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연재물은 ‘KBO 박스스코어 프로젝트’와 함께 합니다.
1997년과 1998년 최하위에 머물렀던 롯데는 1999시즌 들어 완전히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시즌 시작과 함께 롯데는 1986년 이후 처음으로 개막 6연승을 질주하며 처음부터 치고 나갔다. 이후로도 거칠 것이 없었던 롯데는 7월 말 9연패로 잠시 위기를 맞이한 것을 제외하면 성공적인 시즌을 보냈다. 박정태-펠릭스 호세-마해영으로 이어진 클린업 트리오, 에이스 문동환을 필두로 주형광과 박석진, 에밀리아노 기론과 강상수가 이 뒤를 잘 받쳐준 투수진의 활약 덕분에 롯데는 리그 최고 수준의 투타 밸런스를 만들 수 있었다. 시즌 중반에는 박정태가 31경기 연속 안타 신기록을 세우는 경사도 있었다.
이 해 처음으로 도입된 양대리그 제도에서 드림리그에 배정된 롯데는 마지막 경기 전까지 3일을 제외하면 리그 1위 자리를 꾸준히 지켰다. 비록 마지막 경기에서 두산에 패하며 2위로 떨어졌지만 4년 만에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하는 쾌거를 맛봤다.
플레이오프에서 롯데와 맞붙게 된 상대는 매직리그 1위 삼성이었다. 재계 라이벌 현대 유니콘스의 우승에 자극을 받아 시즌 전 김기태, 김현욱, 임창용, 김상진, 노장진 등 스타 선수들을 대거 영입한 삼성은 5월 중순부터 시즌 막바지까지 리그 1위 자리를 유지했다. 막판 한화 이글스에 잠시 1위 자리를 내주기는 했으나 롯데와는 다르게 최종전에서 승리하며 결국 가장 높은 자리에 위치하게 됐다.
정규시즌 삼성을 상대로 6승 1무 11패로 밀렸던 롯데는 플레이오프에서도 상대전적을 재현하는 듯했다. 1, 2차전을 연달아 내준 롯데는 홈에서 열린 3차전에서 10대 2로 대승을 거뒀지만 4차전을 6대 9로 패배하며 탈락 위기에 놓였다. 페넌트레이스에서 삼성을 상대로 한 차례도 3연승을 거둔 적이 없던 롯데는 탈락 위기에 빠졌다. 그러나 5차전 9회 말 2점 차로 뒤지던 경기를 뒤집은 호세의 끝내기 3점 홈런 이후 롯데는 반격에 나섰다. 장소를 대구로 옮긴 6차전에서 롯데는 선발 박석진의 6.2이닝 노히트 호투에 힘입어 6대 5로 승리, 결국 시리즈를 최종전으로 끌고 왔다.
1999년 10월 20일 오후 6시, 주심의 ‘플레이 볼’ 선언과 함께 7차전이 시작됐다. 양 팀은 낼 수 있는 가장 강한 선발 카드인 문동환(롯데)과 노장진(삼성)을 내세워 시리즈 승리에 사활을 걸었다. 먼저 기회를 만든 롯데는 2회 초 볼넷 3개로 1사 만루 찬스를 잡았다. 그러나 8번 강성우와 9번 김민재가 각각 1루수 파울플라이와 유격수 땅볼로 물러나며 득점에 실패했다. 삼성은 3회까지 매 이닝 주자가 루상에 나가기는 했으나 문동환의 구위에 눌려 홈플레이트를 밟지는 못했다.
침묵하던 삼성은 4회 말 공격에서 장타를 폭발시켰다. 선두타자로 나선 이승엽이 우익수 뒤로 넘어가는 솔로 홈런을 터트리며 삼성은 먼저 한 점을 냈다. 이어 5번 김기태 역시 문동환의 바깥쪽 패스트볼을 공략, 왼쪽 펜스를 살짝 넘어가는 홈런을 만들어내며 스코어는 2대 0이 됐다. 플레이오프에서만 9개의 홈런을 허용한 문동환은 결국 4회를 마치지 못하고 쓸쓸하게 마운드에서 물러났다. 롯데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쏟아붓는다는 심정으로 기론을 투입했다.
벼랑 끝에 몰린 롯데는 가만히 있지 않았다. 롯데는 6회 초 타석에 들어선 호세가 중월 솔로 홈런을 때려내며 추격에 나섰다. 타구를 지켜본 호세는 천천히 그라운드를 돌았다. 3루 베이스를 밟던 호세는 관중석에서 날아든 물병을 보고 잠시 멈칫했다. 그리고 이 장면은 KBO 리그 역사상 가장 지저분하고도 처절했던 경기의 시작을 알리는 장면이었다.
홈을 밟고 더그아웃으로 돌아가던 호세는 한 팬이 던진 이물질에 급소를 맞았다. 흥분한 호세는 헬멧을 던지려는 행동을 취했고, 몰지각한 팬들은 라면 용기와 빈 생수병, 맥주캔 등 그라운드에 있어서는 안 되는 것들을 그라운드로 집어던졌다. 롯데 선수단도 흥분을 감추지 못한 가운데, 호세가 돌발 행동을 일으켰다. 분을 참지 못한 호세가 자신의 배트를 관중석으로 투척한 것이다. 벌어져서는 안 되는 행동에 대구 팬들은 “퇴장, 퇴장”을 연호했고, 심판진 합의 끝에 결국 호세는 퇴장 조치를 당했다.
