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스 투수를 육성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아무리 높은 드래프트 순번에 지명된 선수라고 하더라도 메이저리그에서 통한다는 보장은 없다. 육성이 힘든 만큼 에이스 투수의 가치는 굉장히 높다. 특히 한 경기, 한 경기가 중요한 가을 야구에서 에이스 투수의 영향력은 엄청나다.
그런데 에이스 투수가 한 명도 아닌 세 명이 있는 팀이 있다면 어떨까? 2021년의 밀워키 브루어스가 그렇다. 올해 브루어스는 브랜든 우드러프, 코빈 번스, 프레디 페랄타라는 걸출한 투수들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모두 투수 지표들 대부분에서 나란히 상위권을 달리고 있으며 어느 팀을 가더라도 에이스 역할을 해줄 수 있는 투수들로 성장했다.
밀워키 투수 3인방의 시즌 성적
브루어스는 올 시즌 팀 타율 0.223, 팀 wRC+ 90을 기록하는 등 타선에서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 그럼에도 브루어스가 내셔널리그 중부지구에서 압도적인 1위를 달릴 수 있는 이유는 앞서 언급한 세 명을 비롯한 강력한 투수진이다. 그렇다면 브루어스 투수진의 중심인 선발 3인방의 성장에는 어떠한 과정이 있었을까?
싱커로 단점을 보완한 브랜든 우드러프
2014년 드래프트에서 11라운드로 밀워키에 입단한 브랜든 우드러프는 지명된 순번에서도 알 수 있듯이 크게 주목을 받았던 유망주는 아니었다. 그러나 우드러프는 밀워키와 계약하자마자 매년 자신에 대한 평가를 올리면서 지명된 지 3년째인 2017시즌에 데뷔했다. 그리고 2019시즌에는 3.62의 평균자책점과 10.6의 K/9을 기록하면서 가능성을 보여줬다.
우드러프는 대학 시절 싱커를 주로 던지는 투수였다. 그러나 프로에 와서는 제구 불안 등을 이유로 싱커에 한계를 느끼고 포심 패스트볼 위주의 투구를 하면서 제구를 잡고 좋은 성적을 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2017시즌 포심 위주의 투구로 메이저리그 데뷔까지 했으나 한 가지 고민이 생겼다. “왜 타자들의 헛스윙을 잘 이끌어내지 못할까?” 실제로 우드러프는 2017시즌 갑자기 삼진율이 크게 떨어졌다. 상위 리그로 갈수록 그의 패스트볼이 헛스윙을 유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고민하던 우드러프는 당시 밀워키의 마이너리그 투수 코디네이터였던 크리스 훅과 이야기를 나눴다. 훅이 말하길, 우드러프의 포심 패스트볼은 평균 이하의 회전수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면서 훅은 낮은 회전수를 살리기 위해 우드러프에게 “싱커를 다시 던지는 것은 어떻겠냐”라는 제안을 하였고 우드러프는 이를 받아들였다.
기존에 좋았던 포심과 다시 장착한 싱커와 함께 우드러프는 2019년 좋은 성적을 기록했다. 뿐만 아니라 2019년 메이저리그 투수 코치로 승진한 크리스 훅과 계속 이야기를 나누면서 패스트볼의 회전수를 높이는 방법도 배우기 시작했고 구속과 회전수 모두 크게 올리는 데 성공했다. 결과적으로 그의 고민이었던 타자들의 헛스윙 비율이 증가하면서 삼진을 늘릴 수 있었다.
연도별 우드러프 포심/싱커 비율 및 기록
여기에 브루어스는 2021시즌 내야 수비를 크게 개선했다. 최악의 2루수 수비 능력을 갖추고 있던 히우라를 1루로 보낸 대신에 골드글러브 2루수 콜튼 웡을 영입했다. 또 유격수로는 아쉬웠던 루이스 유리아스를 3루로 보내고, 빈 유격수에는 탬파베이에서 윌리 아다메스를 영입했다. 땅볼 비율이 비교적 높은 투수였던 우드러프에게 내야 수비 개선은 더욱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는 바탕이 됐다.
