가 많이 이겼다. 하지만 3학년 때는 많이 못 이겼다. 내가 조금 더 좋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된다면 쉽게 잡을 것이다. 과감하게 직구 승부하겠다.
정준영: 올해 내가 전적이 앞서기 때문에 나도 자신 있게 초구 직구를 노리겠다. 내가 이길 것 같다.
Q: 고교생활 3년이 마무리되어 가는데, 3년 동안 둘만의 추억이 있는가?
이진하: 야구선수이다 보니 운동할 때의 추억이 많다. 전국대회 모든 경기가 추억이다.
정준영: 전국체육대회에 서울시 대표로 출전한 적이 있다. 그때 같은 방 쓴 것도 기억에 남는다. 방에서 술래잡기하고 내기 한 것도 기억에 남는다. 진하와의 추억은 아니지만 올해 초에 비가 많이 와서 날씨가 매우 추운 날이 있었다. 그때 내가 한 친구에게 밥을 같이 먹자고 했다. 그런데 그 친구는 바로 앞에 살면서도 춥다는 이유로 밥을 먹으러 나오지 않았다. 은근히 그런 기억이 가슴 속에 남는다.
# 장충고 이야기
한국 고교야구 대회들이 전성기를 구가한 시기도 있었다. 당시 동대문야구장(구 서울운동장 야구장)은 야구를 보러 온 팬들로 가득 찼다. 아쉽게도 프로야구의 출범 이후 고교야구 경기에 대한 관심은 줄어들었다. 그러던 2022년 신세계그룹이 과거 협회장기를 이어 받아 ‘신세계 이마트배 전국교교야구대회’를 만들었다. 2021년까지 열린 황금사자기, 청룡기, 대통령배, 협회장기 대회는 모두 주말리그의 순위에 따라 참가 팀을 정했다. 하지만 이마트배 대회는 현재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88개의 고교야구부들 모두에게 참가 자격을 부여한다. 심지어 올해 결승전은 프로 구단 SSG 랜더스의 홈구장인 랜더스필드에서 열렸다.
이렇게 새롭게 단장한 대회에서 장충고는 아쉽게 북일고에 패해 준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장충고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청룡기에서도 4강 진출, 대통령배에서도 8강에 진출했다. 2006년 청룡기, 황금사자기, 대통령배를 전부 우승하며 전성기를 맞이했던 장충고. 장충고는 2022년 참가한 대회에서 뛰어난 선수들과 함께 좋은 성적을 거두며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Q: 올해 장충고가 청룡기 4강, 대통령배 8강, 이마트배 준우승 등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이런 성적에 비결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
이진하: 선수 개개인의 뛰어난 기량이 비결이다. 장충고의 야구는 수비와 타격 모두 뛰어나다, 타자들이 1점을 낸다면 투수들은 0점으로 막는 그런 야구이다.
정준영: 타자, 투수 모두 보이지 않는 분위기 속 원팀 정신이 있다. 서로 합이 맞는 편안한 분위기에서 하다 보니 경기를 해도 분위기가 좋다. 그것이 승리의 비결이다.
Q: 이진하, 정준영이 1학년이던 시절 장충고가 우승을 했다. 우승을 보면서 느낀 점?
이진하: 그때 나는 재활 중이었다. 준영이 혼자 시합 뛰고 있었다. 1학년답지 않게 잘해서 깜짝 놀랐다. 나중에 2학년, 3학년 때에도 기회가 된다면 꼭 우승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정준영: 입학하자마자 시합을 뛰었다. 그래서 전국대회라는 것이 그렇게 큰 줄 몰랐다. 그때는 우승이 쉬운 줄 알았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우승이 쉬운 것이 아니더라.
Q: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에 참여한다. 각오 한 마디?
이진하: 나만 잘해서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학교 친구들이 잘해서 참여할 수 있었다. 학교 전체를 대표해서 나간다. 동시에 나라를 대표해서도 나간다. 최선을 다해서 다치지 않고, 열심히 해서 우승하겠다.
정준영: 학교 대표, 나라 대표로 가게 됐다. 책임감을 가지고 다치지 않고 열심히 하겠다.
Q: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에 참여하지 못하게 되어 봉황대기에는 더 이상 참여할 수 없다. 남아 있는 친구들에게 한 마디?
이진하: 만약 결승에 가게 되면, 대표팀 감독님에게 빌어서라도 와서 던지도록 하겠다.
정준영: 우리가 올해 우승만 못했다. 마지막 대회인 만큼 즐겁게 해서 꼭 우승했으면 좋겠다.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에 참가한 정준영, 이진하, 그리고 봉황대기에 남아 참여하는 장충고 야구부원들 사이의 끈끈한 팀워크가 느껴졌다. 단순히 프로 지명을 꿈꾸는 개인으로서가 아닌 장충고등학교의 팀원으로서 그들은 장충고등학교의 우승과 함께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에서 대한민국의 승리를 갈망했다. 프로 지명에 가깝다고 알려진 선수들이지만 그 전에 그들은 야구부 팀원이라는 역할을 잊지 않았던 것이다. 야구가 팀스포츠임을 고려하면 그들의 야구를 대하는 태도는 참 진지했다.
