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연재물은 ‘KBO 박스스코어 프로젝트’와 함께 합니다.
1995년은 여러모로 대한민국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한해였다. 1월 초 육군 중위가 소총을 탈취해 은행에 침입한 사건을 시작으로 4월에는 대구 상인동 지하철 공사장에서 가스 폭발 사고가 일어나 101명이 숨지는 참사가 일어나기도 했다. 북쪽에서는 북한군 대위가 미그기를 몰고 귀순했고, 남쪽에서는 조선소에서 화재가 일어나 노동자 19명이 사망하는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태수가 혜린에게 외친 “이렇게 하면 널 가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라는 말은 모든 직장인들의 귀가를 앞당겼고(드라마 <모래시계>), 김건모는 친구에게 함부로 자신의 여자친구를 소개하지 말라는 경고 메시지로(‘잘못된 만남’) 330만 장의 앨범을 팔아 치웠다.
이렇듯 여러모로 기억에 남을 1995년에 프로야구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전년도 챔피언이었던 LG 트윈스가 시즌 초반부터 선두권에 위치한 가운데 항명사건으로 내홍을 겪었던 서울 라이벌 OB 베어스 역시 초반 좋은 흐름을 타면서 LG를 위협했다. 여기에 신진 자원과 베테랑의 조화가 잘 이뤄진 롯데 자이언츠 역시 상위권을 지켰다. 당시 대한민국의 양대 도시인 서울과 부산 팀이 선전하며 KBO 리그는 역대 최초로 500만 관중을 돌파하는 경사를 맞이했다.
그중에서도 롯데는 색깔 있는 야구를 펼쳤다.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으로 1994년부터 지휘봉을 잡은 40세의 젊은 감독 김용희는 자율야구를 앞세워 팀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테이블세터 전준호가 69도루를 기록하는 등 무려 8명의 선수가 두 자릿수 도루를 기록했고, 심지어 4번 타자 마해영도 16번이나 베이스를 훔치면서 발야구에 기여했다. 덕분에 롯데는 2021년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는 한 시즌 팀 최다 도루 기록(220도루)을 보유하게 됐다. 여기에 마해영과 임수혁의 이른바 ‘마-림포’까지 터지면서 롯데는 1995시즌 팀 득점 590득점을 기록, 리그 2위에 올랐다.
그런데 롯데는 126경기 시즌이었던 1995년에 이 590득점 중 약 4%에 해당하는 24점을 하루에 몰아서 기록했다. 강타자들이 즐비하던 ‘조-대-홍-갈’ 시절에도 기록하기 어려웠던 20득점 이상을 20홈런 타자 하나 없던 1995년 롯데는 어떻게 올리게 됐을까.
1995년 6월 27일은 건국 이래 최초로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열린 날이었다. 롯데는 이날부터 대구에서 삼성 라이온즈와 3연전을 진행했다. 투표날이었던 27일 경기에서 롯데는 상대 에이스 김상엽에게 8.1이닝 동안 틀어막히며 1대 3으로 졌다. 롯데는 2번 손동일만이 2안타를 기록했을 뿐 다른 선수들이 산발타에 그치며 이렇다 할 공격을 펼치지 못했다. 2회 김종훈의 홈런이 없었다면 롯데는 김상엽에게 꼼짝없이 완봉을 헌납할 뻔했다.
다음날, 롯데는 베테랑 선발 윤학길을 투입하며 설욕을 노렸다. 또한 전날 홈런을 때려냈던 김종훈을 2번 타자로 올리면서 타선에도 변화를 줬다. 이에 맞서는 삼성은 ‘불곰’ 최한경이 선발투수로 등판했다. 1994년 혜성 같이 등장해 팀의 마무리 투수로 활약하다 선발투수로 전업한 최한경은 1995시즌 다소 주춤한 모습을 보였다. 이 때문에 롯데는 경기 초반부터 희망을 품을 수 있게 됐다.
김용희 감독의 타순 변화는 적중했다. 롯데는 1회 초 시작과 함께 1번 전준호와 2번 김종훈이 연속 2루타를 터트리며 가볍게 선취점을 올렸다. 이어 김응국의 적시타 등 1회에만 4안타를 집중시키며 롯데는 먼저 3점을 냈다. 1회 말 곧바로 1점을 내준 롯데는 2회 초에도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매서운 공격에 흔들린 최한경이 2회 1아웃을 잡고 마운드를 내려갔고, 이어 등판한 최한림을 상대로 임수혁이 만루홈런을 기록하며 삼성 마운드를 초토화시켰다. 롯데는 4회에도 소소하게 2점을 올리며 5회 초까지 11대 1로 크게 앞섰다.
