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로라도 로키스와 캐나다를 대표하는 래리 워커(출처=콜로라도 로키스 공식 트위터)
[야구공작소 김동윤] 2019년 새해를 앞두고 콜로라도 로키스와 캐나다 야구팬에게 기분 좋은 소식이 들려왔다. 래리 워커의 명예의 전당 득표율이 크게 올랐다는 것이었다. 20년 전 콜로라도와 캐나다를 대표했던 강타자였던 그는 아직도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그 자신도 조국 캐나다와 전성기를 보낸 팀 콜로라도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워커의 명예의 전당 입성은 팬들의 오랜 바람이었다.
올해의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은 1월 23일(한국 시각)에 발표된다. 투표권을 가진 기자는 자신이 제출한 투표권과 선정 이유를 결과 발표 전에 밝히기도 한다. 이런 기자들의 표를 추적하면 대략적인 투표 추세를 알 수 있다. 이를 일반 팬들에게 알려주는 사이트가 있다. 라이언 티보도란 메이저리그 팬이 수 년째 운영 중인 BBHOF*다.
이곳에선 그간 모은 자료를 통해 다양한 정보를 제공한다. 2015년부터는 같은 기자가 전년도에 해당 후보에 투표했는지 여부까지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시스템적인 보완과 함께 자신의 선택을 공개하는 기자가 늘어나며 팬들이 추세를 판단하는데 나날이 도움이 되고 있다.
*BBHOF Tracker: Baseball Hall of Fame Vote Tracker의 약자(주소=bbhoftracker.com)
워커에게 그동안 무슨 일이?
워커는 명예의 전당에 관심이 많은 선수 중 하나다. 선수 시절에도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기로 유명했다. 은퇴 후에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2012년 8월부터 시작한 워커의 SNS를 보면 매년 명예의 전당 발표를 신경 쓰는 귀여운(!) 모습을 볼 수 있다.
워커는 자신이 명예의 전당에 쉽게 갈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의 누적성적과 쿠어스필드를 홈으로 쓰며 기록한 홈, 원정 성적 차이는 선수 생활 내내 그를 따라다닌 족쇄였다. 물론 본인도 그것을 알고 있다. 입후보 4년 차까지만 해도 다른 입성자를 축하해주는 여유도 보였다.
워커의 여유는 바로 다음 해 사라졌다. 2015년 명예의 전당 투표에 앞서 규정이 바뀐 것이다. 원래 그의 목표는 15년간 표를 받는 것이었다. 2014년까진 전체 표 중 5%를 넘게 득표하면 15년 동안 명예의 전당에 도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5년부터 연한이 10년으로 축소됐다. 워커에게 남았던 10번의 기회가 절반으로 줄어든 것이다.
때마침 그해 후보에 쟁쟁한 선수들이 대거 등장했다. 그렉 매덕스, 톰 글래빈, 프랭크 토마스, 랜디 존슨, 페드로 마르티네즈, 존 스몰츠와 같이 첫해에 입성한 선수였다. 줄곧 20%를 유지하던 워커의 득표율은 4년 차 10.2%, 5년 차 11.8%, 6년 차엔 15.5%밖에 기록하지 못했다.
이때부터 워커는 복잡한 감정을 드러냈다. 비슷한 처지의 몬트리올 엑스포스 시절 선배 팀 레인스의 반응을 퍼오기도 했다. 지난 회부터는 자신이 명예의 전당에 들어갈 자격도 없냐며 팬들에게 하소연까지 했다. 하지만 여전히 득표율은 30% 대에 머물렀다. 작년 이맘때는 결과를 짐작한 듯 팬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돌렸다.
반전의 2019년
그리고 9년 차인 지난해 12월, 2019년 명예의 전당 투표결과가 공개되기 시작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지난 회까지만 해도 37.5%에 불과했던 워커의 득표율이 66%까지 치솟은 것이다. 2019년 1월 10일(한국 시각) 기준으로 162명의 투표권이 공개됐는데 ,이는 전체 투표권자 412명 중 39.3%에 해당하는 비율이다. 원래 워커에게만 투표하던 사람들의 표가 먼저 공개된 것도 아니었다.
지금까지 워커가 현재까지 얻은 107표 중 34표가 새롭게 얻은 표다. 이는 올해 후보들이 새롭게 얻은 표 중 최다 득표다. 비록 전체 투표수 중 39.3%밖에 공개되지 않았고, 공개된 표로도 66%에 불과하다. 하지만 지난 8년간 워커의 득표율은 10~30%에 머물렀었다. 그동안 워커의 명예의 전당 입성에 부정적이던 매체들도 이번 득표율에 주목하며 긍정적인 보도를 쏟아내고 있다.
