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완 체인지업이 심상치 않다

< 야구공작소 = 일러스트 최지호 >

좌투수들의 약진

야구는 투수 놀음이라는 격언이 있다. 어쩌면 2020년대 메이저리그는 좌투수 놀음이라고 바꿔야 할지도 모른다.

특히 2025시즌 메이저리그는 좌완 투수들의 전례 없는 전성기였다. 2025시즌 메이저리그 타자들은 좌완을 상대로 최근 10년 동안 가장 낮은 타율(0.243)을 기록했다. 조정 득점 창출력(wRC+) 96도 같은 기간 두 번째로 낮았다. 왼손 투수들의 탈삼진 볼넷 비율(K-BB% 14.5%)은 가장 높았고, 평균자책점(ERA∙3.84), 수비 무관 평균자책점(FIP∙3.96)도 최저치를 찍었다.

반면 같은 기간 우완 투수들은 평균자책점 4.28, 수비 무관 평균자책점 4.23을 기록하며 상대적으로 낮은 성적을 기록했다. 이는 좌투수들의 성적 향상이 단순히 리그 전체의 투고타저 흐름 때문만은 아님을 증명한다.

우투수와 비교해 좌투수가 상대적으로 희귀하다는 사실은 야구 역사 내내 언제나 존재했다. 따라서 최근의 압도적인 성적은 좌완의 희귀성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필자는 2020년대 들어 비약적으로 진화한 좌투수들의 체인지업에서 그 해답을 찾았다.

2024~2025시즌 아메리칸리그 사이영 수상자인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타릭 스쿠발의 무브먼트 프로필을 살펴보자.

< 2021, 2024시즌 타릭 스쿠발 무브먼트 프로필 >

2021시즌과 비교해 2024시즌 스쿠발의 체인지업 형태는 확연한 변화를 보인다. 투수 기준 좌측 하단으로 휘어지며 떨어지는 움직임이 상당히 증가했다. 이는 그가 단순히 패스트볼의 구속 증가에만 의존하지 않고 공의 무브먼트를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발전했음을 보여준다.

원의 크기에서 알 수 있듯 체인지업의 구사 비율 역시 늘어났다. 결과적으로 스쿠발은 이 강력해진 체인지업을 우타자의 바깥쪽 승부구로 완벽하게 정착시키며 리그를 평정했다.

그렇다면 이러한 변화는 스쿠발 개인의 성취에 불과할까. 리그 좌투수들의 데이터를 통해 그들의 체인지업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 확인해 보자.

< 2021~2025시즌 좌투수 체인지업 성적 >

타율, 가중 출루율(xwOBA), 헛스윙률 등 주요 타격 지표들이 좌투수 체인지업 상대로 점점 떨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점은 리그 전체에서 좌투수들의 체인지업 수직 낙폭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투수들과 비교해도 좌투수들의 체인지업 수직 낙폭 증가세가 뚜렷하다. 불과 몇 년 사이에 수많은 좌완 투수들이 체인지업을 더 날카롭게 떨어뜨리는 방법을 터득했다. 무엇이 이러한 변화를 만들었을까.

< 2021~2025시즌 좌우별 체인지업 수직 무브먼트(VB) >

 

SSW 체인지업으로의 변화

< 스쿠발의 체인지업 투구 슬로우 모션 >

위 영상을 보면 공이 날아가는 동안 실밥이 특정한 각도로 가지런하게 정렬된 채 회전하는 모습을 뚜렷하게 확인할 수 있다. 스쿠발이 SSW 효과를 이용한 체인지업을 의도적으로 던진다는 뜻이다.

* SSW(Seam-Shifted Wake): 실밥의 방향이 만들어내는 비대칭적인 공기 저항으로 인해 공이 예상과 다르게 움직이는 것

스쿠발이 체인지업 수직 낙폭을 키울 수 있었던 이유도 여기 있다. 스쿠발은 체인지업의 무브먼트를 개선하기 위해 그립을 스플릿 형태로 수정했다고 밝혔다. 그는 새로운 그립의 감각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공을 잡을 때 실밥을 직접 긁어채는 것이 아니라 공의 표면을 가로질러 잘라내듯 던집니다. 이렇게 던지면 공의 회전 효율이 떨어지면서 공이 더 이상 위로 떠오르지 않고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게 됩니다.”

변화의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투구 데이터의 두 가지 지표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 첫째는 회전 효율이다. 투수가 던진 공의 전체 회전 중에서 실제 무브먼트(마그누스 효과)를 만들어내는 데 기여한 회전의 비율을 뜻한다.

타자에게 날아가는 공의 회전은 회전축의 방향에 따라 궤적을 변화시키는 ‘유효 회전(Active Spin)’과, 총알처럼 나선형으로 돌아 무브먼트에 영향을 주지 못하는 ‘자이로 회전(Gyro Spin)’으로 나뉜다. 회전 효율이 낮다는 것은 전체 회전 중 자이로 회전 비율이 높다는 뜻이다.

포심 패스트볼은 백스핀 형태의 유효 회전을 통해 양력을 얻는다. 하지만 투수가 체인지업을 던질 때 의도적으로 회전 효율을 낮추면, 백스핀의 마그누스 효과 자체가 감소해 공을 위로 띄우던 힘도 함께 줄어든다. 양력을 상실한 공은 중력의 영향을 비교적 온전히 받게 되므로 결과적으로 타자 앞에서 가파른 수직 낙폭을 형성한다.