호세의 행동이 잘못되기는 했지만 사실 호세도 처음에는 피해자였고, 이를 몰랐을 리 없던 롯데 선수단은 화를 참지 못했다. 주장 박정태의 “짐 싸라”라는 말을 필두로 롯데 선수단은 가방을 싸들고 그라운드를 떠났다. 구단 직원과 코칭스태프가 달려들었지만 흥분한 박정태는 “이런 대접을 받으면서 경기를 할 수는 없다”라며 경기 진행을 거부했다. 양상문 투수코치가 달려가 흥분을 가라앉힌 끝에야 박정태와 롯데 선수들은 더그아웃으로 돌아갔다. 이 과정에서 롯데 선수단과 삼성 팬들이 그물망을 사이에 두고 싸움을 벌이는,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장면도 펼쳐졌다. ‘이물질을 던져 경기가 중단되면 홈팀의 몰수게임을 선언하겠다’라는 장내방송이 나온 끝에야 혼란스러웠던 상황이 정리됐다. 이 모든 것이 단 23분 동안 일어난 일이었다.
경기 재개와 함께 선수들을 집합시킨 박정태는 “오늘 무조건 이기라(이겨라). 오늘 못 이기면 다 지기삔다(죽여버린다)”라고 말하며 승리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그리고 약 30초 뒤, 타석에 들어섰던 마해영이 가운데 담장을 훌쩍 넘어가는 솔로 홈런을 터트렸다. 길었던 경기 공백이 결국 삼성과 노장진에게는 독이 됐고, 각오를 다진 롯데에는 약이 됐던 것이다. 극적인 홈런에 평소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던 마해영도 헬멧을 바닥에 집어 던지며 기쁨을 표시했다.
롯데는 7회 초에도 선두타자 조경환의 안타로 시작된 2사 3루 찬스에서 김응국이 바뀐 투수 임창용을 상대로 중견수 앞 적시타를 기록하며 역전에 성공했다. 그러나 저력의 삼성은 이대로 경기를 끝내지 않았다. 8회 말 선두타자 빌리 홀의 2루타가 나오자 롯데는 전날 선발투수였던 박석진을 투입하는 강수를 뒀다. 하지만 박석진은 최동원이 아니었다. 박석진은 2년 전 자신과 맞트레이드됐던 2번 김종훈에게 중월 2점 홈런을 내주며 한 점의 리드를 지키지 못했고, 이어 다음 타자 이승엽에게도 비거리 135m의 대형 홈런을 허용했다. 스코어는 5대 3, 삼성은 여전히 ‘창용불패’가 마운드를 지키고 있었다.
9회 초 마지막 공격, 롯데는 선두타자 공필성의 안타로 마지막이 될 수도 있던 기회를 만들었다. 그리고 1사 후 타석에 들어선 선수는 대타 임수혁이었다. 임수혁은 비록 잔부상으로 인해 주전에서는 밀려났지만 한때 두 자릿수 홈런을 기록했던 거포였다. 여기서 임수혁을 투입했다는 것은 ‘강하게 쳐서, 멀리 날려라’라는 의미였다. 그리고 임수혁은 이 기대에 부응했다. 임수혁이 때려낸 공은 우측 관중석을 향해갔고, 타구를 쫓던 우익수 신동주는 펜스 앞에서 멈췄다. 동점 투런 홈런. 게임 리셋. 스코어는 5대 5가 됐다.
이후 10회 말 삼성이 1사 만루 끝내기 기회를 만들자 롯데는 선발 자원이던 주형광을 급하게 투입했다. 플레이오프에서의 기록은 좋지 않았으나 역시 주형광은 주형광이었다. 날카로운 슬라이더로 김한수를 삼진으로 돌려세운 주형광은 다음 타자 정경배의 안타성 타구를 잘 잡아낸 김민재의 호수비 덕분에 위기를 넘겼다. 그리고 ‘위기 다음은 기회’라는 야구 속설을 충실히 지킨 롯데는 11회 초 임재철의 과감한 주루플레이(와 3루수 김한수의 중계 플레이 실수)를 앞세워 6대 5 역전에 성공했다.
4이닝 만에 다시 리드를 잡은 롯데는 주형광으로 경기를 마무리 짓기로 했다. 이미 분위기는 롯데 쪽으로 넘어왔고, 흐름을 탄 주형광은 김태균과 송재익, 정회열을 모두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경기를 매조졌다. 1승 3패로 탈락 위기였던 롯데는 남은 3경기를 모두 6대 5로 승리하면서 감격의 한국시리즈 진출을 확정했다. 얼싸안고 기쁨을 나눈 주형광과 포수 임수혁을 중심으로 모인 롯데 선수들은 자신들이 만들어낸 ‘가을의 전설’을 자축했다.
그러나 이 사진이 연감 표지로 사용되는 일은 없었다.* 삼성과의 사투에 모든 힘을 쏟아낸 롯데는 이어지는 한국시리즈에선 거짓말처럼 1승 4패로 참패를 당했다. 이후 롯데는 21세기가 시작된 지도 이미 2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한국시리즈 문턱도 밟아보지 못하고 있다. 1999년 당시 롯데의 사령탑이었던 김명성 감독은 2001년 7월 24일에, 7차전 승부를 원점으로 돌린 포수 임수혁은 2010년 2월 7일에 세상을 떠났다.
* 사실 1997년 이후 프로야구 연감에서는 우승팀이 표지를 장식하는 일이 사라졌다. 만약 롯데가 우승했어도 연감 표지로 사용될 일은 없었다는 것이다.
야구공작소 양철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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