급상승한 득표율은 강력한 경쟁자들이 사라진 것도 원인 중 하나로 보인다. 몇몇 매체는 ‘이제야 워커의 성적이 눈에 들어온다’ 라고 말했다. 앞선 경쟁자들이 만만치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내년이 마지막 기회인 워커에게도 희망이 생긴 것이다.
쿠어스필드가 나의 PED였다
“난 약물을 한 적이 없습니다. 깨끗하죠. 하지만 나는 쿠어스필드에서 뛰었습니다. 그게 나의 PED였습니다.”
* PED = Performance-Enhancing Drug(경기력 향상 약물)
약 1년 전, 미국의 유명 언론사 ESPN이 워커와 있었던 인터뷰를 요약한 문장이다. 워커는 저 헤드라인은 자신의 인터뷰를 왜곡한 것이라며 분통을 터트렸다. 그는 약물 복용자를 싫어했다. 쿠어스필드로 인한 저평가에 시달렸던 워커에게 ESPN의 왜곡은 모욕에 가까웠을 것이다. 하지만 앞뒤가 다 잘렸다는 저 문장은 아이러니하게도 워커를 평생 따라다닌 낙인이었다.
워커는 약물로부터 깨끗한 MVP 수상자다. 그런 그가 명예의 전당 입성에 고전한 건 부족한 통산 성적과 쿠어스필드 덕을 봤다는 이미지 탓이 컸다. 17시즌 동안 140경기 이상 뛴 시즌이 4시즌에 불과했고 150경기 이상 뛴 시즌은 단 한 시즌 밖에 없다. 커리어 내내 부상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몬트리올 시절에 다친 무릎은 은퇴할 때까지 그를 괴롭혔다. 무릎 외에도 8번의 수술을 받았다. 그 결과 2160안타 383홈런이라는 명예의 전당에 도전하기에 다소 미흡한 성적을 거뒀다.
결정적인 이유는 역시 워커가 쿠어스필드로 간 뒤 한 차원 다른 선수가 됐다는 것이다. 그는 몬트리올 시절에도 평균 15홈런-15도루를 기록하는 준수한 외야수였다. 골드글러브, 실버슬러거, MVP 표도 받았다. 하지만 콜로라도에서의 ‘건강한’ 워커는 수준이 달랐다. 35세 시즌까지 3할 타율을 기록하고, MVP 후보에 오르는 리그 정상급 외야수였다. 세 번의 타격왕, 한 번의 홈런왕과 MVP타이틀도 콜로라도 시절에 나왔다.
워커의 콜로라도 입단 전후 성적과 홈, 원정 스플릿 기록은 그의 실력에 대한 의문을 갖게 만들었다. 워커의 홈, 원정 OPS 차이는 0.203으로 7000타석 이상 뛴 선수 중 역대 3위다. 특히 세 번의 타격왕 시즌 중 1998년과 1999년은 홈, 원정의 차이가 심했다. 타율은 0.116, 0.175나 차이가 났고, OPS도 0.349, 0.516으로 격차가 컸다. 현역 시절 그의 별명인‘산사나이’는 좋은 의미로도 나쁜 의미로도 그를 가장 잘 표현하는 단어였다.
워커의 명예의 전당 입성? Sure, Why not?
그렇다고 워커의 모든 것이 쿠어스필드 덕이라고 할 수는 없다. 쿠어스필드가 있는 덴버 시는 해발고도가 1600M에 달한다. 그로 인한 낮은 공기 밀도와 습도는 평지에 비해 타구를 더 뻗게 만들었다. 지금까지도 콜로라도 타자는 타격 친화적인 홈구장을 쓰는 탓에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 워커는 그런 인식을 깼던 유일한 선수다. 1995년 쿠어스필드가 생긴 후 콜로라도 타자들은 언제나 ‘하산 효과’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하산 효과’는 타자들이 해발고도 1600미터에서 내려가 다른 조건의 원정 구장에서 헤매는 것을 일컫는다.
