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야구공작소 박주현)
팬그래프 시즌 예상: 내셔널리그 동부지구 1위(92승 70패)
시즌 최종 성적: 내셔널리그 동부지구 1위(97승 65패)
프롤로그
[야구공작소 장원영] ESPN 전문가들은 시즌 개막을 앞두고 워싱턴을 내셔널리그 동부지구 우승팀으로 점찍었다(35명 중 23명). 마크 멜란슨이 이탈하면서 마무리 자리가 공석이 됐지만, 트레이드와 FA로 새롭게 팀에 합류한 애덤 이튼과 맷 위터스가 타선에 짜임새를 더해주리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들의 예상은 적중했다. 워싱턴은 막강한 투타 밸런스를 앞세워 2위 마이애미 말린스를 20경기 차로 따돌리고 손쉽게 내셔널리그 동부지구 1위를 차지했다.
전문가들은 포스트시즌을 앞두고도 워싱턴을 내셔널리그 챔피언으로 점찍었다(30명 중 12명). 단기전의 더스티 베이커 감독은 여전히 미덥지 못했지만, 타선과 선발진은 작년보다 한층 더 강력해졌으며 유일한 약점으로 평가받던 불펜까지 견고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의 예상은 빗나갔다. 워싱턴은 반드시 잡았어야 했던 5차전을 내주면서 또 한 번 디비전시리즈에서 무릎을 꿇고 말았다. 워싱턴 구단의 챔피언십시리즈 진출은 여전히 몬트리올 엑스포스 시절이었던 1981시즌이 유일하다.
출발은 좋았다. 애덤 이튼, 트레이 터너, 다니엘 머피, 브라이스 하퍼, 라이언 짐머맨, 앤서니 렌돈으로 이어지는 타선은 리그 최강의 화력을 자랑했으며, 맥스 슈어저, 스티븐 스트라스버그, 지오 곤잘레스로 이어지는 선발 트리오 역시 무시무시했다. 여기에 지구 우승을 다툴 것으로 예상됐던 메츠가 잇따른 선발진 붕괴로 고전하면서 반사이익까지 누릴 수 있었다. 워싱턴은 4월부터 17승 8패를 기록하며 재빠르게 리그 선두로 치고 나갔다.
하지만 이내 고비가 찾아왔다. 팀의 1번 타자로 좋은 활약을 이어가던 이튼이 개막 4주 만에 무릎 부상으로 시즌 아웃됐고, 시즌 전부터 약점으로 지적받던 불펜이 본격적으로 말썽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블레이크 트레이넨, 숀 켈리, 코다 글로버 등이 돌아가며 마무리를 맡았지만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결국 워싱턴의 불펜은 전반기 5.20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메이저리그 최악의 불펜이라는 오명을 쓰고 말았다.
정규시즌 이후를 바라보는 마이크 리조 단장이 이를 가만둘 리가 없었다. 워싱턴은 7월 중순 오클랜드로부터 션 두리틀과 라이언 매드슨을 데려와 좌우완 불펜을 동시에 보강했고, 트레이드 마감 시한에는 미네소타의 마무리 브랜든 킨즐러를 영입해 불펜에 깊이를 더했다. 세 선수는 빼어난 후반기 활약으로 기대에 부응했고, 워싱턴 불펜은 후반기 평균자책점 3.54를 기록하며 메이저리그 7위, fWAR 3위에 오르는 대반전을 만들어냈다.
이후 지구 우승까지는 탄탄대로였다. 하퍼가 부상으로 6주가량을 결장하면서 타선의 파괴력이 잠시 떨어진 적도 있었지만 마이클 테일러, 브라이언 굿윈, 윌머 디포 등의 백업 선수들이 빈자리를 유기적으로 메꿔줬다. 여기에 스트라스버그의 후반기 질주(10경기 ERA 0.86)가 겹쳤다. 덕분에 워싱턴은 정규시즌 종료까지 20일을 남기고 리그에서 가장 이른 시점에 지구 우승을 확정할 수 있었다. 구단 사상 첫 2년 연속 지구 우승을 차지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시즌의 끝은 그리 찬란하지 못했다. 정규시즌 막판까지 총력전을 펼쳤던 시카고 컵스와는 반대로 여유롭게 가을야구를 준비했지만, 막상 디비전시리즈에서는 컵스의 끈끈함을 넘어서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타선의 힘으로 승기를 잡았던 5차전에서 어수선한 수비와 오심, 주루사라는 악재가 겹치며 이겼어야 하는 경기를 놓쳐버린 것이 결정적이었다. 베이커 감독도 이번만큼은 나름대로 노력했지만, 돌아온 것은 클린치 경기 10연패뿐이었다. 워싱턴과 베이커 감독의 동행 역시 이 경기를 끝으로 막을 내리게 됐다.
