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변영아>
과거의 다른 모든 스포츠가 그러하듯, 야구 역시 타고난 체격과 힘 위주로 승부하는 투박한 스포츠였다. 최근에는 야마모토 요시노부(신장 178cm/몸무게 80kg) 같은 일반인 수준의 체격을 가진 선수뿐 아니라 마커스 스트로먼(신장 170cm/몸무게 81kg) 같은 일반인 기준으로도 왜소한 체격의 선수도 150km/h 이상의 강속구를 던지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공학과 스포츠의 접목, 키네틱 체인(Kinetic chain)이 있다. 키네틱 체인은 무엇이고 투구 동작에 어떻게 구현되어 있을까?
키네틱 체인이란?
‘키네틱 체인’의 기원은 공학자 프란츠 뢰로(Franz Reuleaux)가 제안한 ‘강체1 연결 시스템’에서 찾을 수 있다. 강체 연결 시스템에서는 여러 물체들이 관절로 연결돼 있다. 이 시스템에서는 하나의 물체가 움직일 때 힘이 관절을 통해 다른 물체로 전달된다. 그 결과 힘이 작용하지 않은 다른 물체들에서도 예측 가능한 움직임 패턴이 연쇄적으로 생성된다.
< 프란츠 뢰로가 설명한 강체 연결 시스템에서 물체가 힘을 받을 때 움직이는 양상. A가 힘을 받을 때 B, C, D도 운동한다. >
강체 연결 시스템을 인체에 적용하고자 하는 시도는 1955년 아서 슈타인들러(Arthur Steindler)에 의해 처음으로 체계화됐다. 슈타인들러는 신체를 일련의 중첩된(Overlapped) 분절로 간주할 것을 제안했다. 더 나아가 키네틱 체인을 ‘여러 개의 연속적으로 배열된 관절이 결합하여 형성된 복합 운동 단위(complex motor unit)’로 정의했다.
이후 스포츠 의학자이자 정형외과 의사인 벤 키블러(Ben Kibler)는 키네틱 체인을 ‘순차적으로 활성화되는 신체 분절의 연속적 체계’라고 규정했다. 이를 종합하면 Kinetic chain은 ‘신체의 독립적인 분절들이 협력하여 기능적 단위로 작용하게 하는 복잡한 상호작용’으로 정의해볼 수 있다.
스포츠에서 강한 임팩트를 위한 Kinetic Chain의 활용
신체가 움직임을 일으킬 때는 상체의 말단(팔)에서 발생하는 힘이 몸통과 척추로 전달될 수도, 역으로(몸통과 척추에서 팔로) 전이될 수도 있다. 후자의 키네틱 체인은 공을 던지거나, 배트를 휘두르는 등 강한 임팩트가 중요한 수많은 스포츠의 동작에 활용된다. 이러한 동작들의 핵심은 가장 마지막으로 움직임이 수행되는 분절에서 최대한의 가속, 최대한의 속력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이를 위해 크게 세 가지 특징이 발견된다.
- 동작이 신체의 중심에 가까운 분절에서 말단에 가까운 분절(사지)로 점진적으로 진행된다.
- 말단에 가까운 분절(사지)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시점은 중심에 가까운 분절이 최대 속도에 도달하는 순간이다.
- 나중에 움직이는 분절에서는 이전에 움직이는 분절보다 더 높은 속도가 생성된다.
키네틱 체인의 이러한 활용이 잘 나타나는 다른 스포츠로 테니스를 살펴볼 수 있다. 테니스는 결국 라켓을 휘두르는 팔의 속력이 가장 중요하다. 이를 위해 지면과 닿고 있는 발과 발목의 회전, 골반과 몸통 회전, 상완(위팔)과 전완(아래팔)의 회전으로 이어지는 연속적인 동작의 흐름을 활용한다.
< 테니스 선수가 포핸드 스트로크를 구사하는 모습과 그 과정에서 신체 부위의 속도를 시간에 따라 나타낸 것. 다리, 골반, 몸통, 위팔, 아래팔이 순차적으로 움직이며 점점 더 빠른 최고속도가 나타난다. >
투수 투구 동작에서의 Kinetic Chain
< 투수 투구 동작에서의 Kinetic Chain >
야구의 투구 동작은 빠른 공을 자연스러운 동작의 흐름 속에서(이를 코치들은 Effortless라고 한다) 뿌리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를 위해 투구 동작 또한 각 신체 분절의 순차적인 움직임, 즉 키네틱 체인으로 귀결된다. 투구 동작의 키네틱 체인에서도 상술한 세 가지 특징을 확인할 수 있다.