그러나 사자는 5회 말부터 발톱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1사 1, 2루 찬스를 만든 삼성은 신동주의 적시타를 시작으로 대거 7안타를 뽑아냈다. 여기에 롯데 수비진의 실책까지 겹치면서 삼성은 5회 말에만 무려 9점을 올리며 경기를 순식간에 한 점 차로 만들었다. 삼성 타선의 폭발력에 롯데 선발 윤학길은 승리투수 요건에 아웃카운트 하나만을 남겨놓고 내려갔고, 2번째 투수 박부성 역시 2타자 상대 2안타를 내주며 진화에 실패한다.
삼성의 반격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삼성은 6회 말 좌완 가득염을 상대로 1사 만루 찬스를 만들자 6번 이승엽 타석에서 대타 김성현을 투입했다. 그러자 롯데 역시 필승조 김상현을 올리며 불을 끄고자 했다. 그러나 1988년까지 롯데 선수였던 김성현은 여기서 친정팀을 울리는 대타 만루홈런을 쏘아 올렸다. 이 경기에서 나온 두 번째 만루홈런으로 삼성은 10점 차 열세를 2이닝 만에 3점 차 리드로 뒤집었다(11대 14).
여기서 끝났다면 그냥 삼성의 뒷심을 칭찬하면 됐다. 그러나 롯데는 그 광경을 지켜보지만은 않았다. 7회 초 3연속 볼넷으로 무사 만루 찬스를 만든 롯데는 전준호의 적시타를 시작으로 ‘대구 폭격’에 나섰다. 임수혁의 적시타로 14대 14 동점을 만든 롯데는 다음 타자 손동일의 2타점 2루타로 역전에 성공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공격을 이어나간 롯데는 7회 초에만 무려 11점을 올리며 삼성의 전의를 상실하게 했다. 더 이상 점수를 표기할 칸이 없어진 대구 시민야구장의 전광판에는 숫자 ‘11’ 대신 알파벳 ‘B’가 자리를 잡았다. 9회 초에도 2점을 추가한 롯데는 결국 24대 14라는 ‘핸드볼 스코어’로 힘겨운 승리를 쟁취했다.
이날 양 팀은 진귀한 기록을 쏟아냈다. 롯데가 낸 24득점은 당시 한 경기 한 팀 최다 득점이었다. (공교롭게도 2년 뒤 삼성이 이 기록을 깬다) 또한 양 팀이 합쳐서 낸 38득점은 14년 뒤인 2009년 LG 트윈스와 히어로즈가 39득점(22대 17 LG 승)으로 경신하기 전까지 한 경기 최다 득점 기록으로 남았다. 롯데와 삼성은 109타자가 타석에 들어섰고, 특히 롯데는 6번 손동일까지 7타석을 소화하며 타격 기회를 원 없이 가졌다. 양 팀 투수 10명 중 실점하지 않은 투수는 삼성 신성필(1.1이닝)과 롯데 박부성(0이닝) 둘뿐이었다. 롯데 임수혁은 만루홈런 포함 6타점을 올리며 팀 동료인 마해영을 제치고 리그 타점 선두에 올랐다.
진 팀은 물론이고 이긴 팀도 웃을 수 없었던 경기에 홈팀 삼성은 경기 후 전광판에 ‘오늘 팬 여러분에게 좋은 경기 보여드리지 못한 점 대단히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내일은 좋은 경기를 보여드릴 것을 약속합니다’라는 사과문을 띄우는 촌극을 펼쳤다. 삼성은 정말로 좋은 경기를 보여주려고 했는지 전날 8실점을 기록한 선발 최한경을 7회 2사 후 투입하는 강수를 뒀다. 최한경이 무실점으로 설욕에 성공했고 양준혁과 이동수의 홈런까지 터졌으나 한 점이 모자랐던 삼성은 롯데에 3대 4로 패배했다. 투수진의 고갈로 급히 투입한 선발 박지철이 5.1이닝 2실점으로 잘 버틴 롯데는 결국 위닝시리즈를 가져오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날 롯데와 삼성의 승부, 아니, 6월 29일 열린 프로야구 4경기는 국민들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경기 시작 30분 전, TV를 통해 서울 한복판에서 백화점이 무너지는 초대형 사고가 일어났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뉴스특보를 지켜보며 초조함을 감추지 못했다. ‘사고 공화국’ 오명의 정점을 찍었던 이 날을 우리는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라는 명칭으로 기억하고 있다.
사진=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야구공작소 양철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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