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수의 DNA : Supinator vs Pronator

<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최지호 >

야구에서 구종 조합의 중요성은 나날이 커져가고 있다. 류현진이 부상 기간 동안 커터를 추가해 역스플릿 문제를 해결한 일화는 유명하다. 오타니 쇼헤이도 변형 슬라이더를 추가해 2023년 커리어하이를 기록했다. 그런데 여기서 다소 의문이 생길 수 있다. 왜 투수마다 구종 구사에 있어서 다른 전략을 가져갈까?

구종 조합은 투구 시의 무게중심 전환, 개별적인 손감각이나 구단-리그의 육성 성향에 따라 달라진다. 최근 MLB에선 개인의 타고난 전완의 회외전(Supination) – 회내전(Pronation) 성향에 맞추어 조합하여 개별적인 레퍼토리를 가져가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외전형 투수(Supinator)과 내전형 투수(Pronator)들은 어떤 측면에서 강단점을 가지고 있을까.

 

회내전과 회외전이란

< 회외와 회내(오른팔 기준) >

회외전은 오른손잡이 선수의 시선을 기준으로 해서 시계 방향, 즉 팔의 ‘바깥쪽’ 방향으로 회전하는 것을 일컫는다. 회내전은 반대로 팔의 안쪽인 반시계 방향으로 회전하는 현상을 말한다.

외전형 투수는 회외전에 특화되어 있고, 내전형 투수는 회내전에 특화된 투수를 일컫는다. 이런 ‘회외’와 ‘회내’의 경향은 팔의 근육의 길이와 강도에 의해 정해지며, 세부적으로는 투구 메커니즘이나 선수 본인의 인식 등이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다만 투수들은 회외-회내의 이분법에 갇혀있지만은 않다. 어느 투수는 강한 회외 성향 때문에 후술할 레퍼토리 안에서만 움직이는 반면, 다른 투수는 중립적인(neutral) 성향을 띄어 다양한 조합을 마운드에서 시도해 볼 수 있기도 하다.

< 왼쪽 위에서부터 아래로 – 상완이두근, 위팔근, 위팔노근, 원엎침근, 노쪽손목굽힘근, 긴손바닥근, 자쪽손목굽힘근, 얕은손가락굽힘근, 손뒤침근, 네모엎침근, 긴엄지굽힘근, 깊은손가락굽힘근 >

파란색으로 밑줄 친 근육은 굴곡(Flexor) – 회내근군을 이루고, 노란색으로 밑줄 친 근육은 신전(Extension) – 회외근군을 이룬다. 이러한 근육의 경향성과 기타 요인들이 선수의 회외/회내 성향을 결정하기에 정밀하게 파악하고 싶다면 CT 사진이나 해당 근육들의 근력을 측정하는 방법이 가장 신뢰도가 높다. 혹은 무브먼트 그래프와 릴리즈 형상을 통해 유추하는 차선책 또한 존재한다.

 

회외형 투수(Supinator)의 특징

이들은 바깥쪽으로 전완을 돌리는 운동 방향에 특화된 이들이다. 문고리를 여는 움직임을 떠올리면 쉽다. 회외운동에서 상완이두근(biceps brachii)회외근(supinator muscle)이 주동근이고, 장요측수근신근(extensor carpi radialis longus)이 보조동근으로 기능한다. 따라서 강한 손목 신전(extension) 근력을 가지고 있어 회외 동작을 요하는 브레이킹 볼의 구사에 비교적 능숙한 편이다.

한편 이러한 성향 때문에 포심을 투구할 때 던지는 팔의 바깥쪽으로 휘는, 테일링 무브먼트가 일반적으로 약하며 오히려 투구 팔의 안쪽으로 휘는 경우도 있다. 흔히 말하는 ‘자연 커터성 포심’이 주로 회외 성향을 강하게 띄는 선수들한테서 발생한다. 또한 손바닥을 보이는 움직임에 특화되어 그 반대로 ‘엎어서(turnover)’ 던져야 하는 체인지업의 릴리즈에는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 회외형 투수와 회내형 투수에 대해 다룬 연구 : Division I Collegiate Baseball Pitching Performance in Relation to Forearm Kinematics and Kinetics >

괄호가 쳐지지 않은 값이 상관계수(r) 값이고, 괄호 친 값은 극단적인 값이 우연히 나올 확률인 p-value 값이다. 즉 상관계수 값은 높을수록 좋고, p-value 값은 낮을수록 좋다. *기호 표시가 있는 값은 p-value가 낮아 통계적으로 유의한 값이다.

