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릭 심의 유튜브 채널 King of JUCO의 채널 이미지. 출처: King of JUCO 유튜브 채널 >
이 글은 2025년 11월 17일 에릭 심(한국명 심현석)과 진행한 인터뷰 및 기존에 발행된 컨텐츠를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
야구 선수가 꿈이었던 한 아이는 어린 나이에 태평양을 건너 말도 통하지 않는 캐나다의 어느 한 시골로 이주했다. 그곳에서 야구를 통해 친구를 사귀고 청년으로 성장한 그는 2년제 대학, 4년제 대학을 거쳐 메이저리그의 부름을 받았다. 비록 큰 무대에 올라서지 못하고 날개가 한 번 꺾이기도 했지만 그는 무너지지 않았다. 차근차근 자신의 일상을 영상으로 만들던 그는 이제 전 세계 최고의 야구 인플루언서 중 하나로서 다음 콘텐츠를 준비한다.
King of JUCO 혹은 에릭 심 혹은 한국명 심현석. 2025년 11월 기준 95만 5,000명의 유튜브 구독자와 82만 5,000명의 인스타그램 팔로워를 자랑하는 정상급 야구 인플루언서다. 과격한 스윙과 거침없는 입담, 도파민을 솟게 하는 텐츠로 유명한 그이지만, 그만큼 야구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 찬 사람을 찾기 어렵다. 그는 야구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등장한다. 프로야구, 독립야구, 대학야구, 청소년야구, 유소년야구, 거기에 여자야구까지. 1년 내내 바쁘게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컨텐츠를 준비한다.
겉으로 보기엔 한없이 가벼운 캐릭터처럼 보이지만, 필자는 그를 야구를 가장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때문에 꼭 한번 만나보고 싶었다. 메이저리그 시즌이 끝나고 조심스레 그에게 연락을 보냈다. 그리고 그는 흔쾌히 인터뷰 요청을 받아줬다.
그는 마침 최근에 또 다른 야구 인플루언서 DSARM(유튜브 구독자 42만 5,000명)이 진행하는 팟캐스트에 게스트로 출연했다. 그곳에서 그는 지금까지 자신의 인생을 훑으며 어떻게 현재의 King of JUCO가 탄생할 수 있었는지를 설명했다. 필자는 여기에 개인적으로 궁금했던 점을 더해 에릭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 2025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 MVP Shohei Blotani vs. 아메리칸리그 MVP Aaron Fudge. 출처: 에릭 심 인스타그램 >
태평양을 건너
8살 때 야구를 시작한 에릭은 야구를 잘했다. 그러나 그가 성장하면서 마주한 환경은 가혹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교실보다는 운동장에서 굴러야만 했고, 칭찬과 격려보다는 욕설과 폭행이 더 가까운 상황에서 운동했다. 중학교 1학년 때 달리기에서 자신이 남들보다 다소 뒤지자, 자신을 향해 펑고 배트를 들고 달려오던 코치의 모습을 그는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했다.
에릭의 부모님은 그런 우리나라의 환경을 더는 참을 수 없었다. 또한 이런 곳에서 만약 자기 아들이 야구에서 실패한다면 미래가 없을 것이란 것도 직감했다. 에릭의 어머니는 에릭과 동생을 데리고 캐나다로 건너가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로 했다.
하지만 지난 몇 년 동안 책상은커녕 연필도 제대로 잡아보지 못했던 에릭이 영어를 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새로운 고향에 막 도착했을 때 그가 할 수 있었던 말은 yes, no, hi, bye가 전부였다. 그럼에도 그는 캐나다에서 한국에서보다 즐겁게 야구할 수 있었다.
에릭은 자신의 강점 중 하나로 적응력을 꼽았다. 물론 처음에는 어려웠지만 그는 부딪히고 또 부딪혔다. 영어가 짧았지만 자기가 갈 수 있는 모임이나 파티에는 빼먹지 않고 출석했고, 팀에서 하는 모든 행사에 참석했다. 낯선 곳에서 새로 사귄 친구들의 도움도 많이 받았다. 어느덧 에릭은 친구들이 잘 어울리는 그런 청소년으로 커갔다.
단 하나의 오퍼
에릭은 조그만 제2의 고향을 떠나 더 큰 동네에 있는 고등학교로 진학했다. 한국에서 몇 년 동안 혹독하게 수련한 덕분에 동네에서 제일 야구를 잘하는 선수가 될 수 있었고, 그 덕분에 야구부가 있는 학교로부터 입학 제안을 받았다.
그러나 캐나다에서 야구를 잘하는 건 명확한 한계가 있었다. 북미 야구의 중심은 당연히 미국이다. 미국만큼 캐나다에는 대학야구 혹은 프로야구가 발전하지 못했다. 스카우트 또한 미국에 자원이 넘쳐나는 상황에서 굳이 캐나다까지 건너가 유망주를 발굴하려 하지 않는다. 에릭 역시 상위 단계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그가 부족했다기보다는 그가 노출 받기 어려운 환경에 있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졸업반까지 어떠한 곳으로부터 영입 제안을 받지 못했던 에릭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캔자스주에 있는 2년제 콜비 커뮤니티 칼리지(Colby Community College)의 코치가 에릭에게 연락했다. 캐나다인인 그 코치는 갑작스럽게 팀에 포수 자리가 비게 되자 13시간 차를 몰고 와 에릭을 찾았다. 에릭은 전액 장학금을 제안받았고 그대로 서명했다. 2년제에 입학하기로 한 순간 에릭은 그 결정이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전환점이 될 것으로 생각하지 못했다.