둘째는 궤적의 편차(Deviation)다. 투수의 손을 떠난 공의 초기 회전축을 바탕으로 타자가 예측한 궤적과 실제 공이 도달한 궤적의 오차를 나타낸 지표다. 이 수치가 클수록 공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움직였음을 의미한다.

체인지업을 100구 이상 던진 투수들의 데이터를 투구 수 가중 평균으로 계산해 보면, 현대 투수들의 체인지업이 이 두 지표에서 상당한 변화가 보임을 알 수 있다.

< 2021, 2025시즌 좌우별 유효 회전과 궤적 편차 >

데이터가 보여주는 흐름은 명확하다. 2021시즌 93.6%였던 좌완 체인지업의 평균 회전 효율은 2025시즌 90.2%로 3.4%P 감소했다. 반면 궤적 편차는 25.6에서 35.0으로 9.4나 증가했다.

회전 효율의 감소와 궤적 편차의 증가는 뚜렷한 하나의 방향을 가리킨다. 바로 체인지업이 SSW의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가장 주목할 점은 좌완 투수들이 우완보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 이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2021시즌부터 2025시즌 사이 우완 체인지업의 유효 회전 감소량은 2.0%P, 궤적 편차 증가율은 27.6%에 그쳤다. 반면 좌완 투수들은 유효 회전을 3.4%P나 낮춰냈고, 궤적 편차를 36.6% 더 만들어냈다. 좌완 투수들이 우완보다 훨씬 더 공격적으로 체인지업 그립을 수정하고 SSW 효과를 투구 디자인에 접목했다는 증거다.

 

여기서 한 가지 모순처럼 보이는 지점이 있다. 2025시즌 우투수 체인지업의 회전 효율은 87.3%로 좌투수의 90.2%보다 더 낮다. 이것만 봤을 때 우투수의 체인지업 낙폭이 더 커야 한다. 하지만 절대적인 수직 낙폭은 좌투수가 1인치 이상 더 크다.

이는 좌완 체인지업의 평균 구속이 84.3마일로 우완의 86.5마일보다 2마일 이상 느리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좌투수는 우투수에 비해 인적 자원의 풀이 훨씬 적다. 따라서 구속이 빠른 선수를 발굴할 확률 역시 상대적으로 낮아 평균 구속이 우투수보다 낮은 경향을 보인다.

체인지업 구속 차이 역시 이러한 연장선에 있으나, 공이 투수 손을 떠나 타석에 도달하기까지 걸리는 체공 시간이 길어 중력이 작용할 시간이 더 많다는 점은 체인지업에 있어 강점이 된다. 또한 회전 효율은 비율일 뿐이다. 우완의 체인지업은 1,845rpm으로 좌완의 1,736rpm보다 100rpm 이상 높다.

상대적으로 느린 구속과 낮은 회전 수라는 특성은 길어진 체공 시간과 적은 양력으로 이어져 체인지업의 수직 낙폭을 키우는 요인으로 작동한다. 이는 패스트볼과의 궤적 차이를 극대화해 좌완의 체인지업이 우완의 그것보다 더 효과적인 무기가 될 수 있게 했다.

리그에 우타자가 좌타자보다 훨씬 더 많기 때문에 투수들은 필연적으로 우타자를 더 많이 상대하게 되는데, 반대 손 타자에게 결정적인 효과를 가지는 체인지업의 발전은 이 무기를 더 자주, 더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좌완 투수들의 성적 향상과 상대적 우위로 이어졌다.

이러한 피칭 디자인을 활용하는 투수들이 늘어나면서, 새로운 투수 유형을 지칭하는 SWATCH(Southpaw With A Tight Changeup)라는 용어도 생겨났다. ‘예리한 체인지업을 장착한 좌완 투수’를 뜻하는 약어이다.

이들은 90마일 후반대의 강속구를 던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우타자의 바깥쪽 낮게 떨어지는 예리한 체인지업을 바탕으로 성공적인 성적을 기록하고 있다. 파커 메식, 크리스 부비치 등의 투수들이 그 예시이다. 우타자를 상대로 한 체인지업의 파괴력은 이들의 부족한 패스트볼 구위를 가려주며, 패스트볼과의 터널링을 통해 시너지를 극대화시킨다.

 

결론

2020년대 MLB 좌완 투수들은 체인지업을 단순한 우타자 상대용 무기 이상으로 활용하고 있다. 그립과 투구 메커니즘의 수정을 통해 회전 효율을 억제하고 SSW 효과를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해 체인지업을 더욱 떨어트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타자들이 좌완 앞에서 빈공에 괜히 허덕이는 것이 아니다. 이처럼 더 떨어지고, 더 예상과 달리 움직이는 공을 장착한 좌완 투수들의 강세는 당분간 지속되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상해 본다.

 

야구공작소 채하린 칼럼니스트

에디터: 야구공작소 도상현, 전언수

일러스트: 야구공작소 최지호

ⓒ야구공작소. 출처 표기 없는 무단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상업적 사용은 별도 문의 바랍니다.

Be the first to comment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