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위기론에 대한 단상

1985년생인 필자는 또래(연배?)의 이들과 비슷한 야구팬으로의 성장 테크트리를 밟았다. 아버지와 캐치볼을 했고 삼촌과 야구장에 갔다. 함께 동네 야구를 하던 친구들과 홈런왕 강속구를 보면서 프로야구 선수 스티커를 모았다. 어떻게 해도 나오지 않는 이종범을 뽑기 위해 몇 년간 모은 돼지저금통까지 뜯었던 어린 필자에게 야구는 가장 재미있는 존재였다.

요즘 프로야구가 위기란다. 관중이 줄었고 인기도 떨어졌다고. 돌이켜보면 열렬한 팬이었던 필자도 프로야구를 챙겨보지 않은 기간이 꽤 됐다. 중학생 때는 스타크래프트를 했고 고등학생 때는 월드컵이 열렸다. 대학생 때는 음주 가무를 즐겼으며 직장인이 되고서는 할 일이 많다. 그렇게 프로야구와 멀어진 나날이 길었다.

프로야구를 다시 보게 된 건 우연히 시작한 사회인야구 때문이었다. 야구에 다시 흥미가 생기니 프로선수들의 플레이가 달리 보였다. 저걸 어떻게 잡지? 포수 앞 2루타, 3루수 앞 3루타도 쳐봤던(정확히는 실책이지만) 사회인야구 4부 리거에게는 경이로운 모습이다.

이후 아버지와 삼촌이 그랬던 것처럼 조카들과 캐치볼을 하려고 어린이용 글러브와 공을 샀다. 하지만 조카들은 예전의 필자가 아니었다. 캐치볼보다 유튜브가 좋은 아이들에게 글러브는 흥미로운 선물이 되지 못했다. 필자가 열렬히 응원하는 삼성 라이온즈의 한국시리즈 진출이 걸린 경기도 마찬가지였다. 삼성이 사투를 벌이던 그 시간 필자는 몇 번이나 봤던 라푼젤을 또 봐야 했다.

경쟁의 시대

오늘날 프로야구는 이렇듯 하나의 콘텐츠로서 수많은 것과 경쟁해야 한다. 세상에는 프로야구가 아니라도 재미있는 게 차고 넘친다. 예전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드라마하고만 경쟁하던 때와는 다르다. 위기론이 팽배한 작금의 상황에서 프로야구가 여가 선용을 위한 콘텐츠로서의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바쁜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 자는 시간 빼고 다음 날 출근 전까지의 한정된 여유에 많은 이는 오징어 게임이나 스우파를 볼 것인가? 아니면 프로야구를 볼 것인가?

코로나의 영향도 있었고 관중 수가 줄었다는 건 부수적 결과일 뿐이다. 사람들의 야외활동이 어려워진 상황을 타고 넷플릭스, 티빙 같은 구독경제 플랫폼은 급성장했다. 프로야구도 TV나 포털을 통해 얼마든지 집에서 즐길 수 있는 콘텐츠인데 말이다. 더구나 프로야구는 이들 플랫폼처럼 돈을 내야만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적어도 인프라적인 측면에서는 뒤처질 것이 없다. 그런데 보려면 얼마든, 언제든 무료로 볼 수 있는 프로야구를 소비하는 사람은 급격하게 줄었다. 이건 신규 팬의 유입보다 빠른 속도로, 빠져나간 기존 팬이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프로야구의 위기? 그냥 인기가 떨어진 거다.

관심을 끌어라

핵심은 식어버린 관심의 환기다. 프로야구의 위기는 지금보다 많은 팬을 만들면 해결된다. 이미 인프라는 갖춰져 있다. 관심만 생긴다면 팬이든 안티팬이든 될 수 있다. 그래서 필요한 건 접점이다. 옥스퍼드대학교의 임상심리학 교수 대니얼 프리먼은 호감의 법칙 네 가지 중 첫 번째로 근접성을 꼽았다. 가까이 있어야 애정이 싹튼다는 얘기다. 인간관계에 대한 이론이지만, 만류귀종이라고 프로야구도 마찬가지다. 쉽게 자주 접할 수 있어야 호감이 생기든 말든 할 터다. 자고로 대중의 관심을 기반으로 하는 모든 분야에서 ‘악플보다 무서운 건 무플’이다.

그동안 프로야구는 새로운 접점을 만들어가려는 노력이 부족했다. 당장 떠오르는 게 지난 4월에 불거졌던 ‘움짤 금지’ 사태다. 유무선 중계권을 구입한 통신 3사와 양대 포털사이트 외에는 어떤 형태로든 KBO 영상 콘텐츠를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 골자였다. 이는 곧 야구팬들의 거센 분노를 촉발했고 무수한 조롱을 낳았다.

물론 권리가 없는 이들의 수익 목적으로 악용되거나 선수, 구단에 대한 폄하의 의도라면 지양돼야 할 일이다. 하지만 재미있고 멋진 장면의 GIF 파일이나 영상이 만들어지고, 이것으로 야구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의 흥미를 끌 수 있다면? 되레 적극적으로 장려해야 할 홍보 수단이 아닐까? 비의 ‘깡’이 이렇게 재조명됐고 해체까지 생각했던 브레이브 걸스가 그렇게 떴다.

