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면, 인구가 적은 노르웨이의 경우 북유럽이라는 지역적 특성을 살려 동계 스포츠 강국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노르웨이의 인구는 520만 명 정도로 서울 인구의 절반에 불과하지만 소치올림픽 종합순위 2위에 올랐다. 크로스컨트리와 스키점프의 근간이 되는 노르딕 스키의 근원지인 노르웨이는 온 국민이 동계 스포츠를 사랑하며 이에 집중적으로 투자해 적은 인구에도 불구하고 스포츠 강국이라는 이미지를 얻었다.
그렇다면 한국의 경우는 어떠할까? 5,000만 명을 갓 넘긴 한국은 전 세계 인구 순위로 28번째다. 하지만 소치 동계올림픽과 리우 하계올림픽에서 각 13위와 8위에 올랐다. 인구에 비해 동계, 하계 가리지 않고 준수한 성적을 거뒀다. 많지 않은 인구에도 다양한 종목에서 좋은 결과를 얻어내는 그 비결은 바로 엘리트 체육이다.
엘리트 체육의 시작과 현재
한국 스포츠의 근간인 엘리트 체육의 방침은 적은 수의 선수들을 집중적으로 육성해서 최고 수준의 선수로 만드는 것이다. 엘리트 체육의 장점은 생활 체육에 비해 적은 운동장 및 체육시설 건설로도 운용할 수 있고 일반인들에게 제한된 시설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유지비가 적게 든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당장 경제 성장이 우선이라고 판단한 정부는 적은 비용을 들여 국제 대회에서의 좋은 성적으로 국민을 이른바 ‘국뽕’에 취하게 하는 것이 유리할 수 있다.
6·25전쟁 직후 나라 상황을 수습하기 바빴던 시기에는 국제대회 성적이 좋았던 일본, 북한에 대한 경쟁 심리로 엘리트 체육을 도입해 빠른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엘리트 체육의 상징인 태릉선수촌이 1965년 착공된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후 90년대 초까지 독재정권을 유지하려던 정부 수뇌부는 3S(Sports, Sex, Screen) 정책으로 국민의 관심을 돌렸다.
하지만 민주주의를 수호하려는 사람들의 노력을 통해 독재정권이 물러나게 됐다. 그리고 88 서울올림픽, 2002 한일 월드컵 등 자국에서 치러진 대형 스포츠 행사를 통해 더욱 커진 한국인들의 스포츠 사랑은 엘리트 체육 환경에서 제공되는 한정적인 체육 시설로는 감당할 수 없어졌다. 애초에 국민이 낸 세금으로 국민이 여가 생활을 즐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정치적, 사회적 환경이 맞물려 ‘생활 체육’에 대한 관심이 점점 높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걸음마 단계인 것이 현실이다.
중고등학교에서의 체육 시간은 남학생들의 45분짜리 축구 경기, 혹은 입시를 앞둔 수험생들의 자습시간일 뿐이다. 학창 시절 제대로 운동을 즐기지 못한 이들이 성인이 되어서 생활 속에서 스포츠를 즐길 가능성은 작다. 엘리트 체육이라는 시스템 속에서 오직 자신의 종목만 꾸준히 해온 운동부 출신들이 프로 선수가 되어 TV에 나오는 모습을 보며 환호하는 것이 전부다.
특히 야구의 경우 일반인들이 즐기려고 온갖 장비를 구했어도 정작 야구를 할 곳이 없어 축구장에서 위험을 무릅쓴 채 즐기고 있다. 기본적인 설비를 갖춘 야구장은 주로 운동부 소유이기 때문에 주말만 사용할 수 있거나 도심 멀리 위치해 있어 접근성이 떨어진다. 이는 야구가 KBO리그의 성공으로 최고 인기 스포츠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과 대비된다.
엘리트 체육, 무엇이 문제?
