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와 사는 학교

<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홍기민 >

최근 영화 ‘왕과 사는 남자’에서 단종의 유배지로 등장한 영월 청령포가 관광지로 주목받고 있다. 영월에는 야구팬들이 눈여겨볼 또 다른 장소가 있다. ‘탄광촌 학교’로 불리는 영월 상동고등학교다.

상동고란 이름이 낯설게 느껴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상동고는 야구부를 창단한 2023년 초만 해도 전교생이 3명뿐인 폐교 위기 학교였다. 그러나 지난 2026 KBO 신인 드래프트에서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두산 베어스 지명합니다. 상동고등학교 투수 임종훈”

신인 드래프트 7라운드에 3학년 투수 임종훈의 이름이 불린 것이다. 창단 3년 차였던 상동고 야구부에서 나온 첫 프로 지명이었다. 임종훈은 동시에 야구부 첫 졸업생이기도 했다. 상동고는 어떻게 폐교 위기 학교에서 프로 선수를 배출한 학교로 거듭날 수 있었을까.

 

광산 도시의 쇠퇴와 학교의 위기

상동고는 강원도 영월군 상동읍 태백로에 위치한 학교다. 상동읍은 1970년대 광산 산업을 기반으로 성장한 도시였다. 당시 텅스텐 광산이 활황을 이루며 4만 명이 넘는 인구가 모여 살았다.

하지만 산업 구조가 변화하면서 도시의 운명도 흔들렸다. 중국산 텅스텐의 물량 공세로 가격 경쟁력에서 밀리며 1994년 광산이 폐광됐다. 이후 상동읍의 인구는 급격히 감소했다. 한때 상동읍은 1,000명이 되지 않는 인구로 전국에서 가장 인구가 적은 지역 중 하나가 되기도 했다.

인구 감소의 여파는 학교에도 고스란히 이어졌다. 2022년까지 3,000명이 넘는 졸업생을 배출했던 상동고는 2022년과 2023년, 신입생을 단 한 명도 받지 못했다. 결국 3학년 세 명만 남게 되면서 폐교 위기에 처했다. 지역 내 유일한 고등학교가 폐교된다는 것은 곧 지역 미래와 직결되는 문제였다.

 

생존을 위한 선택 = ‘야구’

상동고 졸업생들은 폐교를 막기 위해 과감한 대책을 제안했다. 야구 전문 특성화고로 전환이었다. 물론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 상동읍은 접근성이 뛰어난 지역이 아니기 때문에 안정적인 학생 수급이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 뒤따랐다. 이에 상동고는 네 가지 전략으로 문제에 대응했다.

< 시멘트산업사회공헌재단에서 지역 사회 발전 및 지역 스포츠 인재 발굴을 위해 상동고에 1억 원 후원금 전달식 >

첫째, 경제적 부담 완화다. 운동부 회비는 학부모에게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상동고는 이를 최소화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영월군 역시 적극적인 교육 재정 지원에 나섰다. 그 결과 야구부 월 회비는 30만 원 수준으로 책정됐다. 부족한 훈련비는 사회공헌재단의 후원과 지역 주민들의 기부로 채워졌다. 주민들은 염소와 배추 등을 판매한 수익금을 선수단에 보태며 야구부에 대한 애정을 보여주기도 했다.

둘째, 전문 코칭스태프 영입이다. 선수 시절 명성이 지도력과 반드시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학교에 대한 신뢰를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임은 분명하다. 상동고에는 한화 이글스 출신 백재호 감독과 롯데 자이언츠 감독 경력을 지닌 양승호 단장이 합류했다. 두 사람은 신일고 출신이라는 공통점을 바탕으로 동문 네트워크의 지원을 이끌어냈다. 여기에 최선호 멘탈 코치와 전상준 서울시청 웨이트 트레이닝 센터장이 합류하며 훈련 체계를 강화했다.

셋째, 인프라 개선이다. 창단 초기에는 지역 폐가를 선수 숙소로 활용하며 급한 불을 껐다. 이후 40명 이상 수용 가능한 기숙사와 실내 훈련장, 인조 잔디 구장을 마련하며 선수 육성에 최적화된 훈련 환경을 마련했다.