표본이 적어(22명) 신뢰도가 낮지만, 이 연구에서 밝힌 바는 다음과 같다. 먼저 회내/회외 근력 비율 – 포심 회전효율에선 음의 상관관계가 나타난다. 분자인 회내의 값이 커서 상관관계가 양수가 아닌 음수가 나오는 현상이 나타난다. 따라서 실험에선 회내 근력이 클수록 포심의 회전효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반대로 포심의 구속에선 양의 상관관계가 나와 회외 근력이 높을수록 구속이 빠르다고 할 수 있으며, 반대로 회내 근력이 높으면 구속이 낮아진다.

< 회외형 투수의 포심 릴리즈 1 >

< 회외형 투수의 포심 릴리즈 2 >

회전효율은 공의 움직임에 실질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회전수의 비율을 말한다. 회외형 투수들은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포심을 던질 때 전완이 우완 투수의 시선 기준 시계 방향으로 회외전하여 상대적으로 볼의 옆면을 채는 경우가 많다. 이 같은 경우에 보통 회전효율이 하락한다.

따라서 그들의 포심은 마치 컷 패스트볼과 같은 물리적 특성을 지닌다. 이 성향이 강하다면 커터 장착을 시도할 수도 있다. 회전효율이 낮은 회외형 투수들은 아예 포심의 구사율을 낮추고 싱커까지 곁들여 던지기도 한다.

< 오타니의 포심 구속과 회전효율 >

< 오타니 2020 ~ 2025년 포심 구종가치 >

오타니도 대표적인 회외형 투수 중 한 명이다. 2021년부터 구속 자체는 상위 15% 안에 꼽혔으나 회전 효율은 76-81-76-76-79(%)로 높은 편은 아니었다. 실제로 오타니의 포심 구종 가치는 23년과 오프너로 시즌을 시작한 25년을 제외하고선 -3~+1을 오갔다.

< 회외형 투수의 체인지업 릴리즈 >

회외형 투수들은 내전 동작을 통해 던지는 경우가 많은 체인지업의 구사에는 어려움을 겪을 때가 많다. 그 이유는 체인지업을 던질 때는 슬라이더/커브에 회전을 걸 때와 반대 방향으로 손목을 꺾는 식으로 시도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결국 이러한 움직임은 ‘회외형 투수’가 익숙한 외전이 아닌 내전 동작에 속한다.

따라서 회외형 투수들에게는 잡은 그대로 내려서 던지거나 중지로 공을 찍어서(kick-change) 던지는 전략이 맞는 편이다. 혹은 체인지업을 구사하지 않고 내전 동작이 강조되지 않는 스플리터나 벌칸 체인지업을 던지는 경우가 많다.

 

회외형 투수의 전략

결론적으로 회외형 투수들은 다음과 같은 무브먼트를 보인다.

< 2023년 로건 웹, 2022년 오타니 무브먼트 프로필 >

오타니와 로건 웹 모두 성향이 짙은 회외형 투수다. 웹은 포심을 거의 던지지 않는 대신 싱커-체인지업-스위퍼 세 구종만을 투구한다. 그는 이 구종들을 우타자 기준 몸쪽/몸쪽 상단-몸쪽 하단-바깥쪽 하단에 던져 타자들의 시선을 흩트린다.

오타니는 2022년 기준 포심의 높은 구속을 통해 변화구에 수혜를 주는 방식으로 투구했다. MLB에서도 상위권에 해당하는 평균 구속 97마일의 포심에 의해 스위퍼와 스플리터의 위력은 배가된다. 여기에 낙차 큰 슬로커브로 카운트 싸움을 이끌어가고, 커터까지 던지며 회외형 투수의 성질을 활용한다.

 

회내형 투수(Pronator)의 특징

회내형 투수들은 회외형과 다르게 전완을 팔 안쪽으로 돌리는 움직임에 능숙한 자들이다. 굴곡근(flexor muscle)이 발달된 경우가 많으며 원회내근(pronator teres)방형회내근(pronator quadratus)가 주동근이다. 따라서 회내 움직임이 중요한 체인지업을 던질 때 유리한 편이며, 포심을 던질 때는 회외전이 적게 개입하여 회전효율이 높은 경우가 많다.

< 회내형 투수의 포심 릴리즈 1 >

< 회내형 투수의 포심 릴리즈 2 >

회외형과는 달리 포심의 옆을 채는 움직임이 도드라지지 않는 릴리즈 형상을 보인다. 이처럼 회내형 투수들의 균일한 릴리즈는 온전히 무브먼트로 변환될 수 있는 높은 회전효율을 기록하며, 좋은 수직/수평 무브먼트를 뽑아내는 데 있어서 상대적으로 우위를 가지는 경우가 많다.

