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선수들은 왜 변화구를 못 던질까?

<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최지호 >

최근 한국 프로야구에는 팬들을 사로잡는 젊은 파이어볼러가 등장하고 있다. 8월 말에는 한화 정우주가 패스트볼 9개로 무결점 이닝을 만들어내 이목을 끌었다. 해당 경기뿐 아니라 정우주는 고교 시절부터 프로 선수 이상 퀄리티의 패스트볼을 자랑했다.

< 패스트볼 9개로 무결점 이닝을 달성한 한화 정우주 >

두산 베어스 김택연 역시 고교 시절부터 패스트볼로 이름을 알렸다. 김택연도 150km/h 이상 강속구로 타자를 압도한다. 그러나 빅리그 수준 패스트볼에도 변화구 완성도가 뒷받침되지 못한다는 평가가 뒤따른다. 그렇다면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왜 패스트볼은 빅리그 급으로 구사하지만 변화구는 그렇지 못한 것일까?

 

짧은 팔 스윙, 왜 패스트볼에 유리할까?

앞발을 딛기 전까지 팔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키네틱 체인 리듬을 방해하지 않는 것이다. 몸통에 비해 팔이 늦게 따라오면 부족한 에너지를 무의식적으로 보충한다. 팔에 불필요한 힘을 주면 에너지가 비효율적으로 전달되고 부상 위험도 커진다. 릴리스가 늦어지며 던지는 손 방향으로 공이 빠지기도 쉽다.

팔 스윙이 짧아지면 글러브에서 손을 분리한 후 팔 가동 범위도 줄어든다. 팔이 몸통 회전을 따라가기 유리해지는 것이다. 팔이 이동하는 절대적인 거리가 짧으니 타이밍 오류가 발생할 가능성도 줄어든다. 투구 동작이 이어지며 만들어진 에너지가 팔로 손실 없이 전달되도록 에너지 전달 효율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보통 정통파 투수는 패스트볼을 던질 때 공 뒤쪽에 최대한 직선적인 힘을 가해 백스핀을 생성하고자 한다. 효율적이고 정밀한 타이밍의 에너지 전달 역시 완벽하게 부합해 ‘라이드성’ 패스트볼 형성에 도움이 된다. 과거 시카고 화이트삭스에서 뛰던 투수 루카스 지올리토, 딜런 시즈 역시 팔 스윙을 짧게 교정한 후 리그 정상급 구위 패스트볼로 탈바꿈했다.

< 시즈, 지올리토 포심 스펙 변화 >

 

전통 커브, 슬라이더에는 한계가 있다.

가장 대표적인 두 가지 변화구를 꼽으라면 역시 커브와 슬라이더다. 하지만 짧은 팔 스윙 투수들은 두 가지 구종에 약점이 있다. 그 이유는 짧은 팔 스윙의 구조적 한계에 있다.

전체 투구에서 가속 구간은 1초가 되지 않는다. 그 짧은 시간을 한 번 더 축소하는 것이다. 손과 전완에서 변화구 회전을 만들어 낼 시간이 부족하다. 공간 제약 역시 무시할 수 없다. 팔 가동 범위가 짧으면 손가락의 움직임, 릴리스 순간의 접촉으로 만들어지는 회전축을 만들어낼 물리적 공간마저 줄어든다.

가로 방향으로 힘을 쓰기가 어려운 만큼 커브, 슬라이더를 던질 때 공을 감싸안듯 던져 밋밋한 공이 되기 쉽다. 변화구 무브먼트를 위해 무의식적으로 팔 움직임을 변화하면 타자에게 구종을 미리 알려주는 ‘쿠세’가 된다.

 

변화구는 포기해야 할까?

커브, 슬라이더 구사가 불리하다면 어떤 구종을 선택할 수 있을까? 먼저 회외(수피네이션)형, 회내(프로네이션)형 투수들의 특징을 간단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회외형 투수들은 손목을 바깥으로 열며 공 옆면을 스치듯 던지는 동작에 강점이 있다. 커브와 슬라이더 등 회외형 투수들에게 유리하다고 알려진 구종들은 짧은 팔 스윙에서 구현하는데 한계가 있다.

물론 회외형 구종이라도 짧은 팔 스윙에 유리한 구종은 있다. 대표적으로 커터다. 회외형 성향은 손목이 자연스럽게 바깥쪽으로 열리며 커터 특유의 수평 무브먼트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 억지로 손목을 비틀 필요가 없어 손끝 감각만으로도 안정적으로 무브먼트를 구현한다. 여기에 짧은 팔 스윙은 릴리스 포인트가 일정하고 패스트볼과 거의 구분되지 않는 팔 스피드로 공을 뿌릴 수 있어 커터의 최대 장점 디셉션 효과를 더욱 극대화한다.

너클 커브는 검지 손가락을 공에 굽혀 끼워 넣어 잡는 구종이다. 회내형에 유리하다고 알려져 있으나 회외형에게도 큰 무리가 없다. 손목을 크게 비틀지 않고도 높은 백스핀에 가까운 회전을 만들어 강한 낙차를 만든다. 투구 동작 측면에서도 패스트볼과 동일한 팔 스윙으로 던질 수 있어 타자에게 더 디셉션 효과가 크다. 시즈 역시 전통적인 커브가 아닌 너클 커브를 사용한다.

< 딜런 시즈의 커브 그립 >

이제 회내형 투수들의 주요 특징을 살펴보자. 손목을 안쪽으로 말아 공의 축을 세우거나 강한 낙차를 만드는 동작에 유리하다. 공 뒤에 오래 머무는 짧은 팔 스윙과 자연스럽게 좋은 궁합을 보여준다. 자연스럽게 두 유형은 유리한 구종이 겹친다.

회내형 구종에서는 자이로 슬라이더가 있다. 움직임은 커브나 슬라이더처럼 크게 꺾이지는 않는다. 대신 직선에 가까운 궤적을 유지하다 타이밍을 흔든다. 시즈, 지올리토 역시 팔 스윙을 조정한 후 자이로 슬라이더를 장착했다.

스플리터와 체인지업도 있다. 그립과 압력으로 회전수를 낮추고 마그누스 힘을 줄여 중력, 공기저항 지배 영역으로 떨어뜨린다. 스플리터와 오프스피드 목적으로 쓰는 체인지업은 큰 손목 회전도 필요하지 않다. 패스트볼과 같은 팔 스피드, 릴리스에서 그립만으로 낙차를 만든다. 좋은 패스트볼을 자랑하는 또 다른 한국 선수 박영현도 주무기로 체인지업을 사용한다.

 

더 큰 무대를 향한 과제

강력한 패스트볼로 팬들을 놀라게 만드는 정우주, 김택연은 한국 프로야구를 넘어 해외 무대에서도 경쟁력을 갖출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짧은 팔 스윙의 특성상 전통적인 커브나 슬라이더 구종을 안정적으로 장착하는 데에는 구조적 제약이 따른다.

하지만 변화구 가능성이 완전히 닫혀 있는 것은 아니다. 여러 변수는 있지만 짧은 팔 스윙 선수에게 유리한 구종도 존재한다. 정우주는 종회전이 강한 슬라이더와 스플리터의 속도 차와 무브먼트는 크지 않지만 횡으로 움직이는 커터 조합으로 투구 패턴을 가져갈 수 있다. 김택연도 자이로 슬라이더 등 자신에게 맞는 변화구를 찾아야 한다. 두 파이어볼러들이 이 과제를 풀어낸다면 진정한 빅리그 투수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 = 한화 이글스, Baseball Savant, Fangraphs

야구공작소 이동건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조광은, 전언수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최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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