넷째, 교육과정 개편이다. 2024년 7월 상동고는 자율형 공립고로 선정됐다. 이를 통해 교육과정을 유연하게 운영할 수 있는 틀을 만들었다. 스포츠 관련 교육과정을 확대해 선수뿐 아니라 트레이너, 재활 코치 등 다양한 진로를 준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는 ‘프로 진출 실패 = 진로 단절’이라는 스포츠 교육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한 시도다.

 

결과로 보답한 야구부 

이 같은 적극적인 지원의 결과는 빠르게 나타났다. 2024년 제78회 황금사자기에 참가한 상동고는 서울 EPBC 상대로 전국 대회 첫 승을 거뒀다. 이어 2025년 제80회 청룡기에서는 더욱 큰 성과를 이뤘다. 꾸준히 프로 선수를 배출한 선린인터넷고와 최근 다크호스로 떠오른 라온고를 연달아 꺾으며 8강에 진출했다.

< 상동고등학교 첫 프로 야구 선수 임종훈 >

당시 가장 주목받은 선수는 3학년 임종훈이었다. 그는 승리를 거둔 두 경기에서 각각 2이닝 무실점, 4.2이닝 무실점을 기록하며 에이스 역할을 해냈다.

임종훈은 처음부터 투수는 아니었다. 청담고에 입학한 그는 1년간 내야수로 뛰었다. 2학년 때 상동고로 전학 오면서 투수로 전향했다. 당시 패스트볼 구속은 130km/h 초반에 불과했다. 체격이 작은 편이었던 그는 봉민호 투수코치와 함께 근력과 순발력 강화에 집중했다. 그 결과 임종훈은 최고 구속을 147km/h까지 높였다. 유연한 투구폼과 빠른 성장세를 주목한 두산 스카우트팀은 7라운드에 지명했다.

과정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명분을 얻기 힘들다. 전국 대회 승리와 프로 구단 지명은 상동고가 야구 전문 특성화고로 가기 위한 결정적인 동력이 됐다.

 

지역과 상생하는 야구

상동고 야구부는 지역에 다시 활기를 되찾는 데 도움을 줬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인구 증가였다. 1,000명 아래로 떨어졌던 상동읍 인구는 야구부원과 학부모, 교직원 등이 전입하면서 다시 1,000명을 넘어섰다(2026년 2월 기준 1,009명). 학생들이 마을에 머물면서 지역 상권 이용도 늘었고, 축제 참여와 봉사 활동을 통해 주민들과 공감대를 쌓아 갔다.

< 점심 식사 봉사를 하고 있는 상동고등학교 학생들 >

상동고 사례는 학생 수 감소로 학교가 사라지던 기존 흐름을 뒤집었다. 외부 학생 유입을 통해 학교와 지역이 함께 살아나는 구조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특히 야구부는 하나의 운동에 그치지 않았다. 학생과 학부모의 이동을 이끄는 인구 유입의 통로로 작동했다. 이는 지방 소멸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기업 유치나 개발 사업에만 국한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교육 역시 지역을 변화시키는 핵심 수단이 될 수 있다.

또한 상동고는 아마추어 야구의 구조적 문제였던 비용 부담을 공교육 안에서 완화했다. 상대적으로 낮은 비용과 안정적인 교육 환경은 재능이 있음에도 기회를 얻지 못했던 학생들에게 새로운 선택지를 제공했다. 이는 팀 성과와 별개로 스포츠 교육의 접근 범위를 넓혔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강원도는 상동고를 국내 최초의 야구 특성화고로 발전시키고, ‘교육 발전 특구’ 정책과 연계해 지역 맞춤형 교육 모델을 확대할 계획이다. 학교가 지역 산업이나 자원과 결합해 특성화될 경우 야구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지역 기반 인재 양성과 정주 구조1 형성이 가능해진다. 상동고는 그 가능성을 먼저 보여준 사례다.

폐교 직전까지 몰렸던 작은 학교에서 시작된 변화는 이제 지역 전체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 지방을 살리는 방법이 거대한 산업 유치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을 모이게 하는 ‘이유’를 설계하는 것에서 시작할 수도 있다.

상동고 야구부의 이야기는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라운드에서 울리는 타구음이 더 이상 한 학교의 성과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 소리는 지역 변화가 이미 시작됐음을 알리는 신호다.

 

참조 = 연합뉴스, KBSA, 위키강원, 두산 베어스

야구공작소 박경현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천태인, 장호재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홍기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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