- 하체에서 시작된 동작은 디딤 다리(우투수 기준 왼쪽 다리)의 착지 이후 신체의 중심인 골반/몸통의 움직임에 영향을 준다. 이러한 움직임은 다시 어깨, 팔꿈치, 손목 등 신체의 말단에 전이된다.
- 나중에 움직임이 일어나는 분절은 그 이전에 움직이는 분절이 최대 속도에 도달했을 때 이동하기 시작한다.
- 각 분절에서 나타나는 최대 속도는 나중에 움직이는 분절일수록 점점 커지는 경향을 보인다.
투구 과정의 키네틱 체인 상에서 하체와 몸통은 신체를 지탱하고 동작의 움직임을 시작하여 운동 에너지를 생성한다. 어깨와 팔, 손목 등의 말단 분절은 신체의 중심으로부터 전달되어 증폭된 운동 에너지와 힘으로 공을 뿌린다.
투구 동작의 키네틱 체인의 실재
야구의 투구 동작은 시간 순서대로 와인드업(wind up), 스트라이드(Stride), 코킹(Arm cocking), 가속(Acceleration), 감속(Deceleration), 팔로스루(Follow-through)로 세분화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가속 단계에서 하체로부터 공을 뿌리는 손까지 운동 에너지와 힘이 전이되는 과정을 살펴보도록 한다. 2021년 내셔널 리그 사이영상 수상자 코빈 번스(현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소속)가 투구하는 모습을 관찰하자.
1. 가속(Accleration) 이전까지의 과정. 즉 와인드업(Wind up) – 스트라이드(Stride) – 코킹(Arm cocking).
< 왼쪽부터 와인드업, 스트라이드, 코킹 >
와인드업~코킹은 가속이 일어나기 전, 전진운동을 회전운동으로 변환하는 과정을 준비하고 가속 단계에서 일어나는 상/하체의 동작을 준비하는 과정이다. 각 단계에서 일어나는 동작을 간략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와인드업
- 축 다리(우투수 기준 오른쪽 다리)를 들어 올리며 전진 운동의 준비를 마친다.
(2) 스트라이드
- 전진 운동이 시작된다. 상체와 하체는 디딤 다리가 착지한 이후 전진 운동이 회전 운동으로 변환되는 과정을 준비한다.
- 하체에서는 고관절 부근에서 가장 활발한 동작이 일어난다. 안정적인 착지를 위해 디딤발은 올바른 위치에 착지해야 한다. 이를 위해 디딤 다리 쪽 엉덩이는 몸 바깥쪽으로 회전(외회전)한다. 또한 이후 일어날 상체의 강한 가속을 위해 골반의 회전은 지연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축 다리의 엉덩이는 몸 안쪽으로 회전(내회전)한다.
- 상체에서는 날개뼈가 앞으로 기울어진 채 어깨는 뒤로 회전하여(외회전, External rotation) 코킹에서의 팔 동작을 위한 준비가 완료된다.
(3) 코킹
- 디딤 다리가 땅에 닿으면서 시작되고, 어깨가 가장 뒤로 회전할 때, 즉 최대 외회전(Maximal External Rotation)에 도달할 때 종료된다.
- 하체에서는 무릎이 빠르게 펴지며 신체에 급격한 제동이 걸린다. 그 결과 전진 운동이 회전 운동으로 변환되어, 골반이 본격적인 회전을 시작한다.
- 상체에서는 골반 회전으로부터 비롯된 몸통의 급격한 회전이 시작된다. 동시에 어깨는 계속 외회전하다가 최대 외회전에 도달한다.
2. 가속(Accleration)
키네틱 체인을 통한 힘의 전이가 가장 활발하게 나타나는 매우 중요한 과정이다. 가속은 어깨가 최대 외회전에 도달하는 순간 시작되며 공이 손을 떠나는 순간 종료된다.
(1) 신체의 급격한 제동
- 코킹 동작에서부터 허벅지 전면의 근육이 수축하기 시작한다. 디딤발에 지면에 의한 급격한 제동이 걸리며 무릎이 계속해서 빠르게 펴진다.