# 프로 지명과 목표
Q: 서로의 장점을 이야기해본다면?
이진하: 준영이는 공격, 수비, 주루, 센스까지 전부 갖췄다. 다방면에서 완벽하기 때문에 크게 말할 것이 없다.
정준영: 진하는 큰 키에서 나오는 각도와 완성도 높은 스플리터로 탈삼진율이 상당히 좋다. 삼진을 잡겠다고 하면 잡을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Q: 롤모델 같은 것이 있을 텐데, 상대방이 프로에서 닮은 선수가 있다면?
이진하: 준영이는 정수빈 선배를 닮았다. 같은 좌투좌타에 다부진 스윙을 가졌고, 센스도 뛰어나다. 강한 어깨를 비롯하여 수비 면에서도 좋다.
정준영: 학교 선배 송명기 선수를 닮았다. 경기 운영 스타일이나 마운드 위에서의 느낌이 상당히 비슷하다.
Q: 신인 드래프트가 얼마 남지 않았다. 자신의 장점을 어필해본다면?
이진하: 와인드업과 세트 포지션에서의 제구력이 모두 나쁘지 않다. 나는 키가 크다. 따라서 타자들이 치기에 어려운 면이 있다. 제구력, 변화구, 경기 운영 능력도 좋은 편이다.
정준영: 넓은 수비 범위, 과감한 주루플레이 등 야구센스가 좋다. 경기 흐름을 가져오는 데 도움이 된다.
Q: 선수로서 프로에서 만나고 싶은 상대?
이진하: 준영이로 하겠다. 프로 가면 내가 이길 것 같다. (웃음)
정준영: 조상우 선수와 상대해보고 싶다. 군 생활하고 있기는 하지만 KBO리그 최고의 마무리 투수 중 하나이고, 겨울에도 같이 운동하고 밥도 사주신 적이 있다. 그런 면에서 한 번 승부해보고 싶어진다.
Q: 프로가 되면 어떤 선수가 되고 싶은지 각오
이진하: 어떤 선수라기보다는 열심히 해서 다른 사람들이 야구를 생각하면 ‘이진하’가 떠오르게 하는 것이 목표이다. 그럴 수 있도록 최대한 열심히 해보겠다.
정준영: 손아섭 선수처럼 항상 포기하지 않고 근성 있는 모습으로 보여지고 싶다.
Q: 프로 지명이 된다면 팬들이 생길 텐데, 미래의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
이진하: 항상 성실하고, 야구도, 팬서비스도 모두 잘하는 선수로 각인될 수 있도록 열심히 하겠다.
정준영: 프로에 가게 된다면 열심히 하는 선수로 내가 가장 먼저 떠오를 수 있도록 하고 싶다.
두 선수 모두 프로에서 본인이 원했던 그런 선수가 되기를 바란다.
한편 이진하, 정준영이 출전하는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는 2022년 9월 9일부터 18일까지 미국 플로리다주에서 개최된다. 코로나로 중단되기 3년 전 마지막 대회에서 우리나라는 3위를 차지한 바 있다. 이번 대회에서 대표팀은 캐나다 애드먼턴 대회 이후 14년 만의 우승을 꿈꾼다.
제 50회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역시 지난 8월 18일 개최됐다.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에 출전하는 이진하, 정준영은 이 대회에 참가하지 못한다. 대신 둘 모두 남은 장충고 선수들에게 격려와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주는 등 야구부 구성원들에 대한 애정을 보여주었다. 그들의 격려 덕분인지 장충고등학교는 8월 28일 열린 봉황대기 대회 32강에서 라온고를 10대0 콜드게임으로 꺾고 16강에 진출했다.
“당신은 움츠리기보다 활짝 피어나도록 만들어진 존재입니다.” 미국의 유명 MC 오프라 윈프리의 명언이다. 누군가는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주어진 일을 그럭저럭 해가며 하루를 살아간다. 하지만 그 저편에는 절실히 무언가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 변호사를 꿈꾸고, 기자를 꿈꾸고, 또는 좋은 아버지, 더 나은 자동차 정비공이 되고 싶은 그런 사람들처럼 말이다.
야구 한 경기는 3시간 만에 끝나지만 그 경기를 만드는 선수들은 셀 수 없는 시간 동안 야구를 하며 더 나아지려고 수도 없이 노력한다. 꼭 프로 선수만 그런 것이 아니다. 고교야구선수들도 조금 더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 많은 땀을 흘린다. 프로에 진출함과 관계없이 적어도 야구를 하던 시절. 그 시절 하나만큼은 야구에 최선을 다한 사람들. 그것이 고교야구선수가 아닐까.
장충고등학교 야구부원들에게 박수를 보내면서 그들의 미래에도 좋은 일이 있기를 기대한다.
[2편에는 장충고 황준서, 육선엽과의 인터뷰가 이어집니다]
야구공작소 최준혁 칼럼니스트
에디터=야구공작소 전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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