< 회내형 투수(Pronator)의 체인지업 릴리즈 >

잡은 그대로 내려 던지는 경우가 잦은 회외형 투수와 비교되는 ‘엎침’의 모습을 보인다. 모든 손가락을 활용하여 축을 확실히 비틀어 던지는 편이지만, 모든 회내형 투수가 이렇지는 않다. 개중에서도 성향을 강하게 보이는 투수들이 특히 이러한 양상을 보이는 빈도가 높다.

 

회내형 투수의 전략

팔 각도에 따라 다르지만 회내형 투수 중엔 구종 무브먼트가 뚜렷하게 갈라지는 유형이 회외형 투수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다. 이들은 높은 회전효율을 바탕으로 한 포심과 회전수에 비교적 덜 영향을 받는 자이로 슬라이더1, 체인지업/스플리터의 조합으로 타자들과의 승부에 임한다.

< 2025년 데빈 윌리엄스, 2023년 루이스 카스티요 무브먼트 프로필 >

데빈 윌리엄스는 회전효율이 높은 포심과 뛰어난 무브먼트의 체인지업을 주로 던진다는 점에서 극단적인 회내형 성질을 띈다고 말할 수 있다. 회전효율 99%의 포심을 상단에 투구하고, 압도적인 수직/수평 무브먼트를 가진 체인지업을 하단으로 떨구어 타자들을 상대한다.

< 데빈 윌리엄스 포심 회전 효율% >

< 20250523 데빈 윌리엄스 체인지업 >

< 2018 루이스 카스티요 체인지업 >

루이스 카스티요 역시 회내형 투수의 정석적인 조합을 가져가는 투수다. 회전효율 자체는 회내형 투수치고 낮은 90% 초반에 머무르지만 윌리엄스와 비슷한 성질의 체인지업과 슬라이더를 통해 포심-브레이킹 볼-오프스피드 피치로 이뤄지는 전략을 완성한다.

 

후천적 변화 가능성

그렇다면 회외형과 회내형은 완전히 변할 수 없는 혈액형과도 같을까? 정답은, ‘100%는 없다’이다. 혈액형도 골수 이식이나 기타 요인들로 인해 바뀔 수 있는 것처럼, 회외/회내형 투수들의 특징도 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슐리틀러 무브먼트 프로필 – 2023 A / 2025 MLB >

슐리틀러는 싱글A리그에서 뛰던 2023년에는 포심의 무브먼트(분홍색)가 수평 무브먼트 제로 구간(세로축)에 걸리는 모습을 보여줬지만 MLB 데뷔 시즌인 2025년엔 해당 구간에서 오른쪽 상단으로 움직였다.

이는 던지는 팔 바깥쪽으로 휘는 수평 무브먼트와 수직 무브먼트가 동시에 향상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구속 상승도 이 변화에 영향을 미쳤음은 자명하지만, 주목해야 할 것은 따로 있다.

먼저 팔 각도(arm angle)가 높아졌다(33 -> 42). 이를 통해 수직 무브먼트가 향상됐고, 포심의 회전축 역시 변화했다(12:00 -> 12:45).

< 12:00 회전축 / 12:45 회전축 >

오른쪽 그림과 같이 지표면과 평행했던 축이 사선으로 눕게 되면 마그누스 효과에 의해 수평 무브먼트가 추가적으로 발생한다. 낮은 팔 각도를 가진 선수들의 직구가 똑바로 날아가지 않고 던지는 팔 바깥 방향으로 휘는, 소위 말하는 테일링(tailing)이 걸리는 것을 생각하면 쉽다.

 

마치며

투수들은 회내-회외의 추로 이루어진 저울에서 움직이는 존재이다. 해당 글에서는 설명을 위해 성향을 강하게 띄는 선수들을 주로 소개했지만 중립적 성향을 띄는 원태인이나, 회외형의 특징을 다수 가졌지만 MLB에서 손꼽히는 손감각을 통해 다수의 구종을 던지는 메릴 켈리의 사례도 존재한다.

최근 투수들은 플라이볼 혁명과 어퍼스윙 같은 트렌드에 대항하기 위해 여러 구종을 익히고 그에 맞는 전략을 수립하는 중이다. 그러나 개별적 능력에 따라 구현해 낼 수 있는 영역이 존재하거나 또는 그것에 따라가지 못할 수도 있다. 결국 그들에게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것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구역과 ‘할 수 없는’ 구역을 명확히 구분해 그 틀 안에서 마음껏 부딪혀보는 것이다.

 

참고 = Tread atheletics, Baseball Savant, Drivelinebaseball, <Division I Collegiate Baseball Pitching Performance in Relation to Forearm Kinematics and Kinetics>, BaseballActionID, Baseball Prospectus

야구공작소 서연우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전언수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최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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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슬라이더의 한 종류로, 무브먼트 그래프 기준 (0, 0)에 걸치는 슬라이더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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