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가요 모레노
<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안명훈 >
지겹다 지겨워
올해도 LA 에인절스는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0.383의 승률은 아메리칸 리그 최하위이자 MLB 전체로 보아도 뒤에서 2등이다. 가장 뒤처진 콜로라도 로키스와도 큰 차이가 없다.
12년째 이어진 포스트시즌 탈락은 현재 MLB에서 가장 긴 기록이다. 윈나우도 리빌딩도 아니었던 팀의 길고도 애매한 방향성은 지난 트레이드 마감 시한 때 주전 선수를 팔아 치우며 결정됐다.
현재 에인절스 40인 로스터 선수 중 서비스 타임이 3년이 넘어가는 선수는 12명뿐이다. 이마저도 내년에 FA 자격을 얻을 선수를 빼면 8명만 남는다. 어느덧 35세를 바라보는 마이크 트라웃은 이제 리빌딩 팀의 구심점이 되기에는 세대가 너무 벌어져 버렸다. 새롭고 젊은 팀이 되기 위해 에인절스에는 특별한 전환점이 필요했다.
< 서비스 타임 3년 이상 선수 중 2027년 잔류 가능 인원 >
때마침 들려온 반가운 소식이 있다. 에인절스가 매각된다. 공식적인 매각은 내년 1분기에 마무리될 예정이지만 새로운 구단주가 온다는 것은 기정사실로 되었다. 구단을 소유할 새로운 인물은 스탠 크랑키다. 이미 LA 램스와 덴버 너기츠 그리고 아스날 FC 등 여러 구단을 소유한 미국의 부동산 개발업자이자 자산가이다.
< 新 에인절스 구단주 스탠 크랑키 >
이 글에서는 과연 크랑키라는 인물이 정확히 누구이며 어떤 영향을 가져올지, 에인절스는 어떤 방향으로 바뀌어야 하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아르테 모레노는 누구인가
새로운 시대를 말하기 전에, 먼저 아르테 모레노 체제를 돌아봐야 한다. 모레노는 멕시코계 미국인으로 MLB 최초의 히스패닉계 구단주이다. 대학에서 마케팅을 공부하고 옥외 광고 회사를 차려 큰돈을 벌었다.
야구를 좋아했던 모레노는 1986년 마이너리그팀 솔트레이크 트래퍼스를 인수해 일종의 구단주 수업을 거쳤다. MLB 팀을 노리던 그는 에인절스가 월드 시리즈에서 우승을 거둔 다음 해인 2003년 디즈니로부터 1억 8400만 달러에 팀을 인수하는 데 성공했다.
< 前 에인절스 구단주 아르테 모레노 >
초창기는 좋았다. 2004년부터 2009년까지 AL 서부에서 5번의 지구 1위, 2번의 챔피언십 시리즈를 거칠 정도로 잘 나갔다. 구장 내 맥주 가격 인하나 티켓 가격 동결 등 팬 친화적인 정책을 펼치며 민심을 사로잡는 정책을 펼쳤다. 알버트 푸홀스나 블라디미르 게레로 같은 스타 FA와 더불어 트라웃, 제러드 위버 등 기존 선수와도 연장 계약을 하며 대형 투자도 빠지지 않았다.
그러나 2010년부터 암흑기가 시작되었다. 2010년부터 현재까지 기록한 승률 .479, 포스트시즌 1회 진출이 전부이다. 2015년 이후엔 한 번도 5할 승률을 기록하지 못했다. 모레노가 적극 참여해 영입한 선수들이 대부분 부상과 부진으로 얼룩지며 성적이 급락했다. 수많은 영입과 유망주를 포함해 트라웃과 오타니 쇼헤이를 받쳐주는 선수가 아무도 없다는 것이 치명적이었다.
< 에인절스 연도별 승률과 팜 랭킹 / 트라웃, 오타니와 에인절스 팀 전체 fWAR(fangraphs WAR) >
팬들의 마음도 멀어지게 했다. 2005년 모레노는 구단 이름을 애너하임1 에인절스에서 LA 오브 애너하임 에인절스로 변경하는 사항을 발표했다. 길고 복잡한 이름에 더해 LA와는 차별화된 애너하임의 정체성과 자부심을 지니고 있던 팬들은 이에 반발하였고, 공무원들도 항의 성명을 냈다. 그러나 모레노는 결정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듯 2016년에는 아예 팀 이름에서 애너하임을 빼며 오렌지 카운티 지역을 LA와 동일시하는 행보를 보인다.
기초 시설과 선수 복지에서도 부족했다. 디 애슬레틱과 전 에인절스 선수인 CJ 윌슨이 트위터(현 X)로 폭로한 내용을 종합한 구단과 구단주에 대한 실태는 다음과 같다.