단순히 일반인들이 체육시설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없는 환경만이 문제는 아니다. 엘리트 체육을 시행하면서 생기는 부정적인 요소들이 너무나 많다. 우선 적은 수의 선수 중에서 프로 선수를 배출하기 위해 일반 동호인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긴 시간 동안 훈련을 진행한다. 문제는 운동부 소속의 학생 선수들이 정규 수업 시간을 보장받지 못한 채 훈련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기초적인 소양을 갖추지 못한 학생 선수들은 프로에 진출하지 못할 경우 당장 생업에 뛰어들어야 하는데 할 줄 아는 것이 거의 없다는 취약점을 갖고 있다. 이를 단순히 프로에 진출하기 위한 기회비용이라고 치부할 수는 없다. 이는 의무교육 과정을 기록상으로만 이수하고 실제로는 학생 선수들이 제대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교육권을 박탈하는 것이다. 프로 진출에 실패하더라도 직업 선택의 폭을 보장받을 수 있는 기본적인 교육은 이수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학생 선수들의 교육권 박탈 외에도 큰 문제가 존재한다. 이들을 가르치는 감독이나 코치들은 각 학교의 정규직 선생님으로 대접받지 못하고 계약직으로 해(혹은 수년)마다 새로운 계약을 해야 한다. 이들은 단기간에 성적을 내고 유지해야만 한다는 부담감을 늘 느끼게 된다. 본인이 맡은 학생들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승부욕이 학교로부터 받는 경제적 부담감에 변질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유혹을 이기지 못한 일부 감독 및 코치들은 친분이 있는 다른 학교 감독, 코치들과 사전에 모의를 꾸며 승부 조작을 시도하기도 한다. 야구의 경우 특정 타자의 타구를 일부러 수비하지 않거나 특정 투수의 공에 일부러 헛스윙을 하며 성적을 올려줄 수 있다. 코칭스태프의 지시로 부정행위에 가담하게 된 어린 학생 선수들은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벌써 승부조작에 가담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인식의 부재가 프로야구에서의 승부조작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문제도 추가된다.
생활 체육, 해법이 될 수 있을까?
여러 가지 사정이 얽히고설켜 해결 방안이 뚜렷이 보이지 않는 엘리트 체육 환경의 문제점. 최근 대안으로 떠오른 생활 체육이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대답은 ‘당장은 어렵다’가 맞을 것이다.
전 세계 어느 나라보다 교육열이 뜨거운 한국의 경우 학부모들이 학생들의 체육 수업 시간을 늘리는 것을 반대할 것이다. 생활 체육이 제대로 시행되기 위해서는 학교에서부터 학생들이 다양한 종목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하지만 ‘국·영·수’를 중시하고 수능으로 대학 성적이 좌우되는 현실 속에서 생활 체육으로 숨은 진주를 발굴하는 일이 가능한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언젠가 이런 성적 만능주의 풍토를 벗어나고 생활 체육이 잘 자리 잡는다면, 지금의 시스템이 가진 문제는 상당수 해결될 것이 분명하다. 과도한 입시 경쟁이 줄어들면 다양한 꿈을 찾기 위해 학생들을 지도할 인력이 많이 요구될 것이다. 이는 지도자들의 고용 환경 개선으로 이어져, 보다 질 높고 깨끗한 아마추어 리그가 진행될 수 있을 것이다.
가까운 일본은 생활 체육이 잘 발달한 대표적인 나라다. 한국보다 훨씬 많은 중, 고교, 대학 야구부가 존재하고 구성원도 더 많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아마추어 야구부 구성원의 대다수가 프로를 지망하는 학생들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들은 야구를 좋아해서 야구부에 입부 신청을 하고 프로를 목표로 훈련하는 학생 선수들과 같이 훈련을 받는다. 이 때문에 야구부원과 일반 학생 사이의 교류가 부족한 한국과 달리 이들은 끈끈하게 이어져 있는 편이다. 이런 차이는 또한 아마추어 야구 대회의 응원에서도 나타난다. 한국의 경우 대회 결승전이 되어서야 학생들을 동원해 응원하는 반면 일본은 예선부터 그 열기가 뜨겁다.
또한 국내에서는 아마추어 야구의 경기를 TV에서 접하기 힘든 반면 일본은 쉽게 접할 수 있다. 이는 방송국의 수지 타산에 따른 것인데, 생활 체육이 자리 잡는다면 아마추어 중계도 늘어나 협회의 수익도 증가하고 자연스럽게 리그 발전이 유도될 것이다
이제는 우리부터 관심을 가져야
점점 줄어드는 아마야구에 대한 관심과 수많은 부정부패 등 엘리트 체육 환경 속에서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방법은 앞서 설명한 방법 외에도 다양할 것이다. 하지만 개인이나 새롭게 출범한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KBSA)만의 능력으로 해결될 수는 없다. 뻔한 소리지만 KBSA와 타 스포츠 아마추어 협회, 정부 관계자가 모여 해결 방법을 고민하고 논의를 거쳐 해결책을 내놓아야 한다. 하지만 ‘양궁협회를 제외하고 네티즌의 질타를 받지 않는 스포츠 협회가 없다’는 소리가 나오는 것은 문제가 발생한 그 시점에만 관심을 가지기 때문이다. 지속적인 관심과 공론화가 관계자들을 견제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800만 관중을 달성한 KBO리그. 더 수준 높고 재미있는 리그가 되는 동시에 지금의 이 인기를 유지하기 위해선 아마야구의 발전은 필수불가결이다. KBO리그를 즐기는 당신이라면 이제부터라도 아마야구에 대한 지속적인 응원과 관심으로 환경이 개선될 수 있도록 보탬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한국 야구의 발전을 위해서 아마야구부터 탄탄해지는 피라미드형 구조가 정착되길 기대해본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