본인의 특징을 살린 커터로 성장한 코빈 번스
번스는 2016년 드래프트에서 4라운드로 브루어스에 지명됐다. 번스는 이듬해인 2017시즌 A+와 AA에서 26경기 ERA 1.67을 기록하는 등 활약하면서 팀 내 최고 투수 유망주로 성장했다. 이어 2018시즌에는 불펜으로 메이저리그 데뷔하면서 30경기 ERA 2.61로 가능성을 보이기도 했다.
자연스레 다음 시즌 선발로 준비를 하던 번스는 그러나 최악의 부진을 겪고 말았다. 32경기 중 선발로는 4경기 등판하는데 그쳤고 선발과 불펜 모두에서 부진하면서 ERA 8.82를 기록했다. 9이닝당 피홈런은 무려 3.12개를 허용했다. 이때 번스의 패스트볼은 xSLG(기대 장타율) 0.663로 그야말로 던지면 장타를 허용했을 정도였다.
번스의 부진에 같이 고민을 하던 크리스 훅은 이를 만회하기 위해서 처음엔 싱커와 슬라이더 조합을 제안했다. 그러다가 2020시즌 스프링 트레이닝에서 번스의 투구에 특이점을 발견한다. 바로 번스의 패스트볼이 자연적인 커터 무브먼트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커터 무브먼트를 활용하지 못했던 번스에게 훅은 이 커터를 발전시키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다.
번스가 던진 기존의 커터는 슬라이더와 각이 크게 구분이 되지 않았는데 커터와 슬라이더의 움직임이 서로 구분이 되도록 커터의 각을 줄였고 여기에 기존에 연습하고 있던 싱커와 슬라이더 그리고 수직 움직임을 보이는 커브를 가지고 2020시즌을 맞이했다. 결과는 대성공. 2020시즌 번스는 규정 이닝을 채우지는 못했으나 59.2이닝 ERA 2.11을 기록하며 가능성을 보였다. 9이닝당 피홈런은 3.12개에서 0.30개로 극적인 변화를 이끌어냈다.
연도별 번스 커터/슬라이더 무브먼트 변화(인치)
번스는 이듬해인 2021시즌에는 그의 커터 구위에 대한 자신감으로 더욱더 스트라이크 존 위주의 피칭을 하기 시작했다. 41.2%였던 Zone%를 올해 48.0%로 올리면서 볼넷 비율도 크게 줄였다. 자신감이 생긴 커터는 번스의 주무기가 되었으며 그의 투구 비율 중 50% 이상을 차지한다. 2020시즌 21.7인치였던 수직 무브먼트를 2021시즌에는 17.8인치로 줄이면서 슬라이더, 체인지업, 커브 등과 차이를 키우면서 재미를 보고 있다.
연도별 번스 투구 비율(%)
슬라이더의 그립과 움직임을 바꾸며 성장한 프레디 페랄타
2013년 국제 유망주 계약으로 시애틀 매리너스에 입단한 페랄타는 2015시즌이 끝나고 트레이드로 밀워키로 이적했다. 마이너리그 시절 페랄타는 제구력과 투피치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그가 가지고 있던 구위로 인해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데뷔 이후엔 위에서 언급한 한계로 인해 선발 투수로 자리를 잡는 데에 어려움을 겪었다.
페랄타의 별명은 “패스트볼 프레디”였다. 그도 그럴 것이 선발투수로도 자주 나왔던 페랄타였음에도 패스트볼 비율이 75%가 넘었다. 2018년부터 2020년까지 그의 투구 비율 중에 패스트볼 비율은 76.1%였다. 여기에 변화구는 커브뿐이었는데 이러한 단조로운 투구 패턴이 그의 선발 안착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그런 페랄타가 한계를 뛰어넘게 해준 사람은 이번에도 역시 크리스 훅이다. 기존에 패스트볼과 커브의 비율이 90% 이상을 넘겼던 페랄타에게 훅은 슬라이더와 체인지업을 제안했다. 사실 페랄타는 이미 2020시즌에 슬라이더 장착을 시도했으나, 주무기인 커브볼과 유사한 움직임을 보여 장착하는 데에는 실패했다.