- 족저근막염 환자인 푸홀스가 무중력 트레드밀(러닝머신) 설치를 요구하자 거절
- 2013년까지 구단 내 실내 웨이트 트레이닝 룸이 없었음
- 타자를 위한 비디오 분석 시설 및 장비 없음, 투구 분석용 카메라도 2016년에 도입
- 스프링 트레이닝 2주 동안은 아침 식사를 주지 않고 파트너사의 패스트 푸드를 제공
- 2023년 당시 에인절스의 야구 부문 직원 43명, 다저스는 약 2배인 79명 존재
- 스피드건이 없어 2026년 영입한 알렉 마노아의 구속을 첫 스프링 캠프 등판 때 확인
- 오타니를 영입했지만 정작 환태평양 지역 전담 스카우터는 없음
이와 같은 사례를 두고 ESPN 기사에 ‘맥라렌을 사서 싸구려 정비소에 맡긴다’라는 표현까지 나올 정도로 모레노의 선수단 운영은 미숙하고 부족한 부분이 많았다. 물론 일차적으로는 고액 연봉자를 고민 없이 사들인 대가로 볼 수 있지만, 선수들이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기본적인 토대조차 없는 것이 문제였다.
이제는 새로운 시대
결국 지속적인 팬들의 압박과 부진에 구단 매각설이 계속해서 나오던 상황이 이어지자, 모레노는 구단을 팔았다. 매각 금액은 약 40억 달러로 알려져 있으며 최소한 구단 구매 금액의 약 22배에 구단을 넘기게 된다.
새 구단주 크랑키는 독일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나 1974년 월마트 공동 창업자인 버드 월튼의 딸과 결혼해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월마트 주변 부지를 개발하며 부동산업으로 막대한 이익을 얻었다. 스포츠에 처음 발을 들인 것은 1995년이다. 당시 세인트루이스에 있던 NFL 구단 램스의 연고지를 LA로 옮기는 과정을 도와 지분을 획득한 것이 시작이다.
1999년 크랑키 스포츠 앤 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한 뒤 2000년 덴버 너기츠(NBA)와 콜로라도 애벌랜치(NHL) 외에도 많은 팀을 사들였다. 초창기 확보한 램스 지분은 점차 넓혀 2010년 완전히 인수했다. 다음 해에는 아스날 FC 대주주에 올라 미국 밖으로도 영향력을 펼쳤다. 이 회사는 현재 전 세계 스포츠 지주회사 1위(3위 펜웨이 그룹)를 기록하며 강력한 운영 능력과 자본력을 갖추고 있다.
< 크랑키가 인수한 후 주요 구단 우승 횟수 >
크랑키는 모레노와 결이 다른 인물이다. 기본적으로는 개입을 최소화하지만, 지원이 필요하거나 우승이 적기라 판단되면 적극적으로 움직임을 가져간다. 실제로 아스날 초기에는 구단 매각설이 나올 정도로 무관심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지속적인 지원으로 지난 25-26시즌 EPL 우승을 차지했다.
개입이 적다는 점은 에인절스에 긍정적 요소이다. 지난 체제 모레노의 간섭으로 인한 잦은 인원 교체와 영입 간섭, 팀의 방향성 상실은 치명적이었다. 특히 지난 8년 동안 5명의 감독 교체는 단기적 성과에 급급한 팀의 모습을 보여주는 지표이다. 따라서 현재 구단에는 장기적으로 팀을 이끌 리더와 수뇌부를 지지해 주는 인물이 필요하다.
< 모레노 시기 임명된 감독과 단장 >
자본력은 모레노를 넘어(추정 자산 크랑키 약 276억 달러, 모레노 약 50억 달러) MLB 구단주 중 전체 1위이다. 유형 자산을 넘어 지금껏 스포츠 투자 회사를 운영한 경험을 지닌 인적 자원까지 합치면 실질적 가치는 더 높다. 이제 에인절스는 리그에서 가장 돈과 경험이 많은 구단주를 가지게 되었다.
이 자원들을 구단에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중요하다. 단순한 선수 영입보다 먼저 해결해야 할 것은 선수들이 안정적으로 뛰고 성장할 수 있는 조직 환경이다. 지난 2023년 사치세 절약 사건이 대표적 사례이다.
당시 에인절스는 오타니의 FA를 앞두고 있었다. 승률은 5할이 넘은 상황, 가을야구를 위해 트레이드 마감일까지 없는 팜을 털어 5명의 선수2를 보충했다. 하지만 후반기 트레이드의 중심 지올리토는 6경기 ERA 6.89를 기록. 게다가 부상으로 트라웃은 시즌을, 오타니는 투수 출전을 마감했다.
마감일 이후 가을야구 가능성이 멀어지자, 구단은 트레이드 5인 중 1루수 CJ 크론을 제외하고 외야수 헌터 렌프로와 투수 맷 무어를 더해 총 6명을 웨이버 공시에 올렸다. 사치세를 막기 위한 전략이라지만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이에 더해 미숙아로 태어난 아들의 건강 문제를 겪던 포수 맥스 스태시는 부상자 명단 등재라는 관례를 무시하고 제한 선수 명단에 올려 연봉 지급을 막아버렸다.