(2) 하체에서 상체로의 에너지 전이
< 몸통이 앞으로 쏠리며 하체에서 상체로 에너지가 전이되는 모습(왼쪽)과 이 과정에서 주로 작용하는 근육/근육을 둘러싼 근막(오른쪽) >
- 앞선 과정에 의해 타겟을 향해 골반과 함께 회전하던 몸통은 앞으로 강하게 쏠린다. 이는 급정지하는 자동차에서 승객들의 몸이 앞으로 쏠리는 현상과 정확히 원리가 동일하다. 이 과정에서 등/허리의 근육을 감싸는 근막(흉요근막)을 통해 하체(특히 엉덩이 근육 중 대둔근)에서 상체(특히 등 근육 중 광배근)로 운동에너지와 힘이 전이된다.
(3) 상체에서 어깨로의 에너지 전이
< 상체에서 어깨로 에너지가 전이되며 어깨가 빠르게 내회전하는 모습 >
< 어깨가 내회전할 때 주로 사용되는 가슴 근육(왼쪽)과 등 근육(오른쪽) >
- 또한 가슴과 흉곽에 부착된 여러 근육과(특히 대흉근, 소흉근, 전거근) 등에 붙은 근육(특히 광배근)들 중 날개뼈/위팔뼈와 연결된 근육들이 최대로 활성화되어 어깨를 앞으로 회전시킨다(어깨의 내회전). 이 과정에서 상체의 힘이 다시 어깨로 전이된다.
< 팔꿈치가 빠르게 펴지며 손목이 몸 안쪽으로 회전하는 모습(왼쪽)과 팔꿈치가 펴지는 과정에서 주로 작용하는 상완삼두근의 모습(오른쪽) >
- 어깨에서는 급격한 내회전이 일어나며, 동시에 팔에서는 상완삼두근이 수축된다. 그 결과 앞선 과정서 굽혀진 팔꿈치가 빠르게 펴진다. 또한 손목이 강하게 몸 안쪽으로 회전하며(회내, pronation) 팔에 걸린 힘이 손목으로 전이되어 공이 뿌려진다. 하체에서부터 시작된 가속을 위한 키네틱 체인이 비로소 끝나는 순간이다.
3. 감속(Deceleration), 팔로 스루(Follow Through)
< 공을 뿌린 이후 감속 구간을 거쳐 팔로 스루에 도달하는 모습 >
앞선 과정까지의 힘이 분산되는 과정이다. 디딤발로 몸을 지탱하며 투구 과정에서 발생한 힘이 분산된다. 그와 동시에, 회전하던 몸통, 팔의 감속이 일어난다. 이 과정에서 특히 어깨와 팔 사이의 관절에 막대한 힘이 가해지므로, 부상 방지를 위해 다른 과정 못지않게 정확한 수행이 매우 중요한 과정이다.
결론
< 신체 분절에 모션 센서를 부착하여 최대 회전 속도(각속도)에 도달하는 시점과 그 속도를 측정한 모습 >
공학에서 처음 시작된 키네틱 체인의 개념은 다른 스포츠뿐 아니라 야구에도 적용됐다. 그 결과 공을 던지는 팔에 효율적으로 힘을 전달하기 위한 방법에 대한 이해도가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이러한 이론적인 발전은 초고속 카메라나 모션 센서 등 기술 발전과 함께 선수들의 퍼포먼스를 획기적으로 개선했다. 그 결과 체격이 작은 선수도 150km/h가 넘는 강속구를 손쉽게 뿌릴 수 있게 됐다.
향후에도 신체 분절들 간 효율적인 힘 전달을 위한 방법이 개발될 것이다. 그러나 그 또한 키네틱 체인이라는 패러다임을 전제로 일어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야구 투구 동작의 정수, 그곳에는 키네틱 체인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 = MLB.com, PM R – 2016 – Chu – The Kinetic Chain Revisited New Concepts on Throwing Mechanics and Injury, Kinetic Chains _ A review of the concept and its clinical application, Step by Step Guide to Understanding the Kinetic Chain Concept, Tennis con, Tread athletics, Armcare.com, Teachmeanatomy, Yorkville sports medicine clinic, Nielesser
야구공작소 조승택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익명, 전언수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변영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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