움짤은 프로야구의 본질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다. 수 초에서 수 분의 숏폼이 메가트렌드로 자리 잡은 시대다. 몇 시간이 소요되는 프로야구가 가진 콘텐츠로서의 약점을 보완할 무언가가 필요하다. 한 장면만으로 즐길 수 있는 움짤은 그 자체로 훌륭한 숏폼 콘텐츠가 될 수 있다. 짧고 자극적인 영상 소비에 익숙한 MZ세대에게 어필하기에도 유리하다.

프로야구만 야구는 아니다

프로야구라는 소재의 한계성은 또 단일 소비재로서 경쟁력 부족으로 귀결되기 쉽다. 엄밀히 말하면 유튜브, 넷플릭스 등은 수많은 콘텐츠를 제공하는 플랫폼이다. 그러니까 프로야구는 지금 넷플릭스가 아니라 넷플릭스가 계속해서 쏟아내는, 또 쏟아낼 무수한 콘텐츠들과 경쟁해야 하는 거다.

야구장 밖으로 나와야 한다. 프로야구에 대한 관심 자체가 떨어졌는데 해결법을 안에서만 찾으려 해서는 안 된다. 달고나 뽑기가 다시 유행한 건 오징어 게임에 나왔기 때문이지 그게 새로운 것이어서, 또는 엄청나게 맛있거나 재미있어서가 아니다. 프로야구도 트렌드를 타야 한다. 경쟁상대가 플랫폼이라면 오히려 적극적으로 활용해라. 프로야구는 그게 가능한 콘텐츠니까 말이다.

프로야구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프로’만이 아닌 ‘야구’로서의 종합적인 접근은 어떨까? 필자가 프로야구를 다시 보기까지는 사회인야구가 있었고,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논란은 있으나)’, ‘천하무적 야구단’이 있었으며, ‘컴투스’, ‘게임빌’, ‘메이저’, ‘다이아몬드 에이스’가 있었다. 소설, 예능, 게임, 만화가 야구와의 접점이 돼 그렇게 어른이 된 필자를 사회인야구로, 종국에는 다시 프로야구로 이끌었다.

어린이가 현재고 미래다

필자가 여러 접점을 통해 다시 프로야구 팬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건 결국 어린 시절 추억이 있었기 때문이다. 프로야구가 지금의 위기에서 벗어나려면 무엇보다 어린이들을 우선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현재도 야구 관련 콘텐츠나 이벤트는 있지만 전혀 접점이 없었던 어린이들까지 팬으로 끌어들이기에는 미약하다. 위기가 방증하듯 말이다.

아이들의 아이돌인 유튜버 ‘헤이지니’가 야구놀이 영상 한 번 올려준다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이정후, 강백호는 몰라도 헤이지니는 꿰고 있는 게 요즘 아이들이다. 헤이지니가 유튜브에서 가지고 논 장난감은 지금도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간다. 헤이지니가 야구와 관련된 무언가로 재미있게 노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헤이지니에 열광하는 어린이들에게만큼은 2009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못지않은 효과가 있지 않을까?

새롭게 유입된 어린이 팬의 가치는 파급력에 있다. 어린이가 혼자 굿즈를 구매하거나 야구장에 다니지는 않으니 1+@란 얘기다. 놀이동산, 동물원 대신 야구장을 찾고 만화영화가 아니라 프로야구를 시청하는 가정이 늘 것이다. 필자도 혼자 야구장에 간다면 기껏해야 외야석을 끊고 맥주만 사겠지만, 아마 조카들을 데려간다면 편하게 볼 수 있는 테이블석 티켓을 구매하고 마킹 유니폼부터 간식, 머리띠, 인형까지 야구장에서 파는 건 다 사게 될 터다. 어머니도 손주가 야구를 보고 싶다고 하면 드라마를 포기하시겠지.

어린이가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미래이기 때문이다. 어느 업계에서나 어린이들은 초장기 고객, 그것도 대를 이어갈 수 있는 VVIP다. 프로야구를 보며 꿈을 키운 어린이 중 누군가는 양준혁, 이종범을 뛰어넘는 슈퍼스타가 될 것이며 그렇지 않은 어린이들도 언젠가는 자신의 아이들 손을 잡고 야구장을 찾을 거다. 실패에 대한 리스크랄 게 거의 없는 괜찮은 투자처 아닌가?

이처럼 수익성이 확실한 시장에 대한 투자는 좀 더 과감해도 좋다. 어린이날 딱 하루, 그것도 야구장을 찾은 아이들만을 위한 일회성, 인바운드성 이벤트로는 부족하다. 신규 고객이 늘어야 전체적인 판도 커질 수 있다. 야구를 잘 모르고 흥미가 없는 아이들의 관심도 이끌어올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 필자도 조카들과 야구를 보고 캐치볼도 하고 싶다.

 

야구공작소 이재홍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홍기훈, 전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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