이를 확인한 훅은 2021시즌 페랄타에게 슬라이더의 그립을 바꿔 좌우 움직임을 살리고자 했다. 그렇게 페랄타는 수평 무브먼트를 크게 살린 슬라이더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여기에 데빈 윌리엄스, 조시 헤이더 등 밀워키 투수들에게 체인지업을 개선해주는 것에 재미를 보고 있던 훅이 페랄타에게도 체인지업을 다시 던지는 것을 제안했다. 이렇게 ‘패스트볼 프레디’는 이전과 다른 4개의 구종으로 시즌을 맞이했다.
연도별 페랄타 슬라이더 무브먼트 변화(인치)
시즌 초에는 조시 린드블럼에게 가려져 불펜으로 시작을 하였으나 곧바로 선발 기회를 잡는 데 성공한다. 그 경기에서 페랄타는 5이닝 동안 8개의 삼진을 잡으면서 무실점으로 호투했고 이후에 꾸준히 로테이션을 지키고 있다. 이번 시즌 페랄타는 슬라이더의 개선을 통해서 기존에 비교적 약했던 우타자 상대 성적을 크게 개선했다. 또한 패스트볼 비율을 줄여 다양한 구종을 던지면서 선발 투수로 안착하는 데 성공했다.
연도별 페랄타 투구 비율(%)
세 명의 에이스의 성장 뒤에는 언제나 ‘크리스 훅’이 있었다
이 세 투수의 발전에는 밀워키의 마이너리그 투수코치로 들어와서 2019시즌부터 메이저리그 팀 투수 코치가 된 크리스 훅이 있다. 앞서 이야기한 세 명의 투수 이외에도 훅은 조시 헤이더, 데빈 윌리엄스 등을 육성하기도 했다. 밀워키가 투수 육성의 명가가 된 데에는 크리스 훅의 영향력이 매우 크다고 볼 수 있다.
크리스 훅의 장점은 최신 이론을 선수들에게 접목하는 데에 굉장한 소질이 있다는 것이다. 훅은 다양한 투구 이론들과 데이터 활용에 장점이 있으며 투수 유망주들의 부족한 부분을 확실히 알고 어떤 부분을 개선해야 할지를 잘 설명해준다. 우드러프에게 부족한 회전수를 메꿔줄 싱커를, 번스에게 커터성 무브먼트를 살려줄 커터를, 페랄타에게 커브와 차이를 보일 수 있는 슬라이더를 제안한 것처럼 말이다.
2015년 스턴스 단장이 취임한 뒤로 브루어스는 다양한 개혁을 시도했다. 투수 개발 시스템에서도 마찬가지다. 크리스 훅을 중심으로 한 투수 성장 시스템의 개혁은 메이저리그 여러 구단 중에서도 가장 혁신적이라고 할 수 있다. 밀워키는 2년 전 트레버 바우어가 사용한 초고속 카메라를 포함한 트랙맨, 랩소도 데이터 등 최첨단 데이터 장비들을 마련했다.
이를 교육해줄 투수 코치의 역량도 중요한데 크리스 훅은 확실한 적임자였다. 훅은 이러한 장비들에 대한 지식이 풍부했고 다양한 이론들도 겸비한 투수 코치다. 여기에 훅은 이를 설명해줄 수 있는 능력도 좋았다. 많은 브루어스 투수들은 이 혜택을 확실히 보고 있다. 2020년에 밀워키로 온 에릭 라우어는 “내가 이전까지 했던 투구는 모두 구식이다. 브루어스에 오면서 그들의 피칭 시스템에 감탄하였고 이를 설명하는 방식 모두 만족스럽다”라는 인터뷰를 했다.
혁신적인 데이터 장비와 이를 활용할 수 있는 투수 코치들 덕분에 밀워키는 2021시즌 가장 강력한 투수진을 가진 팀이 됐다. 스턴스 현 사장은 취임 후에 코칭 스태프, 선수들 그리고 다양한 부서들과의 소통을 강조했다. 크리스 훅 역시도 마찬가지다. 훅의 어쩌면 가장 큰 장점은 그의 소통 능력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투수들에게 언제나 먼저 다가가 필요한 점을 물어보고 같이 고민해주며 공감해준다. 훅을 중심으로 한 밀워키의 혁신적인 투수 개발 시스템이 앞으로 밀워키를 어디까지 이끌 것인지 주목해볼 만하다.
참고: Fangraphs, Baseball Savant
야구공작소 이재성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이현승
사진 = 밀워키 브루어스 공식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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