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 밴드 이론, 그거 진짜 효과 있어?

LG 트윈스 투수 임찬규는 올 시즌 개막 전 자체 청백전 첫 4경기에서 12이닝 13실점으로 부진했다. 임찬규는 부진 원인을 짚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타자들에게 물어보니 체인지업이 포심 패스트볼과 확연히 달랐다더라. 던지는 동작에서 차이가 나고, 두 구종 사이 터널의 차이도 있었다” 여기서 터널(tunnel)피치 터널 이론에서 지칭하는 그 터널이다.

피치 터널 이론이란?

피치 터널 이론은 서로 다른 구종이 일정 지점(터널 포인트. 홈플레이트에서 23.8피트 떨어진 지점. 위 그림 Tunnel Point 참고)까지 최대한 비슷한 궤적을 갖게 하면, 타자의 구종 인식을 어렵게 해서 효과적인 투구를 펼칠 수 있다는 이론이다. 터널 구간은 서로 다른 구종이 비슷하게 보이는 구간, 즉 터널 포인트까지의 구간이다. “포심과 체인지업 사이 터널의 차이가 있었다”는 임찬규의 말은, 두 구종이 터널 구간에서 비슷한 궤적을 그리지 못했다는 의미다. 아래 영상은 찰리 모튼의 포심-커브 구사 장면이다. 두 구종이 분리되기 시작하는 지점까지가 터널 구간이다.

팬그래프 칼럼니스트 Jon Roegele은 2013~2014년 MLB 투구 데이터 전수조사를 통해, 터널 포인트에서의 거리는 가깝지만 홈플레이트에서의 거리는 먼(편의를 위해 ‘터널링’이라고 칭하겠다) 2개 구종이 연달아 날아올 때 SwStr%(헛스윙 비율)이 높다는 것을 밝혀냈다. 또 다른 칼럼니스트 Michael Augustine 역시 터널링이 좋은 투수, 즉 터널 포인트에서의 거리(PreMax)가 가깝고 PreMax 대비 홈플레이트에서의 거리(PlatePreRatio)가 먼 구종들을 던지는 투수일수록 FIP, 삼진/볼넷 비율, 허용 타구 속도 등 다방면에서 좋은 성적을 기록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인 밴드 이론의 정의와 효용성

Roegele은 터널링의 사례가 가장 많이 나타난 구종 세트를 발표한 뒤(위 표 참고), 이를 인 밴드라고 칭했다. 인 밴드 이론은 투수가 인 밴드에 해당하는 구종, 즉 터널링되는 공을 많이 던질수록 좋은 성적을 기록한다는 이론이다. 특히 Roegele은 인 밴드 피칭을 많이 한 투수는 대부분 확실한 메인 변화구 1개를 보유했음을 근거로 들며, 이러한 유형의 투수가 인 밴드 이론을 활용할 때 더 유리하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칼럼니스트 Eno Sarris는 Roegele의 주장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갔다. 커브를 메인 변화구로 하는 존 레스터가 3번째 구종인 체인지업을 적게 구사하고 포심-커브 인 밴드 피칭에 집중했을 때 ERA가 더 낮았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선발 투수는 다양한 구종을 던질수록 좋다고 생각하지만, Sarris는 차라리 확실한 구종을 많이 던지라고 주장했다.

Roegele과 Augustine의 연구 결과를 보면 터널링 효과가 실존함에는 별다른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일반 야구팬들도 터널 구간에서 포심과의 궤적 차이가 큰 변화구보다는 작은 변화구를 분간하는 게 더 어렵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터널링이 잘 되는 구종, 곧 인 밴드에 해당하는 구종을 ‘얼마나 자주 던지느냐’는 또 다른 문제다. 아무리 터널링이 잘 된다고 해도, 일반적으로 선발 투수가 투피치로 성공하기는 어렵다는 게 정설이다. 때문에 투수에게 “A구종 구사율을 높이고, B구종 구사율을 낮춰”라고 조언할 때는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인 밴드에 해당하는 메인 변화구를 더 적극적으로 구사하면 정말 성적이 좋아질까.

Roegele이 발표한 인 밴드 세트는 포심-커브, 포심-슬라이더, 투심(싱커)-슬라이더, 포심-체인지업이다. 필자는 인 밴드에 해당하는 변화구, 즉 커브/ 슬라이더/ 체인지업을 메인 변화구로 하는 투수가 인 밴드 이론에 따라 투구할 때 성적이 더 좋아지는지 여부를 조사해 보고자 했다.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은 과정으로 2015~2019년 MLB 투구 데이터를 조사했다.