최고의 선수 – 맥스 슈어저(NL 사이 영) & 앤서니 렌돈
맥스 슈어저 시즌 성적: 31경기 200.2이닝 16승 6패 268삼진 ERA 2.51 bWAR 7.3 fWAR 6.0
작년 사이 영 상 수상자의 질주는 올해도 계속됐다. 오히려 작년보다 더 좋아졌다. 시즌 후반 부상에 시달리면서 2012년(187.2이닝) 이후 가장 적은 이닝을 소화하는 데 그쳤지만, 대신 9이닝당 탈삼진(12.02개), 피안타율(0.176), 평균자책점(2.51), FIP(2.90) 부문에서 모두 커리어 최고의 시즌을 만들어냈다. 올 시즌 슈어저가 기록한 6.0의 fWAR은 크리스 세일과 코리 클루버에 이은 메이저리그 3위이자 내셔널리그 1위의 기록이다. bWAR 역시 메이저리그 2위.
결국 슈어저는 다시 한 번 사이 영 상을 수상하며 역대 10번째의 2년 연속 사이 영 상 수상자로 등극했다. 워싱턴에 입단한 2015년 이래로 6.0에 이르는 연평균 fWAR을 기록하며 최고의 FA 영입 사례로 이름을 남기고 있기도 하다. 다만 올가을의 부진은 ‘옥에 티’였다. 시즌 후반부터 좋지 않았던 햄스트링으로 인해 등판 일정이 틀어졌고, 구원 등판한 5차전에서 1이닝 4실점으로 부진하면서 워싱턴의 포스트시즌 탈락에 일조하고 말았다.
앤서니 렌돈 시즌 성적: 0.301/0.403/0.533 OPS 0.937 25홈런 100타점 bWAR 5.9 fWAR 6.9
올 시즌 워싱턴 최고의 타자는 단연 앤서니 렌돈이었다. 2014년 fWAR 6.5를 기록하며 리그 MVP 5위에 오르기도 했던 렌돈은 이듬해인 2015년 부상으로 다소 주춤한 시즌을 보냈다. 하지만 지난해를 기점으로 반등에 성공했고, 올해 초 3홈런 10타점 경기를 펼친 것을 기점으로 드디어 기량이 만개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홈런, 타점, 볼넷 등 거의 모든 부문에서 개인 최고 성적을 만들어낸 렌돈은 수비에서도 13.6의 UZR(Ultimate Zone Rating)을 기록하며 메이저리그 전체 3루수 가운데 1위에 올랐다(2위 놀란 아레나도 6.7).
올 시즌의 렌돈은 사실 MVP 수상 자격이 충분했다. 렌돈이 기록한 6.9의 fWAR은 내셔널리그 1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시즌 내내 꾸준한 활약을 보이며 이튼, 터너, 하퍼의 연이은 부상 공백을 최소화시켜준 점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경쟁자가 59홈런의 지안카를로 스탠튼이었고, 팀내에 MVP 표를 분산시킬 만큼 좋은 타자들이 즐비했던 탓에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다. 공교롭게도 렌돈 역시 포스트시즌에서는 다소 삐끗하는 모습을 보였다. 5경기 동안 타율이 0.176에 그쳤고, 1차전에는 실책을 저지르며 패배의 빌미를 제공했다.
최악의 선수 – 맷 위터스
맷 위터스 시즌 성적: 0.225/0.288/0.344 OPS 0.632 10홈런 52타점 bWAR -0.6 fWAR -0.2
위터스는 데뷔 이래 최악의 시즌을 보냈다. -0.2의 fWAR은 올 시즌 450타석 이상을 소화한 181명의 선수 중 15번째로 나쁜 성적이었으며, 포수로는 단연 최하위였다. 더 큰 문제는 수비에 있었다. 위터스는 블로킹 지수에서 110명의 포수 중 12위에 올랐지만, 도루 저지 부문에서는 90위, 프레이밍 부문에서는 100위를 기록하는 데 그쳤다. 수비 종합 지표인 FRAA(Fielding Runs Above Average)에 따르면 위터스는 평균적인 포수들보다 6.4점을 더 허용했던 심각한 수비력의 포수였다(전체 95위). 공수 양면에서 팀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부진은 포스트시즌에서도 계속됐다. 타석에서는 14타수 2단타로 침묵했고, 수비에서도 기어이 사고를 저질렀다. 디비전시리즈 최종전 한 점 차 상황에서 패스트 볼과 송구 실책으로 어이없이 점수를 내준 위터스는 곧이어 포수 타격방해를 지적받으면서 추가 실점의 단초마저 제공하고 말았다.* 시즌을 마친 위터스가 옵트아웃 권리를 포기하고 팀에 남기로 결정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내년 시즌을 마치고 FA가 되는 위터스는 이제 반드시 반등의 여지를 보여줘야 한다.