< 사우스 플로리다 당시 에릭 심. 출처: USF Athletics >
그러나 인생을 바꾼 결정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운동을 위해 프로 대신 대학, 4년제 대신 2년제에 진학하면 무언가 부족해서 간다는 인식이 있다. 그러나 이런 인식은 반쯤 맞고 반쯤 틀리다. 물론 고등학교 때 만개한 선수는 졸업과 동시에 드래프트를 통해 프로의 부름을 받는다. 그 시점에 있어서는 최고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때 성공하지 못했다고 해서 그 사람의 잠재력이 부족한 것이 아니다. 18살 때 꽃이 필 수 있는 선수는 정말 드물다. 사람마다 성장 속도나 눈을 뜨는 시점은 다 다르기 때문이다.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에릭에게 2년제 콜비 커뮤니티 칼리지는 자극제였다. 수비에서는 여전히 강점을 보였지만 타격에서 노란불이 들어왔다. 이전까지 장타를 자유자재로 치던 그가 대학에서는 내야를 간신히 넘기는 데 그쳤다.
에릭은 스스로 변해야 다음 단계로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자기보다 더 크고 빠른 선수들을 이기기 위해서 체급을 올려야만 했다. 정말 학교 말고 아무것도 없는 미국 중부 시골 한복판에 남겨진 그는 절치부심하며 성장했다.
에릭이 자신의 정체성을 2년제의 왕이라는 ‘King of JUCO’로 지은 것은 이러한 배경이 있다. 에릭은 2년제에 가서 야구하는 방법, 운동하는 방법, 팀을 관리하는 방법을 새롭게 배웠고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2년제에서 배운 교훈이 프로에서도 통했다고 덧붙였다.
2학년이었던 2009년, 그는 .342의 타율과 팀 최다 6개 홈런을 기록했고, 수많은 학교로부터 졸업 후 전학 제안이 왔다. 미국 남부가 야구를 잘한다고 믿었던 그는 여러 선택지 중에 미국 남부를 선택했다.
캐나다에서 캔자스주, 그리고 다음 행선지는 플로리다주 탬파에 소재한 사우스 플로리다(University of South Florida)였다. 그곳에서 1년 주전 포수로 활약하며 47경기에 출전한 에릭은 2010년 메이저리그 드래프트에서 27라운드 전체 828번째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부름을 받았다.

<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드래프트 당시. 출처: 에릭 심 인스타그램 >
마주친 한계, 귀향, 그리고 새출발
2012년 잠깐 트리플A까지 입성한 에릭이었지만 그는 최고의 무대를 밟지 못했다. 강한 어깨를 바탕으로 2015년에 투수로도 전향했지만 거기가 그의 프로 생활의 종착지였다. 자이언츠에서 방출당한 후 독립야구에서 재기도 시도했지만 2016년 시즌을 끝으로 그는 현역 유니폼을 벗었다.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가족이 운영하던 바에서 바텐더 일을 시작했다. 평생 해오던 야구는 아니지만 그는 바텐더 일에도 진지했다. 소믈리에 자격증을 하나둘 따면서 새로운 삶의 방식에 적응하려 했다.
에릭은 새로운 삶을 시작하면서 지난 십수 년 동안 일생을 함께한 야구와 완전히 멀어졌다. 이젠 누구도 식단 관리나 운동을 강요하는 사람이 없었고 그러다 보니 체중이 30kg 가까이 불어났다. 2년 동안 야구공을 한 번도 잡아보지 않았던 에릭은 우연히 야구공을 던져봤다. 속도는 74mph가 나왔고 팔이 엄청 아팠다.
에릭은 전의에 불타올랐다. 일하러 가지 않으면 운동했고 그 모습을 촬영했다. 코로나19로 모두가 거리를 두던 시절, 그는 자신의 집에 운동할 공간을 만들어 운동을 이어갔다. 그는 유튜브 채널을 시작하면서 어떻게 운동선수의 몸을 되찾는지, 운동 외에도 무엇을 요리해 먹는지까지 포함한 일거수일투족을 올렸다. 그리고 그의 채널은 서서히 성장했다.

< 샌디에이고 파드스 소속 페르난도 타티스 주니어와 에릭 심. 출처: 에릭 심 인스타그램 >
King of JUCO = 본인
흔히 방송용 캐릭터가 따로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에릭에게는 이 말이 자신에게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에릭은 King of JUCO 채널에 나오는 자신의 모습은 평소의 자신 그대로라고 말했다. 그는 때로는 과격하고 과장된 말을 아끼지 않는, 때로는 어린아이들과 친근하게 함께 노는 모습 모두가 숨김없는 자기의 모습이라 했다. 자기가 야구하던 모습, 자기가 살아가는 모습을 그대로 영상에 담아 사람들과 공유하기 위해 유튜브를 개설했기 때문이다.
에릭은 먼 미래를 내다보지 않는다고 했다. 당장 1년 후에 자신이 뭘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1년 후에 자기가 다시 집 창고에서 운동하는 모습을 찍게 될지도 모른다면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래도 앞으로는 웃긴 영상 위주로 찍던 방향에서 좀 더 사람들의 마음에 와닿는 이야기를 찍어보고 싶다고 덧붙였다.
에릭은 자신의 이름으로 나무위키 항목이 있다는 것을 몰랐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에 자기 팬이 많다고 안다고 했다. 오랫동안 한국에 돌아오지 못했지만, 2026년에는 한국에도 촬영을 위해 방문할 예정이라고 한다. 필자는 그가 한국에 갈 때 가능한 선에서 최대한 그가 즐거운 텐츠를 만들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King of JUCO는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앞으로도 계속할 것이다. 그는 언제나 자기가 마주한 상황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이제는 하나의 야구 인플루언서이자 딸 소피아의 아버지로서 최고가 되는 것이 목표다.
참고 = USF Athletics
야구공작소 이금강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도상현, 장호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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