  1. 커브/ 슬라이더/ 체인지업의 구종 가치가 높은 선발 투수를 추린다. 커브, 체인지업은 지난 5년간 구종 가치 +20 이상, 슬라이더는 +30 이상을 기준으로 삼았다. (슬라이더 기준은 구종별 인원을 비슷하게 맞추기 위함.)
  2. ‘확실한 2가지 구종(포심+변화구 1개)’에 집중하기 위해 2번째 변화구의 가치가 +15 이상인 투수는 제외한다. (EX. 슬라이더 구종 가치 +86, 커브 구종 가치 +35인 클레이튼 커쇼는 제외)
  3. 위 2가지 조건을 충족하는 39명의 *게임 스코어와 SwStr%를 수집한다. 이후 게임 스코어 50점 이상/미만인 경기, *SwStr% 9.9% 이상/ 미만인 경기를 분류해 포심+메인 변화구 구사율을 본다. 단, 슬라이더의 경우 포심, 투심 모두와 인 밴드로 묶이므로 투수의 제 1구종이 포심이면 포심+슬라이더, 투심이면 투심+슬라이더 구사율을 본다. (EX. 마에다 켄타는 게임스코어 50점 이상인 경기에서 포심+슬라이더 구사율 56%, 50점 미만인 경기에서 57%를 기록했다. SwStr% 9.9% 이상인 경기의 구사율은 64%, 미만인 경기의 구사율은 57%였다.)
  4. 게임 스코어와 SwStr% 모두 5%P 이상 차이를 기록한 그룹을 A그룹, SwStr%만 5%P 이상 차이를 기록한 그룹을 B그룹, 두 지표 모두 5%P 미만 차이를 기록한 그룹을 C그룹으로 나눈다. (게임스코어만 5%P 이상 차이를 기록한 투수는 없었다.)

*게임 스코어: 선발 투수의 개별 경기 퍼포먼스를 평가하는 지표. 소화 이닝, 실점, 자책점, 피안타, 탈삼진 등 투구 기록을 종합해 점수를 매긴다. 50점이 평균이며, 그보다 높은 점수를 기록할수록 좋은 퍼포먼스를 보인 것이다.

*9.9%는 2015~2019 MLB 평균

조사 결과, A/ B/ C그룹 각각의 인원은 다음과 같았다.
A그룹: 4명 (10%)
B그룹: 7명 (18%)
C그룹: 28명 (72%)

대부분의 투수는 메인 변화구 구사율을 높인다고 해서 성적이 좋아지지 않았다. A, B그룹의 터널링이 C그룹의 터널링보다 더 뛰어난 것도 아니었다. A/B/C그룹의 평균 PreMax는 각각 1.62/ 1.55/ 1.57(인치), PlatePreRatio는 11.4/ 11.9/ 11.8로 유의미한 차이가 없었다.

결론

필자가 알고 싶었던 것은 “인 밴드에 해당하는 메인 변화구를 더 적극적으로 구사하면 정말 성적이 좋아질까”에 대한 답이었다. 허무하지만, 필자가 내린 답은 ‘case by case’ 이고, ‘사람 by 사람’이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투수(C그룹)에게서 인 밴드 이론 활용 빈도와 성적 사이 상관관계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적은 비율이긴 해도, A, B그룹의 투수는 포심+메인 변화구 구사율을 높였을 때 성적이 유의미하게 좋아졌다(아래 표 참고). 해당 투수들은 앞으로 포심과 메인 변화구를 좀 더 적극적으로 구사하는 방향으로 레퍼토리 수정을 고려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선발 투수의 경기별 성적은 그날의 구위, 제구 등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소에 의해 결정된다. 따라서 ‘구종 구사율’이라는 한 가지 요소만으로 선발 투수의 성적을 설명하려는 것은 무리한 시도일 수 있다. 선수 출신 칼럼니스트인 Dan Blewett 역시 비슷한 맥락의 주장을 했다. ‘적절한 투구’는 상황적 맥락, 투수의 장단점에 따라 그때그때 결정된다는 것이다. 타자가 포심에 늦은 반응을 보이면, (설령 타자가 포심을 예상한다고 하더라도) 포심만 계속해서 구사할 수도 있다.

인 밴드 이론뿐 아니라, 피치 터널 이론 역시 ‘case by case’인 것은 마찬가지다. Roegele의 조사에 따르면, 조시 도날드슨이나 요에니스 세스페데스 같은 타자는 인 밴드 피칭 상황에서 오히려 더 낮은 SwStr%를 기록했다. 타자들의 타격 접근법도 모두 다른데, 타격 시 공의 스핀을 보고 구종을 분간하는 타자도 있지만 해당 과정 없이 게스 히팅을 하는 타자도 있다. 후자의 경우 피치 터널 자체가 무의미할 수도 있다. 이처럼 복잡하고 복합적인 야구의 세계에서, 필자가 인 밴드 이론의 효과에 대해 내린 결론은 ‘투수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다르다’는 것이다. 필자의 조사에선 ‘case by case’ 이상의 결론을 내지 못했지만, 피치 터널/인 밴드 이론을 통한 투구 레퍼토리 설계에 대한 고민은 계속될 것이다. 스탯캐스트 시스템의 도입으로 ‘스마트 야구’ 시대가 도래한 요즘에는 더더욱 그렇다.

야구공작소 당주원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이도삼, 나상인


기록 출처= Baseball Prospectus, Fangraphs
사진 출처= Baseball Prospectus
GIF 출처= Fangrap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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