* 타격방해는 사실 오심이었다. 방망이 끝 부분에 포수 마스크를 가격당했기 때문이다.
발전한 선수 – 라이언 짐머맨
라이언 짐머맨 시즌 성적: 0.303/0.358/0.573 OPS 0.930 36홈런 108타점 bWAR 2.7 fWAR 3.3
프랜차이즈 스타 짐머맨이 부활했다. 심지어 공격력은 전성기 시절보다도 뛰어났다. 올 시즌 짐머맨이 쏘아 올린 36홈런은 2009년의 33개를 뛰어넘는 커리어 최고 기록이었다. 팀내 최다 홈런 타자이자 리그 홈런 공동 6위로 올라선 것은 덤. 짐머맨은 장타율과 OPS에서도 커리어 최고의 시즌을 만들어냈고, 워싱턴은 그를 하퍼 뒤의 4번 타순에 배치함으로써 공격력을 극대화할 수 있었다.
짐머맨의 활약은 ‘더 많은 배럴 타구 만들기’로부터 시작됐다. 짐머맨의 지난 시즌 타석당 배럴 타구 개수는 4.9개로, 50개 이상의 인플레이 타구를 만들어낸 471명의 타자 중 164위에 그쳤다. 하지만 올해는 타석당 8.9개를 때려내며 466명 중 13위에 올랐다. 덕분에 작년보다 더 낮은 뜬공 비율을 기록했음에도 홈런과 2루타를 비약적으로 증가시킬 수 있었다. ‘플라이볼 혁명’이라는 시류를 따라 스윙을 수정했느냐는 질문에 “그저 컨디션이 좋을 뿐 달라진 건 없다.”고 답했던 짐머맨이 내년에도 올해와 같은 파괴력을 보여줄지 주목된다.
키 포인트 – 도전! 4전5기
워싱턴이 꼭 풀어야 할 과제는 역시 가을야구 잔혹사다. 워싱턴은 하퍼와 스트라스버그가 함께한 2012년 이래로 6년간 4번의 지구우승을 차지했지만, 부진과 불운이 겹치면서 매번 첫 관문에서 분루를 삼켜야 했다. 하지만 수뇌부는 더 이상 이를 단순한 불운으로 치부하지 않겠다는 모습이다. 시즌을 마치고 2년 연속 지구 우승을 이끌었던 베이커 감독과 결별을 택한 워싱턴은 벤치 코치로서 컵스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경험했던 데이브 마르티네즈를 감독으로 선임했다. 내년에도 지구 우승이 여전히 유력한 만큼, 워싱턴이 마르티네즈에게 바라는 점은 역시 포스트시즌에서의 경험과 활약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워싱턴이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부상이다. 이번 디비전시리즈에서도 슈어저의 햄스트링 부상으로 인한 로테이션 조정이 탈락의 전조로 작용했던 워싱턴이다. 커리어 최고의 시즌을 보냈지만 매년 부상 문제에 시달렸던 스트라스버그와, 올 시즌 도합 121경기 출장에 그쳤던 이튼과 터너가 굳건히 자리를 지켜주는 것이 중요하다. 선수들이 정상적인 컨디션만 유지한다면 ‘가을 야구 잔혹사’에 종지부를 찍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과업이 될지도 모른다.
총평
워싱턴의 황금기는 어느덧 갈림길에 들어서고 있다. 물론 워싱턴은 최소 2020년까지는 슈어저, 스트라스버그 원투펀치와 이튼, 터너, 짐머맨, 렌돈이 이끄는 강타선을 만끽할 수 있다. 그러나 하퍼, 머피, 곤잘레스가 이들과 함께하는 것은 내년이 마지막이다. 하퍼의 잔류는 불투명하며, 슈어저와 짐머맨은 곧 30대 중반에 접어든다. 워싱턴으로서는 최상의 전력이 보장된 내년 시즌에 ‘올인’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유망주 현황도 이제는 넉넉하지 않다. ‘베이스볼 아메리카’에서는 워싱턴의 팜 시스템을 두고 재작년 9위, 작년 5위라는 높은 순위를 매겼다. 하지만 올 시즌에 앞두고 루카스 지올리토, 레이날도 로페즈, 데인 더닝을 트레이드 카드로 활용하면서 팜 랭킹이 19위까지 곤두박질쳤다. 향후 몇 년간 계속 우승에 도전한다면 이러한 유망주 손실은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워싱턴은 이제 한시라도 빨리 결실을 봐야만 한다.
또다시 패배의 쓴맛을 본 리조 단장의 의지는 결연하다. 리조 단장은 베이커 감독과의 결별을 선언한 자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정규시즌에서 많은 승리를 거두고 지구우승을 차지하는 것으로는 이제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월드시리즈 챔피언입니다.”
기록 출처: FanGraphs Baseball, Baseball Reference, Baseball Prospectus, Baseball Savant, Baseball Amer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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