2023년의 에인절스는 로스터를 대대적으로 정리해 사치세는 아꼈지만 이 과정에서 주전 선수와 유망주를 허무하게 잃었다. 심지어 그 방식은 선수와 구단 사이의 신뢰를 흔들 수 있는 위험한 방법이었다. 지금까지 이어져 온 구단 수뇌부의 단기적이고 방만한 경영 방식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구단의 모범적 운영은 예산 규모가 적어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에인절스가 향후에도 팀 기조를 초단기적 방향성과 불필요한 스타 영입, 조급한 비용 절감으로 유지하면 성과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제는 지금까지 잃어버렸던 효율적이고 체계적인 경영 구축을 우선해야 한다.
다행히 크랑키가 구단을 새로 인수할 때는 급격한 변화보다 관찰과 분석을 우선한다고 알려져 있다. 따라서 초반에는 구단에 부족한 각 시설을 적절히 보충하고 정비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R&D 분야에 과감한 투자를 한다는 정보도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훈련 시설과 분석 장비가 부족한 에인절스가 다른 구단과 동등하게 시설 수준을 끌어올릴 기회이다.
조직을 정비하는 과정에서 인적 자원 역시 중요하다. 이미 구단에는 신뢰할 만한 경력을 가진 인물이 존재한다. 존 모젤리악 임시 단장과 몰리 졸리 사장이 그 예시이다. 모젤리악 임시 단장은 세인트루이스를 키워내 월드 시리즈 우승으로 이끈 핵심 인물이다. 올해 갑작스럽게 직책을 맡았지만, 트레이드 마감 시한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팜을 윤택하게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호세 소리아노를 토론토로 넘기고 토론토 팀내 2위 유망주 아르준 니말라를 영입했고 조 아델과 라이언 제퍼잔, 브렌트 수터 등도 정리했다. 이 과정에서 모이세스 바예스테로스, 메이슨 맥과이어(CHC 18위), 나초 알바레즈 주니어, 제이콥 코자트(CLE 18위) 등 유망주와 서비스 타임이 많이 남은 즉전감 자원을 영입했다. 리빌딩 팀에 걸맞는 모범적인 트레이드 행보였다.
졸리 사장은 구단 역사상 첫 여성 사장으로 구단의 전반적인 재정 운영과 사무 행정을 담당하다 올해 3월 사장으로 임명되었다. 오렌지 카운티 내 여러 위원회와 이사회에서 활동한다고 알려져 있어 어긋난 지역 사회와의 연결에 좋은 접점이 될 수 있는 인물이다.
아들 조시 크랑키 또한 주목해야 할 인물이다. 과거 존재했던 NFL의 미국 내 타 종목 구단 운영 금지 규정의 영향으로 구단 대부분(아스날, 램스 제외)이 조시 명의로 운영되고 있다. 아버지와 다르게 젊고 스포츠에 관심이 많은 편이기 때문에 조시가 직접 에인절스 운영을 맡을 가능성도 있다.
다만 보유한 구단이 너무 많다는 것은 주의해야 한다. 이제 크랑키는 미국 4대 스포츠에 더해 축구 3팀, 라크로스 1팀으로 총 8팀을 보유하게 된다. 구단 운영 회사가 존재하지만 성적이 좋아 구단주의 직접적인 관심을 받는 구단의 지원이 더 강화될 수밖에 없다.
더불어 좋은 구단주가 온다 한들 에인절스의 성공이 보장된 것은 아니다. 에인절스는 앞서 언급한 문제들을 포함해 타일러 스캑스 사망사건3 및 팀 내 가혹행위 논란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다. 외부의 힘을 빌려서라도 자정작용을 하지 않으면 나아가는 건 어려울 것이다.
느슨해진 서부에 긴장을
현재 AL 서부는 MLB 전체에서 가장 뒤처진 곳이다. 휴스턴을 제외한 4팀은 모두 5할 승률을 기록하지 못하고 있다. 휴스턴과의 전력 차는 크지 않다(2026년 fWAR: 휴스턴 24.7, 에인절스 22.2). 에인절스가 상대적으로 경쟁하기 좋은 최적의 장소다. 스포츠에서 남의 부진이 곧 나의 발판이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기회를 잘 노리면 와일드카드는 생각보다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에인절스는 구단이 가장 가지기 힘든 좋은 규모의 시장(미디어 시장 미국 2위)에 더해 돈과 경험이 많은 구단주를 얻었다. 장비를 들이고 시설을 정비해 기반을 잘 다지면 자연스레 좋은 팀의 기틀이 된다. 좋은 팀은 곧 성적을 부르고, 이는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지름길이다.
이미 오렌지 카운티와 애너하임 팬들은 오래 기다려 왔고 기다릴 준비가 되어 있다. 이들의 화력 또한 증명되어 있다. 조건은 갖추어졌고, 남은 것은 조건을 조직으로 구현시키는 일이다.
참고 = Baseball Reference, Fangraphs, MLB.com, Baseball America, ESPN, Forbes, LA Angels, LA Rams, X, 21세기 야구 유튜브
야구공작소 정상준 칼럼니스트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안명훈
에디터 = 야구공작소 도상현, 전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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