1997년의 워커는 쿠어스필드, 저조한 팀성적이란 모든 악조건을 이겨내고 콜로라도 소속, 캐나다 국적으로는 최초로 MVP에 올랐다. 쿠어스필드 덕이라는 비아냥도 이때는 소용없었다. MVP투표엔 팀 성적이 반영된다. 1997년의 콜로라도는 83승 79패로 5할 승률을 간신히 넘긴 수준이었지만 그의 수상에 이변은 없었다. 1위 표 총 25장 중 22장을 받으며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물론 가장 잘한 시즌만 놓고 쿠어스필드 덕을 보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건 아전인수 격인 해석이다. 하지만 워커는 다른 곳에서도 충분히 잘하는 선수였다. 그가 커리어 초년과 말년을 보낸 몬트리올과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홈구장은 투수구장에 가까운 중립구장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풀타임 3년 차에 MVP 순위 5위를 기록하고,은퇴 시즌엔 9할의 OPS를 보여준 타자가 바로 워커다. 그의 커리어 원정 타율인 0.278보다 낮은 기록을 가진 명예의 전당 입성자도 33명이나 된다. 파크팩터를 적용한 WRC+도 통산 140으로 역대 5000타석 이상 들어선 우익수 중 11위다.
워커의 2160안타와 383홈런은 명예의 전당에 들어가기엔 부족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명예의 전당은 안타와 홈런만 잘 치면 들어갈 수 있는 게 아니다. 꾸준한 활약도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워커는 기준을 충족하고도 남았다.
1000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 중 통산 슬래시 라인을 0.300/0.400/0.500 이상을 유지한 선수는 워커를 포함해 단 21명 뿐이다. 3000타석 이상 들어선 선수는 더욱 적다. 저 비율을 유지하며 2000안타, 350홈런, 200도루 이상을 기록한 건 워커가 유일하다. 그는 통산 230개의 도루를 기록했고, 골드글러브를 7번이나 수상할 정도로 다재다능했다. 평생 무릎 부상을 달고 살았음에도 잘 치고 잘 달렸다.
워커의 WAR이나 명예의 전당 지표는 입성자 평균과 비슷하다. 워커의 JAWS는 우익수 포지션 중 10위에 있다. JAWS 1~14위 중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건 워커와 조 잭슨 뿐이다. 조 잭슨이 승부조작으로 제명된 인물임을 참작하면 워커는 세이버매트릭스 측면에서도 충분히 명예의 전당을 거론할 자격을 갖춘 셈이다.
여전히 워커의 홈, 원정 성적 차이가 거슬린다면 이건 어떨까?
앞서 말한 7000타석 이상 뛴 선수 중 홈, 원정 OPS 차이가 심한 상위 10명의 기록이다. 이들 중 콜로라도의 현역 선수 2명과 별다른 실적을 남기지 못한 싸이 윌리엄스를 제외하면 전원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 아무리 홈에서만 잘 치는 홈보이라도 일정량의 누적을 쌓은 선수는 그 실력을 존중받으며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 콜로라도의 두 타자 또한 그럴 자격이 있다.
당신의 선택은?
명예의 전당 투표가 매년 시행되기 시작한 1967년 이래 70% 이상의 표를 얻고도 다음해 입성하지 못한 선수는 짐 버닝 뿐이다. 총 23명 중 19명은 투표를 통해 입성했고, 3명(레드 러핑, 넬리 팍스, 올랜도 세페다)은 베테랑위원회를 통해 입성했다. 지난해 70.4%를 득표한 에드가 마르티네즈는 올해 명예의 전당 입성이 유력하다. 워커도 희망은 있다. 올해 입성은 힘들더라도 70%를 넘는 득표율을 보여준다면 내년은 기대해볼 만 하다.
워커의 2019년 득표율이 알려진 후 예년과 달리 그의 기록을 재조명하고, 입성 당위성에 힘을 실어주는 여론이 늘어나고 있다. 워커를 향한 긍정적 시선, 부정적 시선 모두 일리가 있다. 아쉬운 점은 그에 대한 논의가 너무 늦게 시작됐다는 것이다. 어느덧 기회는 단 한 번 남았다.
워커는 어떤 형태로든 명예의 전당이 갈 자격이 있다. 위에 언급된 것을 제외하더라도 이유는 충분하다. 어떤 형태로든 갈 만하다면 그가 투표율을 언급하며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래리 워커의 커리어
통산성적
1988경기 2160안타 383홈런 1355득점 1311타점 230도루
타율 0.313 출루율 0.400 장타율 0.565 OPS 0.965
fwar 54.8, bwar 72.7
수상실적
MVP 1회(1997), 올스타 5회, 골드글러브 7회, 실버슬러거 3회, 타격왕 3회
출처 : Fangraphs.com, BBHOF Tracker.com, baseball, baseball-reference.com, twitter.com
에디터=야구공작소 조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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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에 들어갈 듯요. 중간집계에서도 80% 이상 유지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